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을 사랑하고 실천한 분 한상범 교수님
온 국민이 읽을 책 ‘한자숭배 나라 망친다.’
한글학회 부설 한말글문화협회 대표
한글만 쓰기를 반대하는 사람들 가운데 판사나 검사, 변호사 출신들이 많았다. 왜 그럴까? 그들이 읽고 배운 글이 한자혼용 일본식 법률 문장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일본 한자말을 그대로 한자로 쓴 법률 책을 보고 그렇게 한자 혼용하는 글만 2는 줄 알고 그 노예가 된 것이다. 조선시대 중국 한문책만 보고 공부한 이들이 훈민정음 만드는 것은 반대하고 쓰지 말자고 한 것과 똑 같다. 그런데 한상범 교수님은 그런 책으로 공부한 법학자이면서도 우리말을 한글로만 쓰는 말글살이를 하자는 분이다. 왜, 어째서 일까?
이 분은 머리가 좋은 분이라 스스로 한자로부터 벗어났다. 세종대왕이나 주시경 선생과 같은 혁명가요 개척자다. 또 민족주의자요 민주주의자다. 입으로만 나라와 겨레를 사랑하고 한글을 걱정하는 분이 아니라 몸으로 실천하는 학자요 교육자다. 학교에서 누가 가르쳐서 배우고 따른 것이 아니라 스스로 깨닫고 그렇게 하신 것이다. 나도 학교에서 가르치고 배운 것이 아니라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그래서는 안 된다고 보고 내 스스로 한글운동과 민족자주운동을 했기에 그렇게 생각한다.
한상범 교수님을 본받고 싶다.hwp
한글학회 돌잔치에서 축하 말씀을 하는 한삼범 교수님.
한상범 교수님은 내가 다닌 동국대 선배요 스승이다. 나는 농과대학을 다녔기에 직접 수업을 듣고 배운 것은 아니지만 한 교수님이 쓰신 글과 책을 통해서 가르침을 받았고, 같은 뜻을 가지고 같은 길을 걸었다. 한 교수님처럼 나도 한글학회에서 한글운동을 하고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민족운동을 했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한상범 교수님 성함과 훌흉한 분이란 것을 안 것은 1966년 동국대학에 들어갔을 때 경찰행정과에 다니는 내 고등학교 동기생을 통해서다. 그는 나보다 한 해 먼저 대학에 들어갔기에 그와 친하게 지내며 함께 자치생활을 했는데 그는 자주 한상범 교수님 이야기를 했다. 그 분 수업은 빠지면 안 된다며 내가 묻지도 않는데 참 좋은 분이라고 칭찬했다. 그래서 뵙고 싶었는데 대학을 졸업하고 한글학회에서 한글운동을 하면서 뵙게 되어 반갑고 기뻤다. 1994년 한자파들이 한글만 쓰는 것은 헌법에 어긋난다고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냈을 때 한 교수님이 그 반대 변론을 맡아주셔서 더욱 고맙고 자랑스러웠다.
또한 내가 1992년 친일파 청산을 하는 단체, 민족문제연구소 김봉우 소장과 뜻이 맞아 그 모임 후원회 조직위원장으로 그 모임을 키웠는데 김봉우 소장 다음으로 한상범 교수께서 그 민족문제연구소 2대 소장을 맡았을 때 더욱 흐뭇했다. 내게 한글운동이 더 중요하기에 김봉우 소장이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떠날 때 함께 떠났기에 한 교수님을 모시고 그 일은 계속하지는 못했지만 한글과 민족을 사랑하고 실천하는 생각과 모습이 나와 통하고 닮았기에 언제나 한 교수님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1999년 한 교수님이 쓰신 “한자숭배, 나라 망친다.”란 책을 읽으면서 한 교수님에 대해서 좀 더 자세하게 알게 되어 더욱 존경하게 되었다. 법학자가 볼 때 왜 한글만 써야 하는지와 그 의미, 한글만 쓰기가 민주주사회로 가는 길이며 자주독립국가가 되는 길이라는 바탕에서 쓰신 글이 내 생각과 똑 같고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글과 책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웠기에 내 스스로 제자라 말한다. 나는 며칠 전에 한 젊은 변호사가 나와 함께 한글운동을 하고 싶다고 찾아왔기에 한 교수님이 쓰신 한 교수님이 쓰신 “한자숭배 나라 망친다.”는 책을 주고 꼭 읽고 가져오라고 준 일이 있다. 이 책은 법학도뿐만 아니 온 국민에게 읽기를 권하고 싶다.
1999년 출판사 ‘푸른세상’에서 낸 한 교수님 책, 왜 한글을 써야 하는지 알 수 있다.
그 다음에 나는 한 교수님이 가신 길을 따라서 가는 남다른 인연이 있다. 한 교수님이 한글학회로부터 1994년에 한글발전공로상을 받았는데 그 다음 해에 나도 한글학회에서 공로상을 받았고, 한글운동 최고상인 외솔상을 한 교수님이 2000년에 받았는데 내가 2006년에 그 상을 받았다. 한 교수님과 나는 한글학자나 국어전공자가 아니다. 나라와 겨레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스스로 깨닫고 한글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동국대학을 나왔다는 것까지 우연이지만 필연인지 모르겠다. 어쩌면 내가 동국대학을 나온 것이기 때문에 한 교수님이 더 자랑스럽고 고맙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동국대학을 다닌 것은 참 좋은 일이었다. 나는 1967년에 동국대학에 국어운동대학생회를 만들고 한글운동을 하기 시작해서 오늘까지 45년 째 하고 있다. 그런데 내가 대학을 들어가기 전부터 그 뜻이 있었지만 동국대학을 다녔기에 그렇게 할 수 있었고, 지금까지 이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돌이켜보니 동국대학에 한글을 사랑하는 훌륭한 교수님들이 많이 계셨고 보이게 보이지 않게 그 은덕과 가르침을 받은 거 같다. 1학년 교양과목을 가르친 교수님들 가운데 한글을 사랑하는 분들이 있었다.
먼저 경제원론을 가르친 홍우 교수님이 있다. 그 분이 쓴 교과서가 한글만으로 되어있으며 ‘경제’란 뜻풀이도 “경제는 살림살이다.”라고 쉽게 하셨다. 고등학교 때에도 그 분이 쓴 ‘경제와 사회’란 교과서로 공부했는데 기뻤다. 그리고 철학을 가르친 정종 교수님이다. 그분도 책이 한글만으로 되어있고 쉽게 가르쳤다. 더욱이 학교에 다닐 때엔 몰랐는데 그 분은 1945년 광복 뒤에 당신의 자제분들 이름을 ‘정어지루’라고 우리 말글로 지은 선각자요 개척자였다. 불교원론을 가르친 황성기 교수님도 마찬가지 쉬운 말글로 가르치시고 한글로만 시험 답안지를 썼는데 점수를 잘 주셨다.
그런 점에서 나는 행운아다. 내가 1967년 동국대 국어운동대학생회를 만들고 학교에 모임 등록을 하려니 지도교수님을 모셔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한글전용을 찬성하는 교수님을 찾을 수 없었다. 사실은 여러분이 계셨는데 국문과 교수 가운데서 지도교수를 모시려니 그랬다. 더욱이 국문과 교수 가운데 이병주 교수는 스스로 이완용의 손자라고 하면서 국문과 학생들이 국어운동대학생회 회원이 되는 것을 싫어했다. 어렵게 국문과 후배로부터 국문과 김성배 교수님이 내 뜻과 통한다는 것을 알고 찾아 말씀드리니 찬성하지만 교양학부장 직책을 맡아 힘들다고 하셨다. 참으로 안타까웠다.
그러나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고 했고, 동국대학은 좋은 대학이었다. 우리 대학 신문에 불교철학과 한상련 교수님이 한글로만 논단을 쓰신 것을 보고 무조건 한 교수님 연구실로 찾아가서 내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무슨 말인가! 불교는 호국불교요 동국대학은 민족대학이다. 한글에 대한 전문지식은 없지만 모임 등록에 필요하다면 내 이름을 써라!”고 쾌히 지도교수 수락을 해주셨다. 참으로 기쁘고 훌륭한 분이었다. 그래서 학교에 모임 등록을 하고 지금까지 45년 째 한글운동에 앞장서서 활동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한상련 지도교수님은 만해 선생과 김법린 전 총장님 정신을 이어받은 분으로 보인다. 두 한 교수님들은 이름도 비슷하다. 그런데 한상련 교수님은 이미 돌아가시고 한상범 교수님께서 요즘 몸이 편치 않으시다니 안타깝다. 더욱이 20년 전 한자 숭배자들이 한글만 쓰는 한글전용법과 그 말글살이는 위헌이라는 헌법소원을 냈을 때 한상범 교수님께서 막아주셨는데 또 그 잔당이 또 한글만 쓰기는 위헌이라는 헌법소원을 올해에 내서 그 반대 투쟁을 해야 하니 한 교수님이 더욱 그립고 건강이 걱정된다.
끝으로 내가 2007년 중국 대학에 가서 한국어 보급운동을 하러 갈 때 중국 유명한 사상가요 소설가인 노신과 한 교수님이 많이 닮았다는 것을 느낀 이야기를 하련다.
중국 절강성 소흥시에 이는 소설가 노신 동상 옆에서 찍은 사진
나는 2007년부터 두 해 동안 중국 절강성 소흥 절강월수외대에 가서 중국 대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다가 왔다. 내가 그 곳에 가서 한국어 보급을 하려고 마음을 먹을 때 중국 문자개혁운동가요 민족운동가인 소설가 노신이 그곳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알고 반가웠다. 그리고 그의 정신과 기운을 더 느껴보겠다는 생각과 함께 그곳에 있는 대학에서 한국어를 알리는 일을 하겠다고 결심했다. 그가 “한자가 망하지 않으면 중국이 망한다.”면서 한자가 얼마나 중국과 중국인들을 숨 막히게 하는 글자인지 깨닫고 문자개혁운동을 하고, 글로 중국 민중을 깨우쳐서 일본제국과 서구 열강 침략을 막으려고 몸부림을 쳤다.
그 노신을 중국인들은 대단히 우러러보고 모시고 있다. 노신이 태어나 살던 집터에 5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중국 정치인 주은래 할아버지의 집터가 있다. 주은래도 비슷한 시대 인물로서 중국에서 대단한 정치인이다. 그런데 노신의 옛 집에는 날마다 아침부터 저녁때까지 수천 명의 중국 관광객이 들끓고 있으나 주은래가 살던 옛집에는 사람이 별로 없다. 그만큼 중국인들은 노신을 우러러보고 모신다는 것이다. 민족혼을 일으켜서 힘센 나라를 만들려고 애쓴 노신 정신을 높은 관직과 권력을 누린 사람보다 더 우러러본다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한상범 교수님이 “한자숭배 나라 망친다.”는 책을 쓰고 한글을 지키고 살리려고 애썼다. 또 친일파 청산모임인 민족문제연구소 소장까지 하셨다. 한상범 교수님도 그 노신 못지않은 훌륭한 사상가요 민족운동가다. 그런데 중국인들은 그 노신의 훌륭함을 알아주고 우러러 받드는데 우리 한국인들은 한 교수님의 그 정신과 노력을 잘 모르고 있다. 그런 뜻에서 나는 한상범 교수님을 우러러보고 마음속으로 모신다. 그리고 이제 교수님께서는 활동을 못하셔도 내가 교수님 뜻과 정신을 이어서 이 겨레와 나라를 위해서 끝까지 힘쓸 것을 다짐하고 한글을 지키고 빛낼 것을 밝힌다. 그리고 한 교수님 건강을 빈다. [끝]
1970년 동국대 농림경제학과 졸업. 현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공동대표, 한글학회부설 한말글문화협회 대표, 한글날공휴일추진범국민연합 상임 대표임.
첫댓글 이 글은 한상범 교수님 제자들과 함께 사회 활동한 분들이 쓴 글 모음집에 보낸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