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기안이라고 해왔나, 정신을 어디에다 두고 일하나, 월급이 아깝다 아까워.” 예전 직장 근무할 때 후배 직원‘을’이 과장한테 기안문서 결재를 올렸다가 꾸중을 듣는 중이었다. ‘을’은 기안문 결재받을 때 매번 그냥 통과되는 때가 별로 없었다. 기안문이 부실한지, 과장한테 찍혀서 매번 꼬투리를 잡히는지 모르지만, 질책을 받거나 퇴짜를 맞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심하게 갑질하는 과장도 문제지만, 모욕적인 호통에도 어필(appeal)도 못 하고 늘 책잡히는‘을’도 안타깝다.
기안문(업무 추진 내용을 상급자에 허락받는 문서)을 대리, 과장, 차장 등에게 층층이 결재를 받을 때, 기본적인 사실이나 방향이 맞으면 오·탈자 정도만 수정해도 되는데, 상급자는 한두 자라도 고쳐야 권위가 서는 내용을 수정하고, 심할 때는 기안문 전체를 다시 작성하라는 때도 있다. 혼나는 게 안쓰러워 꼬투리 잡히지 않게 일을 확실히 하고, 과하게 모욕적인 언사엔 이의제기하라고 ‘을’에게 조언했지만 변함이 없어 정기 인사 인사이동만 기다리는지 모르겠다.
‘을’은 책잡히지 않게 업무 처리를 하고, 과도한 질책에는 이의제기해야 한다. 상사의 지적에 그 자리에서 맞받아치면 그 당시는 통쾌하겠지만, 인간관계는 파탄이 나고 후환이 올 수 있다. 상사의 질책엔 일단 수긍 후 감정이 가라앉은 뒤에 조용히 이의제기하는 게 좋다. 그러면 상사는 다음에는 정당한 질책도 망설이고 강도도 약해지고 또 배려할 것이다. 합당한 대우를 받으려면, 부당한 처사에 대한 항의는 필요악이다.
예전 필자가 직장생활을 시작할 당시엔 일부 상사들의 횡포가 심했다. 상하 관계가 수직적이고 권위적이라 상사의 부당한 지시나 과한 질책에도 제대로 항의조차 하지 못했다. 야근이 일쑤이고 퇴근도 상사가 퇴근해야 할 수 있었다. 요즘 직장은 수평 문화로 바뀌고 민주적인 직장 문화로 갑질하는 상사도 거의 없다. 인사 고과에 다면평가(동료나 부하직원이 평가)가 도입되고, 노동조합의 견제로 갑질이 많이 근절되어 상사가 하급자 눈치를 보는 일도 있다.
인생을 살 다 보면 수많은 사람과 부대끼며 살아간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로, 자기 할 일은 확실히 하면서 부당한 처사에 대하여 항변하면 반발을 의식해 압박 강도가 약하거나 부당하게 대하지 못한다. 자신이 제어할 수 있는 하급자나 자식이라도 한 번 더 생각하고 함부로 질책하지 못한다. 한두 번의 상대방 실수는 포용하더라도, 의도적인 부당함에 대응하지 않으면 만만한 상대로 생각되어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무시당하고 하대한다.
사람 간의 관계뿐만 아니라 국가 간이나 동물 간에도 마찬가지다. 국력이 약하더라도 10대 맞으면 1대를 때린다는 자세로 고슴도치 전략을 펼치면 강대국이라도 함부로 하지 못한다. 국력이 약하면서도 전쟁을 불사하고 덤비는 베트남에는 중국이 함부로 대하지 못하고, 이스라엘을 중동 나라들이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25배나 작은 체구의 벌꿀오소리도 사자가 만만하게 대하지 못한다. 중국에서 대통령 수행 기자들이 폭행당해도 항의도 못 하는 한국을, 중국은 무시하고 하대한다.
인도에 보도블록이 평평하게 놓여 있으면 아이나 어른, 남자나 여자나 전혀 땅바닥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밟고 다닌다. 그러나 바닥이 평평하지 않아 시소 타는 보도블록을 밟을 땐, 걸려서 넘어지거나 비가 올 때는 흙탕물이 튀어 오르기 때문에 조심해서 밟거나 피해간다. 밟히더라도 쉬운 상대는 되지 않아야 한다. 사회나 국가의 부당한 처사에 대하여 항의하고 시정을 요구해야 사회와 국가가 변화하는 것이다. 귀찮고 번거롭다고 외면하고 방관한다면 사회나 국가의 발전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