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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 하느님의 어린양 주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기쁜 소식
그때에 16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자라신 나자렛으로 가시어,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리고 성경을 봉독하려고 일어서시자,
17 이사야 예언자의 두루마리가 그분께 건네졌다.
그분께서는 두루마리를 펴시고 이러한 말씀이 기록된 부분을 찾으셨다.
18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19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20 예수님께서 두루마리를 말아 시중드는 이에게 돌려주시고 자리에 앉으시니,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의 눈이 예수님을 주시하였다.
2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22 그러자 모두 그분을 좋게 말하며,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은총의 말씀에 놀라워하였다.
그러면서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하고 말하였다.
23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틀림없이 ‘의사야, 네 병이나 고쳐라.’ 하는 속담을 들며,
‘네가 카파르나움에서 하였다고 우리가 들은 그 일들을
여기 네 고향에서도 해 보아라.’ 할 것이다.”
24 그리고 계속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25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삼 년 육 개월 동안 하늘이 닫혀
온 땅에 큰 기근이 들었던 엘리야 때에,
이스라엘에 과부가 많이 있었다.
26 그러나 엘리야는 그들 가운데 아무에게도 파견되지 않고,
시돈 지방 사렙타의 과부에게만 파견되었다.
27 또 엘리사 예언자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나병 환자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아무도 깨끗해지지 않고,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깨끗해졌다.”
28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 화가 잔뜩 났다.
29 그래서 그들은 들고일어나 예수님을 고을 밖으로 내몰았다.
그 고을은 산 위에 지어져 있었는데,
그들은 예수님을 그 벼랑까지 끌고 가
거기에서 떨어뜨리려고 하였다.
30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
루카 4,16-30
연중 제22주간 월요일
미국의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 (Edward T. Hall)은 ‘프로세믹스’(Proxemics)라는 근접학 이론을 발표했습니다. 친밀한 거리, 개인적 거리, 사회적 거리, 공적 거리에서 느끼는 감정이 각각 다르다는 것이지요. 즉, 45Cm 이내의 친밀한 거리에서의 어투, 말의 내용, 표정, 행동방식 등은 120~360Cm의 사회적 거리에서 하는 것과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 예로 권력자 옆에 있는 사람을 들지요. 권력자 옆에 위치하고 있는 사람은 항상 실세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친밀하지 않은 사람이 옆에 있으면 불편하기 때문에 권력자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은 가장 가깝고 그래서 실세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 말에 큰 공감을 하게 됩니다. 실제로 제 옆에 있어도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을 떠올려보면 다 친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만약 낯선 사람이나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사람이 제 곁에 있으면 불편한 것이 사실이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제일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떠올려 보십시오. 누구십니까? 그 사람이 제일 편한 사람이며, 사랑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들을 떠올리다보니, 짧은 이 세상의 삶을 뛰어넘어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는 하느님 나라에서 살기 위해서는 누구와 친해져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바로 주님이십니다. 그런데 주님과 얼마나 가까운 사이인가요?
주님과 45Cm 이내의 친밀한 관계를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신 것 같습니까? 가족을 제외한 친밀한 관계를 생각하면, 많이 알기 위해 대화를 나눴고 나의 관점보다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이해하려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과는 어떤가요? 일주일에 한 번 주일 미사 참석하는 것으로 과연 주님과 친밀한 관계에 도달할 수 있을까요? 더군다나 맨 앞자리도 아닌 맨 뒷자리를 선호하고, 미사 시간에 약간 늦게 오고 미사가 끝나기도 전에 할 일이 있다며 서둘러 일어나 나가면서 과연 친밀한 관계라 말할 수 있을까요?
이천 년 전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이사야 61장을 인용하면서 하느님의 기쁜 소식을 회당에서 선포하십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이 기쁜 소식을 정말로 기쁜 소식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주님의 뜻과 함께 하는 친밀한 관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신앙을 무거운 짐처럼 불편하게 생각하고, 주님을 증거하는 것을 부끄러운 행동처럼 여겨서도 안 됩니다.
이제는 주님과 친밀한 관계에 있는 우리가 됩시다. 주님께서 가장 신뢰하는 그래서 당신의 옆자리를 내어줄 만큼 가까운 사이가 될 수 있도록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의 기쁜 소식이 삶 안에서도 계속해서 울려 퍼지는 힘찬 울림이 될 수 있습니다( 조명연 신부님 「오늘의 묵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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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 조명연 신부님 글 하나 더 드립니다~~
「샬롬(자크 필립, ‘평화 안에 머물러라’에서)」
우리 죄가 이웃에 대한 자비와 친절의 원천이 될 수 있음도 알아야 한다.
그토록 쉽게 넘어지는 나인데 어떻게 내 형제를 판단할 수 있을까? 어떻게 주님에 내게만 지비로우시고 내 형제에게는 자비롭지 않으시겠는가?
그러므로 어떤 잘못을 했든 자신 안에 웅크리며 낙담하는 대신 곧바로 하느님께 신뢰하며 돌아서고 하느님이 그 잘못에서 끌어내실 수 있는 선에 대해 감사드려야 한다.
***<전동 칫솔이 나와도 칫솔은 버려지지 않았다. 티브이가 나와도 라디오는 사라지지 않았으며, 새로운 노래가 나와도 옛 노래는 끊임없이 연주된다. 새로운 것은 환영받지만, 익숙한 것은 사랑받는다(오늘의 명언에서)>
연중 제22주간 월요일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루카 4,16-30)
「主の霊がわたしの上におられる。
貧しい人に福音を告げ知らせるために、
主がわたしに油を注がれたからである。
主がわたしを遣わされたのは、
捕らわれている人に解放を、
目の見えない人に視力の回復を告げ、
圧迫されている人を自由にし、
主の恵みの年を告げるためである。」
(ルカ4・16-30)
The Spirit of the Lord is upon me,
because he has anointed me
to bring glad tidings to the poor.
He has sent me to proclaim liberty to captives
and recovery of sight to the blind,
to let the oppressed go free,
and to proclaim a year acceptable to the Lord.
(LK 4:16-30)
年間第22月曜日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연중 제22주간 월요일)
「主の霊がわたしの上におられる。
슈노 레에가 와타시노 우에니 오라레루
貧しい人に福音を告げ知らせるために、
마즈시이 히토니 후쿠인오 츠게시라세루 타메니
主がわたしに油を注がれたからである。
슈가 와타시니 아부라오 소소가레타카라데 아루
主がわたしを遣わされたのは、
슈가 와타시오 츠카와사레타노와
捕らわれている人に解放を、
토라와레테이루 히토니 카이호오오
目の見えない人に視力の回復を告げ、
메노 미에나이 히토니 시료쿠노 카이후쿠오 츠게
圧迫されている人を自由にし、
앗파쿠사레테이루 히토오 지유우니 시
主の恵みの年を告げるためである。」
슈노 메구미노 토시오 츠게루 타메데 아루
(ルカ4・16-30)
The Spirit of the Lord is upon me,
because he has anointed me
to bring glad tidings to the poor.
He has sent me to proclaim liberty to captives
and recovery of sight to the blind,
to let the oppressed go free,
and to proclaim a year acceptable to the Lord.
(LK 4:16-30)
Monday of the Twenty-second Week in Ordinary Time
LK 4:16-30
Jesus came to Nazareth, where he had grown up,
and went according to his custom
into the synagogue on the sabbath day.
He stood up to read and was handed a scroll of the prophet Isaiah.
He unrolled the scroll and found the passage where it was written:
The Spirit of the Lord is upon me,
because he has anointed me
to bring glad tidings to the poor.
He has sent me to proclaim liberty to captives
and recovery of sight to the blind,
to let the oppressed go free,
and to proclaim a year acceptable to the Lord.
Rolling up the scroll,
he handed it back to the attendant and sat down,
and the eyes of all in the synagogue looked intently at him.
He said to them,
“Today this Scripture passage is fulfilled in your hearing.”
And all spoke highly of him
and were amazed at the gracious words that came from his mouth.
They also asked, “Is this not the son of Joseph?”
He said to them, “Surely you will quote me this proverb,
‘Physician, cure yourself,’ and say, ‘Do here in your native place
the things that we heard were done in Capernaum.’”
And he said,
“Amen, I say to you, no prophet is accepted in his own native place.
Indeed, I tell you,
there were many widows in Israel in the days of Elijah
when the sky was closed for three and a half years
and a severe famine spread over the entire land.
It was to none of these that Elijah was sent,
but only to a widow in Zarephath in the land of Sidon.
Again, there were many lepers in Israel
during the time of Elisha the prophet;
yet not one of them was cleansed, but only Naaman the Syrian.”
When the people in the synagogue heard this,
they were all filled with fury.
They rose up, drove him out of the town,
and led him to the brow of the hill
on which their town had been built, to hurl him down headlong.
But he passed through the midst of them and went away.
2024-09-02「主がわたしを遣わされたのは、主の恵みの年を告げるためである。預言者は、自分の故郷では歓迎されないものだ。」
+神をたたえよう。神は偉大、すべては神に造られた。
おはようございます。
今日は年間第22月曜日です。
慈しみ深い主・イエス・キリストと被昇天の聖母マリア、聖母の配偶者聖ヨゼフ、諸聖人の大いなる祝福がありますように!
また、大天使とすべての天使、私たちの守護の天使が今日も皆さまを見守り平和でありますようお祈りし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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ルカによる福音
<主がわたしを遣わされたのは、主の恵みの年を告げるためである。預言者は、自分の故郷では歓迎されないものだ。>
そのとき、4・16イエスはお育ちになったナザレに来て、いつものとおり安息日に会堂に入り、聖書を朗読しようとしてお立ちになった。17預言者イザヤの巻物が渡され、お開きになると、次のように書いてある個所が目に留まった。
18「主の霊がわたしの上におられる。
貧しい人に福音を告げ知らせるために、
主がわたしに油を注がれたからである。
主がわたしを遣わされたのは、
捕らわれている人に解放を、
目の見えない人に視力の回復を告げ、
圧迫されている人を自由にし、
19主の恵みの年を告げるためである。」
20イエスは巻物を巻き、係の者に返して席に座られた。会堂にいるすべての人の目がイエスに注がれていた。21そこでイエスは、「この聖書の言葉は、今日、あなたがたが耳にしたとき、実現した」と話し始められた。22皆はイエスをほめ、その口から出る恵み深い言葉に驚いて言った。「この人はヨセフの子ではないか。」23イエスは言われた。「きっと、あなたがたは、『医者よ、自分自身を治せ』ということわざを引いて、『カファルナウムでいろいろなことをしたと聞いたが、郷里のここでもしてくれ』と言うにちがいない。」24そして、言われた。「はっきり言っておく。預言者は、自分の故郷では歓迎されないものだ。25確かに言っておく。エリヤの時代に三年六か月の間、雨が降らず、その地方一帯に大飢饉が起こったとき、イスラエルには多くのやもめがいたが、26エリヤはその中のだれのもとにも遣わされないで、シドン地方のサレプタのやもめのもとにだけ遣わされた。27また、預言者エリシャの時代に、イスラエルには重い皮膚病を患っている人が多くいたが、シリア人ナアマンのほかはだれも清くされなかった。」28これを聞いた会堂内の人々は皆憤慨し、29総立ちになって、イエスを町の外へ追い出し、町が建っている山の崖まで連れて行き、突き落とそうとした。30しかし、イエスは人々の間を通り抜けて立ち去られた。(ルカ4・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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チョ・ミョンヨン神父様の「今日の黙想」です。
アメリカの人類学者エドワード・ホール(Edward T. Hall)は「近接学」(プロクセミックス)という理論を発表しました。親密な距離、個人的な距離、社会的な距離、公的な距離で感じる感情がそれぞれ異なるということです。つまり、45cm以内の親密な距離での話し方、話の内容、表情、行動様式などは、120〜360cmの社会的距離で行うものとは全く異なるのです。その例として、権力者の隣にいる人を挙げます。権力者の隣に位置している人は常に実力者と言います。なぜなら、親密でない人が隣にいると不快なので、権力者のすぐ隣にいる人は最も親しいため、当然ながら実力者であるということです。
この言葉に非常に共感します。実際に私の隣にいても何も感じない人を思い浮かべてみると、すべて親しい人です。そして、もし知らない人やネガティブな評価を受けている人が私のそばにいると、不快であるのは事実だからです。今あなたの一番近くにいる人を思い浮かべてみてください。誰ですか?その人が一番安心できる人であり、愛する人なのです。このようなことを考えていると、この短い世の生を超えて永遠の命が与えられる神の国で生きるためには誰と親しくなるべきかを考えさせられます。それは主です。しかし、主とどれくらい親しい関係にあるのでしょうか?
主と45cm以内の親密な関係を築くために、あなたはどのような努力をしているのでしょうか?家族を除いた親密な関係を考えてみると、たくさん話をして多くを知り、私の視点よりも相手の立場で考え、理解しようとしたことがわかります。しかし、主とはどうでしょうか?週に一度の日曜ミサに出席するだけで、本当に主と親密な関係に達することができるのでしょうか?さらに、前の席ではなく一番後ろの席を好み、ミサの時間に少し遅れて来て、ミサが終わる前に用があると急いで立ち去ったりしながら、本当に親密な関係といえるでしょうか?
二千年前、この地に来られたイエス様は、イザヤ書61章を引用しながら神の喜ばしい知らせを会堂で宣言されます。
「貧しい人に福音を告げ知らせ、
捕らわれている人に解放を、
目の見えない人に視力の回復を告げ、
圧迫されている人を自由にし、
主の恵みの年を告げるためである。」
この喜ばしい知らせを本当に喜ばしい知らせとして受け入れるためには、主の御心と共に親密な関係を築かなければなりません。信仰を重荷のように不快に感じ、主を証しすることを恥ずかしい行動のように見なしてはなりません。
これからは主と親密な関係にある私たちになりましょう。主が最も信頼し、あなたの隣の席を用意するほど近い関係になれるように、主の御心通りに生きていく私たちにならなければなりません。そうしてこそ、主の喜ばしい知らせが生活の中でも響き続ける力強い響きとなることができるの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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毎日の喜びのお知らせである福音を読み、主の御心を聞き、主を証し、主を伝えながら愛を生きることができますように聖霊、きてくださ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