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중이거나, 승선 중 또는 정박 중이거나, 알거나 모르거나 관계없이 선원(船員)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끼리 가끔 만나는 장소나 경우가 있다. 국내에선 업무상, 관계기관의 교육장일 수도 있고, 해외에선 항구마다 설치된 Agent(대리점) 혹은 Seaman’s Club이나 Pub(술집) 등이 그렇다.
이런 경우 서로를 잘 몰라도 대개 직급별로 어울리고 대화가 이루어진다. 이럴 때 서로 다녀본 항구나 그 나라에 대한 정보들을 얻을 수 있고, 필요에 따라서는 일부러 물어서라도 구하는 경우도 있다. 모르고 가면 피해를 보거나 바가지 쓰는 것은 세상의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필리핀 외항에 정박 중 통선(通船)을 이용하여 상륙(上陸)했다 귀선(歸船) 도중에 길거리에서 날치기 당했던 얘기로 입에 거품을 무는 데, 동승했던 한 외국 선원이 “부산도 그렇다.”는 얘길 듣고 얼굴을 붉힌 적도 있지만 역시 사람 사는 데는 다 같다는 생각이다.
일본 같은 경우는 이러한 세계 각 항만 정보나 사정을 공식적인 잡지 즉, 각 해운회사의 사보(社報), 선원노조신문 등에 게재(揭載)되는 경우가 있었다. 어느 나라, 어떤 항에 가면 어떤 도둑들을 조심하라든가, 출입항 시 주의할 점, 시내 유명 술집들의 예, 접대품으로 어떤 것이 유효한가, 심지어 아가씨 하룻밤 비용까지 가지가지다. 알고 가야 바가지를 안 쓴다는 의미다. 역시 가본 놈이 최고요 맛을 본 넘이 맛을 아는 것이다.
리가 항의 위치
처음 가는 구(舊)소련연방에 대한 궁금증도 이런 루트로 얻었다. 접대품으로 여자용 스타킹이 최고라는 것이었다. 가보면 알 터이고 아무튼 갖고 가면 여러모로 특효가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갖고 가야지!
통상 공식 접대품으로서는 대개 위스키이거나 고급담배, 지역에 따라서는 라면 같은 것이기에 이들은 정식으로 선주들이 별도로 마련해준다. 한데 여자용 스타킹은 할 수 없이 현지에서 직접 구입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껏 사 본 적이 없으니 자세한 내용을 몰랐다.
평생 가봐야 내가 쓸 물건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준비하지 않을 수가 없어 유럽의 한 마켓에 사러 갔다. 그냥 여성용 스타킹 했더니 예쁜 아가씨가 잠시 이상한 눈초리로 보더니 안내를 한다.
언젠가 프랑스에 처음 갔을 때다. 유명 여성용 화장품이나 향수라면 ‘프랑스’가 최고였던 때였다. 모처럼의 기회라 큰 선심쓰는 기분으로 마누라를 위해서, 귀국하면 마눌님의 활짝 벌어진 입과 서비스를 떠올리며 시퍼런 달러를 아까운 줄 몰랐다. 결과만 얘기하면 참담한 실패였다. 쥐뿔도 모르고 산 탓에 전혀 동양인, 특히 집사람의 피부와는 전혀 맞질 않았던 것이다.
아뿔사! 종류도 크기도 색깔도 이것저것 복잡했다. 팬티까지 달린 것도 있었다. 얇은 것이 더 비싸다는 것도 이때 알았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로 설명하는 아가씨의 아마도 “이 등신아! 그것도 모르고 사러왔냐?” 하는 듯한 눈초리를 무시하고, 일본이나 한국 또는 서방 세계에서 스타킹은 매일매일의 소모품이라 알고 있었기에 생각보다 비싸지 않았으니 이것저것 색깔과 사이즈를 섞어서 수월찮게 사긴했지만 부피나 무게는 시쳇말로 한 주먹밖에 안 됐다. 남으면 가져가면 되니까 밑져야 본전인 셈치고….
1987년 세모(歲暮). 거대한 소련 영토의 최서쪽에 붙어 있는 연방, 라트비아의 수도이기도 한 리가(Riga)항에 입항했다. 발틱해의 겨울은 12월이니 망정이지 좀 더 있어 1월에 접어들면 바다 자체가 얼어붙는 곳이다. 발트해의 핀란드 헬싱키 바로 아래쪽에 구 소련연방인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이 이어져 있고, 레닌이 죽자 ‘레린그라드’라 불리기도 했으며 ‘북유럽의 베네치아’라 불리기도 하는 러시아 제2의 도시 페테르부르크와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리가시의 아름다운 모습(최근)
리가의 구시가지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고 최근 사진을 보면 정말 아름다운 도시임을 짐작할 수 있지만 당시 항구에서 본 것은 야트막한 들판의 눈 밖에는 없었다. 사전에 이름난 곳들을 메모해두긴 했지만 눈과 추위 때문에 엄두를 내기는커녕 아예 한국 선원은 상륙도 극히 제한적이었다.
북위 57도, 거저 춥다는 것 이외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흰 눈으로 덮힌 야트막한 대지(大地)를 보고 연전에 본 영화 ‘닥터 지바고(Doctor Zhivago)’의 설원(雪原)을 떠올렸다. 정말로 그런 곳이 있구나!.
접안과 동시에 올라온 세관 · 이민국 · 검역관 등 관계기관의 사람들이 대부분 여자들이다. 이곳은 사회주의라 자신이 선택한 직업이 아니고 정부에서 지정해준 일자리라 그렇다고 했다. 통상 남자들이 해야 할 일을 여성들이 맡아서 하는 것이 보통이다.
점잖게 앉아 자기네 소관의 차례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린다. 까다롭거나 어려운 것은 없었다. 공식적인 서류는 사전에 준비되어 있으니 점검만 하고 가져가기만 하면 됐다.
문제는 끝나고도 선뜻 일어서질 않는다. 동남아나 다른 공산국과는 달리 스스로 달라는 소리는 없지만 접대품을 내놔란 뜻이다. 빨리 눈치를 긁고 알아서 처리해야 한다고 들었다. 슬쩍 통신장에게 눈짓을 하고 따라 가보라고 하면 재빨리 일어선다. 그걸로 끝이었다. 남자 직원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마도 그걸 가져간 날 저녁엔 마누라의 서비스에 코피가 날 것이라는 농담을 우리끼리 할뿐이었다.
당시 유명하다는 리가 중앙시장의 모습
그야말로 스타킹 한 켤레면 안 되는 일이 없었다. 심지어 세관 통제구역을 나누는 철조망들 사이에 있는 초소의 여자경비원에게도 그거 하나면 무상출입이 가능했으니… .
받으면 호주머니에 넣는 것이 아니고 허리나 가슴부분에 숨긴다. 아마도 또 다른 감시자나 통제기관이 살피고 있는 듯 한 느낌이었다.
부피가 얇으니 주머니 여기저기에 대여섯 개 넣고 나가도 표가 없으니 그걸로 별난 볼일(?)까지도 봤다는 선원들의 후문이 한참 나돌았다.
어째서 당시 그게 그렇게 귀한 것이었는지는 지금도 알지 못한다. 얕은 생각에 자국(自國) 생산이 안 되었던가 어쨌거나 시중에 턱없이 모자라는구나 하고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감미롭고 조용한 음악, TV에서 볼 수 있었던 우아한 발레리나의 춤. 나비처럼 나풀거리는 무용수를 보면 사람이 저렇게 가벼울까 하는 느낌을 가졌던 적도 있다. Seaman’s Club에서 서빙하는 늘씬하고 아름다운 금발의 백러시아계 미인 아가씨들의 모습 등을 보면 이 나라가 어떻게 공산사회가 되었을까 하는 느낌이 들었다.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푸시킨, 체호프 등 세계적으로 이름난 시인과 소설가들의 문학세계. 지금도 세계 각지에서 공연되는 차이콥스키의 ‘백조의 호수’ 등을 생각하면 어쩌다 사회주의가 되고 국민들의 삶의 질이 떨어져 서방세계에서는 일회용 소모품인 스타킹조차 부족한 처지가 되고 말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반면, 허연 눈이 펑펑 쏟아지는 가운데 묵묵히 양하 작업 중인 인부들이 도중 뒷주머니에서 납작한 알미늄 수통(水桶)을 꺼내 뭔가 한 모금씩 마시며 일한다. 추위를 이기기 위해 독한 럼주나 보드카 같은 것들을 마셔야 된다고 한다. 한 모금 얻어 맛을 보았더니 입안이 화끈하고 얼얼했다. 우리말로 어한(禦寒)용이다.
가끔 그게 떨어지면 반장인듯한 사람이 ‘혹시 남은 위스키 있으면 좀 달라’고 선장실을 찾아오는 경우가 오히려 이색적이었다. 마치 우리네 농촌의 텁수룩한 인심좋은 아저씨 같은 인간적 모습이다. 거절할 수가 없기에 새것 한 병을 주면서 나누어 마시라면 고맙다며 정중히 인사를 몇 번이고 남기는 뒷모습이 지금도 선하게 남아있다. 언젠가 겨울이 아닌 철에 꼭 한 번 와봤으면 하는 바램이 간절했던 곳이기도 하다
첫댓글 <태어난 김에 세계여행>이란 TV코너가 있듯이 대학생만 되면 외국 여행을 즐기는데 바람새는 청년 때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ㅠㅠ
늑점이님은 세계 여행도 하고 돈도 벌고 자유도 누리고......부럽습니다. 고생은 했지만.
요즘 살 맛도 꿈도 없는데 다시 태어나게 해 달라는 꿈이라도 꿀까요? 세계 여행다니게?ㅋㅋㅋ
노년이 되어 힘이 모자라니까 이젠 컴 앞에서 추억 소환으로 즐기고......신선놀음 하시네요.ㅎㅎ
모르시는 말씀! '세계 여행도 하고 돈도 벌고 자유도 누리고...' 하얀 거짓말임다. 그땐 돈도, 여행도, 자유도 누릴여유도 시간도 없었음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사방을 더듬는 장님 처럼, 그저 순간순간 죽지 않으려는 몸부림이었고, 자유보다 주위 환경의 압박에 몸도 마음도 꼼짝달싹 못했습지요.
이제 한참의 세월이 덮고 묶어두었던 것들을 한겹 한겹 벗겨주니 저 깊은 곳에 숨겨젔던 것들이 빼꼼히 얼굴을 내미는듯 함다.
그러나 세상 어디나 사람사는 곳은 겉모양은 달라도 그 마음은 요기서 죠기라는 것은 깨닫고 있음다.
신선놀음으로 봐 주시니 그것도 괜찮네요. 감삼니다. 건강하소. 부산넘
@늑점이 ㅋ남의 떡이 크게 보인다고 하더니만 내가 바로 그짝이었네요.ㅜㅜ
좋은 경험담 잘 읽었습니다. 서선배님의 표현력이 너무 좋아 곁에서 본 것과 같습니다. 건강과 행운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