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구릉(東九陵) :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산 2-1 (사적 제193호)
- 조선시대의 17 위의 왕과 왕비, 후비(后妃) 등 9릉이 안장된 곳
- 면적 : 191만 5891㎡
동구릉은 조선 초 1408년(태종 8)에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健元陵) 터로 쓰이기 시작한 뒤 조선시대 일대를 통해 족분(族墳)을 이루고 있는 왕릉군(王陵群)이다.
이곳은 조선왕조 여러 대에 걸쳐서 9개의 능터가 있는 것으로 보아 미루어, 동구릉의 지세가 풍수지리설에 맞는 훌륭한 곳임을 짐작할 수가 있다. 태조 이성계가 승하하자 이곳에 장례를 지내고, 건원릉(健元陵)이라 이름한 뒤에 조선시대를 통하여 9릉(陵) 17위(位)의 왕과 후비의 능이 안장되어 일대 족분을 이루었다.
이곳을 왕릉으로 택지(擇地)한 사람은 무학대사라는 설이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다. 1855년(철종 6)에 9 번째로 익종(翼宗)과 신정왕후 조씨의 수릉(綏陵)이 옮겨오기 전까지는 동오릉(東五陵) ·동칠릉(東七陵)으로 부른 사실이 조선왕조실록에 적혀 있다.
9개의 능은 태조의 능인 건원릉(健元陵), 5대 문종과 현덕왕후(顯德王后) 권씨(權氏)의 능인 현릉(顯陵), 14대 선조와 의인왕후(懿仁王后) 박씨 ·계비(繼妃) 인목왕후(仁穆王后) 김씨의 능인 목릉(穆陵), 18대 현종과 명성왕후(明聖王后) 김씨의 능인 숭릉(崇陵), 16대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莊烈王后) 조씨(趙氏)의 능인 휘릉(徽陵), 20대 경종의 비 단의왕후(端懿王后) 심씨(沈氏)의 능인 혜릉(惠陵), 21대 영조와 계비 정순왕후(貞純王后) 김씨의 능인 원릉(元陵), 24대 헌종과 비 효현왕후(孝顯王后) 김씨, 계비 효정왕후(孝定王后) 홍씨의 능인 경릉(景陵), 그리고 순조의 세자 익종과 비 신정황후(神貞皇后) 조씨(趙氏)의 능으로 조성된 수릉(綏陵)이다.
(1) 건원릉(健元陵)
동구릉의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건원릉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능으로 동구릉의 원릉이다. 태조 이성계는 새 왕조를 개국하고 17년 뒤인, 1408년(태종 8) 5월 24일 승하해 그 해 9월 9일에 이곳에 묻혔다
이 능은 기부(基部)를 12각(角)의 둘레돌[護石]로 싸고, 둘레돌 밖으로는 돌난간[石欄干]을 두르고, 그 밖으로는 석호(石虎 : 돌로 만든 호랑이) 넷, 석양(石羊 : 돌로 만든 양) 넷을 엇바꾸어 밖을 향해 배치하고 있다. 이 능 앞면에는 혼유석(魂遊石)이 있고, 그 양쪽에는 망주석(望柱石)이 하나씩 서 있다.
건원릉은 봉분의 기부(基部 : 밑부분)는 십이각(十二角)의 호석(護石)으로 쌓고, 각각 중심에 태극(太極)이 있는 영탁영저문(靈鐸靈杵文 : 신령스러움을 상징하는 방울이나 공이모양의 무늬)을 좌우에 양각(陽刻)하였다. 각 면에는 와운문(渦雲文 : 뭉게뭉게 피어나는 구름무늬) 중에 수관인신(獸冠人身 : 머리는 동물이고 몸은 사람)의 12지신상(十二支神像)을 역시 양각하고, 면석(面石)·우석(隅石) 아래쪽에는 영지(靈芝 : 상서로움을 상징하는 표시)를 새겼다.
이 능의 관리를 위해 영(令) 1인, 참봉 1인을 두었으며, 참봉은 종친부(宗親府)에서 대군이나 왕자군의 봉사손(奉祀孫 : 제사를 받들 수 있는 후손)을 자유로이 임용하도록 하였다. 태조 이성계가 생존하였을 때 신덕왕후 강씨(神德王后康氏)의 정릉(貞陵)은 고려의 능제를 따랐으나, 이 능은 조선왕조의 능제로 경영하였으므로 그 표본이 된다.
(2) 현릉(顯陵)
조선 제5대왕 문종(文宗)과 비 현덕왕후 권씨(顯德王后權氏)의 능이다. 세종의 장남인 문종은 1414년 10월 3일 한양의 사저(私邸)에서 태어났다. 문종의 어머니는 소헌황후이며, 이름은 향, 자는 휘지이다. 문종은 1421년 10월 27일 왕세자로 책봉되었고., 1450년 37세로 왕위에 올랐다.
일찍부터 몸이 불편했던 세종은 1437년부터 세자에게 서무를 경재(卿宰)하게 하려 했으나 신하들의 반대로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세종은 1442년에 섭정을 하는 데 필요한 기관인 첨사원을 설치하고, 세자로 하여금 왕처럼 남쪽을 향해 앉아서 조회를 받게 하는 등 제반 준비를 서둘렀다.
수조당(受朝堂)을 지어 섭정 준비를 마무리한 세종은 1445년부터 본격적으로 세자로 하여금 섭정케 했다. 이렇듯 일찍부터 정치 경험을 쌓았기 때문에 문종 재위기의 정치는 세종 후반기와 거의 유사했다.
문종은 즉위한 후 언로(言路)를 열어 민의를 파악했으며, 문무를 아울러 중용했으므로 백성들의 희망이 컸다. 또한 학문을 사랑했던 군주답게 《동국병감》, 《고려사》, 《고려사절요》를 편찬했고, 《진법구편》을 직접 저술하기도 했다. 세자로 있을 때부터 진법을 편찬하는 등 군정에 관심이 많았던 문종은 즉위 후에 군사제도를 개편하는 등 군제상의 개혁도 단행했다. 문종은 유학뿐 아니라 천문과 산술에도 정통했고, 예서, 해서 등 서도에도 능했다고 기록이 전한다.
문종이 즉위하면서 왕권은 세종 때에 비하여 약간 위축되었다. 수양대군, 안평대군 등 종친세력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도 이미 이때부터 나타나고 있었으며, 이를 견제하기 위한 언관의 종친에 대한 탄핵 언론으로 상호 긴장된 분위기가 조성되기도 했다. 그러나 몸이 허약했던 문종은 재위 2년 4월 만인 1452년 5월 14일 보령 39세로 경복궁 정침에서 승하하고, 나이 어린 세자 단종이 즉위함으로써 계유정난, 세조의 찬위, 사육신 사건 등 정치적으로 불안한 사건을 초래하는 계기가 되었다.
현덕왕후는 생전과 사후(死後) 모두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던 단명한 비운의 왕비이다. 안동 권씨의 증 의정부 좌의정 권전의 딸로 태어나 뒤에 세자빈으로 있다가 책봉 4 년 만에 단종을 출산한 뒤 승하해 현덕(顯德)의 시호를 내렸고, 경기도 안산 소릉(昭陵)에 장사 지냈다. 문종 즉위 후에 왕후로 추숭(追崇)되었다.
슬하에 단종대왕과 경혜공주를 두었다. 야사에는 현덕왕후의 원혼이 수양대군이 왕권을 찬탈한 후에 궁중에 나타나 그의 가족들은 괴롭혔다고 한다. 그래서 세조의 장남 덕종이 그녀의 원혼에 시달려 죽었으며, 세조 역시 꿈에서 그녀가 뱉은 침 때문에 피부병에 걸려 고생했다고 전한다.
현릉은 원래 영릉(英陵 : 세종의 능) 우강(右岡)에 정하였으나, 이곳은 물이 나고 돌이 나와 현 위치인 건원릉(健元陵 : 태조의 능) 동강(東岡)을 택하게 되었다. 능제(陵制)는 ≪국조오례의≫의 본이 된 옛 영릉(英陵)의 제도를 따랐다.
1457년(세조 3) 단종이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등되어 영월로 유배되는 가운데 현덕왕후도 서인으로 강등되고, 소릉도 파헤쳐져 관이 해변의 모래사장에 버려지는 등 능이 무참히 파괴되었다.
현덕왕후의 능은 1513년(중종 8) 안산에서 이 곳으로 옮겨와서 왕릉과 동원이강(同原異岡) 형식으로 배치하였다. 이 능을 보호하기 위하여 영(令) 1 인과 참봉 1 인을 두어 관리하게 하였다.
(3) 목릉(穆陵)
목릉은 조선 14대 선조와 의인왕후(懿仁王后) 박씨 · 계비 인목왕후(仁穆王后) 김씨의 능인 목릉(穆陵)이 조성된 동원삼강릉(同原三岡陵)이다.
1600년에 의인왕후(1555~1600) 박씨가 승하하자 경기도 포천 신평에 터를 잡고 산릉(山陵: 국장을 하기 전에 아직 이름을 정하지 않은 새 능) 공역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터가 불길하다는 상소가 올라오자 터를 다시 정하여 건원릉(健元陵)의 동쪽에 산릉을 건립하고, 능 이름은 유릉(裕陵)이라 하였다.
1608년에 선조(宣祖, 1552~1608, 재위 1567~1608)가 승하하자 건원릉의 서쪽에 산릉을 만들고, 능의 이름을 목릉이라 하였다. 조성된 지 1년도 되지 않아 병풍석(屛風石)이 무너지고, 기울어지는 문제가 계속 일어났다. 1630년에 원주목사(原州牧使) 심명세(沈命世)가 상소를 올려 천릉(遷陵)을 논의하기에 이르렀다. 천릉의 터로 정한 곳이 의인왕후 박씨의 소릉 서남쪽으로 오늘날 선조의 목릉이 자리한 곳이다.
의인왕후 박씨 유릉(裕陵) 곁에 선조의 목릉이 들어서자 능의 이름을 합쳐 목릉(穆陵)이라 부르고, 정자각(丁字閣)을 하나로 통합하였다.
24년 뒤인 1632년에 계비인 인목왕후(仁穆王后, 1584~1632) 김씨가 승하하자 선조의 능침(陵寢) 동남쪽에 안장하고, 혜릉(惠陵)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능의 영역이 같으므로 세 능을 합하여 목릉(穆陵)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로써 동원삼강릉이 되었다.
➍ 휘릉(徽陵)
조선 제16대 왕 인조의 두 번째 왕비 장렬왕후(莊烈王后) 조씨의 능이다.
➎ 숭릉(崇陵)
조선 제18대 왕 현종(顯宗)과 왕비 명성왕후(明聖王后) 김씨의 능이다.
➏ 혜릉(惠陵)
조선 제20대 왕 경종의 첫 번째 왕비 단의왕후(端懿王后) 심씨의 능이다.
➐ 원릉(元陵)
조선 제21대 왕 영조(英祖)와 두 번째 왕비 정순왕후(貞純王后) 김씨의 능이다.
➑ 경릉(景陵)
조선 제24대 왕 헌종성황제(憲宗)와 첫 번째 황후 효현성황후(孝顯成皇后) 김씨, 두 번째 황후 효정성황후(孝貞成皇后) 홍씨의 능이다.
➒ 수릉(綏陵)
대한제국 추존황제 문조(文祖)와 황후 신정익황후(神貞翼皇后) 조씨의 능이다. 문조는 순조의 맏아들이자, 헌종의 아버지이며, 신정왕후 조씨는 헌종의 어머니이다.
* 분묘 조성 형태에 따른 구분
① 단릉(單陵) : 왕이나 왕비 중의 한 분만을 매장하여 봉분이 하나인 능
② 쌍릉(雙陵) : 왕과 왕비를 하나의 곡장 안에 모셔 봉분이 나란히 2 기로 조성된 능
③ 삼연릉(三連陵) : 왕ㆍ왕비ㆍ계비 등 3 분의 봉분 3 기를 나란히 조성한 능
ex) 경릉(헌종·효헌성황후·효정성황후)
④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 : 왕과 왕비의 능을 정자각 뒤 좌우 두 언덕에 각기 1 기씩 조성한 능
ex) 목릉(선조·의인왕후)
⑤ 합장릉(合葬陵) : 왕과 왕비의 관을 함께 매장하여 한 개의 봉분으로 조성한 능
ex) 홍릉(고종·명성태황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