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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운
시조시인, 문학평론가, 한강문학회 총무이사, 〈이기운의 英漢韓 대역詩 감상〉, 〈이기운의 대표시 번역〉, 論考:〈漢詩에서 韓詩를 주장하다〉(2021, 한강문학), 〈한국 현대시 분류에 관한 소고〉(2022, 한강문학) 외
진성여왕
▸4막극 ▸등장인물 만曼, 만헌曼憲-진성여왕 김황金晃-정강왕 각간 김위홍 시중 김준홍 이벌찬 김성 이벌찬 박원 이찬 김승민 이찬 김태 이찬 김동 아찬 고운 최치원 용해, 현춘:남해의 해적 상대등 김한철(화백회의 의장) 조위:왕의 처소를 드나드는 청년 잡찬 김국 잡찬 김명 시위장 대신들 |
〈제1막〉 | |
막이 오른다. 불이 켜진다. | |
궁 안 왕의 처소 침상에 정강왕이 누워있고 대신들이 몇 몇이 그 앞에 서 있다. 왕비도 한 쪽에 서서 울고 있다. | |
정강왕 | 내가 부족하나 선왕의 은덕으로 왕위에 올랐고, 지난 일 년 간 김요의 반란을 진압하고 다시 태평성대를 만들고 싶었으나, 하늘이 내게 준 시간이 여기까지 인 것 같소. |
대신들 | 마마, 그런 말씀 마시옵고 어서 쾌차 하시옵소서 |
정강왕 | 아니요. 내 병은 내가 아오. 내가 누구에게 보위를 물려주어야 이 신라가 보전되고, 다시 태평성대가 도래할 수 있겠소? 시중 말해 보시오. |
시중준홍 | 황송하오나, 후사를 논하기 보다는 마마, 빨리 쾌차하소소. |
정강왕 | (기침을 하며) 내 병은 내가 아오. 그렇게도 내 말에 답변하기 힘드오? 그럼 이벌찬 김성공이 말해 보시오. |
이벌찬 김성 주뼛거린다. | |
정강왕 | 빨리 말해 보시오. |
김성 |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마마의 유일한 동생인 공주 만曼1)이 마땅한 줄 아뢰오. |
정강왕 | 고맙소. 시중 가까이 오시오. 내 동생 만은 비록 여자의 몸이라 하나 어린 시절부터 총명하며 선덕여왕과 진덕여왕의 전례도 있으니 좋은 군주가 될 것이오.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골격이 크고 건강했으니, 어려운 왕위를 잘 수행하고, 태평성대를 이룰 수 있을 것이요. 대신들은 만을 도와서 태평성대를 이룰 수 있도록 부탁하오. 내 관은 무덤 위에 안치 시켜 언제든지 만이 정치를 잘 하는 지 바라볼 수 있게 해 주시오. |
신하들 울음을 터뜨린다. | |
신하들 | 마마… |
불이 꺼진다. | |
불이 켜진다. | |
진성 | 선왕의 장례도 끝나고, 보리사 남쪽에 선왕의 능을 조성했으니, 신료들은 선왕의 유택의 마무리 작업을 차질 없이 잘 수행하도록 하시오. 내가 비록 부족함이 많으나 선왕의 유지를 이어 이 자리에 앉게 되었으니, 여러 신료들은 내가 옛 문무대왕의 성대를 재현 할 수 있도록, 나를 도와주시오. |
대신들 | 예, 대왕의 뜻을 따르겠나이다. |
김성 | 대왕마마, 한 가지 드릴 말씀이 있나이다. |
진성 | 말해 보시오. |
김성 | 신 이벌찬 김성 대왕마마께 여쭙겠습니다. 새들도 짝이 있고, 예로부터 대왕은 짝이 없는 경우가 없었나이다. 이제 선왕의 장례도 끝나고 선왕의 능도 마무리 작업에 들어갔사오니, 대왕의 부군을 간택하여 한시라도 빨리 그 자리를 채워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
진성 | 비록 선왕의 장례가 끝났다고는 하나, 그 동안 많은 반란으로 백성들의 생활이 곤궁하고 그 참상이 심하다 하니, 내 혼인보다는 다른 문제를 먼저 결정하고 혼인 문제를 하도록 하겠소. 혼인을 하려면 많은 돈이 드는 법, 지금처럼 어려운 때 백성들에게 고통을 더 안길 수 없소. |
김승민 | 그래도 국가의 법도 상 마마의 혼인 문제가 제일 급한 일인 줄 아뢰오. |
진성 | 아찬, 여러 신료들의 뜻은 잘 알겠소이다. 그러나 흉년으로 백성들의 삶이 곤궁하고, 북방의 고려2)는 우리 신라의 각처에 도적의 무리들이 일어나 어수선할 때마다, 이를 기회로 북방의 여러 개 성을 불법으로 도적질해 갔고, 바다 건너 백잔3)의 후예들이 옛 백제의 영토를 넘보고 시시각각 바닷가를 노략질 하고 있소. 그런데도, 내 혼인이 제일 급한 일이겠소? 그러나 경들의 뜻이 강하니 그 문제는, 내 조만간 결론을 내리도록 하겠소. |
진성은 팔을 휘젖는다. | |
진성 | 백성의 삶이 매우 곤궁하니, 내 아래와 같은 칙서를 내리도록 하겠소. 앞으로 일 년 동안 백성들의 세금과 부역을 면제하도록 하시오. |
대신들 | 마마,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백성들의 세금을 면제하면, 이 왕실과 지방은 어떻게 유지할 수 있사오이까?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
진성 | 앞으로 궁 안의 각종 연회는 일 년 동안 폐지하도록 하겠소. 그리고 궁에 사용되는 모든 것은 최소로 하여 비용을 줄이겠소. 앞으로는 궁에서는 나부터 금주를 하도록 하겠소. 백성들이 곤궁한 삶으로 아침, 저녁으로 굶는 자가 다반사인데, 술을 빚도록 하여 많은 쌀을 낭비할 수 없소. 또한 내게 들이는 반상도 반찬의 종류를 반으로 줄이도록 하고, 매일 올리던 소고기는 열흘에 한 번만 올리도록 하시오. 아울러 이찬 김승민은 궁 안의 나인과 내관들을 조사하여, 필요한 곳만 인력을 두고 나머지는 다 그들의 집으로 귀향 시키도록 하시오. |
대신들 | 제발 그 명은 거두어 주시옵소서. 궁에는 궁의 위엄을 보여야 하옵니다. |
대신들 계속 웅성거리며 왕에게 진언한다. | |
진성 | 오늘은 이만 하겠소. 다들 물러가시오. |
진성 자리에서 일어나 퇴장한다. 불이 꺼진다. 불이 켜진다. 김성의 집에 대신들 몇이 앉아 있다. | |
김성 | 모처럼 여러분들을 뵙고 싶어서 이 신라의 오래된 세가분들께 연락 했소이다. 앞으로 자주 이런 자리를 만들어야 겠소. |
계속 술자리가 이어진다. | |
김성 | 우리 전통 세가들이 계속 이 신라에 자리 잡고 우매한 백성들을 계도해서, 태평성대를 만들어야 겠소. 사실 선왕께 나이 어린 계집을 후계자로 추천한 이유이기도 하죠. 그런데, 오늘 주상으로부터 우리가 뒤통수를 맞은 것 같소. 우리 세가들 중 한 집안의 자제와 주상을 혼인 시켜야 우리가 자리 잡기 편한데 여왕이 거부하니, 게다가 일 년 동안 백성들에게 세금을 면제 한다니…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되오? |
김승민 | 그러게 말입니다. 궁을 유지하고, 관청을 유지하려면 모두 다 돈인데, 여왕은 세상을 모르고, 무조건 절약만 하면 될 줄 알고 있소이다. |
김태 | 세금을 거둘 수 있어야 지방 태수들이 생활 할 수 있고, 그래야 중앙에 있는 여러분들께도 그 혜택이 돌아오는 데. 어린 여왕이 그런 것을 모르니… 앞으로 태수들 불만을 어떻게 잠재워야 할지 걱정이외다. 그나저나 여왕은 왜 혼인을 하지 않는 다는 것이요? |
김동 | 여왕의 남편이 될 만한 청년이… 어디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있소이까? |
김성 | 이벌찬 박원 공의 장자가 아직 혼인을 하지 않았소. |
김동 | 박원 공이면 김씨가 아니지 않습니까? 앞으로 진성이 자식을 나면 왕위는 박씨에게 넘어 갈텐데… 나는 반대 합니다. |
김성 | 박원 공은 진골이고, 신라의 시조 거서간 불구대왕의 현손인데, 박원 공의 손자가 이 나라 왕이 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소이까? 우리 김씨도 박씨로부터 왕위를 받은 것이 아니겠소? |
김승민 | 왕을 김씨가 하던 박씨가 하면 또 어떻겠소? 어짜피 우리 자리만 확고하면 되지… 자, 자 그 얘기는 이제 그만 하고 오늘은 술이나 합시다. 앞으로 당분간 술 마시기도 힘들 텐데. |
김태 | 궁에서 금주를 하면, 나와서 몰래 마시면 되지 뭐가 걱정이요? |
대신들 | 몰래 우리끼리 조용히 마시면 누가 알겠소? |
불이 꺼진다. 불이 켜진다. 진성의 처소, 진성과 위홍이 앉아 있다. | |
진성 | 숙부님! 오늘 조카가 숙부님에게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
갑자기 진성이 일어나서 위홍에게 절을 한다. | |
위홍 | (손을 내 젖다, 엉거주춤 맞절을 한다) 아니, 마마 무슨 이런 망측한… 대왕은 함부로 신하에게 절을… |
진성 | 지금부터 저는 어린 시절 만헌으로 돌아가서 숙부께 말씀 드리겠나이다. 숙부는 왜 숙부가 앉을 수 있는 왕좌를 제게 양보해 주셨나요? 저는 지금의 왕좌가 맞지 않는 옷처럼 아주 불편합니다. 계속 조여드는 아픔으로 숨을 쉬기가 어렵소이다. |
위홍 | 마마는 어릴 때부터 영특 하셨습니다. 비록 공주이기는 했지만, 선대 경문대왕도 만헌이 남자 아이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말씀을 제게 종종하시곤 했습니다. 마마는 어린 시절부터 훌륭한 왕의 재목이셨습니다. |
진성 | 그래도 너무 힘들어요. 숙부님, 여기저기 도적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세수는 걷히지 않고, 남쪽의 왜나, 북국은 언제 신라에 쳐들어올지 모르고… 저는 무섭습니다. 숙부가 이 왕위를 가져가세요. |
위홍 | 마마, 마마는 이 나라의 군주입니다. 군주가 마음을 강하게 먹지 않고 흔들리면, 나라가 위태해집니다. 제가 힘을 다해 돕겠습니다. 저는 왕을 할 수 없는 몸입니다. 제가 왕을 하게 된다면, 화백회의에서 반대할 것입니다. 화백회의의 원로들은 대부분 우리 경문왕계가 아닌 계열이라 그들은 호시탐탐 자기들 계열에서 이 왕좌를 가져가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게다가 김씨 왕통이 흔들리고 있는 지금 시조 거서간의 현손들이 다시 등장해서 신라의 왕위를 가져가려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왕위에 올라간다면 다른 계열과 왕통을 놓고 귀족들 간에 또 다시 싸움을 벌여야 했습니다. 그래서 여러 파벌들이 자리를 나누기 위해 선대 경문대왕의 따님인 마마가 왕위 계승을 하도록 암묵적으로 손을 잡은 것입니다. |
진성 |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지… 안개 속을 걷는 것 같아요. |
위홍 | 마마, 일단 내적으로 경문대왕의 계열의 힘을 키워야 합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경문대왕을 찬양할 수 있도록 잘 아는 스님에게, 경문대왕을 찬양하는 노래를 쓰게 하겠습니다. 백성들이 그 노래를 부르면서 자연스럽게 경문대왕의 큰 공을 되새길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
두 사람의 이야기는 밤새 계속 된다. 촛불이 짧아지고, 불꽃이 흔들린다. | |
위홍 | 시간이 많이 지났습니다. 저는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
진성 | (애원하듯) 숙부님, 오늘 저와 같이 있어 주세요. 저 혼자 두고 가지 마세요. 신라의 앞날을 생각하면 너무 무서워요. |
위홍은 일어나서 머뭇거린다. 진성은 위홍의 손을 잡고 침상으로 간다. 불이 꺼진다. 불이 켜진다. 궁 안에서 조회 실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 |
진성 | 우리 삼한이 한 나라가 된지도 200년이나 되었지만 아직도 말이 다르고, 문자를 읽는 방법이 다르니 서로 소통에 문제가 있소. 삼한에 본시 한자를 읽는 법이 달랐기에 한 나라가 된 이후에, 설총이 선왕의 명을 받잡고 우리 신라의 이두와 고려, 백제의 이두를 종합하여 정리해서 편찬했으나, 아직도 고려 지역과 백제의 고토 지역에는 새로운 이두가 제대로 알려 지지 않아서 글자를 읽는 방법이 달라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음은 안타까운 일이요. 그래서, 나는 이 땅에 있는 노래를 이두로 정리하여 편찬, 보급할 것을 제안하니 경들은 어떻게 생각 하시요? |
시중 | 대왕의 뜻이 지당 하오나 지금은 시기가 궁의 재정을 풀어 노래집을 편찬하기는 어려운 줄로 아뢰오. |
김성 | 신 아찬 김성 말씀 드리겠습니다. 지금 여기저기 백성들이 굶주려 산에 들어가 도적들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들을 모두 소탕하는 것이 급하다 생각합니다. 시중의 뜻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
김위홍 | 대왕 마마, 한 나라가 통합을 완성하려면 말이 통합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선대왕이 삼국을 통합한 이후 설총에게 명하여 발음을 통합하였지만 아직까지 나라의 발음이 하나로 통합되지 못해서 여러 어려움이 있사옵니다. 그러니, 백성들이 자주 부르는 노래를 모아서 통합된 글자로 노래를 읽게 함은 진정한 나라의 통합을 완성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
신하들끼리 서로 노래집 편찬에 대해 설왕설래 하고 있다. | |
진성 | 좋소, 그럼 노래집을 편찬하기로 하겠소. 그럼 누가 이 일에 적임자가 되겠소? |
신하들은 서로 얼굴만 쳐다본다. | |
진성 | 그럼 각간 위홍이 노래집을 편찬하는 작업을 총괄하도록 하시오. 신료들은 노래집 편찬에 가능한 협조를 하여 주시도록 하오. |
김위홍 | 대왕마마의 명을 받잡고 최선을 다해서 편찬을 하도록 하겠나이다. |
진성 | 그리고, 또 하나 여러 신료들의 의견에 따라 나는 혼인을 하도록 하겠소. |
대신들 | 감축 드리옵니다. |
시중 | 배필은 누구시온지요? |
진성 | 내 어린 시절 유모였던 유호 부인의 남편인 각간 위홍과 혼인하도록 하겠소. |
여기저기서 갑자기 신하들의 탄식 소리가 들린다. | |
김성 | 대왕마마 위홍은 이미 유호 부인과 혼인한 사람입니다. 그런 나이든 사람과 대왕이 혼인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한 나라의 군왕이 유부남과 거듭 결혼한다는 것은 나라의 위신이 떨어지는 일이옵니다. |
김승민 | 신 아찬 김승민, 고로 대왕은 결혼한 경험이 없는 대가집 자제분 과 결혼을 하는 것이 마땅한 줄 아옵니다. |
여기저기서 대신들은 안 된다는 소리를 한다. | |
진성 | 왕 선덕대왕께서는 공주 시절, 정통성 있는 왕자를 생산하기 위해 부왕이신 진평대왕께서 네 분이나 되는 숙부와 동시에 중혼을 시키신 적이 있소. 선덕대왕의 공주 시절 책무는 성골의 정통성 있는 왕자를 생산해서 그로 하여금 신라의 정통성 있는 왕통을 이어가도록 하는 것이었소. 그러나, 불행히도 하늘의 도움을 받지 못해서 정통성 있는 왕자를 생산하지 못하였소. 나도, 개인 같으면, 젊고 잘생긴 낭군을 만나 지어미로 살고 싶소. 그러나, 왕가의 공주, 그리고 여왕으로서는 그 보다 먼저 정통성 있는 왕자를 생산해야하는 책무가 있소. 지금은 선대이신 헌강대왕의 유일한 혈육인 요嶢4)가 있으나, 불행히도 요는 왕비의 소생이 아닌 지라, 왕가의 위신과 정통성을 세우기 위해서라도 위홍과 결혼하여 정통성 있는 왕자를 생산해야겠소. 각간 위홍은 선대 경문왕의 동생으로 내겐 숙부가 되니 이보다 더 완벽한 부군은 신라 땅에는 없소. 이는 신라의 앞날을 위해 내린 내 결정이니 여러 신료들은 더 이상 왈가왈부 하지 마시기 바라오. |
진성 퇴장. 신하들은 멍하니 서 있다. 불 꺼짐. 불 켜짐. 이벌찬 김성의 집에 몇 사람이 모여 있다. 술을 마시며 그들은 조용히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 | |
김성 | 여러분 오늘 어떻게 생각하시오? |
박원 | 이벌찬 공, 우리가 여주女主에게 크게 당한 것 같소이다. 세상물정 모르는 어린 여자로 알았더니, 우리에게 칼을 들이대는 짓을 하고 있소. 지난번에는 뜬금없이 백성들 세금을 면제한다더니, 오늘은 위홍과 혼인하겠다니… |
김승민 | 도대체 사사건건 우리에게 반대되는 명으로 우리를 골탕 먹이고 있소. 위홍이 누구요? 선대 경문대왕의 친동생으로 그 집안의 최고 어른이 아니요? 결국 만曼은 경문대왕 동생의 위세를 업고 왕권을 강화하겠다는 것 아니겠소? 배은망덕한 짓이요. 우리가 선대왕에게 만曼을 추천한 것도 귀족과 왕이 이 나라 권력을 서로 적당히 나누어서 앞으로 만세를 같이 잘 살기 위한 것이 아니었소? 만헌曼憲은 앞으로 우리들 권력을 하나하나 다 뺏으려 들 것이요. |
박원 | 여러분 앞으로 우리가 서로 힘을 합쳐서 대응해야겠소. 여기저기 도적떼들이 발호하는 데, 여주女主는 우리들과 힘을 합쳐 도적들을 물리치고 나라를 안정화시키기 보다는, 우리들 힘을 빼고, 우리를 제거하고 경문대왕의 친인척 위주로 인사를 할 생각을 하니… 경문왕계가 권력을 독차지하려 할 것이외다. 앞으로 우리 자주 모여서 백성들을 위해서 시국과 관련된 이야기를 자주 합시다. |
불 꺼진다. 막이 내린다. | |
〈제2막〉 | |
막이 오른다. 불 켜진다. 시중 김준홍이 진성에게 말을 한다. | |
시중 | 대왕마마, 지금 각처에 도적들이 계속 들끓고 있어서 지방의 태수들이 조정에 세공을 바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
김동 | 이찬 김동 한 말씀 보고 드리겠습니다. 지금 남도의 바닷가에는 어부들이 조업하기 보다는 해안 지역을 노략질 하는 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합니다. |
진성 | 해안을 노략질 한다면 해적들이란 말이오? |
김승민 | 예 그러하옵니다. 선대 문성대왕 때 역신 보고와 그 도당들을 모조리 색출하여 수괴급은 참수하고 말단 역당의 졸개들은 용서하여 어부가 되도록 각 바닷가 지역으로 분산하여 보냈던 적이 있는 데, 그 자식들과 손자들이 고기 잡는 일보다는 노략질에 종사하는 자들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
진성 | 흥덕대왕 때 청해진 대사를 했던 역적 장보고를 말하는 것이요? 지금 바다에서 노략질 하는 자들을 소탕하려면 병력은 어느 정도 필요하오? |
시중 | 지금은 그 수가 수천이 된다 하옵니다. 그런데 여기 저기 바닷가에 숨어 있기에 우리 군대가 정벌하러 가면 바닷가 섬으로 숨었다가, 중앙군이 철수하면 다시 바닷가로 나와서 노략질을 하기에 소탕이 쉽지 않습니다. |
진성 | 선대 흥덕대왕께서는 그들에게 벼슬을 주고 바다를 지키게 했는데, 그럼 해적들을 불러서 벼슬을 주고 노략질을 공식적으로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어떻겠소? |
신하들은 다소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 있다. | |
진성 | 시중은 내 편지를 쓰고 왕실에서 선물을 준비할 테니 적임자를 뽑아서 남쪽 해안으로 가도록 하시오. 지금 해적들이 발호하고 있으나, 그들을 완벽히 소탕하지 못할바에야 차라리 그들에게 벼슬을 내 주면서 이 땅에서 노략질을 못하게 하면 될 것이요. |
시중 | 대왕마마의 명을 받들게 나이다. |
불이 꺼진다. 불이 켜진다. 조악한 옷을 입은 용해와 현춘이 진성 앞에 무릎을 꿇고 있다. | |
진성 | 잘 오셨소. |
용해, 현춘 | 성은이 망극하여이다. |
진성 | 지방의 태수와 신하들로부터 제장들의 이야기는 잘 들었소. 나라에 충성을 맹세했다고 하니, 지금까지의 제장의 잘못은 불문에 붙일 것이니, 짐과 나라에 충성을 다하도록 하시요. 앞으로 신라의 해안은 절대로 노략질하지 마시고, 바다로 출동할 때 필요한 것이 있다면, 신료들과 상의해서 준비하도록 하시오. 시중께서도 이들의 해상 활동을 도와주도록 하시고, 진귀한 물건이 생길 때에는 조정에 바치도록 하시오. |
시중 | 분부 받들겠나이다. |
용해, 현춘 | 성은이 망극하여이다. |
진성 | 용해를 청해 도독, 현춘을 남해 도독으로 명하니, 앞으로 나와 신라에 충성을 다하도록 하시오. |
용해, 현춘 | 죽음으로 성은에 보답 하겠나이다. |
진성은 앉아 있고, 시중이 용해와 현춘 앞으로 가서, 무릎을 꿇고 있는 그들에게 칼을 내려 준다. 용해와 현춘은 두 손으로 칼을 받으며 진성에게 절을 한다. 불이 꺼진다. 불이 켜진다. | |
진성 | 신료들에게 오늘 이 사실을 알리고자 하오. 어제 밤에 각간 위홍이 세상을 떠났소. 죽은 각간 위홍을 혜성왕惠成王이라 추존하고 위홍의 장례를 선대왕들의 장례에 준해서 실시하도록 하겠소. 관련 대신들은 내 말에 따라 준비를 하도록 하시오. |
김성 | 고래로 전쟁에서 나라를 구하지 않은 한 신하에게 왕으로 추존하는 것는 전례가 없는 일이옵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
대신들 | 아니 되옵니다. |
진성 | 위홍은 이 나라의 근간으로 그동안 어지러운 국정 안정화에 기여했고, 내 남편이요. 여왕의 남편을 왕으로 추존 한다는 것이 잘못된 것이요? 옛날 무열대왕의 사돈이었던 김유신공도 흥덕대왕으로 추존 되었소. 그의 공이 신라에 적지 않았고, 문무대왕의 따님이신 공주의 남편이라, 왕으로 추촌한 전례를 따라, 나는 각간 위홍을 혜성왕이라 추존하는 바이요. |
시중 | 잘 알겠사옵니다. |
불이 꺼진다. 불이 켜진다. 전각 앞에서 진성 서 있다. 진성은 하늘의 달을 쳐다보며 혼자 말한다. | |
진성 | 숙부! 숙부가 이리도 허망하게 세상을 떠나다니! 난 앞으로 누구를 믿어야 해요? 신하들은 나라에 충성한다, 내게 충성한다 말을 하면서도 오로지 목적은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는 것뿐이니. 왕명을 참칭하며, 백성들 고혈 빨면서, 또 자신들 계파의 사람들을 지방 태수로 추천하고 그들로부터 착취한 돈을 상납 받으며 만족하고 있으니… 골품제에 빠져 유능한 인재들에게는 기회조차 주지 않으며, 대를이어 자신들의 부를 세습하고 권력을 세습하면서, 자기들 자식은 용으로 만들면서, 백성들 자식은 아무리 유능해도 가재, 붕어, 개구리처럼 살도록 만들고 있는데… 숙부! 선대왕이 세상을 떠났을 때, 숙부가 왕위를 이어받았어도 잘 할 수 있었을 텐데, 왜 어린 내게 보위를 이어받게 하고, 이 무거운 짐을 내게 다 넘기고 홀로 떠나갔어요? 숙부가 원망스럽습니다. 난 정말 숙부가 원망스럽습니다. 날더러 어쩌란 말이요. 날로 쇠잔해 가는 이 나라. 나라 일에는 전혀 관심도 없이 자신들 부귀만 찾아다니며 이합집산 하는 저 도적 같은 대소신료들, 비록 직급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높은 놈은 높은 놈대로 다 해먹고 낮은 놈은 낮은 놈대로 먹고, 지방 관리는 지방 백성들을 착취하니, 나날이 삐쩍 말라가 는 이 신라… 이제 나보고 어쩌란 말이요. |
진성은 기둥에 기대어 흐느낀다. 불이 꺼진다. 막이 내린다. | |
〈제3막〉 | |
막이 오른다. 무대에 불이 들어온다. 진성여왕 7년, 박원의 집에 중신들이 모여 있다. | |
박원 | 병부시랑 김처회가 당나라로 가던 중 익사 했다 하더군요. |
김성 | 만헌이 덕이 없어 이런 사고가 생기는 군요. 어떻게 멀쩡한 배가 당나라로 가던 중 침몰을 하는 지 |
김승민 | 재정이 부족해서 배를 건조할 때 비용을 아끼느라고 배의 나무 두께를 줄여서 건조하기 때문에 충파에 약하다고 합니다. |
박원 | 병부시랑이 탄 배와 발해의 배가 안개 속에서 충돌했을 때도 우리 신라의 배가 쉽게 부서졌다 합니다. |
김성 | 병부시랑을 따라 당으로 유학을 가려던 젊은 학자들도 모두 같이 익사했다 합니다. |
김승민 | 오래된 뱃사공이 아파서 집에서 쉬고 있는 도중, 그 아들이 해로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기 때문이란 말도 있습니다. |
박원 | 만헌은 처소에 있느라고 요즘 조정회의에도 잘 나오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런 사고가 일어났으면 무슨 대책을 세워야 할 것 아닙니까? |
김성 | 젊은 애들을 불러서 처소에 있다는 말이 조정에 떠돌고 있습니다. 부덕한 만헌이 주상의 자리에 오래 있으니 신라의 국격이 나날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어떻게든 대책을 세워야 할 것입니다. |
박원 | 예, 쉿! 밤 말은 쥐가 듣습니다. |
박원은 손가락으로 목소리를 낮추란 행동을 한다. | |
박원 | 여왕의 부도덕한 점을 글로 써서 사람을 시켜서 시장에 방을 붙이도록 합시다. 김승민 공이 사람들을 풀어서 이 일을 할 수 있도록 맡아 주시오. |
김승민 | 예 잘 알겠습니다. |
불이 꺼진다. 불이 켜진다. 진성은 의자에 앉아 있다. 신하들은 없고 최치원이 그 앞에 앉아 있다. | |
진성 | 아찬공, 공의 이야기는 많이 들었소이다. |
고운 | 송구하옵니다. |
진성 | 공이 당나라 과거에서 장원을 했다는 말을 들었소이다. |
고운 | 대왕마마 그저 작은 재주일 뿐이옵니다. 주로 외국인 과거에서는 주로 우리 신라출신이나, 발해 출신들이 장원을 하고 있습니다. |
진성 | 우리 신라와 발해의 관계는 지금 어떠한가요? |
고운 | 고려를 당나라에서는 발해로 부릅니다만, 스스로는 고려라고 합니다. 문무대왕 때 백제와 고려를 멸하고 그 백성들을 귀부 시켜 신라의 백성으로 받아들이면서, 삼한을 통일했습니다만, 발해는 스스로를 고려의 후예라고 칭하며 고려라고 부르고 삼한의 통일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
진성 | 우리 신라는 내부적으로 매우 어렵소. 여기저기 도적들이 횡행하며, 나라를 참칭하는 자들이 많이 있고, 밖으로는 북으로 발해, 바다 건너 동남으로는 왜가 있으니. 우리가 발해와의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하오? |
고운 | 발해는 기회만 생기면 우리 신라를 압박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일부 기득권 신료들은 한수 이북의 땅을 발해에게 넘겨주고 화친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도 있습니다만, 어설픈 화친으로 그들에게 굴복해서 땅을 내주면 계속 땅을 내주어야 하고 결국 신라는 죽령 남쪽으로 내려와야 할 것입니다. 당나라는 옛날 문무 대왕 때 백제와 고려를 멸하고, 백제의 유민들과 고려의 유민들로 돌궐과 서역의 여러 나라를 정벌케 했지만, 서역이 안정되고 난 이후에는 백제와 고려 출신의 장군들을 죄를 물어 참수했습니다. 그리고, 그 병사들을 다 사방으로 흩어 놓았습니다. 발해는 백제의 유민들을 요서지방으로 옮기어 그 곳에 백제라는 나라를 만들고, 의자왕의 손자를 백제의 왕으로 봉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땅은 발해가 강성해지면서 그 유민들도 사방으로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당 조정에서 백제의 유민을 이용해서 발해를 견제하려던 정책은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지금, 당 조정은 발해와 화친하고 있으면서도, 우리 신라와도 화친하면서 신라가 발해를 견제해 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즉 당은 신라와 발해에 등거리 외교를 하면서 두 나라가 서로 견제 하면서 적당히 싸우면서 서로 지쳐서 망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
진성 |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오? |
고운 | 우리는 발해와 절대 싸울 필요는 없고, 적절한 긴장을 유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발해는 우리 신라를 대대적으로 침략하지는 못합니다. 국경 근처에서 작은 전투만 걸고, 국경의 성을 탈취하는 정도일 것입니다. 내부적으로 우리 신라인끼리 힘을 합쳐야 합니다. |
진성 | 그것은 무슨 말이오? |
고운 | 우리 신라가 삼한 땅을 통일한 지도 벌써 이백 년이나 되었지만, 옛 백제 땅과 고려 땅의 백제인과 고려인은 아직도 스스로를 백제인이라고 생각하고 고려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진성 | 우리는 그들을 우리나라 사람들로 여겨 세금도 똑같이 징수했고, 군에도 똑같이 징병했는데도, 그런 생각을 가지나요? 괴이한 일이오. |
고운 | 그들을 우리는 신라인으로 받아들였지만, 실질적으로 그들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군에서 징집하지만, 백제인이나 고려인들은 군관이상으로는 받지 않고, 그 아래 병으로만 병역에 복무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능력이 있고,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우더라도, 장군은 말할 것도 없이, 낭장 중랑장들의 직책으로도 승차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과연 힘을 다해 신라를 위해서 싸우려 할 이유가 없습니다. 또 고려나 백제인들이 아무리 신라에 충성을 해도 지방관 중에 현령이 될 수 없습니다. 그 이하 직책 까지만 부여합니다. 그러니, 그들에게 이제는 삼한이 통합하여 한 나라가 되었다고, 우리는 같은 신라인이라고 아무리 말을 한들 그들은 진정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
진성 | (한숨을 쉬면서) 여기저기 반란이 일어나도 귀족들은 앞장서서 막을 생각은 하지 않고, 권력만 독점하려 하니… 지금 신라에 흥덕대왕 같은 분이 계셨으면 좋겠소이다. |
고운 | 예전에 어떤 사람이 흥덕대왕 릉을 지나다, 흰 말을 탄 대왕을 보았다고 합니다. 그 대왕은 릉으로 들어가더니, 큰 소리로 울면서, 자신이 평생 신라를 위해 피와 땀을 흘렸건만, 이제는 자기 자손들을 신라의 왕이 도륙한다고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합니다. |
진성 | 그런 일이… 앞으로 신라를 살리려면 어떤 정책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오. |
고운 | 당나라는 사방에서 시험을 통해서 인재를 뽑습니다. 그 인재가 당나라 사람이든 서역 사람이든 천축 사람이든 대식국大食國 사람이든 가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전쟁에서 공이 있거나 유능한 사람이면 장군도 시켜주고, 태수, 도독도 시켜줍니다. 그런 식으로 벼슬길의 기회를 신라의 전 백성에게 또 신라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들에게 열어 준다면, 백성들은 자기 몸을 바쳐 신라와 대왕마마를 위해 충성을 다할 것입니다. |
진성 | 잘 알겠소. 앞으로도 고운이 계속 내게 좋은 이야기를 해주시구려. 오늘은 이만 물러가시오. |
고운 |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
고운 퇴장. 불이 꺼진다. 불이 켜진다. 진성은 처소에 혼자 앉아 있다. 청년이 검은 옷을 입은 채 등장한다. 청년은 진성 앞에 무릎을 꿇는다. | |
진성 | 조위, 반갑네. 오랜 만이네. 이번엔 감포 쪽으로 갔었지? 그 쪽 어부들은 만나 보았는가? |
조위 | 올 가을에는 풍어라 합니다. 지난 여름에는 어부들이 나가서 빈 배로 들어오는 경우가 많았는데, 가을에 접어들면서 풍어로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합니다. |
진성 | 그러면 어부들 살림은 좀 나아 졌겠네. |
조위 | 태수 아래 아전들이 가을 들어서면서 여름에 내지 못한 입어료까지 받는다 합니다. 그래서 어부들 살림은 별로 나아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제가 방어진 쪽에 풀어놓은 사람 얘기를 들으니, 올 가을에는 작은 고래들만 잡힌다 합니다. 그래서 고기 값은 많이 받지 못하고 고래 기름을 등잔용으로 팔아서 겨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합니다. 부산포 쪽으로 나갔던 사람 말로는 용해 선단은 큐슈 지역으로 원정을 나가서 큰 성과를 냈다 하옵니다. 그런데, 현춘 선단은 왜의 매복에 걸려 나갔던 선단의 반만 돌아 왔고 현춘은 대장선이 침몰해서 돌아오지 못했다 합니다. |
진성 | 알겠소. 다른 보고할 내용은 더 있소? |
조위 | 없습니다. |
진성 | 현춘 선단 쪽으로 좀 더 알아보고, 현춘의 생사 여부도 파악해서 알려 주시오. |
진성은 패물을 하나 빼서 조위에게 준다. | |
진성 | 수고 많았소. 귀족들 눈이 대궐 내에 많으니 항상 조심 하시오. |
조위 퇴장. 불이 꺼진다. 불이 켜진다. 이찬 김승민 집에 대신들이 모여 있다. | |
김승민 | 요즘 만헌이 무슨 꿍꿍이 속인지 모르겠습니다. 밤마다 젊은 애들을 궁으로 불러들이는 것이 우리 사람들에게 포착되었습니다. |
김성 | 젊은 애라면, 만헌이 새로이 남자들을 끌어 들이고 있다는 말인가요? |
박원 | 그렇다는 소문이 저자 거리에 돌고 있습니다. 만헌은 천성이 음탕해서 한 남자로 만족하지 못하나 봅니다. 불러들이는 남자들이 자주 바뀌는 것 같습니다. |
김승민 | 요즘은 만헌의 사치가 얼마나 심한지, 노리개와 가락지 등을 수시로 사들이는 것 같습니다. |
김성 | 이찬공, 궁으로 들어가서 만헌을 만나는 자들의 뒤를 밟도록 해 놓으세요. 박공은 사람을 풀어서 저자 거리에 만헌의 행실에 대해서 소문을 내세요. |
불이 꺼진다. 불이 켜진다. 진성은 옥좌에 앉아있고 대신들은 그 앞에 도열해 서 있다. | |
진성 | (잠시 숨을 고르며) 신라를 부흥 시키려면 많은 인재들이 필요한데, 지금 우리 신라는 귀족 자제 중에서 인재를 뽑아서 나라 일을 보게 하는 경우가 많소이다. 앞으로는 귀족의 자제가 아니더라도 지방 태수가 추천하는 인재가 있다면 한림학사가 면접을 보고, 우수한 인재라면 거두어 쓰도록 하겠소. |
김성 | 대왕마마 아뢰옵기 황송 하오나, 인재란 훌륭한 가풍과 좋은 교육 환경에서 키워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처럼 귀족의 자제를 선발해서 중용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아뢰옵니다. |
김국 | 대왕마마, 원래 작은 물과 큰 호수에는 사는 물고기들이 다르옵니다. 작은 냇가에서 자라던 붕어와 가재는 아무리 크게 자라나도 용이 될 수 없사옵니다. 작은 냇가에서 자란 물고기들에겐 작은 냇가에 만족하는 도덕심을 가르쳐야 하는 것이 옳다고 아뢰옵니다. |
진성 | 잡찬 김공은 언제까지나 가재 붕어 소리만 할 것이오. 제발 이제는 신라의 미래를 위해서 생각 해 주세요. |
소리를 버럭 지른다. | |
진성 | 당나라도 과거로 인재를 뽑고 있소. 우리 신라도 앞으론 과거로 인재를 뽑도록 해야겠소. 귀족의 자제라고 하여, 공부만 하던 젊은이에게 아찬 벼슬을 주는 일은 하지는 않겠소. 누구든 17관등의 제일 아래인 조위로 봉해서 일정 기간 수련을 쌓고 성과를 내면 한 등급 올라가는 방식을 택하도록 하겠소. |
박원 | 대왕마마, 우리 신라는 시조 거서간 때부터 귀족들의 자제들이 화랑이 되고, 싸움터에 나가서 항상 앞장섰습니다. 그래서 삼한을 하나로 만들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나라에 대한 충성이 능력보다 우선해야 되는 바, 충성은 귀족들의 자제가 더 높습니다. 당연히 충성도가 높은 귀족 자제들이 높은 자리에 보임되어야 한다고 아뢰옵니다. |
대신들 계속 웅성거리며, 진성의 말에 반대를 한다. | |
진성 | 이 문제는 다음 조정회의 때 다시 논의하도록 하겠소. |
진성 | 사치는 풍속을 피폐하게 하고 나라를 망치는 것이오. 모든 대신들과 가족들은 한가위와 설 같은 명절날을 제외하고는 비단 옷을 입지 않도록 하고, 일하는 소를 보전해서 농사를 시켜야 하니, 10년 이하의 소는 도축을 금하도록 하겠소. 소고기는 귀족과 백성 모두 명절날과 제사상에만 올려놓을 수 있도록 하시오. 나부터 앞으론 소고기를 반상에 올리지 않도록 하겠소. 그리고, 옷 위에 달고 다니는 노리개는 금으로 장식 된 것은 달고 다니지 않도록 하시오. |
진성 | (잠시 쉬었다가) 모든 것의 근본은 농사라 했소, 앞으론 모내기철과 추수철에 각각 열흘 씩 긴급하거나, 위험으로 시급을 다투지 않는 한, 조정회의를 열지 않겠소. 신료들은 금성 근처의 지역에서 직접 모내기와 추수를 하도록 하시오. 그리고, 대소신료들도 자제들과 같이 농사일을 직접 하도록 하시오. |
김명 | 대왕마마, 아뢰옵기 황송 하오나 귀족들이 직접 농사를 짓는 것은 좀 부당합니다. 사람들은 할일을 타고 난다 하옵니다.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분야에만 매달리는 것이 이를 처리하는 데 효율적이라 하옵니다. |
진성 | 이찬 김공은 예전에 남해 태수로 있을 때, 백성들을 동원해서 갈대 습지에 제방을 쌓고 새로 생긴 농지를 약속대로 농부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고 지역 유지들에게 판매하고 그 판매 대금을 독식했다고 알고 있소. |
김명 | 그건 사실이 아니옵니다. 제가 마을 사람들을 동원해서 제방 축조 사업을 할 때는 농부 피해를 줄이느라고, 늦가을에서 이른 봄에 사업을 했고, 제방 축조 후 생긴 땅에는 마을 사람들에게 소작할 권리를 공평하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통촉 하시옵소서 마마. |
진성 | 이찬 김공이 겨울에 제방 사업을 하면서 여러 사람들이 겨울에 동상에 걸렸다 하던데, 게다가 치료도 외면해서 가난한 백성들이 고통을 받았다 하던데… 더욱이 동원된 백성들에게 밥도 주지 않아서 자신들이 주먹밥을 싸와서 먹어야 했다고 원성이 자자하던데. |
김명 | 소신은 백성들을 강제 동원한 것이 아니옵니다. 제방 축조 후 생기는 소작권을 준다고 했고,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는 일을 하는 것이라 일할 사람들에게 필요한 도구와 밥을 참가하는 백성들에게 직접 준비하라고 했었습니다. 그리고, 아래 아전들이 한 일이라 저는 모릅니다. 저는 오직 마마와 백성들을 위해서 일했을 뿐입니다. |
진성 | (이찬 김명을 쳐다보며) 더 이상 듣기 싫소. 공은 물러나시오. |
박원 | 대왕마마, 마마의 의지는 지당 하오나, 지금은 시기가 아니라 여러 대신들이 반대하는 것으로 생각되옵니다. 지금 재정은 상당히 어렵고, 개혁을 추진할 인재도 찾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명을 거두고 잠시 시간을 갖고 기다리시는 것이 어떠할까 하옵니다. |
진성 | (이벌찬 박원을 쳐다보며) 공은 항상 시간 탓, 사람 탓만 하는구려. 언제 이 신라가 재정이 넉넉했던 적이 있소? 재정이 부족하고, 사람이 없기에, 공은 선대왕 때 북국이 북방의 우리 성 몇 개를 점령했을 때, 귀금속을 싸들고 북국 귀족들에게 선처를 부탁하고 다녔던 것이요? 그리고, 공은 북국만 다녀오면 공의 집은 건물을 추가해서 짓거나, 별장을 지었던 것이요? |
박원 | 마마 오해이옵니다. 소신은 추호도 부정한 적이 없사옵니다. 제가 집을 지을 때면, 주변 사람들이 대가 없이 호의로 자재를 주고, 인부들도 호의로 와서 제 집을 증축해 주곤 했습니다. |
진성 |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조회를 물리겠소. 모두 물러나시오. |
대신들 퇴장한다. 불이 꺼진다. 불이 켜진다. 진성은 궁 안 뜰에 나와 있다. 진성을 달을 바라보고 있다. | |
진성 | 오라버니 왜 제게 이 어려운 짐을 어깨에 지워 주셨나요? 저 무도한 신료들은 오직 자기들 이익에 눈이 멀어 신라의 앞날은 전혀 생각지 않고 있습니다. 오직 몰려다니며 자기들 이익만 생각할 뿐. 각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도적들… 그래도, 저들은 개혁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신라는 어디로 가야 하는 지, 어떻게 될 지… 아버님, 오라버니 저를 도와주세요. |
진성 울부짖는다. 불이 꺼진다. 불이 켜진다. 박원의 집에 대신들이 모여 있다. | |
박원 | 이제 만헌이 본격적으로 싸움을 걸어오고 있소이다. |
김명 | 예, 이벌찬 공. 우리가 그동안 만헌의 주변 인물들을 철저히 통제했는데 그동안 우리가 한 일을 만헌이 어떻게 알고 있을까요? 우리 주변에 배신자들을 가려내야 할 것입니다. |
김성 | 참 맹랑한 일입니다. |
김국 | 우리가 먼저 선수를 치지 않으면 조만간 우리가 육전사에 끌려갈 것 같소이다. |
박원 | 더 이상 시간을 끌면 우리가 당할 수 있습니다. 김국 공은 저자 거리에 사람을 풀어서 소문을 내도록 하시오. 김명 공은 사람을 풀어서 만헌의 실정을 글로 써서 저자에 방을 붙이도록 하시오. 김성 공은 주변의 사람들 열 명만 포섭해 주시오. 여차하면 어전회의에서 우리가 어떤 말을 해도 우리 말에 동의해 줄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
김성 | (박원에게) 열 명이 아니라 삽 십 명이라도 포섭하겠소. |
박원 | (김성에게) 공은 어떻게 그렇게 자신할 수 있소이까? 우리 목숨 줄이 걸린 일인데. |
김성 | 만헌은 정치를 모르는 한 낱 계집일 뿐입니다. 그래서, 대신들에게도 백성과 똑 같은 취급을 하다보니 경문왕계라 하더라도 진심으로 만헌을 따르는 사람들은 없소이다. 예전에 이찬 김홍덕도 부인이 부하의 부인으로부터 옥가락지 하나 선물 받은 일로 내침을 당했었죠. 김홍덕 공이 예전에 만헌에게 얼마나 충성을 다했는지는 여러분들도 다 아시지 않소? |
박원 | 알겠소이다. 자 지금부터 바로 작업 들어갑시다. 혹시나 패물이나 필요한 것이 있으면 내게 말하시오. 내 아낌없이 지원해 드리리다. 참, 김명 공도 재물은 많지 않소? 태수 시절 황무지 간척 사업으로 큰 재물을 모았으니… |
김명 | 저는 아래 아전들이 한 짓이라… |
김성 | 자 자, 지금 그런 것을 논 할 단계는 아니지 않소? 빨리 맡은 일을 하러 갑시다. |
불이 꺼진다. 막이 내린다. | |
〈제4막〉 | |
막이 오른다. 불이 켜진다. 이찬 김동은 화백회의 의장 상대등 김한철과 같이 앉아 있다. | |
김한철 | 이찬공 어인 발걸음이시오? |
김동 | 상대등 마마 여쭐 말씀이 있어서 왔소이다. |
김한철 | 어떤 말씀이오? |
김동 | 옛날 진지대왕 때의 일을 알고 계시죠? |
김한철 | 물론이요. 선대 진지대왕은 황음하여 선대 화백회의에서 폐위를 결정했던 적이 있소. |
김동 | 그 경우를 다시 한 번… 주상이 황음 한 것도 폐위 사유가 될 수 있나요? |
김한철 | 진지대왕은 궁녀나 대갓집 유부녀나 가리자 않았죠. 오죽하면 죽어서도 과부와 통정하여 아이를 출산할 정도였으니. 그래서, 신료들의 원망이 자자했죠. |
김동 | 그러면 이번 일도 화백회의 주제로 삼아 주소서. |
김동, 서류를 꺼낸다. 상대등 김한철은 김동이 꺼낸 서류를 읽는다. | |
김한철 | 주상은 황음무도하여 유모의 남편인 위홍과 사통하였으며, 위홍이 죽자 매일 젊은 남자들을 처소로 불러 들였으며, 금 은 보화와 패물들을 마구 사들여 궁 재산이 파탄 지경에 이르게 했으며, 각처에 도적들이 반란을 일으켜도 직접 친정으로 도적들을 섬멸한적이 없으며, 지방의 해적들에게 벼슬을 주고, 노략질을 하도록 하였으며, 백성들의 고통을 덜어 준다는 명분으로 조세를 면제하여, 나라가 잘 운영되도록 해야 하는 군주로서의 사명을 해태했으며, 각간 위홍과 나옹으로 하여금 삼대목을 편찬하여 저급한 문화를 나라에 보급하였으며 이 나라의 시조인 거서간 불구대왕 때부터 시작된 골품제의 근간을 흔들려는 흉악한 죄를 저질렀다. 그래서 주상 만헌의 폐위를 요청하나이다. |
김한철 | 내용을 세분화해서 조목조목 쓰시는 것이 화백회의 때 요청서를 검토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이렇게 하시죠. 내가 직접 써서 화백회의에 상정하리다. |
상대등은 벼루에 먹을 갈아서, 붓에 먹물을 적신 다음, 새로운 종이 위에 써내려 간다. 이찬 김동이 종이와 붓을 받아서 글 끝에 수결을 한다. 불이 꺼진다. 불이 켜진다. 진성과 신하들이 조정 회의 중. 김한철이 화백회의 구성원 5명을 대동하고 조정에 나간다. | |
진성 | (반가워하며) 상대등, 화백의 원로들이 어인 일이시오? |
김한철 | 지난 며칠 동안 화백회의에서 토론한 것이 있어서, 주상께 알려드리기 위해서 왔습니다. |
진성 | 무슨 좋은 내용을 가지고 오셨습니까? 알려 주십시요. |
김한철 | 제가 읽겠습니다. 지난 화백회의에서 수일 동안 격론을 벌인 끝에 만장일치로 아래의 사항을 결의한다. 주상 만헌은 황음무도하여 이 사실이 저자거리에 방으로 붙는 참담한 현실에 직면하게 되었고, 이 나라 시조 거서간 불구대왕 때부터 나라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골품제를 철폐하려는 죄를 저질렀다. 그리고, 지난 병부시랑 김처회가 유학생들과 함께 당으로 가던 중 해난 사고로 모두 몰살 하였지만, 사건을 정확이 보고 받지 못했는데, 이 때 만헌은 처소에서 젊은 남자들과 같이 있느라고 조정 회의에 나오지 못했다는 말이 저자에 난무하고 있다. 각처에 도적들이 발호해도 직접 친정을 해서 도적들을 소탕한 적이 없기에 더 이상 주상으로서 능력이 부족하다. 또 사치스러워 궁 안의 금 은 보화와 패물들을 낭비했으며, 백성들의 세금을 일 년 면제 해 주어서 귀족들이 나라의 업무를 하는데 지대한 어려움 초래했다. 그리고, 남도의 해적들을 충동질해서 그들이 왜에서 노략질한 전리품을 받았기에 궁의 위신을 떨어뜨렸다. 또한 삼대목을 편찬하여 저급한 문화를 백성들에게 퍼뜨려서 왕실의 위신을 실추시켰다. 이에 화백회의는 선대 진지대왕의 경우를 본받아 만장일치로 만헌을 주상의 직위로부터 폐위함을 전 신료들 앞에서 선포하노라. |
진성 | (상대등이 글을 읽는 동안 화를 참지 못하고 연발한다) 시위장! 시위장! |
시위장 | 대왕마마 부르셨나이까? |
진성 | 저기 저 흉악한 물건들을 조정에서 어서 끌어내도록 하시오! |
시위장 | 대왕마마! 화백회의에서 결정된 이상 저는 더 이상 마마의 분부를 따르지 못하겠나이다. |
진성 | 뭐라고, 이런 배은망덕한 것이 있나? |
진성은 소리를 치다 쓰러진다. 시녀들이 마마를 외치며 진성에게 다가 간다. 불이 꺼진다. 불이 켜진다. 진성은 왕관과 용포를 벗은 채 등장한다. | |
진성 | 시중 그리고, 여러 대신들, 과인이 부덕한 소치로 나라가 오늘 이 지경이 되고 말았소. 나 만헌은 대신들의 뜻에 따르도록 하겠소. 옛날 선대 진지대왕의 전통에 따라 이제 물러가려 하오. |
진성 | (잠시 말을 쉬었다가) 여러 대소신료들은 들으시오. 선왕께서는 각처의 반란을 진압하러 사방으로 친정을 하시다. 부상을 당해 돌아가시고 부족함이 많은 내가 선왕으로부터 보위를 이어 받은 지 십년, 여러 대신들의 도움으로 지금까지 신라를 이끌어 무열 폐하, 문무 폐하의 치세를 다시 살리려고 밤낮으로 노력했으나, 부족함이 많은 터라 그 뜻을 이루지 못했소. |
진성 | (울음을 참으며) 이제 여러 대신들의 뜻을 받들어 보위를 헌강대왕의 아들 태자 요嶢에게 양위 하노라. 그러니 여러 대신들은 요嶢를 도와 태평성대를 이루도록 하시요. 아찬 최치원을 들라 하시오. |
최치원 등장 | |
진성 | 아찬은 지금부터 내 말을 잘 들으시오. |
치원 | 예 대왕마마. |
진성 | 지금부터 황제께 올릴 표를 쓰도록 하시오. 신 진성은 폐하의 은덕으로 선왕의 보위를 이어 폐하의 은덕을 널리 퍼지도록 하였으나, 지난 십년 간, 신이 부족하여 폐하의 뜻을 펴지 못하였나이다. 사방 도적들이 발호하고 있지만 소신 만헌은 더 이상 왕위를 수행할 능력이 없사오니, 신 진성은 왕위를 태자 요에게 양위하고 평민으로 돌아가고자 하오니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폐하의 뜻에 따라 백성들을 보살피지 못하였으니 모든 잘못은 제게 있습니다. |
진성은 울음을 터뜨리고 말을 끝내지 못한다. | |
진성 | 아찬 최공이 알아서 쓰시오. |
치원 | (치원은 울음을 참으며) 예 폐하. |
진성은 옥쇄를 치원에게 내 주고 퇴장한다. 불이 꺼진다. 불이 켜진다. 초췌한 모습의 진성은 궁안의 정원에 앉아 있다. 김실金實 등장. | |
김실 | 태상왕 전하 그동안 강녕 하셨습니까? |
진성 | 실아 반가워. 오랜 만이네. 그 동안 잘 지냈고? 오늘은 태상왕이니 뭐니 하는 거추장스러운 말 다 걷어치우고, 그냥 옛날처럼 공주라고 불러 줘. 내 어린 공주 시절이 참으로 그리워. 그 땐 우리 궁에서도 재미있게 잘 놀았었는데… 그 시절이 그리워. 실實이를 한 번 보고 싶어서 불렀지. |
김실 | 전하, 외로우십니까? |
진성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 |
김실 | 제가 앞으로 자주 찾아와서 말동무를 해 드리겠습니다. 무거운 짐 다 내려놓으시고 편한 마음을 가지세요. |
진성 | 그래. 고마워. 그런데, 아무래도 오래 못 갈 것 같아. |
김실 | 무슨 말씀을? |
진성 | 요즘은 자주 어지럽고, 낮에 잠이 와서 누워 있는 경우가 많아. 밤에는 잠을 자지 못하고. 볕이 드니 지금처럼 햇볕을 쬘 수 있고, 좋네. |
김실 | 부디 마음 굳게 잡수시고, 견뎌야 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험하고… |
진성 | 그만… 이리와 내 옆에 앉아서 같이 햇볕이나 쬐자. |
김실實은 진성 옆에 앉는다. 진성은 하늘을 바라본다. | |
진성 | 아 좋다! 가을 햇살이 따뜻하네. |
진성은 김실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다. 불이 꺼진다. 불이 켜진다. 해운대 동백섬에서 치원이 한 남자와 같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 |
남자 | 이제 어디로 가시게요? |
치원 | 글쎄 특별한 계획이 있나, 그냥 발 가는 대로 갈 뿐이지. |
남자 | 왜 굳이 벼슬도 다 내려놓고 떠나시려는지? |
치원 | 이제 신라는 끝났어.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네. 여왕이 신라의 마지막 희망이었는데… 이제는 이 나라에 미련이 없네. |
남자 | 왜 경문왕의 인척들도 여왕에 반기를 들었는지? 세상 인심이란 게 무섭습니다. |
치원 | (한숨을 쉬며) 애당초 대신들은 신라를 위해, 백성을 위한 생각없이 자기들 파당의 잇속을 위해 여왕을 이용했을 뿐이니… 여왕이 자기 권력 유지에 도움이 될 때는 여왕폐하를 외치다, 여왕이 자기들 권력 유지에 방해가 되니 여왕 탄핵을 부르짖었을뿐… |
남자 | 여왕의 마지막이 너무 슬프네요. |
치원 | 태상왕이였는데… 그렇게 건강하시던 분이… 태상왕으로 물러난 지 반년 만에 세상을 뜨시다니… 아무리 권력이 무상하다 해도 태상왕인데, 승하한 다음날 대소신료들도 없이 나인과 내관들 몇 몇이 바로 황산에서 화장을 하고 뼈를 그 옆의 미황산에 뿌렸으니, 이 무도한 자들이… 무엇을 숨기려 했는지… |
치원은 말을 잇지 못한다. | |
치원 | 자 이제 일어나세! 갈 길이 머니 이제 가 봐야 겠네. |
남자 | 어디로 가시려하십니까? |
치원 | 특별한 목적이 있겠나. 그냥 구름 따라 바람처럼 떠돌면 되지. |
남자 | 예 항상 강령하시고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
치원 | 다음에 또 만나세!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
치원은 일어서서 손을 들어 보이고 퇴장한다. 남자는 두 손을 마주잡고 허리를 숙였다가 바로 세운다. 남자는 치윈이 퇴장한 방향을 쳐다보며 계속 서 있다. 무대 뒤로 해운대 바닷가가 보인다. 처음에는 멀리서 보이는 장면이라 정확히 보이지 않지만 점점 가까워지면서 현재의 해운대 모습이 보인다. 동백섬 내의 ‘해운대’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는 옛날 바위를 점점 가까이서 보여준다. 카메라 포커스가 조선호텔 옆 백사장으로 서서히 움직이다 LCT 건물을 비춰준다. 점점 LCT 건물이 가까이 보이다가 정지된 상태로 멈춘다. 잠시 화면이 고정되어 있다. 불이 꺼진다. | |
막이 내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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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rration:저 해운대를 떠나는 뒷모습은 최치원 선생이 세상에 남기는 마지막 모습이었으니, 이후 고운 최치원 선생은 가야산으로 들어가서 학을 벗 삼고 세월을 보내다 학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 한다.
고운은 문집에 실린 글 중 〈사사위표〉에서 진성여왕에 대해 영민하고 백성을 사랑하고 신라를 부흥시키려던 야심에 찬 위대한 군주였다는 글을 남겼으나, 후세에 편찬된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또는 각종 사서史書에서는 진성여왕을 무능하고 부패하며, 사치스럽고 음탕한 여인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런데, 당대를 같이 살았던 사람의 평가가 더 정확한 것인 지, 후대의 역사적 승자勝者들이 각색해 놓은 사료를 기준으로 평가한 것이 더 정확할지…
역사는 승자의 입장에서 기록한 것이기에, 한 왕조의 멸망의 원인을 한 사람에게 모든 책임을 씌우려 하는 후세 사가들이 사심이 진성여왕을 그릇되게 평가해서 기록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역사는 돌고 돈다. 개혁을 하려면 필히 현실에 안주하려는 기득권층의 반발이 있고, 철저히 준비하지 않은 개혁은 그 기득권층의 반발로 인해 실패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일이 과연 옛날 역사에만 남은 이야기로 우리의 지금 현실과는 무관한 일일까?
1) 曼, 曼憲:진성여왕의 이름
2) 여기서 ‘고려’는 ‘발해’를 말한다. 그들은 일본으로 보내는 국서에 자신들을 ‘고려국’이라
자칭하였다. 발해는 당나라에서 붙여준 국명이다.
3) 백잔:신라에서는 백제를 경멸하여 百殘이라 칭하기도 했다.
4) 嶢(요):헌강왕의 서자. 훗날 효공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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