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 새재와 괴산 산막이 옛길을 걸으며/전 성훈
중국 작가 루신은 ‘고향’에서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으리라. 그러나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었다”라고 말했다. 본래 땅에는 길이 없었으나 많은 사람이 걸어가면서 길이 생겼다는 말은 사람이 걸어가는 길뿐만 아니라 인간의 삶의 여정도 마찬가지라는 의미가 아닐까.
육순을 맞이하여 2012년 5월 하순, 경북 영덕 고래불 해변에서 강원도 옥계해수욕장까지 동해안 해파랑길을 3박4일에 걸쳐 혼자 걸었다. 2014년 5월에는 강화도 둘레길을 2박3일 동안 걸었다. 2015년 허리디스크 때문에 시술을 받고 제대로 걸을 수 없어 걷기 여행을 그만두었다. 시술을 받은 지 만 3년이 지난 이제는 제법 천천히 잘 걸을 수 있게 되었다. 건강이 회복 되자 ‘길에서 만나는 세상’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몸 상태를 객관적으로 차분히 점검해 보고 싶었다.
올해 들어 몇 번 생각하다가 결심을 하고 떠난 나그네 길, 자동차나 비행기 또는 배를 타고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 걷기 여행을 했다. 우리 강산 속에서 지지고 볶으며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걸으며 마음에 담는 길, 그 길은 힘들고 지친 내 영혼의 치유의 길이자, 순례의 길이다. 다행히 이번에는 혼자 걷는 게 아니라 가까이 지내는 분과 동행하게 되어 부담 없이 홀가분한 마음으로 떠날 수 있었다.
< 문경으로 가는 길 >
동서울터미널에 도착하여 버스 시간을 확인하니, 점촌행 8시 30분, 문경행 9시 30분 출발이다. 문경관광안내도 교통편에 ‘동서울 - 점촌’만 표시되어 고민하지 않고 점촌행 버스표를 끊었다. 승객은 우리 일행을 포함하여 모두 7명으로, 점촌 시외버스터미널까지 정확히 두 시간 걸렸다. 점촌시외버스터미널에서 문경새재 가는 버스를 타려고 버스정류장을 찾았다. 버스정류장에 아주머니 몇 분이 계시기에 물어보니 점촌은 문경의 남쪽으로 약 30-40분 정도 북쪽으로 올라가야 문경새재라고 한다.
승객을 가득히 태운 버스는 한적한 시골 국도를 지그재그로 신나게 달렸다. 승객은 대부분 볼일을 보려는 주민들이고 여행객 차림은 5-6명 정도였다. 문경터미널에 도착해보니 동서울터미널에서 한 시간 늦게 문경행 버스를 탔다면 지금쯤 이곳에 도착했을 것 같았다. 조금 일찍 점촌에 도착해서 동네 여기저기를 지나가는 시골버스를 타고 구경 한 번 잘 했다. 시골버스도 교통카드 결재가 되는 걸 보니 세상이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경새재 매표소 옆에 ‘2018 문경 찻사발 축제’를 알리는 커다란 플래카드가 펄럭거렸다.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사려고 돈을 내밀자 담당자가 65세 이상은 무료라고 하면서 입장권을 주었다. 늙은이라는 생각보다 5천 원짜리 입장권을 공짜로 주기에 기분이 좋았다. 조금 걸으니까 행사장 주변의 저자거리가 눈에 들어와 점심을 먹기로 하였다. 산채비빔밥과 산나물전 그리고 막걸리 한 병을 주문하고 주인에게 카드를 주었다. 술 한 잔 하고 있는데 나중에 주인이 카드를 가져다주었다. 카드를 받아야 하는 것을 잠시 깜빡했다. 옆자리 친구가 ‘전형, 벌써 맛이 갔다’고 핀잔을 주었다. 점심을 맛있게 먹고 부근에서 시연하는 정통 중국 차 달이는 모습을 구경하고 차 한 잔 마셨다.
< 새재 관문을 걸으며 >
전날내린 비로 날씨가 제법 쌀쌀하고 간간히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등산복 옷깃을 끝까지 세우고 몸속으로 바람이 스며들지 못하게 하였지만 추웠다. 옛새재 길을 정비하여 맨발로 걸어도 좋도록 고운 흙으로 덮은 길을 등산화를 신고 걸으니까 미안했다. 등산화를 벗어 손에 들거나 배낭에 묶고 맨발로 걸어갈 수는 있다. 하지만 2관문과 3관문을 넘어 괴산군 연풍면으로 가야하기에 맨발로 걷기엔 불편하다. 맨발로 걷는 사람을 위해서 신발 보관소와 그 옆에 발을 씻을 수 있는 세척장이 있다. 1관문으로 다시 내려가는 사람은 맨발로 걸으면 좋은 추억이 될 것 같다.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며 천천히 걷는데 중간에 해발고도를 알리는 표지가 있었다. 해발 200, 300, 400, 500, 그리고 600미터의 표시를 보며, 이곳은 불암산 정상, 여기는 수락산 정상 높이라고 생각했다. 길이 완만하게 이어져서 전혀 가파르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길가 물막이 도랑을 흐르는 물이 쏜살같이 내려가는 모습을 보고 이 곳이 상당히 가파르고 높은 지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길 양편의 숲속에는 소나무와 이름 모를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어 이 부근이 백두대간의 허리임을 느끼게 한다. 길 중간 중간 옛사람들이 다녔던 작은 길 표지가 있다. 영남지역에서 한양으로 과거 시험을 보러 올라간 선비 중에 낙방하여 하늘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고 축 처진 어깨를 하고 기운 없이 걸었을 길, 그런가하면 과거에 급제한 선비의 금의환향의 길이기도 했을 이 길. 문경 새재는 이곳을 넘나들던 수많은 이의 한 많은 사연들을 묻거나 알은 채 하지 않고 말없이 그 자리를 지키며 묵언수행하고 있는 것 같다.
새재 3관문을 벗어나 괴산군 연풍면 이정표를 보며 인증샷을 찍었다. 길을 따라 내려오니 버스정류소가 보였다. 버스운행 시간표가 없어 무작정 포장도로를 따라서 걷다 보니까 갑자기 수안보 이정표가 보였다. 마침 멈춰선 자동차가 있기에 주인에게 물어보니 이곳에서 숙박할 곳은 수안보가 제일 가깝다고 한다. 이정표로 6km 정도라서 부담 없이 걸었다.
수안보로 가는 길 곳곳에 과수원이 있었다. 사과나무와 복숭아나무 가지치기를 하는 농부가 보여 잠시 서서 말을 걸었다. 복숭아나무 가지가 위로 뻗지 못하고 옆으로 뻗은 모습을 보고 시골출신인 친구가 ‘열매를 쉽게 따려고 가지가 옆으로 휘게 나무에 무거운 돌을 묶어 매달아 놓는 경우도 있다’고 알려준다.
수안보로 넘어가는 고개인 돌고개(박석고개) 길목에 커다란 묘와 문인석이 있다. 길가 안내판은 서러운 사연을 전한다. 조선 영조 시절 충청도 관찰사를 지냈던 ‘조정철’과 그가 제주로 귀양 가서 사귄 여인 ‘홍윤애’와의 못 다한 사랑이야기다.
예나 지금이나 정치적 사건에 연루되면 상대방을 못살게 굴고 그와 관계된 사람들까지도 못살게 하거나 죽이기까지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충청도 양반과 제주 여인의 서글프고 애절한 슬픈 사랑의 결말이 나그네의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던진다.
수안보에 도착하여 머물 곳을 정하고 근처 식당을 찾았다. 젊은 시절부터 꼭 먹고 싶었는데 기회가 없어 맛보지 못했던 음식이 ‘꿩요리’다. 꿩요리는 꿩샤브, 꿩불고기, 꿩육회, 꿩꼬치, 꿩전, 꿩초밥, 꿩만두, 꿩국수 여덟 가지 코스다. 심심하게 양념하여 입맛을 사로잡은 더덕 부침, 두릅 무침, 가지복음, 열무김치 등 열 가지 나물에 소주 한 병 곁들여 눈도 즐겁고 입도 호사하였다.
< 괴산 산막이 옛길을 찾아서 >
지난 밤, 사우나에 몸을 풀고 산림욕방이라고 써 붙인 방에서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하였다. 뜨거운 사우나가 그리워 찜질방을 찾았는데 찜질방에서는 깊은 잠을 잘 수 없었다. 괴산행 버스는 시골 길을 달리며 서울의 마을버스처럼 동네 마다 들리는 재미있는 여행이다. 버스 안 어디에도 버스정거장 안내판이 없고 차내 방송도 하지 않아 운전기사에게 목적지를 말해주고 내릴 곳을 알려 달라고 부탁했다.
칠성리에서 내려 산막이옛길 이정표를 보며 걷기 시작하였다. ‘괴산성당 칠성공소’ 안내판이 보여 잠시 공소에 들려 주모경을 바치고 무탈한 여정을 기원 드렸다. 한 시간 이상 걸으면서 낯설은 가로수를 보았다. 어른 키보다 조금 더 큰 붉은 단풍나무가 길 양쪽에 늘어서 있다. 단풍나무 가로수가 끝나자 이번에는 소나무 가로수가 나타난다. 우리나라 가로수는 벚꽃이 가장 많을 것 같다. 그 다음 흔하게 볼 수 있는 가로수는 은행나무, 상수리나무, 아카시아, 배롱나무, 감나무, 사과나무, 이팝나무 등이다. 단풍나무와 소나무 가로수는 처음 보아서 정말 반갑고 신기하였다. 괴산에는 소나무가 무척 많다. 맑고 깨끗하여 오염이라는 말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괴산 땅, 간혹 바람이 세차게 불자 노오란 송홧가루가 날린다. 그 모습이 마치 사막의 모래가 날리는 듯하고 순간적으로 하늘을 희뿌옇게 덮어버린다.
괴산호를 끼고 산허리를 돌아가는 산막이옛길, 관광객 유치를 위해 동아줄로 만들어 놓은 출렁다리를 걸으며 자신의 담력을 시험해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었다. 출렁다리를 건너려면 조금 긴장되지만 부담 없이 편하게 건널 수 있었다. 두 칸 세 칸 씩 나무 받침대를 뛰어 건너면서 아직은 내가 팔팔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괴산호 안의 작은 섬에서 사과농사를 짓는 분이 있다. 오염되지 않은 청정지역에서 나오는 사과는 씻지도 않고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곳에 그림 같은 아담한 작은 집을 집고 비리와 협잡 그리고 온갖 욕망이 뱀 혓바닥처럼 꿈틀대는 세상과 담쌓고 산다면 행복할까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산막이옛길을 벗어나 충청도 양반길로 들어서니 연화교 출렁다리가 보였다. 다리 아래 간이 승선장에서 괴산호 일주 유람선을 타고 차돌바위 -산막이- 굴바위농원-새뱅이 일대를 둘러보았다. 숲길을 걸으면 전혀 알 수 없는 또 다른 괴산호 주변 경치를 볼 수 있다. 우람하거나 거창하지는 않아도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하늘이 맑고 공기도 좋아 저절로 콧노래가 흘러나온다.
괴산호 관광을 마치고 주차장을 나와 점심을 먹고 괴산시내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정류소 시간표가 올바르지 않다고 주차비 징수하는 담당자가 말해주었다. 한 10분 정도 걸어서 수전교 버스 정류소를 찾았다. 이곳 버스정류소는 안내판에 누군가 음식점안내문을 덧씌워 놓았다. 안내판 뒷면에 버스시간표가 붙어있어 길손이 버스시간표를 어떻게 찾으라는 것인지 말이 안 나와 어안이 벙벙하였다.
< 후기 >
문경 새재와 괴산 산막이 옛길을 걷는 여행을 통해 내 몸이 상당히 좋아졌음을 알게 되어 기쁘다. 괴산과 문경의 자연과 하늘이 유럽의 어느 나라에 빠지지 않을 만큼 아름답고 깨끗하다는 사실에 가슴이 뿌듯하다. 게다가 몇 십 년 동안 먹고 싶었던 꿩요리를 맛 볼 수 있어 입과 눈이 호사한 별미 여행이다.
‘길’이라고 모두 똑같은 ‘길’은 아니다. 그 길을 다녔던 주체가 누구인가에 따라 다르다. 괴나리봇짐을 둘러멘 사람이 숨을 헐떡거리며 힘들게 오르고 내리던 길은 옛사람의 고달픈 사연이 남아 있다. 자동차가 싱싱 달리는 고속도로나 자동차 전용도로에는 자동차 바퀴에 할퀸 상처 난 아스팔트가 부서진 형체를 드러낸다. 사람이 다니던 길도 그 길을 걸었던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며 지나갔느냐에 따라 다르다. 고단한 삶의 질곡 속에 무거운 짐을 지고 다녔던 사람은 그 길을 인내와 고난의 길로 느낀다. 돈벌이가 잘되어 흥에 겨워 어깨춤을 추며 걸어간 장돌뱅이나 마음속의 정인을 만나려고 총총걸음으로 걸어간 총각에게는 추억속의 아름다운 길이 된다.
‘혼자 그리고 더불어’가는 인생이라는 길, 고독한 인간의 길도 마음을 열고 서로 의지하며 고통과 기쁨을 나눌 수 있는 동행을 만나 함께 간다면, 그 길은 열반의 세계나 천국의 문으로 들어서는 구원이 길이 되기도 한다. (2018년 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