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의 오래된 책에서 항상 의아했던 것이 있다. 100여년 전에 출판된 근대의 책들은 누렇게 바래고 바스러지는 반면 르네상스 시대에 인쇄된 고서적들은 오히려 종이가 놀라우리만큼 하얗고 빳빳하다.
알고보니 현대의 책은 산성이 포함된 목재 펄프를 갈아 만들기 때문이다. 이는 시간이 지나면 부식된다. 과거의 책들은 중세 평민들이 입고 버린 아마포(린넨) 속옷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오래 버티는 것이다.
종이가 보편화되기 전 책을 만드는 가장 보편적인 재료는 양피지였고 성경 한 권에 170 마리도 넘는 짐승이 도축될만큼 값진 것이었다. 책 한권이 집 한채 값과 맞먹기도 했다.
상층이 독점할 수밖에 없던 책이 평민에게까지 퍼진 데에는 아이러니하게도 흑사병이 큰 역할을 했다.
14세기 중반부터 유럽을 강타한 흑사병으로 인구의 1/3이 줄고 수많은 마을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주인을 잃은 수천만 벌의 낡은 아마포 속옷과 침대 시트가 남아 있었다.
전염병으로 죽어간 이들의 옷은 누구도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이 때 망자의 헌 옷과 누더기를 긁어모으는 넝마주이들이 등장한다.
이 불가촉천민들은 시체를 실어 나르던 수레에 낡은 리넨 속옷을 싣고 도시 외곽의 제지소로 향했다. 인간의 피부에 닿아 부드러워진 아마포는 질긴 섬유질을 띠고 있어 종이를 만들기 위한 완벽한 원료였다.
피고름과 오물이 묻은 넝마가 쉽게 종이가 된 것은 아니었다. 수집된 넝마들은 어둡고 축축한 지하실에 몇 주 동안 방치되었다. 옷이 썩으면서 박테리아가 천의 질긴 결합을 느슨하게 만들었는데, 이때 발생하는 악취는 역하기 그지없었다.
썩어서 흐물흐물해진 넝마를 나무망치로 수만 번 두드리면 미세한 펄프가 되었다.
버려진 넝마가 넘쳐나자 종이 가격은 양피지의 10분의 1 수준으로 폭락했다.
흑사병은 종이의 원료만 제공해 준 것이 아니다.
이전까지 책은 수도원의 수도사들의 필사로만 만들어졌다. 흑사병으로 가장 많은 피해를 본 곳 중 하나가 폐쇄적인 공간인 수도원이었다. 지식에 대한 욕구는 여전했지만 책을 쓸 수도사는 대거 사라져 버렸다.
공급자는 죽고 종이 가격이 내려가자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가 활판인쇄술을 개발할 최적의 조건이 되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종이를 퍼뜨린 것이 아니라 값싼 넝마 종이가 풍부했기 때문에 활판 인쇄술이 실용화될 수 있었다.
값싼 종이의 위력은 1517년, 세계사를 영원히 바꿔 놓는다. 바로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이다.
루터의 반박문은 두꺼운 책이 아니라 오늘날의 전단지인 플루크슈리프텐형태로 찍혀 나갔다. 종이값이 내려간 덕분에 인쇄업자들은 루터의 글을 수만 장씩 찍어 독일 전역에 뿌릴 수 있었다. 교회가 탄압에 나섰을 때, 이미 평민들의 앞치마와 주머니 속에는 루터의 팸플릿이 들어 있었다.
인쇄기가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가며 책을 쏟아내자 흑사병으로 남았던 산더미 같던 헌 옷은 급속히 사라져갔다.
17세기가 되자 넝마는 국가 지식 산업의 핵심 자산이 되었다. 이 때문에1666년, 영국에서는 '양모 매장법(Burying in Woollen Acts)'이라는 법이 통과된다.
시체를 관에 넣을 때 반드시 종이의 원료가 되지 못하는 까끌까끌한 양모 수의만 입혀야 하며 리넨을 입혀서 묻을 경우 유족에게 거액의 벌금을 부과하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종이 수요가 폭증하자 넝마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미국 독립 전쟁 당시에는 워싱턴 장군이 병사들에게 "남는 텐트나 셔츠 조각을 제지소에 넘기라"고 할 정도였다. 수요를 감당하지 못한 제지업자들은 낡은 밧줄, 심지어 이집트의 미라를 감싸고 있던 아마포 붕대까지 훔쳐 와 종이로 만들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1840년에 펄프로 만드는 종이가 생겨났다. 사람들은 더 이상 린넨 속옷을 입지 않았다. 값싼 면이 공장에서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이제 펄프 종이의 시대가 되었다.
김효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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