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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나오는 인물 중에서 영적으로 승리한 사람이 [엘리야]입니다.
그러면서도 성경에서 깊은 절망을 느낀 사람도 동일한 [엘리야]라고 말씀할 수 있습니다.
[엘리야]선지자는 갈멜 산에서 450명의 바알 선지자들과 경쟁하여, [불]로 승리했던 인물인데,
이런 위대한 [영웅]도 때로는 “깊은 절망에 빠진다.”는 사실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좋은 이야기만 기록한 것이 아니고, 실패와 절망하는 이야기도 사실대로 기록한 책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믿을 수 있는 [책]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엘리야“는 18장에서 하나님의 힘으로 당당히 승리하는 모습이었지만,
19장에 와서, 좌절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나약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럼, 무엇 때문에 [엘리야]가 절망하고 있을까요?
그 직접적인 원인은 ”이세벨의 위협 때문“입니다.
[이세벨]은 이스라엘의 가장 악독한 아합 왕의 아내입니다.
[이세벨]은 아합 왕의 뒤에 있으면서, 실제적으로 통치를 했던 악독한 여인입니다.
아합 왕이 갈멜 산에서 450명의 바알 선지자들이 “엘리야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주었을 때, 틀림없이 남편에게 화를 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직접 “엘리야를 처단하겠다.”고 이를 갈면서 말했을 것입니다.
▶[엘리야]가 정말 죽기를 바랐을까요? 아닙니다. 그는 살기 원했어요.
▶[엘리야]가 정말 죽고자 했으면, 왜 거기까지 갔을까요?
단지 [이세벨]의 위협에 피신했을 뿐이지, 죽고자 하는 마음은 없었을 것입니다.
어떤 이가 “죽고 싶다”고 말을 하면, 그 사람은 “살려 달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불신앙]에 사로 잡혀 있을 때, 그런 [분별력]을 가져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엘리야가 절망하는 이유”입니다.
[엘리야]는 자신의 힘으로 “바알 선지자를 무너뜨렸다”고 착각한 것이고,
아무 변화가 없자, 하나님에게 불평하는 것입니다.
그 증거가 10절에 나옵니다. 10절 말씀을 읽으십시오.
"저는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매우 열심히 섬겼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들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부수며, 주의 예언자들을 칼로 죽여서 이제 저만 혼자 남았습니다.
그런데 저들이 이제는 제 목숨까지 빼앗으려고 합니다."(열왕19:10)
여기서 우리는 엘리야의 [교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 엘리야는 [자기]라는 단어를 3번씩이나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나]라는 단어를 자꾸 반복하는 사람은 “교만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자기중심적인 사람”입니다.
[엘리야]는 자신은 하나님을 위해 열심히 일했는데,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고 호소합니다.
이 말은 “내가 하나님 앞에 열심히 일했다.”는 것을 내 세우고 있는 것이니까,
결국은 자기가 “먼저” 라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갈멜 산에서는 “자기의 모든 것을 드리고, 헌신하겠다.“고 고백했는데,
이제는 ”생각이 달라졌다“는 이야기이지요.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소중하게 생각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필요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사람들이 “자신이 일을 한다.”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자신이 해 놓은 일을 하나님이 수습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나,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일을 해야겠다.”고 말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는 건, 잘못된 표현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일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를 쓰시는 것입니다.
그런 [헌신]을 하는 사람은 쉽게 절망하게 됩니다. 그래서 엘리야가 절망에 빠진 것입니다.
그럴 때는 하나님은 그 얼굴을 가리 웁니다.
잠깐만, 하나님이 얼굴을 돌려도, 우리는 “영적인 어두움”에 잠기게 됩니다.
승리의 원인이 [하나님]이 아니고, [나]라고 생각하면, 그때부터 위협이 다가옵니다.
영적으로 “시력이 약해졌다”는 것은 [나]를 크게 보기 때문입니다.
[내가] 크게 보이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크게 보여야 합니다.
그럴 때에 내가 크게 보이면, 그때는 시험에 든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엘리야의 문제“를 하나님은 어떻게 회복시킬까요?
하나님은 절망에 빠진 [엘리야]에게 두 가지로 회복시키십니다.
하나님은 [육의 회복]을 먼저 시킵니다.
먼저, 엘리야에게 먹을 것을 먹여주고, 쉬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5~6절 말씀을 같이 읽어 주십시오. “그리고 로뎀 나무 아래 누워 잠이 들었습니다.
그 때 전사가 그를 만지면 말했습니다. 일어나 뭘 좀 먹어라.
엘리야가 둘러보니 머리맡에 뜨거운 숯으로 구워낸 빵, 한 덩이와 물 한 병이 있었습니다.
그는 그것을 먹고 마시고, 난 뒤 다시 누웠습니다.“ (열상19:6-7)
하나님은 절망에 빠진 [엘리야]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절망에 빠진 [엘리야]에게 제일 먼저 한 일은 [설교]가 아닙니다.
“네가 어찌 이러느냐?” 라고 야단치거나 책망 하지 않으시고,
천사를 통해 “먹을 것을 먹으라.”고 조용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신 의미는 “[육의 회복]이 먼저“라는 뜻입니다.
그렇다고 “[육의 회복]을 시켰다“고 다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8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리하여 그는 일어나 먹고 마셨습니다. 그 음식으로 기운을 차린 뒤,
[엘리야]는 밤낮으로 40일 동안을 걸어가서, 하나님의 산인 호렙 산에 이르렀습니다.”(왕상19:8)
여기를 보면, 몸은 “회복”하였지만, 40일 동안 헤메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엘리야]는 몸은 회복 되었지만, 뭔가 아직 회복되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육의 회복] 만으로 진정한 회복이 아니고, “영적으로 회복”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몸은 다시 지치기 때문입니다.
잘 쉬고, 잘 자는 것만으로 결코 절망에서 빠져 나올 수 없습니다.
이런 [엘리야]에게 자기 시계가 멈추는 것과 같은 [허무함]을 느낍니다.
[엘리야]는 바알 선지자와 대결하는 모험도 가졌고, 거기에서 승리하였지만,
[이세벨]의 한 마디로 무너지는 모습을 보입니다.
▶인생의 시계가 멈추려 할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①대부분 실망을 하고 자포 자기를 합니다. -----이럴 때에 [영적감각]이 떨어집니다.
②그럴 때는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엘리야에게 이럴 때,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①첫째는, 휴식을 취하는 일과 몸을 보충하기 위해, 음식을 먹는 일입니다.
②그러고 나서,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깊이 들어가는 [40일 간의 여정]이 필요합니다.
-------그 때가 하나님을 대면하기 가장 좋은 때입니다.
9절 말씀에서, “그는 거기에서 동굴 속으로 들어가 그날 밤을 지냈습니다.
그때, 여호와께서 엘리야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엘리야야, 여기서 뭘 하고 있느냐?”(왕상19:9)
이럴 때에, 인생의 가장 힘든 시간입니다. 그렇다고 그 시간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어두운 밤이 오면, 두려워하지 말고, 깊은 잠을 자야 합니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혼 내지 않고, 빵과 시원한 물을 먹여 주었습니다.
여기서 40일 = 4 (땅의 완전 수)* 10(충만수)입니다.
여기서 [엘리야]는 [자기 연민에 빠진 자기 자신]을 보게 됩니다.
그때 엘리야는 10절 말씀에서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엘리야가 대답했습니다. 저는 만군의 하나님여호와를 매우 열심히 섬겼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자손들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부수며, 주의 예언자들을 칼로 죽여서,
이제 저만 혼자 남았습니다. 그런데, 저들이 이제는 목숨까지 빼앗으려 합니다.”(왕상19:10)
“하나님 제 주위에는 아무도 없어요. 이제 나는 외롭고 슬퍼요”라고
[엘리야]가 자기 연민에 빠져서, 하나님에게 하소연 합니다.
이런 때에, 하나님은 [세밀한 음성]을 [엘리야]에게 돌려주십니다.
그 내용은“그 동굴에서 나와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왜, 40일의 여정을 가졌을까요?
40일 간의 여정으로, 세밀한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영의 회복기간“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새로운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11~12절 말씀을 함께 읽으십시오.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산으로 가서 여호와 앞에 서 있어라.
이제 곧 내가 지나가겠다. 그러고는 크고 강한 바람이 불어와 여호와 앞에서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그 [지진] 속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지진이 물러간 뒤에는 [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그 [불] 속에 계시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불이 지나간 뒤에 작은 소리가 들렸습니다.”(왕상19:11-12)
이 말씀은 새로운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여기서 엘리야에게 3가지 현상을 보여 주십니다.
①바람이 일어났는데도, 하나님은 그곳에 계시지 않았고,
②지진이 일어났는데도, 하나님은 그곳에 계시지 않았고,
③큰 불이 일어났는데도, 그 곳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습니다.
바람과 지진과 불이 지나간 뒤에 하나님은 “작은 세밀한 소리”를 통해서,
[엘리야]에게 다시 찾아오신 것입니다.
이 세 가지 현상은 하나님이 임재 할 때, 나타나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방법으로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런 현상은 “아주 작고 세밀한 소리”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지금 [엘리야]에게 필요한 것은 [기적]이 아닙니다.
[엘리야]는 “불”로 응답하는 기적을 보았지만, 지금 [엘리야]는 절망하고 있습니다.
[기적]은 때로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 주지만, 기적 때문에 절망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기적이 [믿음]을 지탱해 주는 것이 아니고,
"아주 작고 세밀한 음성"이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지탱해 주는 것은 “아주 작고 세밀한 소리”입니다.
그 “작은 소리“는 조용한 침묵 속에 들을 수 있는 것이고,
[나]만이 들을 수 있는 아주 [작은 소리]입니다.
이것이 위대한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이런 [작은 소리]가 우리의 “믿음을 지켜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은 꼭 이런 방법으로만 나타나는 분은 아닙니다.
[엘리야]는 마치 “자기”가 기적을 일으킨 것으로 착각하였기 때문에,
그래서 깊은 절망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엘리야]는 큰 기적가운데서, 작은 세밀한 소리를 놓쳤던 것입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서도 작은 소리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놓치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이 [작은 음성]이 우리의 믿음을 지켜 주는 “기둥”이 되어야 합니다.
[엘리야]의 절망은 “진정한 영웅”이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것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엘리야]가 위대한 것이 아니고, [엘리야의 하나님]이 위대한 것입니다.
[위기]는 언제나 환경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믿음이 붕괴될 때 찾아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속에 “세밀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2) 두 번째로, 문제의 초점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지 마세요.
자신이 모두 다 했는데, 남의 탓으로 돌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는 그렇지 않은 것으로 [합리화] 시키는 사람은, 절대로 회복되지 못합니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으면, 그 상처를 준 사람의 책임이지만,
그 상처에 반응하는 것은 [나의 책임]입니다.
그러므로 그 상황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은 바로“나 자신”입니다.
그러니까, “아니다” 싶으면, 얼른 그 상황에서 빠져 나오세요.
세상이 변하지 않은 게 아니라, 내가 변하지 않은 것입니다.
내 생각과 내 관점이 변하지 않았으니, 세상이 변하지 않는 것으로 느끼게 됩니다.
14-15절 말씀을 읽으십시오. “[엘리야]가 대답했습니다. 저는 만군의 여호와를 열심히 섬겼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들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부수며, 주의 예언자들을 칼로 죽여,
이제 저만 혼자 남았습니다. 그런데 저들이 제 목숨까지 빼앗으려 합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 엘리야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왔던 길로 돌아가, 다메섹 광야로 가거라.
너는 그곳에 가서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 왕이 되게 하여라"(왕상19:14-15) 라고 하소연 합니다.
▶15절 말씀에서, “네가 왔던 길로 돌아가라.”는 말은 무슨 의미입니까?
현실을 회피하지 말고, “현실을 직면하라“는 말입니다.
도망가지 말고, ”그 자리에서 돌파하라.”는 말입니다.
사람은 심리적으로 일이 어려워지면, 현실을 회피하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세상을 탓하고, 하나님을 탓하려고 합니다.
(3) 세 번째로, 작은 것을 보지 말고, 하나님의 큰 그림을 보십시오.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은 “큰 그림을 그리시는 분”입니다.
내가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니까, 하나님을 믿고, 계속해서 큰 그림을 보십시오.
18절 말씀에서, “내가 바알에게서 무릎을 꿇지 않고, 입을 맞추지도 않은 사람들이
7,000명을 이스라엘에 남겨 두었다”(왕상 19:18)
쉬운 말로 다시 보면, “내가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 아직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사람이
7천명이나 남겨 두었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7,000명은 무슨 의미입니까?
7 = 하늘의 완전한 수이고, [10 에 3승]은 ”충만한 수에 세제곱“입니다.
네가, 너의 인생이 완전한 것 같아도, 이 세상은 ”하나님이 이루시는 역사”입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한계가 [40일] 이니까, 너는 혼자가 아니다.
역사는 큰 그림을 갖고, 완성할 테니, 너희가 걱정할 일이 아니다.
역사를 움직이시는 ”하나님의 시계는 멈춘 적이 없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너희는 과감하게 그분을 믿고, 나가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우리가 배우는 것은 무엇입니까?
①첫째, 하나님은 엘리야의 필요를 채워줌으로 [엘리야]를 소생시키 십니다.
잠자고 있는 [엘리야]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서“뭘 좀 먹으라”고 깨웁니다.
[엘리야]는 깜짝 놀라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일어나서 빵과 음료를 먹었습니다.
②둘째, 우리도 힘들고 어려울 때, 하나님으로 내가 부족한 공간을 채우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세상에 있는 다른 것으로 채우려고 합니다.
특히 여성분들은 [드라마]와 같은 것으로, 자기의 허전한 마음을 채우려고 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회복]됩니까?
①회복의 첫 단계는, 내 문제를 내가 해결 할 수 없습니다.
우리들은 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지만, [자신의 문제]를 자신이 조절하지 못합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해 주실 분은 오직,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자기가 인생의 주인이라“고 말을 하지만, 자기 자신이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내가, 나를 책임진다.”고 하지만, [사람]은 [사람]을 고쳐 줄 수 없습니다.
그럴 때는, [하나님]에게 나아가면, 해결됩니다.
오늘 본문을 보더라도, [엘리야]가 해결하지 못하니까, [하나님]이 나서서 해결해 주십니다.
②회복의 두 번째 단계는, “내 문제를 해결해 주실 분이 오직 하나님 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하시고, 내 문제를 하나님께 위탁하게 만드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큰 그림“을 바라보고 나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