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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호회 농구의 시작은 이렇게
- 농구라는 공통어로 한자리에 모인 이들
농구라는 것은 하나의 공통어다. 코트에서 땀을 흘리고 승자와 패자가 생겨나지만 우리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다시금 코트를 찾는다. 마치 학교 갔던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것처럼 농구의 대한 우리들의 열정은 끝이 없다.
두 달에 한 번 나오는 슬램덩크 만화책을 사기 위해 서점 앞에서 마냥 기다렸던 학창시절의 추억을 기억하는가? 풋내기 슛의 강백호를 중심으로 올라운드 플레이어 서태웅, 단신이지만 빠른 가드 송태섭, 3점슛터 정대만, 킹콩 채치수. 이들 북산 5인방이 모인 농구는 그야말로 NBA를 뛰어넘어 우리에게 감동과 즐거움을 주었던 것을 다들 기억할 것이다.
그 당시에 모든 이들은 슬램덩크라는 만화책에 매료되어 농구에 흠쩍 빠져있었다. 아니 그보다 앞서 아마농구를 이끌던 스타들. 이충희, 김현준, 허재등이 나오는 농구대잔치는 항상 만원사례였으며 원조오빠부대의 함성속에 겨울스포츠로서 농구의 인기는 식을 줄 몰랐다. 하지만 이러한 스타들의 힘만으로는 농구라는 공통어는 오래가지 못하였다. 농구의 인기는 프로농구 출범이후 오히려 이전에 비해서 많이 식었고 이러한 농구 열기를 다시 살려보고자 농구공을 튀기며 자아도취에 빠져드는 사람들이 있으니 바로 동호회 농구인들이다. 동호회농구가 시작된 것은 오래되었지만 본격적으로 활성화되기 시작한 것은 인터넷이 등장하고 사람들이 생활체육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2000년도 부터이다. 특히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채널의 등장은 여기저기 오프라인을 통해 농구를 즐기는 이들을 하나로 묶어 하나의 단체를 구성하기까지 이르렀고 아이러브바스켓볼, 3ON3 TV닷컴, 와우바스켓, 농구닷컴 등 농구를 주수익모델로 하는 인터넷 기업들의 탄생(비록 그들의 생명력은 길지는 않았지만)과 그들로 인해서 동호회농구가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졌고 2004년 드디어 우리는 동호회농구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였다.
농구의 원조격! 서울 YMCA직장인 농구대회
직장인들에게 최고의 농구대회는 어느 대회인가? 라고 묻는다면 대부분 서울 YMCA 직장인 농구대회를 꼽을 것이다. YMCA대회는 그만큼 오래되었고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1989년 21개팀의 참가로 시작된 YMCA배 직장인 농구대회는 직장인 및 동호인들의 열성적인 참여와 수준향상을 통해 현재 동호인 최고의 대회로 자리잡았다. 올해로 16회째를 맞이한 서울 YMCA 직장인농구대회는 동호인 클럽(1부리그)부와 단일직장인(2부리그)부로 나누어 50여개팀이 참여하는 명실상부한 동호회 최고의 대회로 꼽히고 있으며 대회 수준 또한 상당히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작년 열린 YMCA 창립 100주년 기념 제 15회 YMCA배 직장인 농구대회 직장부에서는 L.B.POL이 수원삼성직딩스의 대회 3연패를 저지하며 53:48로 처녀출전대회에서 우승하는 감격을 누렸으며 동호회부의 메이져는 HOOPS를 59:50으로 꺾고 우승하였다. 이렇듯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서울 YMCA직장인 농구대회는 참가비가 비싸다는 단점이 있고 동호회농구 활성화에는 크게 기여하지 못했다는 평을 받고 있지만 체육관이 부족했던 그 시절부터 동호회농구를 변함없이 이끌어왔던 것만은 분명히 기억해야만 할 것이다.
인터넷 이전 농구 활성화를 이끈 통신동호회
90년대의 동호회 농구는 어떻게 운영되었을까? 인터넷이 활성화되기전에 동호회농구를 주도한 것은 하이텔, 천리안, 유니텔, 나우누리등 4대 통신사내에 농구동호회 클럽이었다.
★ 여기에서는 필자가 활동했던 하이텔을 중심으로 소개하고자한다. ★
하이텔 농구동호회는 1993년경에 하이텔내 축구동호회의 작은 게시판에서부터 출발하였다. 그 당시에는 게시판도 하나였고 팀도 서울을 동서남북으로 나누어서 4개의 팀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이후 자체적인 동호회 결성의 필요성을 느껴 1994년 6월 1일 농구동호회가 하이텔내에 정식동아리로 인가받게 되었고 차츰 농구동호회의 회원들이 늘어나면서 기존 동서남북의 4개팀이 동서남북 리그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러한 리그는 분기마다 리그 상위권의 팀이 토너먼트 경기를 하는 대모임으로 발전하였고 경기리그가 출범하고 전국 리그가 하나둘씩 출범하는등 발전의 기틀을 닦아나갔으며 대모임의 우승팀은 서울지역의 최고팀으로 인정을 받았다.
95년 8월달에는 하이텔, 천리안, 유니텔, 나우누리등이 참여하는 4대 통신대회가 처음으로 열리게 되었으며 이곳에서 농구를 하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현재도 동호회 농구팀에서 주축으로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통신동호회도 인터넷 등장과 함께 2000년 이후 침체기를 맞이하게 되었으며 현재는 거의 활동이 없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이러한 통신동호회의 침체와는 반대로 인터넷 농구붐과 함께 아이러브바스켓볼, 3ON3 TV닷컴, 와우바스켓, 농구닷컴등의 많은 인터넷 기업들이 등장하여 대회를 개최하면서 농구가 활성화 되는 계기를 만들었고 이에 따라 MSA, 하모니베스트, 토파즈, 역풍등의 동호회 최고의 팀들이 탄생되는 계기가 되었다.
새로운 방식의 농구리그를 도입한 스포츠러브
2000년 농구의 붐과 더불어 스포트러브는 미스터피자와 손잡고 제 1회 미스터피자배 네티즌 농구대회를 열었다. 10팀이 모인 결선 토너먼트 첫 대회 우승팀은 역풍. 역풍은 그당시에 전성기를 구가하던 볼케이노, 매니악등을 꺾고 우승을 차지함으로써 2000년 동호회농구판에 화려하게 등장하며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맞이하였다.
스포츠러브는 1회 대회에 성공에 힘입어 타이거풀스와 손잡고 제 2회 대회였던 2001 타이거풀스배 스포츠러브 농구대회를 열게 되었다. 2회 대회에서는 골드리그(날을잡아 한곳에 모여경기함)와 실버리그(각자 알아서 경기함)라는 제도를 도입하여 경기에 흥미진진함을 유도하였지만 홍보부족으로 많은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였다.
실버리그는 골드리그가 어려운 지역 및 어려운 팀 고등부, 중등부등이 속해서 펼쳐지는 리그로 따로 참가비는 없이 자율적으로 운영되는 리그였고 2001년 후기리그 실버리그의 우승은 하모니베스트가 차지하였다. 이와 반해 골드리그는 참가비 5만원이 있으며 참가비 전액 모두는 각 컨퍼런스 지원비에 쓰였다. 일단 체육관은 컨퍼런스 합의하에 빌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으며 체계적인 개인기록관리 및 한팀이 힘으로 비싸게 체육관을 빌려 농구하기 보다는 6팀이 모여 보다 저렴하게 체육관을 빌려 농구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2001년 11월 11일에 펼쳐진 전국 챔피언전에서는 전통적인 강팀들의 조금의 강세속에서 우승에는 전기리그의 우승팀이었던 Dr.Basket 팀의 우승을 차지하였고 Harmony Best팀이 준우승을 차지하였다. 하지만 스포츠러브는 ‘아마추어 스포츠의 발전을 위해서 올해의 문제점을 내년에는 반복하지 않는 스포츠러브가 되려고 노력하겠다’던 말만 남긴채 대회는 막을 내렸다.
스포츠러브 대회는 막을 내렸지만 이후 실버리그와 골드리그 개념을 도입한 연대동호회리그는 2004년 7월 현재 136개팀이 참여하는 전국 최대규모의 리그전으로 발전하였으며 또한, 연대리그를 모델로 대학리그의 활성화를 위해 2003년 6월 출범한 서울대리그는 우여곡절끝에 잠시 리그가 중단된 상태다.
농구를 교류의 장으로 승화시킨 연대동호회리그
연대동호회리그는 1999년 6개팀으로 리그가 시작된 이래 올해로 5년쩨를 맞이하였다. 전 연세대학교 농구부 감독이었던 최희암 감독의 배려로 시작된 연대동호회리그는 현재 제 7회 대회가 한창중이다. 하지만 이러한 연대동호회리그의 시작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연세대학교 농구부 홈페이지에서 시작된 연대동호회리그는 2002년까지 20여개팀이 참여하며 인지도를 높여갔지만 학교 사정으로 인해 체육관을 사용할 수 없게 되었고 급기아 제 6회 동호회리그가 중단되는 사태를 맞이하였다. 하지만 운영진의 노력과 학교측의 배려로 2003년 새롭게 태어난 연대동호회리그는 한국까르푸로부터 후원을 받아 제6회 결선토너먼트를 훌륭하게 치루어내며 다시금 동호회 최고의 리그 대회로서 우뚝서게 되었고 현재 동호회리그는 1부리그 8개팀, 2부리그 12개팀, 3부리그 108개팀, 교내리그 8개팀 등 총 136개팀 1500여명이 참여하는 빅리그로 발전하였으며 MSA, 역풍, 토파즈, 하모니베스트, 닥터바스켓등 기존의 강팀과 하날, 안산ABA, PBA 등 신흥 강팀들이 격돌하는 최고의 리그로 성장하고 있다.
연대동호회 1, 2부, 교내리그는 스포츠러브의 골드리그처럼 일정 참가비를 받고 1라운드 예선 경기를 거쳐서 결선토너먼트에 참가할 팀을 가리고 3부리그는 스포츠러브의 실버리그 개념을 도입해 자체 경기를 통해 리그별 상위팀을 선발한 뒤 8강 토너먼트를 통해 연대동호회리그의 진정한 챔피언을 뽑는 결선 토너먼트에 참가할 자격을 부여한다. 이러한 연대동호회리그의 장점은 각리그 하위팀들이 하부리그로 떨어지고 하부리그 상위팀들이 상부리그로 진출하는 탑다운방식(유럽프로축구리그를 생각하면 된다.)을 동호회사상 최초로 적용해 각 리그 소속팀들은 상위리그로 발돋움하기 위한 치열한 승부다툼을 벌여야 한다는 목표를 설정함과 동시에 본래의 목적인 동호회인들간의 교류증대를 위해 교류의 장을 만들어주자는 취지를 살려 팀장들의 정기미팅 주선 및 특성화된 게시판 운영을 통해 동호회인들의 화합을 도모하고 있다.
한차원 다른 나만의 3on3 길거리 농구
미국의 흑인 청소년들이 후미진 골목과 주차장, 마을 공터에서 볼 하나에 가난과 고독을 실어 날려 보냈던 데서 3on3농구의 유래는 찾을 수 있다. 93년 나이키 길거리농구대회를 시작으로 국내에 뿌리를 내린 3대3농구는 94년도의 르까프 길거리농구대회, 98년도 아디다스 길거리농구대회가 출범하면서 그야말로 매년 여름에 펼쳐지는 피열한 승부의 한마당이었다.물론 르까프 길거리농구대회는 없어졌지만 2001년 KBL길거리농구대회가 새롭게 출범하면서 나이키-아디다스와 함께 국내 3대 길거리농구대회로서 자리를 잡았다. KBL길거리농구대회는 프로선수들의 싸인회와 농구클리닉, 상금 지급 등 새로운 트랜드로 농구인들에게 다가와 관심을 집중시켰고 여느 대회보다도 단기간에 큰 규모의 대회로 성장하였다. 올해는 얼마전 나이키가 LA레이커스 게리 페이튼의 방한을 발표하였고 또한, 아디다스도 NBA 스타의 한국방문을 기정사실화 하고 있어 여느때보다도 풍성한 길거리농구 시즌이 될 전망이다.
새롭게 변화를 모색하는 나이키 길거리 농구대회
현재 우리나라에는 전국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대회를 포함하여 길거리 농구 문화가 널리 퍼져있다. 이는 93년 나이키가 처음으로 흑인들의 길거리 농구 문화를 국내에 도입한 것이 그 시발점이 되었다. 대회가 처음 시작하였을 때에는 규칙이나 대회운영방법 등이 통일되지 않아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분명 이는 참여스포츠를 통한 획기적인 마케팅이었다. 뒤에 이어 아디다스도 길거리 농구대회를 개최하였지만, 나이키는 길거리농구대회를 통해서 우리나라 청소년과 성인들에게 ‘농구=나이키’ 라는 인식을 확실하게 심을 수 있었다. ‘에어조단’ 시리즈를 통해 수익을 기대하던 나이키에게는 최대의 효과였던 것이다. 93년 나이키길거리농구대회가 출범할 당시 최고의 대회였던 농구대잔치는 대다수 팬이 대학, 실업의 용모나 실력이 빼어난 선수들의 팬으로 이루어졌고 농구의 많은 매니아들은 잠재적으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길거리농구대회를 통하여 나이키는 그들의 활동을 활성화 시킬 수 있었다.
나이키는 보다 매니아층에 집중하기 위해 2002년부터는 나이키의 키워드를 변경 2002년 힙훕(Hip Hoop), 2003년 배틀그라운드(Battleground), 그리고 2004년 훕잼(Hoop Jam)이라는 타이틀을 내걸며 길거리 농구의 전문화와 매니아화를 확산시키고 있다. 특히 2002년 선풍적인 인기를 몰고온 힙훕은 안희욱이라는 최고의 힙후퍼(Hiphooper)를 탄생시키며 그를 하나의 신과 같은 존재로 만들었고 안희욱 따라하기, 안희욱이랑 선수랑 시합하면 누가 이길까여? 라는 등의 질문이 네이버 지식IN에서 화두가 되었으며 진정으로 농구를 사랑하고 즐기는 힙후퍼들의 멋진 모습에 많은 중고생들이 반해 농구카페가 생기고 농구인기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길거리 농구의 원조로 자리잡는 아디다스 길거리농구대회
2000년 이후 나이키의 매니아층을 위한 새로운 마케팅 전략은 아디다스에게는 기회였다. 뒤늦게 길거리농구대회를 시작한 아디다스는 나이키에 비해 지명도나 인지도등 모든 것에서 밀렸지만 마이클 조던이 은퇴한 이후 새로운 스타에 목마른 농구인들에게 트레이시 맥그레이디라는 스타의 등장은 ‘나이키=농구’의 등식을 ‘아디다스=농구’라는 등식으로 바꿔놓는 계기가 되었다. 2003년 농구화 시장에서 T-MAC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아디다스가 나이키를 추월하였다는 소문이 공공연히 떠돌았고 실제로 전통적인 농구방식을 고수한 아디다스의 길거리농구대회는 나이키 길거리농구대회보다 역사가 오래되고 전통있는 것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특히 아시아 세계대회가 우리나라에서 열려 NBA선수들이 대거 방문하게 될 2004년은 아디다스 길거리농구대회는 더욱더 국내에게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있다.
상금으로 승부하는 KBL 길거리농구대회?
KBL은 비시즌을 활용한 프로농구 붐 조성을 통해 시즌 관중의 증가를 유도하고, 신세대 스포츠 문화의 선두 주자로서 N세대 문화를 선도하기 위해 2001년부터 KBL배 전국 길거리 농구대회를 개최하였다. KBL길거리농구대회는 구단 연고지열별로 개최된 3ON3 대회에 입상하거나 연고 구단의 추천을 통해 선발된 전국 각지의 수준급 선수들이 중등부, 고등부, 대학/일반부 3개 부문(부문별 40개팀씩 총 120개팀 출전)으로 나누어 출전하여 한국 최고의 3ON3 챔피언을 가리게 된다. 하지만 지나치게 높은 상금(대학일반부 우승팀 500만원, 고등부 400만원, 중등부는 300만원) 때문에 동호회 농구인들의 최종 목표인 친목도모보다는 과열된 경기조장을 통해 너무 승부에만 집착한다는 비난의 화살도 받지만 분명한 것은 단기간에 최고의 길거리 농구대회로 떠올랐고 많은 동호회농구인들이 참가하기를 원하는 것만은 사실이다.
맺으며....
간단하게나마 동호회농구역사를 살펴보았다. 5대5농구와 3대3농구 확실히 영역이 구분되어있지만 그곳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은 비슷하다. 바로 농구의 열정을 갖고 농구를 즐기는 사람들이다. 앞으로도 동호회농구가 영원하길 바라며 프로에 찌들지 않은 신선한 동호회농구의 모습을 계속적으로 맛보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 루키지에 실렸던 이전 제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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