102세 노옹과 100세 노파의 이심전심의 눈빛
남 상 선 / 수필가
요즈음은 고령화시대로 각처에 늘어나는 것이 노인요양병원이요 노인요양원이다.
이 곳은 노인들의 소천 대기소인 동시에 노인들의 만년 숙소가 되기도 한다.
나이 들면 요양원에 들어가는 것이 자연스런 현상 같지만 순번을 기다리는 노인들의 딱한 모습을 보게 되면 애처롭고 안타깝기 그지없다.
병자 종합백화점의 고장 난 몸들이지만 그 노인들의 심리 공통분모요 최대공약수는 한결같은 고독이요 혈육에 대한 그리움이다.
정신이 온전한 환자이건 치매환자이건 간에 모두가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자신들이 살던 고향이 있었건만 보고픈 혈육은 가뭄의 콩 나듯 하는, 눈요기로 그치고, 보이는 것은 병상침대요 휠체어에 고독과 그리움뿐이니 이를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바라보는 이의 마음만 안쓰럽게 어둡게 하고 있다.
개중에 사람냄새 묻어날 듯한 병상은 외로울 새도 없으련만, 파리새끼 하나 얼씬 않는 침상은 몇 달이 되도 인기척조차 없으니 여기 주인공은 하늘에서 떨어진 폐기물인가, 아니면 불량혈육붙이가 내다버린 고철값도 못 되는 폐기 불량품인가!
이 집의 할망구 할아범은 외계에서 왔는지 사람냄새 점찍은 그림자도 없구나 !
이런 현실이니 현대판고려장이 뭐 따로 있다 할 수 있겠는가!
요양원 병상 대부분이 눈물 그렁그렁한 검버섯 얼굴 대기노인들, 안타깝기 그지없다.
어떤 휠체어를 탄 노인은 날이 새면 고향이, 혈육이 그리워서 링거 줄을 꽂은 채 창문을 열고 고향 하늘 쪽을 향하여 한숨에 눈물을 반죽하고 있다. 그건 바로 물보다 진하다는 그 알량한 피붙이 혈육에 대한 그리움에서 일게다.
품안에 있을 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던 새끼들, 지금은 다 어디 가고 얼굴조차 보기 힘들단 말인가!
오늘 아침은 유난히 밝은 햇살이었는데 한나절 오색찬란한 무지개까지 야단이었다.
아마도 좋은 일이 있을 거 같은 예감에 기대감으로 지내는 하루였을 게다.
평상시 못 보던 무지개 덕분인지 무료한 시간을 심심치 않게 보내는 하루였다.
그건 바로 천안 요양원서 근무한다던 요양보호사의 핑크색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천안 성정동 근처 어느 노인 요양원 얘기를 들었다. 요양원은 5층 건물에 3층은 남녀 공용 노인 병동이고, 2층은 여성 전용 할머니들 입원 병동이라 했다.
요양보호사가 지나다 보니 2층의 치매초기 환자할머니가 시무룩하게 앉아 있었다. 사연을 들어보니 오랜만에 손주들이 왔다 갔는데 빈손으로 왔다며 그게 서운해서 불평 절반에 푸념 절반으로 짜증스런 투정을 했다는 것이다.
얘기를 들은 요양보호사는 어린애 같은 할머니를 달래려고 다른 병상서 먹으라고 준 귤 몇 개를 할머니께 드렸다.
어린애가 다 된 할머니는 그걸 받고 금방 표정이 달라지며 좋아하는 것이었다. 시무룩했던 얼굴은 금세 어디가고 생글생글 웃는 얼굴은 청명한 날씨 그 자체였다. 귤 몇 개에 기분 전환이 된 샘이었다. 요양보호사는 할머니 기분을 전환시켜 드리려고 휠체어 방향을 3층 휴게실 쪽으로 틀었다.
휠체어 탄 노파는 지명(知命)의 나이 후반에서부터 100세 되는 지금까지 미망인으로 살아온 할머니였다. 3층 올라가보니 102세 할아버지가 휴게실서 TV를 시청하다가 휠체어 위의 할머니를 정신 나간 사람처럼 쳐다보았다. 할머니를 바라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사랑의 큐피터화살을 맞은 듯한 눈빛이었다.
고목에도 꽃필 날이 있다더니 그날이 바로 오늘이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할머니도 할아버지를 바라보는 눈빛이 예사스럽지 않았다. 무엇인가를 갈구하는 눈빛임에 틀림없었다. 이심전심이었던지 불과 30초도 안 된 사이에 102세 노옹과 100세 노파는 말이 없는 가운데 서로의 좋아하는 마음이 눈빛으로 통하고 있었다.
들리는 얘기에 의하면 102세 노옹은 대학 교수로 퇴임했는데 고희 나이에 아내와 사별하고 독거를 하다 자식들의 성화로 요양원에 왔다고 했다.
보통 땐 약간 치매기가 있어 보이는 할아버지였지만 큐피터화살의 마력 때문인지 이 때만은 정상으로 돌아와 할머니를 좋아하는 마음밖에 없었다.
순간 눈빛도 달라졌다. 할머니도 무슨 텔레파시가 통했는지 할아버지를 바라보는 시선이 무엇에 끌린 듯 했다. 할머니의 눈빛도 빛나고 있었다. 섬광 같은 눈빛이 무슨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두 노인의 연세가 100세에, 102세였지만 20세 안팎의 갑순이와 갑돌이 마음이 되어 수줍어하는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옅은 핑크색 낯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평생 동안 감추어 놓았던 수줍음과 부끄러움이어서 그런지 영락없는 갑순이 갑돌이의 연애감정 얼굴의 그대로인 것 같았다.
역시 사랑하고 좋아하는 감정엔 나이의 많고 적음이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2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노옹과 노파 사이엔 소중한 모든 것들이 눈을 통하여 숱하게 오고가는 것이었다.
그것은 분명히 사랑하는 남녀사이에서만 오갈 수 있는 야릇한 감정이 순수에서 순수로 통하는 순간이었다.
102세 노옹과 100세 노파의 이심전심의 눈빛
그것은 눈으로 볼 수도 없고 만져볼 수도 없는 것이었지만,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임에 틀림없었다.
사랑은 젊은이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사랑은 바로 노인도 누릴 수 있는 공평한 아름다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은 역시 나이와 상관없이 순수와 진실로 점철된 것이라면 전천후로 아름다운 것이란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이제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그 어떤 형역보다 무서운 고독을, 사랑의 위력으로 극복해 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류가 형성되는 순간이었다.
할아버지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용기를 내어 할머니께,
“ 할멈, 우리 결혼합시다! ” 했다.
순간 할머니도 이 때만은 제 정신이 들었는지
“ 할아범 돈 많아요 ? 나한테 옷 한 벌 사 줄 수 있겠어요! ”했다.
뜻밖의 반응에 고개를 갸우뚱한 할아버지는 갑자기 시무룩해져 말을 못하고 있었다. 가진 돈이 없어서였다. 돈 걱정에 고민하다가 저녁까지 건너뛰고 밤잠까지 설치는 것 같았다. 날이 밝자 무슨 묘책이라도 떠올랐는지 노옹의 얼굴은 생기가 돌았다. 당장 담당 요양보호사한테 2층에 가자고 졸라댔다. 3층 요양보호사가 낌새를 알아챘는지 빙그레 웃었다. 자력(磁力)에 끌려서인지 할아버지 휠체어가 2층 할머니 병상까지 왔다.
2 ․ 3층의 요양호사들이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오작교 역할을 잘해 주어 노옹과 노파의 소망 사업은 박수칠 일만 남은 것 같았다.
102세 노옹과 100세 노파의 이심전심의 눈빛
월하노인(月下老人)의 점지가 요양원 전체의 경사가 되었으면 좋겠다.
콩깍지 씐 노인들의 사랑이, 봄 4월의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났으면 좋겠다.
아니, 이 눈빛이 건강까지 되찾는, 고목에 피는 사랑의 영약이었으면 좋겠다.
첫댓글 너무도 아름다운 이야기 입니다
사랑 하나면 안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사랑! 참으로 생각만 하여도 설레이는
것이 아닐런지
상상만으로도 웃음이 나고 아름답네요
구정이 다가 오네요
할머니 할아버지, 어머니, 아버지가
계시는 사람들은 행복하시겠네
명절 즐겁게 보내시길 빕니다
너무도 아름다운 글 감사하고요
사랑의 힘은 위대하여서 어떤 불가능도 해결한다는 그 믿음이 노옹 노파한테도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형역 같은 고독의 생활이 두 분 사랑의 묘약으로
면죄부가 됐으면 합니다. 에스윈 선생님 보약보다 나은 응원 댓글 고맙습니다..
귀한글 즐감하고 갑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필향필 하소서~~~~~~~
귀한 걸음으로 힘 주시니 감사합니다. 보다 향이 있는 글을 써서
보은하도록 하겠습니다. 선생님 많이 감사합니다.
아름다운글! 아름다운 걸실로 꼭 이루어지길 기대합니다. 제2막은 춘4월에 기대해 볼까요?
작가님의 건강과 좋은일이 많은 행복한 새해가 되시길 기원드리며, 계속 좋은글 올려주시기바랍니다.^^*~
구정희 선생님 칭찬으로 힘을 실어 주시니 천군만마 조력이 따로 필요없군요.
보다 아름다운 내용으로 건필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요즘 나이들어 황혼이혼이나 졸혼으로 서로의 자유로운 생활하며 독립하기 원하는 100세시대인데 이 글을 통해 그야말로 100세시대임을 실감해 봅니다. 100세넘어도 열정이 있다는게 놀랍고 더구나 치매임에도 그런 대화를 할 수 있음이 또 놀라봅니다. 늘 그런 마음으로 위층 아래층에서 만나 새 희망으로 남은 삶 아프지 않고 살아갔음 바래지고 다시 기도를 해 봅니다. 아름다운 이야기. 다시 보아도 정말 그런 일이 있었다는게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네요. 그렇담 장래 우리가 늙어도 그런 청춘이 있을 수 있을가? 100세인데도? ㅎㅎ 희망이 보이는걸요? 치매에 걸리지 말아야지 생각해 봅니다 ㅎㅎ 작가님 그 뒤의 이야기도 궁금해 집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둔 것이 꽃보다 아름다운 그러면서도 마음에 느낄 수 있는 것이
사랑이라 했는데 그런 아름다운 것으로 지옥보다 더 무서운 고독을 면해 보려
하는 노옹과 노파의 그림 같은 장면애 박수로 응원을 보냅니다. ahrghk님
소망대로 우리도 만년 청춘의 로맨스로 건강한 생활이 유지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ahrghk님 진솔한 댓글로 성원해 주시어 감사합니다.
두 어르신의 순수한 사랑얘기에 얼굴에 미소가 절로 지어지네요~^^ 인간이 가질수있는 감정중에 사랑만큼 순수한 감정은 없는거같아요^^ 앞으로도 사랑스러운 글 많이 써주세요♡ 오늘도 사랑스럽게 하루를 마무리 할수있게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만인이 아름답다고 공감하는 삶으로 우리도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가슴 느꺼운 그런 사랑으로
보다 사람냄새 풍기는 그런 사랑으로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김정아님, 관심 사랑으로
응원 주시어 많이 감사합니다. 사랑으로 즐겁고 행복한 삶을 누리소서.
우리 모두는 늘 젊고 건강한 날들이 계속될 줄 알았던, 그래서 한 때 젊은 날들을 당연시 여기며 때로는 젊음을 믿고 소홀했던 시간을 보내던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나이가 들면서 아침 잠이 없어진다는 말이 다른 해석으로 다가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시간이 아까워서 좀 더 일찍 일어나고 아침을 맞이하는, 고마움을 느끼는 하루를 만끼하려 최선을 다하는 모습인 듯하기도 합니다. 오늘도 해가 뜨기 전에 출근하며 행복하다는 생각을 되내이게 됩니다. 마음 설레는 일 가득하신 하루 되세요^0^
우리의 젊음도 순간이라 생각합니다. 때가 지나면 늙어지게 마련이고 늙으면 죽게 마련인데
노인이라 해서 고독으로 소일하게 하고 방치하는 식으로 노인들을 눈물 나게 하는 자식들
이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노옹 노파의 사랑이 왜 필요하고 아름다운지를 알아야갰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형복 선생님 제글에 관산심 사랑 주시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