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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Brother Sun, Sister Moon / Buddy Comfort
02. Somos El Barco / We Are The Boat
- HARP(Holly Near, Arlo Guthrie, Ronnie Gilbert, Pete Seeger)
03. Where Have All The Flowers Gone / Tommy Sands & Delores Keane
04. Blowin' In The Wind / Peter, Paul & Mary
05. Freckle Faced Soldier 돌아오지 않는 소년병 / Colleen Lovett
06. Le Fusil Rouille 녹슨 총 / Enrico Macias
07. Oi antres pernoyn mama 엄마, 스쳐가는 남자들은 - Haris Alexiou
08. The Dead Are Dancing / Toni Childs
09. Song for the Unification of Europe (Patrice's version) [Bleu OST / 1993]
10. The End ( White OST )
11. Milsoc Od Pierwszego Wejrzenia / Trois Couleurs: Rouge OST
Love at first sight / sung by Zbigniew Zamachowski
12. Tu viendras (You will come )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OST>
13. DRINK TO ME ONLY WITH THINE EYES
그대 눈동자를 술잔에 담아 / Elisabeth Schwarzkopf
14. "Ach, ich fuhls" "아, 나는 알아요! 행복이 사라지는 것을“
/ Sandrine Piau, soprano
15. Gelsomina 젤소미나 / 영화, La Strada 길
16. The Scarlet Tide 영화, 콜드 마운틴 -Alison Krauss
17. Annie Laurie 애니 로리 / Jean Redpath
18. The Water is Wide 저 넓은 강물 / Carolyn Hester
오, 주님 저를 당신의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심게 하소서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두움이 있는 곳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심게 하소서
오, 거룩하신 주님.
제가 위로받으려 애쓰기보다는 위로할 수 있도록
사랑받으려 애쓰기보다는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평화의 기도 / 성 프란치스코
01. Brother Sun, Sister Moon / Buddy Comfort
영화 "성 프란체스코"(Brother Sun, Sister Moon ; Fratello Sole Sorella Luna - 1973)
1972년 / 감독: Franco Zeffirelli / 주연: Graham Faulkner + Judi Bowker
음악: Donovan + Riz Ortolani
일명 ‘성 프란시스의 기도’ 로도 널리 알려진 위의 기도문을 만든 이는 1228년 7월16일, 교황 그레고리 4세(Pope Gregory IX )에 의해 로마 가톨릭 교회의 성인 반열에 오른 수사(Friar), ‘아씨시의 성 프란시스’(또는 프란치스, Saint Francis Of Assisi)인데,1181년 9월26일에 이태리의 움브리아(Umbria)지방, 아씨시(Assisi)에서 태어나고, 또 같은 곳에서 1226년 10월3일에 천국으로 간, 바로, 프란체스코 베르나도네(Francesco Bernardone)의 청년 시절, 인간적인 모습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 바로 이 영화이다.
13세기 초의 어느 날, 안개가 자욱한 들판에 한 사람이 비틀거리면서 걸어오다, 성문 안에 들어서자마자 그만 앞으로 쓰러지고 만다. 성안은 순식간에 시끄러워지고, 이곳, 아씨시(Assisi)의 지배계급이자 거상인, 베르나도네(Pietro Di Bernardone/Lee Montague, 1927, 영국)가 전쟁터에서 돌아오다 쓰러진 그 아들을 안고 황급히 집으로 달려간다. 그러나 환영연은 고사하고 몇 날 몇 밤을 침대에서 꼼짝 못하는 아들....그는 “전쟁은 아름답다“고 외치며 용감하게 십자군전쟁에 출전하였던 외아들, 프란체스코(Francesco/Graham Faulkner, 1947, 영국)로서 지금은 참혹한 전쟁의 충격과 그 후유증으로 환각과 환청에 시달리며 누워있다. 어느 맑은 날, 창밖의 새소리에 눈을 뜬 프란체스코는 그 (종달)새를 따라 위험한 지붕위에까지 올라가, 새에 입맞춤을 하면서 그 자유로움을 찬양하는데, 이를 지켜보는 가족들은 프란체스코의 정신 상태를 차츰 의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들판에 나가, 꽃 과 나비 등을 쫓아다니며 이상한 행동을 계속하는 그를 두고 성안의 사람들까지도 점차 그가 미쳤다고 말하기를 시작하는데. 급기야는 모든 주민들이 참석한 미사 도중에 “No !"라고 고함을 지르기에 이른다. 노란 꽃들이 만발한 들판에서 예전에 친하게 지냈던 여자친구, 클레어(Clare/ Judi Bowker, 1954 영국)와도 재회를 하였지만, 그 이상한증세가 여전한 프란체스코, 그러던 어느 날, 들판 언덕 밑에서 다 허물어져가는 한 교회 건물(성당)을 발견하고 다가 간 그는 벽의 낡은 십자가를 응시하다 성령의 감화를 받게 된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궁핍한 빈민 주민들에게 비단을 비롯한 집안의 귀중품들을 창밖으로 던지며 나눔의 교리를 실천하려다, 이에 격노한 아버지, 베르나도네의 채찍질세례를 받고 그의 손에 붙잡혀 성내의 귀도(Guido/John Sharp, 1920, 영국)주교 앞으로 심판을 받으러 끌려 나간다.
도대체 무엇을 원하느냐? 는 주교의 질문에 거침없이 대답을 하는 프란체스코.
“저는 영혼의 행복을 원합니다.
하늘을 나는 새처럼 자유롭고 순수하게 살고 싶습니다.
저도 지난날엔 어둠 속에서 괴로워하였지만, 이젠 햇님 형제께서 제 영혼을 밝게 해주십니다. 이제 저는 제 아버지가 추구하는 물질에서 자유롭게, 그리고 영혼의 풍요로움을 되찾기 위해 저 빈 들판에서 거지처럼 살고 싶습니다. 예수님도 또 그의 사도들도 다 그런 거지가 아니었었나요? “
그리고는 입고 있던 모든 옷을 벗고, 신었던 가죽신발 조차 벗어 아버지에게 주고 나서, 주민들의 놀란 눈초리를 뒤로하고 나체로 아씨시 성문을 나선다. 한편, 프란체스코와 함께 출전을 하였다가 뒤늦게 돌아온 베르나르도(Bernardo Di Quintavalle/Leigh Lawson, 1945 영국)는 전장에서 죽은 줄만 알았던 프란체스코가 부와 명예를 버리고 성 밖에서 고생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찾아가는데, 빈민들을 보살피면서, 흰 눈 속에서도 맨발로 돌 벽을 쌓고 있는 프란체스코를 보고, 그를 도와주기로 결심을 하게 되고, 또 베르나르도의 동조로 6-7명의 청년들까지 합세를 하게 된다.
물론 여자 친구였던 클레어도 이젠 사랑을 받기보다는 사랑을 직접주고 싶다며 자원을 하여, 시냇가에서 머리를 깎는 의식을 프란체스코로 부터 직접 받게 된다. (타 작품에서 연인으로 묘사된 적도 있는 이 클레어는 나중에 성녀, St. Clare가 됨) 드디어 돌 하나하나를 힘겹게 쌓아올려 재건이 된 ‘성 다미아노’(San Damiano)성당. 수많은 사람들이 꽃과 과일 그리고 어린 양과 오리 등을 손에 들고 모여들면서 봉헌 찬양을 함께 드리고 또 감사의 눈물을 흘린다.
하루하루를 가난하고 병든 자들을 일일이 보살피고 간호하는 젊은 수사들. 그러다보니 성안의 기존성당은 신도들이 점점 줄어들고, 이제는 귀족들과 부자들만 모이는 텅 빈 교회로 변해 가는데, 이에 귀도 주교는 못된 음모를 모의하고, 프란체스코 일행들이 봉사활동을 하러 나간 사이에 주교의 군사들이 들이닥쳐 성 다미아노 성당에 불을 지르고 이를 말리던 신도를 죽이는 사건이 발생 한다.
주님, 도대체 제가 잘못한 것이 무엇이란 말입니까?
눈물을 흘리며 자괴감에 빠진 프란체스코. 그러다 교황님을 뵙고 자문을 구하고픈 마음이 들면서, 5명의 일행과 함께 로마를 향해 무작정 맨발로 걸어가는데, 도중에 예전의 친구였던 귀족, 파올로(Paolo, Kenneth Cranham, 1944 영국)의 조롱과 방해를 받게 된다.
교황청 앞에서 거지같은 몰골로 굶주림과 추위 속에서 한없이 기다리는 수사들. 그러던 어느 날 마음이 변한 파올로의 주선으로 드디어 교황을 알현하게 되는데, 교황 앞에서 파올로가 써준 원고를 읽던 프란체스코는 갑자기 예수님의 산상설교 내용을 인용하면서 우리는 신과 재물을 동시에 가질 수 없다고 외치기 시작한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중략)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후략) “
화려한 의상의 성직자들이 가득 찬 으리으리한 접견실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지고, 감히 누구에게 설교를 하느냐는 거만한 고함소리와 함께 프란체스코 일행은 경비에 의해 체포가 되어 쫓겨나는데, 그러나 그 순간, 갑자기 성령의 감동을 받은 교황(Pope Innocent 3세, Alec Guiness, 1914 영국)은 그들을 다시 데려오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리고는 하나님께선 참으로 네게 큰 은총을 내리신 것 같다고 말하고, 부와 권력의 횡포를 부린 우리들을 용서해 달라며 친히 무릎을 꿇고서, 프란체스코의 맨발에 입맞춤을 한다.
1946년,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우에서 태어난 도노반(Donovan Phillips Leitch)은 1965년에 ‘Ready Steady Go !' 라는 TV 시리즈를 통해 연예계에 발을 들인 이후, 같은 해, ‘Catch The Wind' 와 ’Colours' 라는 곡들로서 '영국의 밥 딜런'으로서의 두각을 나타내고, ‘Mellow Yellow’(1966), ‘Sunshine Superman’(1966), ‘Atlantis'(1968)등으로 가수로서 성공을 하기 시작하였지만, 그는 영화계와도 결코 무관하지 않다. 1969년에는 배우로 첫 출연도 하였지만(총 3편의 영화 와 2편의 TV극 출연) 영화 음악 작곡도 1966년 이후, TV극을 포함해 총 6편에 관여를 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그의 역량이 가장 잘 돋보인 작품이 바로 이 영화인 듯하다.
Brother Sun and Sister Moon, I seldom see you, seldom hear your tune
Preoccupied with selfish misery. Brother Wind and Sister Air,
Open my eyes to visions pure and fair. That I may see the glory around me.
I am God's creature, of God I am a part / I feel your love awaking in my heart
Brother Sun and Sister Moon / I now do see you, I can hear your tune
So much in love with all that I survey.
“이기심 때문에 안보이고 안 들렸던 햇님 형제와 달님 자매,
그리고 이제는, 바람 형제와 공기 자매까지도
주님의 사랑으로 내 마음이 열린 뒤에는
그 사랑을 통해 보이고 들린다.”
제목부터가 우선 낭만적인 이 영화의 동명타이틀 주제곡의 가사는 프란체스코의 또 다른 유명한 성가인, 'The Canticle of Brother Sun and Sister Moon'에서 일부를 인용을 하였지만, 그 서정적인 멜로디 또한 무척이나 아름답다.
전 세계적으로 히피들의 방종이 절정을 이루고, 베트남 전쟁의 반전운동이 막바지에 이른 1970년대 초에 시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아보였던 이 작품이 주는 메시지는 ‘러브스토리‘(Love Story, 1970)때도 그랬었지만, 대중 문화계에 참으로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었다.
“지구상의 모든 것이 형제이고 자매”라는 성 프란체스코의 정신으로만 이 세상이 움직여진다면 세상엔 아무런 문제도 없을 것이다.
‘UCC의 보고‘라는 YouTube 에 Buddy Comfort 가 부른 이 영화의 주제곡에 맞춰 동영상(이 영화장면 포함)이 올려져있는데, 첫 장면에 나오는 글이
There Are Two Ways To Live Your life, One Is As Though Nothing Is A Miracle, The Other Is As Though Everything Is A Miracle. “ 당신에겐 인생을 살아가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삶에는 아무런 기적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이고, 또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이 다 기적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것입니다.”
라는 훌륭한 문구가 이 복잡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많은 생각과 또 반성을 하게 만든다.
즈비그뉴 프라이즈너(Zbigniew Preisner)의 영화음악
즈비그뉴 프라이즈너(Zbigniew Preisner)는 1950년 5월 20일 폴란드의 비엘스코-비아와(Bielsko-Biala)에서 출생하였다. 크라쿠프대학교에서 역사와 철학을 전공하고 독학으로 작곡을 공부하였다. 정상적인 음악수업을 받지 않은 프라이즈너가 클래식 음악을 작곡하는 것은 놀랍기만 하다. 그의 가족들 중에는 전문음악인은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다만 음악에 익숙한 환경에서 자라난 그는 늘 음악에 대한 막연한 동경 속에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런 그에게 음악가 엘즈비에타 토바르니카와의 만남은 중요한 계기가 되는데 그에게 여러 가지 조언을 들으며 홀로 음악공부에 몰두한다. 그는 초기에 작곡한 곡들로 벌어들인 돈을 모두 레코드 구입하는데 썼을 정도로 음악 속에 묻혀 살았다. 그는 낭만적인 작곡가로 평가 받는다. 불협화음과 리듬을 중시하는 현대음악의 추세에 프라이즈너는 반기를 든다. 그가 좋아하는 음악가는 파가니니나 시벨리우스 같은 낭만파 음악가들이다. 이들의 영향 때문인지 그의 음악은 아름다운 선율을 강조한다. 서정적인 멜로디는 듣는 이의 귀에 쉽게 들어오며 이것은 영화음악으로서 극중 인물들의 감정을 잘 대변한다는 장점으로 작용한다.
1981년 안토니 크라우제(Antony Krauze)의 [일기예보 Prognoza Pogody]를 시작으로 영화음악에 입문하였다. 키에슬로프스키와 프라이즈너는 80년대 중반에 만났다. 문학과 음악을 사랑하는 두 사람은 쉽게 친해질 수 있었고 곧바로 [출구는 없다]의 작업에 참여하게 된다. 그와 키에슬로프스키와의 관계는 상당히 긴밀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의 영화를 위해 두 사람은 시나리오 작업 단계부터 의견을 교환했다. 즉 음악과 시나리오가 동시에 진행되는 형태의 작업을 한 것이다. 키에슬로프스키는 음악을 고려하여 시나리오를 썼고, 프라이즈너는 시나리오를 보고 영감을 얻었다. 촬영이 시작되면 프라이즈너는 현상된 필름을 보며 악상을 떠올렸고 촬영이 완결된 이후에 드디어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국내에 소개된 최초의 키에슬로프스키 영화인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은 프라이즈너의 존재를 세계에 알린 작품이다. 그가 만들어낸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의 주옥같은 사운드 트랙에는 반덴 부델마이어라는 인물이 작곡한 두 곡의 협주곡이 등장하는데 이 가상의 작곡가는 [블루], [레드]에도 언급되어 키에슬로프스키 영화의 미스테리로 남아 있다. [레드]의 사운드 트랙에도 두 곡의 반덴 부델마이어의 곡이 삽입 되어 있지만, 실제로 이 곡은 프라이즈너 자신이 작곡한 곡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가상의 인물에 대한 프라이즈너의 언급은 분명치 않으나 자신의 선입견을 떨쳐 버리기 위한 또 다른 자아라고 이야기한다. 키에슬로프스키의 작품 중 18편을 프라이즈너가 담당했다. 주요작품으로는 <살인에 관한 짧은 필름>,<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유로파, 유로파>,<베로니카의 이중생활>,<올리비에, 올리비에>,<데미지>,<블루>,<레드>,<화이트>,<비밀의 화원>,<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페어리 테일>,<라스트 셉템버>.....................
스토코프스키Stokowski의 Bach Transcriptions (바흐 편곡 집)
연주: 체코 필하모니 관현악단 지휘: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Leopold Stokowski)
녹음: 1972년 9월 7일-8일 (London)
'영원한 청년' 스토코프스키
스토코프스키가 필라델피아 관현악단을 이끌고 영화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36년이었다. (1937년의 대 방송) (The Big Broadcast of 1937, 파라마운트, 1936)이라는 영화에서 처음 스토코프스키가 지휘한 작품은 바흐의 G단조 (소 후가) 였다. 이때 이미 지휘봉 없이 지휘하기로 유명했던 그의 두 손이 커다랗게 클로즈업되며 시작되는 장면은 대단히 인상적이어서 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도 커다란 감명을 주었다. 스토코프스키에게는 '악단의 괴물'이니 '곡의 마술사', '영원한 청년'등 별명이 많았다. 어떤 기자회견 석상에서 '젊음의 비결'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그는 서슴없이 "인생을 즐기는 것, 자연을 즐기는 것, 그리고 술을 즐기는 것, 이 세 가지가 내 젊음을 지키는 비결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가 83세인 1965년의 일이다.
그는 '젊음' 못지않게 여성 편력도 다양했다. 결혼은 세 번을 했다. 첫 결혼은 29세 때, 올가 사마로프라는 여성과 했다. 그녀는 피아니스트이며 (아라비안나이트)의 여주인공 세헤라자데 만큼이나 뛰어난 미모와 재치를 갖춘 여인이었다. 그러나 12년 후인 1923년에 이혼했다. 3년 후인 44세 때 대부호의 미망인 에반젤리노 존슨과 결혼했지만 11년 후에 헤어졌다. 이 무렵 당대의 여우 그레타 가르보와의 염문 또한 유명하다. 얼마 후 63세 때 (1945년), 글로리아 반다빌트라는 여자와 세 번째 결혼을 했다. 이 결혼은 전 세계 뉴스의 초점이 되었다. 그의 신부가 엄청난 부잣집 딸일 뿐만 아니라 그녀의 나이 겨우 19세였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와 손녀 사이 같은 나이의 이런 결혼은 저 유명한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가 80세 때 20세의 제자와 결혼한 사례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스토코프스키의 이 결혼도 10년 정도로 끝이 났다. 그런데 그 어린 부인의 이혼 소송 사유가 놀랍다.
"제 남편에겐 너무 여자 친구가 많아요."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여성편력을 능가하는 왕성한 정력을 음악 분야에도 쏟았다.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 (Leopold Stokowski)는 1882년 4월 18일, 당시 런던에 살고 있던 폴란드인 아버지와 아일랜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처음에는 오르간 연주자가 되려고 공부를 하여 교회 오르간 연주자가 되었다. 23세 때 미국으로 건너가 26세에 신시내티 교향악단의 상임 지휘자가 되었다가 30세 때 (1912) 필라델피아 관현악단의 상임 지휘자가 되었다. 그는 후임자인 유진 오먼디 (Eugene Ormandy,1899-1985)에게 자리를 물려줄 때까지 23년 동안 이 오케스트라를 '스토코프스키의 악기'라는 평가를 받는, 필라델피아 관현악단의 황금시대를 이룩했다. 이 악단을 세계 최고의 수준으로 이끌어 올린 그는 그 동안에 많은 현대 곡의 세계 초연 (샤베츠 'H.P.', 코플란드 '무용교향곡',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제 4번', '교향곡 제 3번')과 화제 작품의 미국 초연 (말러의 '교향곡 제 8번',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 알반 베르그의 '보쩨크')을 적극적으로 감행했다. 또 새로운 오케스트라 배치를 연구하여 개발하는 한편, 당시 한창 개발되고 있던 레코드에 재빨리 참여하여 녹음하는 등 대담하고 혁신적인 도전을 차례로 전개해 나갔다.
그의 넘치는 정력은 이 정도로 끝나지 않았다. 전 미국 청년 교향악단, 뉴욕 시립 교향악단을 창설하는가 하면, 휴스톤 교향악단의 상임 지휘자가 되었을 때는 이 거리에 특별히 그를 위한 음악당을 짓게 만드는 등 매우 정치적인 수완까지 발휘했다. 그 후 79세 때인 1961년 아메리카교향악단이라는, 젊은 음악 도들을 가려 뽑은 오케스트라를 창립하여 여기에 심혈을 기울였다. 1972년에 이 악단에서 물러난 뒤 런던으로 옮겨가 여전히 정력적으로 레코드 녹음에 참여했고, 94세 때인 1976년에는 CBS와 앞으로 6년간의 녹음 계약을 하여 전 세계의 팬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듬해인 1977년 9월 13일, 95세로 이 '영원한 젊음'을 과시해 온 정력의 화신도 죽음의 사자만은 물리치지 못하고 런던에서 사망하고 말았다.
스토코프스키의 바흐 편곡
스토코프스키 시대의 필라델피아 관현악단이 펼치는 연주 프로그램 중의 하나로 그 자신이 편곡한 바흐의 작품이 유명했다. 스토코프스키의 바흐 레퍼토리에서 가장 큰 특색은 관현악 조곡 같은, 바흐의 오리지널 오케스트라 곡이 거의 없고 오르간 곡과 칸타타 등의 편곡이 그 중심이 되어 있다는 점이다. 또 이러한 경향이 스토코프스키의 바흐에 대한 문제점이 되고 있으며 바흐 전문가가 갖가지 비난의 화살을 쏘아대는 표적이 되기도 했다. 필라델피아 시대에 스토코프스키는 바흐의 작품을 직접 편곡하여 리허설에 사용하는 일이 많았다. 런던의 왕립 학교 시대에 바흐의 작품에서 배우는 바가 컸던 그의 체험이 오케스트라의 연습에 효과가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의 리허설 도중에 틈틈이 바흐를 연주해 보는 것이 그 자신과 악 단원들의 한 가지 즐거움이 되고 아울러 공부도 되리라는 스토코프스키의 아이디어가 악 단원들의 큰 호응을 얻어서 여러 해 동안 이 습관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일반 청중이 바흐를 즐겨 들어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기 때문에 스토코프스키는 연주회 때 프로그램에 올린다는 것을 상상도 못했다. 우연히 리허설 때 바흐를 듣게 된 한 친구가 그에게 '어째서 연주회 때 들려주지 않소? 청중도 좋아 할 텐데!...' 하고 귀뜸을 해준 것이 계기가 되어 실제로 연주해 보니 뜻밖에도 '청중은 열광적으로 바흐를 환영해 주었다.' 스토코프스키의 바흐 편곡은 차츰 그 수가 늘어나 필라델피아 관현악단의 유명한 프로그램이 되었고 레코드는 물론 영화에까지 소개되게 되었다. 스토코프스키는 바흐의 원전 작품이 소중하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바흐가 작곡한 그대로 연주했을 때 청중이 쉽게 받아들이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많다고 생각했다. '바흐 자신이 위대한 편곡자이며 비발디를 비롯한 여러 사람의 많은 작품을 개작한 사실이 생각난다. 그 편곡은 원곡과는 전혀 다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자유로운 것이었다. 이
사실이 내게 편곡의 자유를 지닐 용기를 주었다. 물론 바흐가 자기의 건반 악곡을 관현악으로 고치겠다는 생각은 꿈에도 해보지 않았을 터이지만 혹시 했다 하더라도 나와는 다른 방법으로였을 것이다. 그러나 바흐라는 사람은 한 가지 틀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이었다는 사실만은 틀림이 없을듯하다.' 고 스토코프스키는 말하고 있다. 사실 1920-1930년대에 바흐의 작품을 연주회 때 대 편성 관현악단의 연주로 들을 수 있는 기회란 좀처럼 없었다. 그러한 시대에 바흐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려지게 한 것은 바로 지난날에 묻혀 있던 갖가지 바흐의 대표작들이 멘델스존에 의해 발굴, 공연된 사실에 버금가는 공적이었다. 스토코프스키의 바흐 작품 편곡은 많은 사람들이 바흐음악을 친숙하게
느끼도록 만들었다. 오르가니스트로서의 스토코프스키의 아이디어가 빚어 낸 산물이었다.
스토코프스키에 의한 바흐 편곡은 SP시대부터 유명했다. 그의 레코드 녹음 경력은 거의 60년이나 되며 (첫 녹음은 1918년이었다.) 오늘날 그만큼 많은 악단과 레코드 녹음을 한 지휘자는 달리 없다.
그가 남긴 숱한 '바흐 편곡집' 레코드 중 이 디스크 (Stokowski, 'Bach Transcriptions')는 2회에 걸친 연주회 때의 실황 녹음이다 (프라하 '예술가의 집'). 특히 체코 필하모니 관현악단과의 이 녹음은 그로서는 매우 드문 실황 녹음이라는 점이 소중하다. 생전 처음 지휘한 이 악단을 아무런 장애 없이 뛰어난 솜씨로 장악하고 있다는 점도 놀랍다. 이토록 싱싱하고 스케일 큰 바흐를 90세의 대지휘자가 펼쳐 보여 주었다는 것은 좀처럼 믿기 어려운 일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수록곡은 스토코프스키의 바흐 레퍼토리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토카타와 후가 D단조' BWV 565를 비롯하여 '전주곡 E플랫 단조' BWV 583('평균율 클라비어 곡 집' 제 1권 '제 8번의 전주곡 부분'), 찬송가 '게세마네의 나의 예수여' BWV 487 ('쉐멜리 가곡집'에서), 코랄 전주곡 '우리는 유일신을 믿노라' BWV 680 (거인 후가), 코랄 (부활절 칸타타 BWV 4에서), '파사칼리아와 후가 C단조' BWV 582 등이다.
스토코프스키의 '바하 편곡집' 녹음에는 또 하나의 유명한 레코드가 있다 (EMI CD M-7 690722. 1958년-1959년 녹음). 로스앤젤레스 근교에 사는, 스튜디오 연주자로 편성된 그렌데일 교향악단의 단원들을 중심으로 하여 스테레오로 재녹음한 디스크이다. '캐피톨' 회사가 자랑했던 소위 '인 하이 화이' 시리즈 중의 하나이며 스토코프스키가 아직 젊음을 잃지 않고 있던 시기의 녹음이어서 기백이 넘치는 스펙터클한 연주를 만끽할 수 있다. 역시 '토카타와 후가 D단조', '파사칼리아와 후가 C단조' 를 비롯하여 'G선상의 아리아', '소 후가', '사라방드' 등 전 10곡이 수록되어 있다. 스테레오 초기의 녹음이지만 그 웅장한 우주적 스케일과 눈부시게 빛나는 음색에 압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