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에서 출발하여 5시간쯤 달려서 포항시 북구 대전리마을에 도착했다. 도착 즈음해서 도로공사중이었는지 차가 무척 흔들려 애를 먹었다. 사찰입장료 비용을 절약도 하고 보다 빠르게 능선진입을 위해 정해진 장소를 들머리로 하였다. 여기서 잠시 소동이 생겼다. 전체가 내려서 사진을 남기고 팀별로 가는걸로 알고 있다가 공지가 잘 이루어지지 않아 15분쯤 늦게 떠났다. A팀 현술이님이 길을 꺽는 지점에서 기달려 주셨다. 빌린 헤드랜턴에 의지해 전진했다.컴컴한 마을길이 길게 이어진다. 개화시기가 일치하는 벗꽃이 만개하여 가로등 불빛에 비치는 여명의 운치가 환상적이다. 30분 쯤 정도 걸어왔지만 등산로 진입부가 나오지가 않는다. 그러는 사이에 날이 훤해졌다. 마을에 들어서면서 바로 문수봉으로 향하는 진입부가 있다는걸 나중에 알게 됐다. 결국 보경사 경내로 들어가서 유료로 표를 끊었다. 마당에는 수령이 500년은 족히 됐을 느티나무가 있다. 오래된 소나무와 건축물에서 천년고찰의 면모를 느끼게 한다. 조금씩 발걸음을 내디디며 청하골 12폭포 방향으로 올라갔다.
길 오른쪽으로 수로가 놓아졌다. 맑은 시냇물이 흐른다. 땅바닥은 흙길에 평평한 돌을 깔고 돌과 돌 사이의 틈을 메웠다. 주변의 재료로 길을 낸게 보기좋았다.(요즘 산이나 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게 야자매트이다. 흙이 쓸려나가는걸 방지하거나 꼭 필요한 용도에 사용하면 좋겠지만 미관만을 생각하거나 필요 이상으로 바닥을 까는 걸 볼 때가 종종 있다. 예산 낭비라는 생각이 든다)
문수봉삼거리에서 우측으로 진입하여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했다. 구불구불한 흙길이 친근하게 느껴진다. 고도가 높아지면서 청하골 12폭포 경치가 발아래 깔린다. 문수암은 산 중턱 쯤에 자리잡고 있다. 표지석과 투박하게 세운 나무기둥에 기와를 얹은 대문, 작은 초록 칠판이 붙어있다. 빽빽하게 자라고 있는 대나무가 잘 어울리는 암자의 표정이 정겹기도하고 엄격한 규율로 무장한 마른 체격의 스님이 금방이라도 걸어나올 것같은 긴장감같은 것도 느껴졌다. 여기서부터 능선에 도착하기 까지 다소 급경사를 이룬다. 길을 빼곤 맨땅이 없다. 흙에 의지해 살아가는 나무와 낙엽으로 가득하다. 봄을 머금은 토양이 실(實)해 보인다. 논밭처럼 겉흙이 비옥해야 산에 사는 모든 생물이 잘 살아갈 수 있다. 나무와 풀이 잘 자라야 그것을 먹고사는 벌레와 초식동물이 살고 또 그것을 먹는 새와 육식동물 역시 번창할 수 있다. 한달쯤 시간이 지나가면 참나무나 밤나무같은 큰키나무와 생강나무, 노간주나무같은 작은키나무들, 진달래같은 떨기나무 그리고 풀과 이끼로 이루어진 여러 겹의 옷을 두른 모습으로 탈바꿈할 초록의 내연산이 우리앞에 나타날 것이다.
대전리마을 입구에서 출발한지 2시간이 조금 못되는 시간에 문수봉628m에 닿았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삼지봉까지 약 40분 걸렸다. 내연산은 포항시 송라면과 영덕군 남정면 경계에 있다. 종남산(終南山)으로 불리다가 신라 진성여왕이 이 산에서 견훤의 난을 피한 뒤에 내연산이라고 개칭하였다고 한다. 능선에 난 길이 호젓하다. 낙엽이 길 한쪽에 쌓여있다. 봄을 시샘하듯 바람이 세차다.(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심술바람때문에 OR모자 방수커버가 날아가 버렸다) 삼지봉 가는 길 좌우로 소나무 군락지가 있다. 곧게, 예쁘게 하늘을 향해 뻗은 모습이 기운차다. B코스로 올라온 분들과 합류했다. 삼지봉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간식을 먹었다. 준비해간 꼬마김밥에 소주한잔 맛이 기가 막히다. 언제나처럼 땀흘리고 먹는 산에서의 식사는 맛있고 정겹다. 간식거리를 나눠 먹는일이 왜 공동체를 이루는 일인지 경험해보면 금방 안다.
식사를 마치고 향로봉을 찍고 12폭포를 거쳐 원점회귀하는 당초 코스에서 거무나리코스로 변경하여 하산을 시작했다. 왔던 길로 5분 정도 내려오면서 시그널이 붙어있는 우측길로 꺽어야 한다. 이곳 길 역시 매우 좋다. 진달래가 수줍게 피었다. 명품 소나무가 즐비하다. 12폭포 계곡이 점점 가까이 다가온다. 계곡 건너 선일대의 그림같은 풍경이 선명하다. 계곡 물에 양말을 벗고 발을 당궜다. 불어오는 바람과 따스한 햇볕을 쬐며 땀을 식힌다. 잠깐의 휴식이 꿀맛같다.
선일대(仙逸臺)를 향했다. 계단을 잘 만들어놨다. <선일정>이라고 쓴 정자 현판 앞에 도착했다. 겸재 정선이 여기에 서서 그림을 그린 역사의 현장이어서 감회가 더 특별하다. 선일대는 신선이 학을 타고 비하대에 내려와 삼용추를 완성한 후 선일대에서 오랜 세월동안 머물렀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다. 누각과 절애의 암벽, 소나무와 부드럽게 불어주는 바람과 능선의 장쾌함이 볼만한 명소중의 명소이다. 겸재 정선(鄭敾)은 조선 영조 9년인 1733년 봄부터 1755년 5월까지 청하현감을 지내면서 이 일대를 그림으로 남겨 진경산수 화풍을 완성하였다. 선일대 암자와 노송, 연산폭포와 관음폭포, 잠룡폭포, 선일대를 담은 <내연산폭포> <내연삼용추도-1> <내연삼용추도-2>같은 국보급 그림을 남겼다. 이 구간에서 시간적인 여유가 있어서 들꽃을 사진에 담았다.
현호색(玄胡索)이 제일 먼저 반겨주었다. 이른 봄 군락으로 피어 봄을 알리는게 현호색이다. 씨가 검고 광택이 나서 이 이름이 됐지만 척박하거나 기름진 땅 어디고 잘 자란다는 의미도 있다. 꽃모양이 마치 종달새 머리를 닮았다해서 속명을 그리스어로 종달새를 뜻하는 코리달리스로 지었다. 얼레지도 꽃망울을 막 틔우고 있었다. 녹색 잎새에 자주색무늬가 얼룩얼룩해서 이 이름이 됐다. 씨가 떨어지면 4년이 지나야 꽃이 핀다. 산이나 들에서 만나면 반가운 이유가 여기있다. 꽃말은 질투, 바람난여인이다. 꽃과 열매의 모양에서 유래된 염주괴불주머니도 여러군데에서 막 피기 시작했다. 꽃은 괴불주머니를 닮고, 열매는 염주를 닮는다. 색이 샛노랗다. 괴불은 오래된 연뿌리에 나는 열매다. 이게 나쁜 기운을 쫓는다고 알려져 있다. 괴불주머니는 오색의 비단 헝겊을 이용하여 여러 모양의 수를 놓아 만든 노리개를 말한다. 이 식물은 독이 있어서 먹으면 안된다. 살충, 이뇨, 조경으로 사용된다고 한다. 꽃망울 상태에 있거나 막 피고있는 남산제비꽃 군락이 여러군데 있다. 서울 남산에서 발견됐으나 전국에 분포한다. 잎몸이 3개로 갈리고 전체적으로 손바닥 모양을 하고 있어 분간하는데 참조가 된다. 4~6월이 개화시기이다. 이날 가장많이 본 꽃은 진달래와 생강나무, 돌양지꽃이었다.
선일대에서 다시 계곡쪽으로 내려오면 폭포(瀑布)가 줄지어 있다. 관음폭포는 비하대 아래 형성된 폭포이다. 주변의 경치가 빼어나다. 좌우, 정면으로 난 천길 단애가 현기증이 날 정도로 높고 날카롭다. 두개의 커다란 구멍에서 쏟아내는 모습이 장관이다.(나머지 구멍하나는 수량이 거의 없었다) 연산폭포는 출렁다리 건너 바위 모퉁이에 숨어있다. 12폭포중 규모가 가장 크다. 낙폭 역시 엄청나고 웅장하다. 영화 <남부군>의 목욕 촬영장소 이기도 하다. 상생폭포도, 잠룡폭포도 힘차게 물줄기를 쏟아내고 있었다. 잠룡은 아직 승천하지 못하고 물속에 숨어있는 용이라는 뜻이다. 폭포 아래는 거대한 암봉인 선일대를 낀 협곡에 용이 숨어 살다가 승천했다는 전설이 있다. 다른 폭포에 비해 접근이 어렵다. 무풍폭포는 바람을 맞지않는 폭포란 뜻이다. 폭포아래 30여m에 걸쳐 암반 위를 뚫고 형성된 아주 좁은 바위틈으로 물이 흐르다보니 이런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12시쯤 보경사에 도착하여 산행을 마쳤다. 가까운 식당에서 일행들이 오는 것을 기다릴 겸 해서 막걸리 한잔을 했다.
피에쓰
1)능선 바람에 모자 외피가 날아간 줄 몰랐다가 나중에야 알았다. ^^ 2)백합과에 속하는 얼레지는 가재무릇이라고도 한다. 꽃색깔은 자주색이고 꽃안쪽에 W자 모양이 있다. 3)정선은 미술사적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미술가라는 평을 받는다. 84세까지 장수했다. 금강산 1만2천봉 전체를 그린, 국보 <금강전도>와 <단발령망금강산> 등 수많은 그림을 그렸다.
4)꽃을 찍으면 등산이 잘 안될 때가 있다. 시간을 너무많이 소비하기 때문이다. 특히 시간을 정해놓고 원정산행을 할 때는 부담스럽다. 꽃사진은 별도로 가는게 좋다. 5)연산폭포 주변의 바위에는 수십개의 이름들이 새겨져있다. 수십년부터 수백년된 것들이다. 이걸 낙서로 봐야할지, 아니면 양반문화의 단면으로 이해해야할지 좀 헤깔린다.
첫댓글
멋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