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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카
제1부 신神에 관하여
(출전: 스피노자 <에티카/정치론>, 추영현 옮김, 동서문화사, 2016)
(실체實體란, 그 자신 안에 존재하며 자기 자신만에 의하여 사유思惟되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자신의 개념을 형성하기 위하여 다른 아무런 개념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다.)
실체는 본성상(본질상) 변체(變體=變樣=변화상태)에 선행한다.
서로 다른 속성을 지니는 두 개의 실체는 아무런 공통점을 갖지 않는다.
서로 공통점이 없는 것은 상호 다른 것의 원인이 될 수 없다.
서로 다른 두 개 혹은 더 많은 것들이 각각 다른 모습으로 구별되는 것은 실체의 속성이 다르거나 또는 속성의 변체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자연계에는 똑같은 본성 및 똑같은 속성을 갖는 두 개 또는 그 이상의 실체가 결코 존재할 수 없다.
곧 같은 본성 및 같은 속성을 갖는 실체는 다수가 아니라 오직 하나만이 존재할 뿐이다.
하나의 실체는 다른 실체로부터 산출될 수 없다.
실체가 만일 다른 것으로부터 산출될 수 있다면 실체에 관한 인식은 그 원인의 인식에 의존해야 한다. 따라서 그것은 실체가 아니다.
실체의 본성은 존재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그 본질에 존재가 포함된 것, 또는 그 본성이 존재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자기원인自己原因이다. 즉 그것의 본질은 필연적으로 존재를 포함하고 있다. 다시 말해 그의 본성은 존재이다.
모든 실체는 필연적으로 무한하다.
실체는 오직 자기 자신으로 인해 사유(이해)되기 때문에 실체의 진리는 지성 이외에는 실체 자신 속에만 머물고 있다. (…) 실체의 존재는 그 본질과 같이 영원한 진리로 인정되지 않으면 안 된다.
실체의 본성은 존재이기 때문에 그 정의는 필연적으로 존재를 포함해야 한다.
같은 본성을 갖는 실체는 오직 하나만 존재할 따름이다.
사물이 보다 많은 실재성이나 존재를 가질수록 그만큼 많은 속성이 그것에 따른다.
실체의 각 속성은 그 자신에 의하여 사고(이해)되어야 한다.
속성屬性이란, 지성이 실체에 대하여 그 본질을 구성하고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다. 따라서 속성은 그 자신에 의해 생각되어야 한다.
자연에는 오직 하나의 실체만이 존재한다.
신神 또는 하나하나가 영원하고 무한한 본질을 표현하는 무한히 많은 속성으로 이루어진 실체가 필연적으로 존재한다.
네모난 원이 존재할 수 없는 이유는, 네모난 원의 본성 자체에 제시되어 있다. 즉 그러한 원의 본성 자체가 모순되기 때문이다.
존재할 수 없는 것은 무능력이요, 반대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능력이다.
필연적인 절대 무한한 존재자, 즉 신은 필연적으로 존재한다.
어떤 본성에 보다 많은 실재성이 부여된다면, 그것은 존재할 힘을 그만큼 많이 그 자신 속에 지니게 된다. 따라서 절대 무한한 존재자, 즉 신神은 존재에 관한 절대 무한의 능력을 자신 안에 갖게 되며, 그 때문에 신은 절대적으로 존재하게 된다.
실체를 분할되게 하는 실체의 속성은 생각될 수 없다.
절대 무한의 실체는 분할될 수 없다.
모든 실체는, 따라서 모든 물체적 실체도 그것이 실체인 한 분할될 수 없다.
신 이외에는 어떤 실체도 존재하지 않으며, 또 생각될 수도 없다.
신은 실체의 본질을 표현하는 모든 속성을 지니고 있는 절대 무한의 존재자이다. 그리고 신은 필연적으로 존재한다.
신은 유일한 것이다. 다시 말해 자연에는 다만 하나만의 실체가 존재할 뿐이며, 더욱이 그것은 절대 무한하다.
연장延長과 사유는 신의 속성이거나 또는 신의 속성의 변체이다.
모든 존재는 신에 내재되어 있다. 그리고 어떤 것도 신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고 생각될 수도 없다.
신을 제외한 어떤 실체도 존재할 수 없으며, 생각될 수 없다. 다시 말하면 그 자신 안에 내재하며, 그 자신에 의해서 생각되는 것은 신 이외에는 전혀 존재할 수 없다. 한편 양태는 실체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그러므로 양태는 신의 본성 속에 내재하며 그 내재에 의해서만 생각될 수 있다. 그런데 실체와 양태 이외엔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신이 없이는 어떤 것도 존재할 수 없으며, 생각될 수 없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신 안에 내재한다. 생성하는 모든 것은 신의 무한한 본성의 여러 법칙에 따르며, 이는 곧 신적 본질의 필연성에 의한 귀결이다. 그러므로 신이 다른 것의 작용을 받는다느니 연장적 실체가 신의 본성에 어울리지 않는다느니 하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성립될 수 없다.
신적神的 본성의 필연성에서 무한히 많은 것(즉 무한한 지성에 의해 파악될 수 있는 모든 것)이 무한히 많은 방법으로 생겨나지 않으면 안 된다.
신은 무한 지성에 의해 파악될 수 있는 모든 사물들의 동력인動力因이다.
신은 그 자체에 의한 원인이며, 우연에 의한 원인이 아니다.
신은 절대적으로 제1 원인이다.
신은 오직 지성의 본성의 법칙에 따라서만 활동하고, 누구에게도 강제되어 활동하지 않는다.
신 그 자신의 본성의 완전성 이외에는 신을 외부나 내부로부터 활동하게 하는 어떤 원인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신은 자신의 완전성의 힘에 의해서만 동력인이 된다.
신만이 자유원인이다.
신의 전능은 영원에서부터 현실적으로 존재하며 또 영원히 동일한 현실성에 머무른다.
만일 신의 영원한 본질에 지성과 의지가 속해 있다면, 이 두 속성은 사람들이 보통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이해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신의 본질을 구성하는 지성 및 의지는 우리들 인간의 지성과 의지와는 천양지차이며, 따라서 양자 사이에는 명칭 이외에는 전혀 공통점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하늘의 별자리인 개(犬)와, 현재 짖고 있는 동물인 개의 명칭이 일치함과 같은 것이다.
신은 원인으로서 모든 것에 선행한다. 신의 지성은 그것이 신의 본질에 속하는 이상 사물의 원인, 즉 그 본질과 존재의 원인이다.
인간은 다른 인간의 존재원인이지만, 그 본질의 원인은 아니다. 인간은 본질에 관해서는 서로 일치하지만, 존재에 관해서는 서로 다르다. 따라서 한 사람의 인간 존재가 소멸된다 해도, 다른 인간의 존재는 소멸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 사람의 인간 본질이 파괴되고 그것이 허위로 바뀐다면 다른 인간의 본질도 파괴될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결과의 본질 및 존재의 원인이란, 그 결과와는 본질에 관해서나 존재에 관해서나 구별되어야 한다. 그런데 신의 지성은 우리들 지성의 본질 및 존재원인이다. 그러므로 신의 지성이 신의 본질을 구성한다고 이해되는 이상, 그것은 우리의 지성과 본질에 관해서나 존재에 관해서나 상이하다. 우리의 지성은 신의 지성과 명칭만 같을 뿐이다.
신은 모든 것의 내재적 원인이며, 초월적인 원인은 아니다.
모든 존재는 신 안에 내재하며 신에 의해 생각되어야 한다. 따라서 신은 자신 안에 내재하는 모든 것의 원인이다.
신 이외에는 어떤 실체도 있을 수 없다. 즉 신의 바깥에서 자기 자신만으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 신은 모든 것의 내재원인內在原因이며, 결코 초월적 원인이 아니다.
신 및 신의 모든 속성은 영원하다.
신은 실체이며, 실체는 필연적으로 존재한다. 바꾸어 말하면 실체의 본성은 존재인 것이다. 혹은 그 정의로부터 존재가 발생한다. 따라서 신은 영원하다.
신의 존재와 본질은 같은 것이다.
신과 신의 모든 속성은 영원하다. 신의 각 속성은 존재를 표현한다. 신의 존재와 본질은 같은 것이다.
신의 존재는 그 본질과 같이 영원한 진리이다.
신 및 신의 모든 속성은 불변이다.
신의 어떤 속성의 절대적 본성에서 생겨나는 모든 것은, 언제나 무한한 것으로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바꾸어 말하자면 그것은 그 속성으로 말미암아 영원하고 무한해야 한다.
신의 어떤 속성이, 그 속성으로 말미암아 필연적이면서 무한하게 존재하는 양태적 변체로 양태화하는 한, 이 속성에서 생겨나는 모든 것은 똑같이 필연적이면서 무한하게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필연적으로 무한하게 존재하는 모든 양태는, 필연적으로 신의 어떤 속성의 절대적 본성에서 생겨나든가, 또는 필연적으로 무한하게 존재하는 양태적 변체로 양태화된 신의 어떤 속성에서 생겨나든가 한다.
(양태樣態란, 실체의 여러 변화상태(변양變樣=변체變體)이다. 곧 다른 것 안에 존재하며, 다른 것 안에서 사유될 뿐이다.)
양태는 신 안에 내재하며, 신에 의해서만 이해된다.
신에게서 산출되는 사물들의 본질엔 존재가 포함되지 않는다.
신은 사물이 존재하기 시작하는 원인일 뿐 아니라, 그 존재를 지속시키는 원인이기도 하다. 혹은 신은 사물의 존재원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사물의 본질은 그 존재의 원인도 지속의 원인도 될 수 없다. 오직 존재를 본성으로 하는 신만이 그들의 원인일 수 있다.
신은 존재물의 존재원인일 뿐 아니라 그 본질의 동력인이다.
자기원인이란 의미에서 신은 또한 모든 것의 원인이라고 주장되어야 한다.
개체는 신의 속성의 변체(변화상태) 혹은 신의 속성을 일정한 방법으로 표현하는 양태에 지나지 않는다.
어떤 작용을 하도록 결정된 것은, 신에 의해서 필연적으로 그렇게 하게끔 결정된 것이다. 그리고 신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 것은, 그 자신을 작용하게끔 결정할 수 없다.
무엇인가 작용하게끔 결정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적극적인 것이다. 따라서 신은 그 본성의 필연성에서 사물과 존재의 동력인이다.
신으로 말미암아 무엇인가 작용하게끔 결정된 것은, 자기 자신을 결정되지 못하게 할 수 없다.
모든 개체, 즉 유한하며 한정적인 존재를 지닌 모든 것은, 자기처럼 유한하며 한정적인 존재를 갖는 다른 원인에 의해서 존재와 작용이 결정되고, 이로 인하여 비로소 존재할 수 있으며 또 그 작용이 결정될 수 있다. 그리고 이 원인도 유한하며 한정된 존재를 지닌 다른 원인에 의하여 존재와 작용이 결정되지 않는다면, 이 원인 역시 존재할 수 없으며 또 작용을 결정할 역할도 할 수 없다. 이와 같은 논법이 계속된다.
어떤 것은 신에서부터 직접 산출되어야 한다. 즉 그것은 신의 절대적 본성에서부터 필연적으로 생겨나온다. 그리고 다른 것은 신에게서 직접 산출된 것을 매개로 해서 생겨나는데, 이것도 신이 없다면 존재할 수도 사고할 수도 없다. 신은 신 자신이 직접 산출한 것의 절대적인 최근 원인最近原因이 된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신 안에 내재하며, 신이 없으면 존재할 수도 생각할 수도 없을 만큼 오로지 신에 의지하고 있다.
자연에는 우연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신적 본성의 필연성에 의해 일정한 방법으로 존재하고 작용하게끔 결정되어 있다.
모든 존재는 신 안에 내재하고 있다. 모든 것은 신적 본성의 필연성에 의해 존재하게끔 결정될 뿐 아니라, 일정한 방법에 의해 존재하고 작용하도록 결정되며, 따라서 우연한 것은 하나도 존재할 수 없다.
능산적 자연能産的自然은 그 자신만으로 존재하고 그 자신에 의해서 생각되는 것, 혹은 영원하고 무한한 본질을 표현하는 실체의 여러 속성, 즉 자유원인이라고 생각되는 그런 경우의 신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에 반하여 소산적 자연所産的自然은 신의 본성 또는 신의 각 속성의 필연성에서 생겨나는 모든 것, 바꾸어 말하면 신 안에 내재하며 신 없이는 존재할 수도 생각될 수도 없는 것으로 간주되는 경우의 신의 여러 속성의 모든 양태인 것이다.
현실적으로 유한한 지성이건 무한한 지성이건 간에, 지성은 신의 여러 속성과 신의 변체(변용)를 파악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이것을 제외하곤 아무것도 파악할 수 없다.
참된 관념은 그 대상과 일치해야 한다. 즉 지성 안에 관념적으로 포함되는 것은 필연적으로 자연 안에서도 존재해야 한다. 그러나 자연 안에는 다만 하나의 실체, 즉 신만이 존재한다. 또한 신 안에 내재하며 신이 없으면 존재도 사고도 될 수 없는 변체, 이것 이외에 어떤 변체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현실적으로 유한한 지성이건 무한한 지성이건, 지성은 신의 여러 속성과 신의 변체를 파악해야 한다. 이것 이외의 어떤 것도 파악될 수 없다.
현실적인 지성은, 가령 그것이 유한하건 무한하건 간에 의지, 욕망, 사랑처럼 능산적 자연이 아니라 소산적 자연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지성은 절대적인 사유로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것은 다만 사유의 어떤 양태, 즉 욕망과 사랑처럼 다른 사유의 양태로부터 구별되는 양태로 생각된다. 따라서 지성은 절대적 사유에 의해 생각되어야 한다. 즉 사유의 영원하고 무한한 본질을 표현하는 신의 어떤 속성에 의해서 생각되어야 한다. 게다가 그 속성이 없다면, 지성은 존재할 수도 사고할 수도 없다고 간주되어야 한다. 따라서 지성은 사유의 다른 여러 양태처럼, 능산적 자연이 아니고 소산적 자연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의지는 자유원인이 아니라 오히려 필연적인 원인이다.
신은 의지의 자유로 인하여 작용하지 않는다.
의지는 다른 자연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신의 본성에 속하지 않는다.
존재물은 현재 산출된 것과 다른 별개의 방법, 또는 상이한 질서에 의해서 신으로부터 산출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주어진 신의 본성에서 필연적으로 생겨나는 것이며, 역시 신의 본성의 필연성에 의해 일정한 방법으로 존재하고 작용하게끔 결정된다. 그러므로 사물들은 다른 방법에 의해서도, 다른 질서에 의해서도 존재할 수 없다.
사물이 우연이라 불리는 이유는 우리들 인식의 결함을 제외하곤 그 어떤 이유도 없다. 그 본질이 모순을 내포하고 있음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물, 혹은 그것이 아무런 모순도 내포하지 않지만 원인의 질서가 우리에게 알려져 있지 않기에, 우리로서는 그 존재에 관하여 무엇 하나 확실한 것을 주장할 수 없는 사물, 이런 것은 우리들에게 결코 필연적인 것으로도 불가능한 것으로도 생각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그런 것을 가리켜 우연이니 가능이니 하고 부른다.
존재물은, 주어진 가장 완전한 본성에서 필연적으로 생겨나는 것이므로 최고 완전성인 신에서 산출된 것이 명백하다. 이 말은 어떤 불완전성도 신에게 부여될 수 없다는 뜻이다.
사물이 현재의 존재와 다른 방법으로 신에서 산출된다면 신의 지성과 의지는, 즉 신의 본질은 별개의 것이어야 한다. 이것은 불합리하다.
사물은 어떤 상이한 방법과 다른 질서에 의해 신에서 산출될 수 없으며, 이 사실의 진리는 신의 최고 완전성에서 당연히 도출된다.
모든 것은 신의 능력에 의존한다.
신의 능력은 그의 본질 자체이다.
신의 능력 안에 있다고 생각되는 모든 것은 필연적으로 존재한다.
그 본성에서 어떤 결과가 필연적으로 생겨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신의 본성 혹은 신의 본질을 일정한 방법으로 표현한다. 바꾸어 말하면 모든 존재는 모든 것의 원인인 신의 능력을 일정한 방법으로 표현한다. 따라서 존재하는 모든 것에서는 결과가 생겨나야 한다.
부록
(…) 나는 기회 있을 때마다, 내 자신의 증명을 이해하는 데 방해될지 모르는 여러 편견을 제거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아직 적지 않은 편견이 남아 있다. (…)
이제 내가 이야기하려는 온갖 편견은 다음 한 가지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즉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모든 자연물이 자기들처럼 목적 때문에 작용한다고 보고, 신 자신이 모든 것을 어떤 일정한 목적으로 확실히 이끌어 간다고 믿는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신이 모든 것을 인간을 위해서 창조하고, 또 신을 숭배하도록 인간을 창조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
(…) 인간은 자신을 자유라고 생각한다. (…) 인간은 일체를 어떤 목적 때문에, 즉 자신이 욕망하는 이익 때문에 행한다. (…) 또한 그들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하여 적지 않은 유용한 수단을 무수히 자신의 안팎에서 발견한다. (…) 이런 이유에서 그들은 모든 자연물을 자기의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들 수단은 그들에 의해 발견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자기들이 이것들을 마련하지 않았음을 알고 있기 때문에, 다른 누군가가 그 수단을 자기들이 사용하도록 준비한 것으로 믿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들 지배자의 성격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들은 바가 없었으므로, 이를 자신의 성격으로 미루어 판단해야 했다. 그래서 그들은 이렇게 믿게 되었다. 신들은 인간에게 은혜를 베풀어 빚을 지움으로써 최고의 존경을 받을 수 있도록 인간이 사용한 일체를 창조했다고. 이 결과 각 인간은, 신이 자신을 다른 누구보다도 사랑하여 모든 자연을 자신의 맹목적인 욕망과 끝없는 탐욕에 맞춰 주게끔, 신 숭배의 잡다한 양식을 자기 자신의 성격에서 미루어 생각해 내게 되었다. 이런 편견은 마침내 미신으로 전락하여 인간의 마음 깊숙이 뿌리박고 말았다. 이리하여 각 사람은 모든 것에 관하여 목적인을 인식하고, 그것을 설명하는 데 최대의 노력을 기울이게 되었다. (…)
그러나 나는 이 목적에 관한 학설이 자연에 관한 사고방식을 전도顚倒해 버렸음을 부언하여 둔다. 왜냐하면 이 목적론은, 실제 원인을 결과로 보며 또 반대로도(결과를 원인으로) 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학설은, 그 본성에서 볼 때 앞 단계인 것을 뒷 단계로 삼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것은, 최고 최대의 완전을 최대의 불완전으로 만들어 버린다. 왜냐하면 신에서 직접 낳아진 것이 가장 완전하며, 산출되기까지 보다 많은 중간 원인을 필요로 하는 것은 그만큼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위의 목적론에 따라, 신이 직접 산출한 것도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하여 창조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최초의 것은 나중의 것을 위해 창조된 셈이다. 따라서 최후의 것은 필연적으로 모든 것 중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이 된다.
다음으로 이 학설은 신의 완전성을 없애 버린다. 왜냐하면 신이 목적을 위해 작용한다면, 그는 자신에게 결핍된 것을 필연적으로 욕구하고 있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
(…) 사물의 완전성은, 그것의 본성과 능력에 의하여 평가되어야 한다. 따라서 사물이 인간의 감각을 즐겁게 하든 괴롭게 하든 또 인간의 본성에 적합하든 부적합하든, 그 완전성이 증감되지는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