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바다를 변하여 육지가 되게 하셨으므로 무리가 걸어서 강을 건너고
우리가 거기서 주로 말미암아 기뻐하였도다. 그가 그의 능력으로 영원히 다스리시며
그의 눈으로 나라들을 살피시나니 거역하는 자들은 교만하지 말지어다.
만민들아 우리 하나님을 송축하며 그의 찬양소리를 들리게 할지어다.
그는 우리 영혼을 살려 두시고 우리의 실족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는 주시로다(시 66:6-9)
주석
66:6
하나님이 바다를 변하여 육지 되게 하셨으므로 - 이는 바로 왕의 추격으로부터 당신의 백성들을 보호하시기 위한 초자연적 역사(役事)였다(출 14:21-25). 하나님께서 이같이 하심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갈라진 홍해를 건너 바로의 마수를 피할 수 있었다.
무리가 도보(徒步)로 강을 통과하고 - 앞 문구의 마지막 부분인 '하셨으므로'라는 표현은, 본 문구가 앞의 문구에 종속된 듯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본 문구는 앞 문구에서 말하는 바, 곧 하나님께서 홍해를 가르신 사건과는 다른 사건을 말하고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즉, 본 문구는 이스라엘 벡성들이 홍해를 건넌 때로부터 40년 후 여호수와의 인도 아래 요단 강을 건넌 사건을 말하고 있다(수 3:15-17).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절이 홍해를 가르신 사건과 요단 강을 마르게 하신 사건을 하나로 말하고 있는 것은, 두 사건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베푸신 일련의 불가분리적 사건들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거기서 주로 인하여 기뻐하였도다 - '거기서'(* , 쇰)는 저자 자신이 과거로 돌아간 듯한 입장에서 문장을 기록했음을 보여주는 표현이다(Keil). 다시 말해서 다윗은 그 조상들이 홍해를 건넌 때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난 뒤의 사람이지만 자신을 홍해를 건넌 조상들과 함께 있었던 것처럼 표현한다(출 14:21-25; 수 5:1). 사실 이 같은 표현은, 이스라엘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하나의 공동체로 인식되었다는 점에서(스 9:6,7: 느 9:32; 히 7:10)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런데 (1) NIV는 본 문구를 '그 분 안에서 기뻐하자'로, (2) 바이저(Weiser)는 '거기서 우리는 그분 안에서 기뻐할 것이다'로 번역하였다. 이러한 번역은 '우리'라는 말과, '기뻐하였도다'(* , 니스메하)가 미완료 시제라는 점 때문인 듯하다. 그러나 미완료 시제라도 '솽'(* )이나 '아즈'(* ) 다음에 나올 때는 부정 과거의 의미를 나타낼 수 있다(Keil).
66:7
저가 그 능으로 영원히 치리하시며 - '능'(* , 기보라)은 '전쟁에서 이기다' 혹은 '능가하다' 등의 뜻을 갖는 동사 '가바르'(* )에서 파생된 단어로서, 전쟁에서 이길만한 막강한 능력이란 뜻이다(삿 8:21; 왕하 18:20). 그리고 '치리하시며'(* , 마솰)는 어떤 물리적 힘의 행사를 통한 통치 혹은 주관(主管) 행위를 뜻한다(창 3:16; 37:8). 그러므로 본문은 하나님이 당신의 기적적 능력을 동원하사 당신께 반역하는 자들에게 필요 적절한 징벌을 내리심으로써 이 세상을 마지막 날까지 통치하시는 것을 뜻한다(단 4:25). 사실 하나님의 이같은 통치가 존재함을 보여주는 역사적 실례들은 너무나도 많다. 즉,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학대하였던 이교적(異敎的)인 국가들을 차례로 멸망시키셔서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게끔 하셨다. 뿐만 아니라 현존하는 적그리스도 국가에 대해서도 그같이 하시겠다는 분명한 예언도 있다(단 2:43-45). 그런데 칼빈(Calvin)은 '영원히'(* , 올람)를 '세상'으로 보고, 본 문구가 하나님의 세상 국가에 대한 통치를 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물론 하나님께서 세상 나라도 다스리고 계심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올람'이라는 단어가 '세상'의 뜻으로 쓰인 경우는 성경 어디에도 없다. 따라서 개역성경처럼 ''영원히'로 번역함이 타당하다. 아무튼 하나님께서 당신의 능력으로 세상을 다스리시는 까닭에, 당신의 백성들을 세상의 원수들로부터 보호하심과 아울러 이 모든 역사의 흐름을 궁극적으로 당신의 뜻 가운데로 이끄시기 위함(Rawlinson)일 것이다.
눈으로 열방을 감찰하시나니 - 신인 동형 동성론적 표현으로서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 돌보시는 역사 중의 하나를 나타낸 것이다. 다시 말하여, 이는 하나님께서 세상 나라들이 당신의 백성들을 해하려고 하는지를 살피고 계신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주님의 통치를 거역하는 일, 곧 하나님의 백성을 박해하는 일은 그러한 일을 하는 자들에게 백해 무익(百害無益)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섭리와 권능에 의해서 도리어 멸절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거역혀는 자는 자고(自高)하지 말지어다 - '거역하는 자'(* , 하소르림)는 '완고하다' 혹은 '반항적이다'를 뜻하는 동사 '사라르'(* )의 분사로서, 송아지가 제 고집대로 주인의 말을 듣지 않고 완강하게 버티거나 저돌적인 몸짓을하듯(사 65:2; 호 4:16), 무분별하게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자들을 뜻한다. 이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박해하는 일에 일단 성공함으로써 '자고하게' 될 것이다(사 10:5-9). 그러나 그러한 거만함도 오래가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세상을 엄중히 감찰하시는 하나님이 그들을 철저히 멸망시키실 것이기 때문이다
(사 10:12; 말 4:1; 눅 1:52).
송축하며(* , 바라크) - '복을 빌다', '찬양하다' 혹은 '무릎을 꿇다'의 뜻까지 내포하는 말이다. 이와 반대되는 개념의 동사가 '가볍게 생각하다'는 의미인 '칼랄'(* )이다. 한편, 본절에서 시인은 하나님의 위엄과 권능이 단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 뿐만 아니라 만방의 모든 이들로부터 찬양받기에 합당하다는 점을 다시금 상기시킴으로써 우주적 찬양에로 초대하고 있다(1,4절 참조).
66:9
그는 우리 영혼을 살려두시고 - '영혼'(* , 네페쉬)은 차라리 '생명'으로 번역함이 더 낫다. 한편 '살려 두시고'(* ... , 하삼...바하임)는 '살려'와 '시고' 등 두 개의 분사로 이루어진 문구로서 '살아있는 자 가운데두고'의 뜻이다(has kept us among the living, RSV). 이는 하나님께서 과거의 조상들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차후에도 당신의 백성들을 원수들의 손에서 구출하실 것을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