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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자료분석및 변증 스크랩 전도사랑방(4):예수는 정신병자인가? 사기꾼인가?
Horace 추천 0 조회 536 10.11.24 14:00 댓글 7
게시글 본문내용

삼일교회전도사랑방(2010-4)

예수는 정신병자인가? 아니면 사기꾼인가?

 

인간의 위대함을 언급하지 않은 채로 비참함만을 강조하면 절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비참함을 말하지 않은 채로 위대함만을 주장하면 교만에 이를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이중성은 인간의 죄때문입니다. 인간의 이 비참과 위대함은 “모든 인간이 죄인”임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로마서3장23절).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에 스스로 이를 수 있는 자가 아무도 없게 되었습니다.

 

문제가 죄라면 답은?

이런 우리들에게 참으로 필요한 존재는, 우리로 하여금 교만해지지 않으면서 위대해질 수 있게 하며, 절망하지 않으면서도 이 비참을 인식하여서 겸손케 만들 수 있는 자입니다. 성경은 바로 이런 분에 대한 예언과 성취를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제대로 알게 된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누리되 교만치 아니하고 인간의 비참을 알되 결코 절망치 아니하게 됩니다. 구약성경은 이런 분이 오실 것이라고 수없이 예언해 둔 책이고, 신약성경은 바로 나사렛 예수야말로 구약성경에서 예언해 온 바로 그 메시야(그리스도=기름부음 받은 자)이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첫인류 아담이 죄가운데서 떨어졌을 때, 하나님께서는 “여인의 후손”으로 오시게 되는 분이 인류의 근원적인 문제의 해결자가 되시겠다고 하셨습니다(창세기3장15절). 그 분은 세상에 오시되 특별한 방식으로 태어나실 것이 예언되었습니다. 동정녀, 곧 처녀의 몸에서 태어나시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이사야7장14절). 이 예언대로 처녀였던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하여 태어나게 된 이가 바로 나사렛 예수였습니다(마태복음1장18~25절).

 

나는 하나님이다고 하신 예수

이 나사렛 예수야 말로 인간의 모든 딜렘마를 해결하실 수 있는 분이셨습니다. 예수님은 ‘나는 아버지와 하나’(요한복음10장30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을 직접 들었던 사람들의 말처럼(요한복음10장33절) 이 것은 “자칭 하나님”이라고 한 셈입니다. 신성모독적인 발언입니다. 사실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자신을 자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도 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흔히 하나님의 자녀들이라고 말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곧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래서, 그의 제자들은 결국 예수님이 “참 하나님”이심을 알게 되고 그것을 증거하였습니다(요한1서5장20절).

 

그는 정신병자인가? 사기꾼인가?

사람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이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그 말이 거짓인 경우와 진실인 경우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아닌데도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거짓말을 하였다면, 그 말을 한 사람은, 정신병자이거나 아니면 거짓말쟁이임에 분명합니다. 사기꾼인 셈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복음서 중 어느 것을 읽어보아도 예수를 정신병자라고 판단하게 하는 구절이 없습니다. 정신병자가 너무나도 고결하고 숭고한 산상보훈의 교훈들을 설파였을 리가 없습니다. 사기꾼일 가능성은 어떻습니까? 사기꾼이었다면, 십자가에서 죽임당함으로 인하여 사기꾼으로서 노릴 만한 어떤 경제적인 이득을 전혀 얻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진실로 솔직하다면 예수가 자신을 두고 하나님이라고 하였던 그 말이 거짓이기 때문에, 정신병자이거나 사기꾼으로 인정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서도 여전히 진실할 수 있는 길은, 예수가 자신에 대하여 하나님이라고 한 말이 사실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참 하나님 그리고 참 사람, 예수 그리스도

예수는 여인의 몸을 통해서 태어난 참사람이면서 또한 그 하신 말씀대로 참하나님이십니다. 만일 이러한 존재가 아니라면 이중적인 인생의 딜렘마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참사람이시기 때문에 인생의 비참을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참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비참한 인생을 위대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교만치 않고 겸손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바로 예수께서 그러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예수님께서 인간의 이중성의 원천인 죄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서 하신 일은 무엇입니까? 다음 만남에서 이 문제를 살펴보겠습니다.

 

 

다음의 질문들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1. 인간의 이중성을 해결할 수 있는 존재는 어떤 특성을 가진 자여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2. 사람들은 예수를 어떤 존재라고 여기고 있는지 아는 대로 혹은 소문을 들은 대로 말해보십시오.

 

3. 나 자신은 예수님을 어떤 분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나눠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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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10.11.24 14:07

    첫댓글 이번 전도메세지에서 '정신병자냐 사깃군이냐'하는 부분에서 사용한 논리는 시에스 루이스의 것입니다. 비록 그의 신학이 개혁주의적이라고 할 수는 없어도, 이런 논리는 개혁주의권에서도 활용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논리를 존로빈슨이 그의 책 '신에게 솔직히'에서 비판하고 있는데, 그 비판을 함께 고려하면서도 전도에 활용하는 것은 유익한 점이 많다고 여겨집니다.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 작성자 10.11.24 14:12

    이번 메세지는 특별한 다른 예화들을 넣지 않았습니다. 짧은 지면이기도 하고, 몇번의 소그룹모임을 통해서 어느만큼 진지해진 분위기가 형성되었을 것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는 누구시냐"는 주제는 좀 진지하게 다룰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입니다. 쉽게 만든다는 것이 여간 어렵지 않군요. 좋은 조언들을 부탁드려 봅니다.

  • 10.11.24 23:49

    제시된 제목에 대하여 작은 의견 드립니다.
    <예수는 정신벙자인가? 아니면 사기꾼인가?>라는 유형은 표현기법에서 강조법의 하나로 '열거법'에 속합니다. 여기서 열거되는 '정신병자'와 '사기꾼'은 모두 같은 가치를 지니게 되며 또다른 하나의 집약된 부정적인 의미(정신병자이면서 사기꾼 또는 정신병자가 아니면 사기꾼)로서 강력한 전달력을 갖게 됩니다.
    따라서 대립법을 사용하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예를 들어 <예수는 사기꾼인가? 참 하나님이신가?>라는 표현입니다.
    이 표현은 '사기꾼'이 아니라면 '참 하나님'이란 선택으로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 10.11.24 18:07

    전도 대상자가 설명을 끝가지 듣지 않거나, 전도지를 끝까지 읽지 않을 경우에는 첫머리의 제목만이 뇌리에 각인될 경우가 많습니다. 저가 현장에서 논설을 지도할 때의 경험이 생각나서 참고하셨으면 해서 의견드립니다.

  • 10.11.24 23:01

    사랑나누기님 조언이 유익한것 같습니다,

  • 작성자 10.11.25 10:35

    좋은 의견입니다. 저도 제목때문에 고심했었는데, 사랑나누기님이 말씀하신 염려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요즘 시대가 상식을 초월하는 시대이기도 해서 나름대로 고심해서 내린 제목이었습니다. 대조법식의 제목은 너무 상식적이어서 제목이 그렇게 시선을 끌지 않겠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요즘 묵상하는 본문이 예수님께서 침묵하시는 본문입니다. "정신병자냐 사기군이냐" 하는 제목에는 침묵되어 있는 제3의 선택사항이 있다는 것을 암시되어 있다고 여깁니다. 그 침묵의 효과를 노린 셈인데, 아마도 기독교인들에는 약간의 저항감이 있을 지 몰라도 불신자가 그 제목을 보았을때에는 어라~ 한 번 읽어보자 하는 그런 효과를

  • 작성자 10.11.25 10:36

    주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더랬습니다. 어차피 이 전도지가 이미 교회를 다시는 사람들이나 기독교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불신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라면 기독교인들의 기우를 고려하는 것보다는 불신자들의 시선을 잡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이라고 본 것입니다. 하지만, 두 분의 염려를 고려해보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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