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케가와 여행1 - 백제사 절을 보고는 신칸센으로 시즈오카현 가케가와에 도착하다!
여행 6일째인 2019년 4월 9일 교토역 에서 JR 패스로 신칸센 기차를 타고 마이바라
(米原 미원)역에 도착해 코인로까에 배낭을 넣고는.... JR 역 1층에 있는 오미철도
마이바라역에서 사철 기차를 타고 요카이치 八日市 역에 도착해서는 택시를 타고
백제촌 百濟村 마을을 지나 산을 올라가 햐쿠사이지 百濟寺(백제사) 절을 구경합니다.
쇼토쿠태자 가 스승인 고구려승 혜자 와 함께 여행하다가 나무에서 불이 나오는 이적을
보고 나무를 깍아 불상 을 만들어 지었다는 절 햐쿠사이지 百濟寺(백제사) 를 보고는
돌아오다 사케의 명가 오카무라 혼케 (岡村本家 강촌본가) 까지 구경하고 마이바라
米原 역으로 돌아와서는 코인 로까에서 배낭을 찾아 신칸센 新幹線(신간선) 기차를 탑니다.
시즈오카현 의 가케가와 掛川(괘천) 로 가야 하는데 전광판에 고급으로 빠른 신칸센
히카리호 는 20분후에 출발하고 그 보다 좀 느린 보통의 고다마호 는 40분후에
출발하니 히카리호를 타야 하지만 히카리는 작은 역인 가케가와역에는 서지 않습니다.
그럼 신칸센 고다마 こだま 를 타야 하는데 이 기차는 40분을 타야 하는데다가 느리니
어쩐다? 잠시 망설이다가 작정하기를.... 기다리느니 그냥 20분 후에 출발하는
히카리호 를 타고는 나고야 에 도착해서 다른 고다마 신칸센 으로 갈아 타기로 합니다!
14 시 57분에 출발한 신칸센 히카리호는 왼쪽에 옛날 세키가하라 전투장 을 지나고 기후역
을 거쳐 동남쪽으로 달려서는 나고야역 에 도착하는지라... 내려서 15시 34분에 출발
하는 도쿄행 고다마 664호 에 올라 타서 자유석 차량(11~7호 차량) 으로 들어가 앉습니다.
나고야역을 출발한 기차는 도요하시역 을 지나면 아이치현이 끝나고 시즈오카현이 시작
되니 바다에 둑을 쌓아 만든 철로 위를 달려서 하마마쓰 에 잠시 정차한 다음.....
다시 출발하면 16시 30분에 시즈오카현 의 가케가와 掛川(괘천)역 에 도착하게 됩니다.
2년 전에 오늘과 똑 같은 노선으로 여행했는데... 그때는 나고야에서 사철을 타고 이누야마
를 본 다음 다시 돌아와 오카자키역 에 들러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본성인 오카자키성
을 구경하고는 다시 기차를 타고 교통의 요지인 도요하시 豊橋(풍교) 에 내려 1박했습니다.
교토에서 에도(도쿄) 에 이르는 도로는 일본의 동쪽 지방이니 도카이도(東海道 동해도)
라고 부르는데 53역참 중에 35번째 역참인 도요하시 는 화가 우타가와 히로시게
歌川広重 가 도요하시 강변 풍경을 그린 ”요시다, 토요강 위의 다리”
라는 우키요에 (浮世繪 부세회) 그림이 아주 유명하니.... 그 현장을 찾아 구경했습니다.
1865년 프랑스 화가 브라크몽 은 일본에서 유럽에 수출된 이마리 도자기 포장지 로 사용된
우키요에(浮世繪(부세회) 라 불리던 호쿠사이의 민화 를 발견하고 마네, 드가 등
친구에게 돌린게 유럽 인상파 탄생의 발단 이 되었으니.... 자포니즘(Japonism )
일본 미술붐 이 유럽에 빠르게 퍼졌으며 1867년 파리 박람회에 출품 된후 높이 평가됩니다.
우키요에 의 강한 색감이 인상파 화가들에게는 색다른 느낌 을 주었으니 고흐 는 일상
생활중에 "미" 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 우키요에 작품을 수집하고 따라 그렸으니
무려 477점 이나 된다는데... 자기 방을 우키요에 그림으로 장식 했으며 귀를
자른후에 그린 “자화상” 에도 배경은 우키요에 그림이 덮고 있을 정도 라고 합니다.
모네 는 부인 카미유 를 모델로 “일본옷을 입은 여인” 을 그렸으며 우타가와 히로시게 가
그린 우키요에 그림 “오하시 아타케의 소나기” 를 모방해 “ Bridge in the Rain"
을 그리는등 수십편에 이르고 드가, 마네, 고갱 등도 우키요에 그림에 열광
했으니 프랑스는 “일본 도자기와 우키요에 그림” 으로 “자포니즘” 광풍에 휩싸였습니다!
우키요에 (浮世繪(부세회)의 “우키요” 는 전란에 휘말려 빈곤이 극에 달하고 생활이 비참
했을때 현세는 “우키요(憂き世)” 로 무상의 세계 라고 생각해 내세의 극락정토 를
꿈꾸었으니..... 덧없는 세상, 속세 를 뜻하는 말인데 무로마치 시대 부터 에도
시대 말기 까지 서민 생활을 기조로 하여 제작된 목판화(木版畵) 를 일컫는 말 입니다.
그리고 신간센 고다마호를 타고는 하마마쓰 에 내렸는데 여긴 시즈오카현으로 옛날에는
도토미국 이라 불렸는데 동쪽 스루가국과 함께 센고쿠 시대에는 이마가와씨 가
다스렸으니.... 100여년 이어진 혼란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서 이마가와
씨는 교토로 올라가기 위해 2만 5천의 대군을 몰아 오와리(나고야)국으로 진격 합니다.
가이국(야마나시현) 호랑이 다케다 신겐 이 시나노(나가노)로 쳐들어갔다가
에치고의 용 우에스기 겐신 에게 발목이 잡힌 사이 이마가와
요시모토 는 미카와 성주 도쿠가와 이에야스 를 선봉으로 침략하니 영주
오다 노부나가 는 5천 병력으로 중과부적이라... 전의를 상실한 듯 싶었습니다.
적군이 국경을 침입해 아군의 마루네와 와시쯔 양 성채가 함락 직전이라는 급보를 받고도
기요스성에 웅거한 오다 노부나가 는 병사들을 소집하거나 작전회의 한번 여는
법도 없이 술과 아츠모리 敦盛 춤과 노래 로 지새니...... 가신과 무장들은 실의에 빠집니다.
“ 생각해보면 이세상은, 영원히 살 집이 못되는것
풀잎에 내린 흰 이슬, 물에 비치는 달보다 허무하다
황금빛 골짜기에서 꽃을 노래하던 영화, 먼저 무상한 바람에 흩날리고
남쪽 망루의 달과 노래하던 이들은, 달보다 먼저 가버려 무상한 구름에 가리우고
인간 오십년, 돌고도는 인간세상에 비하면,
덧없는 꿈만 같구나, 인생은 일장춘몽 덧없어라!
생자필멸이요 회자정리라, 생을 얻은자 누군들 죽지 않으리”
병법 에 이르기를 전투에서 적을 속이려면 우선 "아군 부터 먼저 속이라" 고 했던가요?
그런 와중에 기노시타 도키치로 (도요토미 히데요시)등 정탐병 을 풀어 이마가와
씨가 오케하자마 계곡에 5천의 본진만 거느리고 들어섰다는 정보를 입수하고는
1560년 6월 12일 비내리는 새벽에 오다 노부나가 는 잠이 깨자마자 행동에 나섭니다.
식은밥을 찬물에 말아 먹고는 갑자기 벼락치듯 출전하니 급한김에 뒤를 따르는 무사가 단
6기 에 불과했다고 하던가요? 아쓰타 신궁 에서 승리 기원제 를 지내며 병사들이
모이기를 기다라는데..... 아닌 밤중에 홍두깨 라고 자다가 급보를 받고 모여든
병사 중에 눈속임 군대 2천을 먼저 큰 도로를 따라 출발시켜 적의 이목을 분산 시킵니다.
그런 후에 오다 노부나가는 정예 결사대 1천명 을 거느리고 산을 넘어 이마가와 5천명
본진을 기습하여 이마카와 요시모토의 목을 베니 일본의 역사가 달라진
것입니다! 주군을 잃은 스루가 군대는 일패도지 하고 이마가와군 선봉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오카자키로 도망쳐서 자립하는 중에 오다씨와 동맹 을 맺습니다.
오케하자마 전투 이후 세상은 나고야를 근거지로 하는 오다 노부나가 의 것이 되었으니
교토와 이세지방을 차지한후 무로마치 막부 아시카가 쇼군을 손에 넣고 일본의
패자 가 되는데 오케하자마 전투는 1546년 가와고에성 河越城 전투와 1555년
이쓰쿠시마 嚴島(엄도) 전투와 더불어... “일본 3대 기습(奇襲)” 전으로 불린다고 합니다.
이런저런 옛날 일을 회상하는새에 신간센 고다마 新幹線こだま 기차는 하마마쓰 를 지나
16시 30분에 가케가와 掛川(괘천) 역에 도착하니 배낭을 메고는 남구 로 나옵니다.
가케가와역 남구 에서 보니 주변에 호텔들이 많이 보이는데 오른쪽으로 걸어서 도요코인
가케가와에키 신칸센 미나미구치 Hotel 東橫 inn 掛川駅 新幹線 南口 에 체크인 합니다.
도요코인 호텔 방에다 배낭을 던져 놓고는 다시 밖으로 나오는데 원래 계획은
남쪽 교외 에 다카텐진조 高天神城 (고천신성) 에 갈 계획이었으나.....
시간이 오후 5시 가까우니 너무 늦은지라 역을 통과 해서는 북구 로 나갑니다.
성 으로 향하는 대로를 천천히 걸어서 주변에 상점들과 카페며 레스토랑 을
살펴 보고는 10여분쯤 지나서 오후 5시에 가케가와성 掛川城
(괘천성) 에 도착하는데.... 여기도 시간이 늦은지라 오늘은 외관만 둘러 봅니다.
불이 켜졌지만 아무도 없는 빈 성 을 바라보다가 문득 정임수 씨가 동아일보
‘횡설수설’ 칼럼에 올린 “불끄기 일자리” 라는 글이 떠오릅니다.
“스웨덴 제2도시 예테보리는 바이킹 후예답계 세계 조선업의 중심지 였다. 1980년대
일본과 한국의 공세에 밀려 쇠퇴하기 전까지 말이다. 몰락한 조선 도시 였던
예테보리는 4차 산업혁명 메카로 불린다. 도심에선 세계 최대규모 자율주행 운행
프로젝트 가 가동되고 있고 미래차를 개발하는 정보기술(IT) 기업이 속속 둥지를 틀었다”
“첨단 IT 도시로 탈바꿈한 예테보리 에서 또 하나의 실험은 ‘영원한 고용’, 2026년
완공되는 코르스베겐 기차역에서 일할 종신 직원 을 뽑는데 그는 승강장 형광등
을 켜고, 해가 지면 불을 끄고 퇴근하는 게 전부다. 영화를 보든, 잠을 자든
상관 없다. 월급은 260만 원, 여기에 연봉 인상, 휴가, 퇴직 연금 까지 보장 된다.”
“별다른 자격 없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는 이 일자리는 코르스베겐역 디자인 공모전에서
당선된 스웨덴 예술가 2명의 아이디어 에서 나왔다. 이들의 응모작에는 자신들이
설계한 역사(驛舍)에 이 ‘비생산적’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핵심 콘셉트 로 포함돼 있다.”
“이들은 상금 700만 크로나 (8억4000만 원)로 재단을 만들고 월급을 충당할 계획이다.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인간이 쓸모없어질 것이라는 위협이 커지고 있다.
우리도 머잖아 코르스베겐역 직원의 신세 가 될지도 모른다.’ 프로젝트의 취지니
AI 시대 일자리 미래에 대한 경고를 담은 실험을 두고 “세금 낭비” 라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노동의 본질과 가치를 고민하는 예술적 표현” 이라는 평가가 많다. 한국도
두달간 빈 국립대 강의실의 불을 끄는 일자리 를 만들어 1인당 32만원
의 월급을 줬으니 예산만 1200억원. 기술 발달에 따른 ‘노동의 종말’ 을
경고 하려는 스웨덴의 불끄기 일자리를 만든 취지와는 철학이 다른 것 같다.“
첫댓글 유명한 화가 고흐, 드가, 마네, 고갱이 일본화가 우키요의 작품에 열광햇었군요.
유럽.... 특히 프랑스 화가들에게는
참으로 신선한 충격이었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