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14-04-13 08:15:00.0 수정일 : 2014-04-13 08:15:00.0
넓디넓은 동해 바다에 우뚝 솟은 화산섬 울릉도는 너무도 잘 알려진 곳이다. 72.86㎢의 넓이에 전답이 겨우 12.96㎢ 뿐인 이 섬의 인지도가 그리 높은 건 빼어난 경관과 어업 전진기지라는 통상적 이유 말고도 독도와 더불어 최동단에서 대한민국을 상징하기 때문이리라. 특히 일본에게.
이 섬을 울릉군에서는 도둑과 공해와 뱀이 없고(三無), 물과 미인, 돌과 바람 그리고 향나무가 많다(五多)고 자랑하며 관광객을 불러 모으고 있다.
울릉도 가는 길은 포항(217㎞ - 도동), 강릉(178㎞-저동), 후포(159㎞-저동), 묵호(161㎞-도동) 등 네 곳에 열려있는데 나는 강릉에서 출발하는 배를 탔다. 오전 8시 30분. 편도 49,000원.
쾌속선 씨스타 호에 몸을 실은지 3시간 반만에 울릉도 저동항에 도착하여 울릉도가 자랑하는 따개비 국수로 점심 요기를 하고 택시를 이용 내수전 일출전망대를 찾았다. 하지만 사방에 안개만 가득했다. 검푸른 동해의 광활한 수평선은 상상으로만 그려보고 전망대에서 섬목까지 트래킹에 나섰다. 걸어서 약 2시간 반의 거리다. 다행히 안개도 점차 걷히기 시작했다. 나무와 풀꽃과 바다를 보면서 걷는 재미는 쏠쏠하다. 거기에 심심찮게 새들이 노래로 환영까지 해주니 자동차 소음에 찌든 귀에 신선한 기쁨이 된다. 그 길을 가다 만나는 죽도에는 현재 한 가구가 사는데 도동항에서 죽도유람선을 타고 갈 수 있다. 죽도는 산책로와 좋은 전망이 방문객을 즐겁게 한다.
섬목에 도착하니 거기서부터는 포장도로가 이어졌다. 울릉도의 자동차 일주도로의 한쪽 시작점인 셈이었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섬목에서 300여m 가다 만나는 석포에서 관음도를 다녀와도 좋다. 관음도를 가려면 입장료를 내야 하고, 다리도 건너야 된다.
석포에서 도동쪽으로 500여m 떨어진 곳에 선창이라는 자그마한 선착장이 있다. 저동까지 왕래하는 유람선이 오가는 곳이다. 요금은 성인 1인 기준 편도 6,000원. 유람선을 타야 울릉도 3대 경관의 하나라고 하는 관음쌍굴을 비롯하여 울릉도 동북쪽 해변의 풍광을 제대로 구경할 수 있다. 관음쌍굴 천정에서 떨어지는 물을 받아먹으면 장수한다는 속설이 있는데, 글쎄 그걸 먹어본 사람이 몇 명일까는 궁금한 사항이다. 유람선을 타는 이 코스는 단체 관광으로는 놓치기 쉽다.
이렇게 첫 날 일정을 마무리하고 울릉도 진미라는 따개비비빔밥을 거금 15,000원을 주고 먹었지만 내 입에는 흡족한 맛이 아니었다.
이튿날, 일어나면서 제일 먼저 창문을 열고 하늘을 보았지만 아쉽게도 하늘은 여전히 구름이 가득했다. 비가 오지 않는 것만도 다행이라고 여기며 민박집을 나섰다. 울릉도 최고봉인 성인봉 산행을 위해. 성인봉(984m)을 거쳐 나리분지로 가는 출발점은 세 개가 있다. 대원사, KBS 중계소, 안평전 등인데 주로 택시를 이용해 일차 목적지까지 이동한다. 물론 도동이나 저동에서부터 걸어 올라가도 뭐랄 사람은 없으나 체력과 시간 절약을 위해 대부분 이 방법을 취한다. 택시기사에게 성인봉 오르는 가장 빠른 시작점을 물으니 안평전인데, 그 코스는 경사가 심한 게 흠이란다. 택시비 2만원을 내고 태워다달라고 부탁했다. 안평전에서 성인봉까지 2.8㎞, 성인봉에서 나리분지까지 4.5㎞가 오전에 걸어야 할 거리였다.
250만년 전에 화산의 분출로 생긴 성인봉에 서면 울릉도가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구름 속에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바다와 뾰족한 능선으로 얽힌 초록빛 산들이 참 좋았다. 그래. 참 좋다는 말 이외에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아쉬웠던 건 성인봉 돌탑 앞에 늘어선 사람들 때문에 편안하게 조망을 즐기지 못한 점이었다. 흔한 말로 인증 사진 찍을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평일인데도 저리 많다니! 나도 서둘러 성인봉이라 새겨진 돌을 카메라에 모셔넣고 나리 분지로 향했다.
나리(羅里) 분지(盆地) 면적은 2.0㎢가 채 안 되고 동서길이 1.5km, 남북길이 2km 규모(제일 긴 곳 기준)로 울릉도에서는 유일한 평지라고 할 수 있는 이 자그마한 분지는 성인봉 북쪽의 칼데라 화구(火口)가 함몰되면서 생겼다는 게 학계의 설명이다.
분지 주위를 외륜산(外輪山 : 성인봉은 외륜산의 하나이자 울릉도 최고봉)이 둘러싸고 있어 거기 서면 더없이 아늑하고 편안하다. 마치 그리운 어머님의 품에 안긴 기분이다. 무릉도원에 온 느낌이다.신성수라 이름 붙은 지하수 한 바가지로 생기를 불어넣고 편안한 분지 흙길을 걷는 즐거움은 또한 얼마나 좋은가! 나리 분지에서 국가지정 중요민속자료 256호로 지정된 투막집과 너와집을 접하게 되는 것도 덤의 즐거움이다.
나리 분지에는 비교적 넓은 농경지가 조성되어 있는데 특산물인 명이나물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얼마 전까지 명이나물은 울릉도에서만 자생했는데 이제는 뭍에서도 재배 기술이 발달하여 집단 재배가 가능해졌다.
나리분지에서 산채 비빔밥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천부항 가는 버스를 탔다. 천부항에서 추산 몽돌해변 - 태하 해안도로 - 항목전망대 - 성하신당까지 14km여를 해안 도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물론 버스를 이용해 이름 난 곳에서 내려 구경할 수도 있지만 체력이 허락하는 한 바다와 산과 돌과 갈매기와 친하고 싶어 걷는 걸 택했다. 걸으면 새로운 경관의 정취를 맛보는 기쁨만 있는 게 아니다. 자연산 미역을 채취하는 분들도 만나고, 물질하는 해녀도 만나는 것도 재미다. 그렇게 걷다 잠시 맑은 해변에 서면 예쁜 자태를 서로 자랑하는 여러 물고기도 구경할 수 있어서 더욱 좋다.
이 구간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곳은 코끼리 바위로 널리 알려진 천부항 주변의 바위들과 태하 해안산책로, 항목 전망대다. 특히 항목 전망대의 경우 대부분의 관광객은 태하에서 해안 산책로 100여m를 맛보기로 걷고 모노레일을 타고 고개를 올라 항목 전망대로 향하지만 나는 모노레일을 생략하고 해안 산책로에서 항목 전망대까지 걸었다. 물론 다리는 힘들다고 아우성이지만 주변 풍치가 충분한 보상을 해준다. 항목 전망대는 월간 산이 선정한 한국의 10대 비경 중의 하나다. 뭐 달리 설명이 필요 없다. 기암괴석의 절벽과 맑은 바다, 시원한 조망…. 더 바랄 게 뭐 있을 것인가. 전망대 부근의 대풍감향나무 자생지는 천연기념물 49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유명한 성하신당은 태하마을 큰 길가에 있었다. 성하신당에 얽힌 전설은 슬프다. 조선 태종 때 울릉도 공도(空島)정책의 일환으로 안무사 김인우는 주민들을 배에 태우고 떠날 준비를 마친 날 밤 꿈에 해신으로부터 동남동녀 한 쌍을 놓고 떠나라는 말을 들었다. 아침이 되어 별 생각 없이 출항 준비를 하는데 폭풍우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그제야 꿈을 기억하고 동남동녀 한 쌍을 선발하여 자신이 거처하던 곳에서 필묵을 가져오라고 보내자 폭풍우가 가라앉았고 배는 출항할 수 있었다. 두 아이들이 늘 마음에 걸리던 김인우는 몇 년 후 울릉도를 다시 찾게 되었는데, 꼭 안은 아이들의 유골을 발견하고 그 곳에 사당을 짓고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다. 이 풍습은 최근까지도 이어져 매년 삼짇날에는 사당에서 풍년과 풍어를 빌고, 새 배의 진수 때도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이튿날 아침을 일찌감치 먹고 2.6km 길이의 도동에서 저동을 잇는 해안 산책에 나섰다. 대부분의 구간이 바위를 파고, 다리를 놓고, 철제빔을 바위에 박아 만든 만큼 주변 경관이 아주 탁월했다. 자연동굴, 몽돌 해수욕장, 행남등대, 선형수직계단, 무지개 다리, 촛대암 등등 모두 찬탄의 대상이 된다. 눈과 마음이 황홀한 기쁨을 맛보다 보면 한 시간 반이라는 시간은 언제 가는지도 모른다.
저동항까지 가서 버스를 타고 다음 행선지인 봉래폭포로 향했다. 이 폭포는 울릉도 내륙 최고의 명승지로 꼽히는 곳이다. 높이가 25m에 삼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의 신비는 참 놀라워서 이 높은 산에, 그것도 보수성(保水性)이 적은 현무암류와 이를 덮고 있는 조면암과 응회암으로 구성된 땅에 어디에서 지하수가 솟고, 그게 어떻게 모아져 폭포가 되는 지 믿기지 않는다. 바다 한 가운데 생긴 이 섬에 솟아나는 지하수는 섬에 정착한 사람들에게는 오아시스나 다름 없었으리라.
폭포를 돌아본 뒤 도동항으로 걸어 나와 일찍 점심을 해결하고 독도 전망대로 향했다. 전망대 입구에서 전망대까지는 케이블카를 이용해야 한다. 이 전망대는 시가지 전망대와 해안 전망대 두 곳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해안 전망대가 더 볼만하다. 비록 흐린 날씨 때문에 독도까지는 보지 못했지만 그런대로 전망은 좋았다.
울릉도의 버스는 관광지 연결이 잘 되어 있어 미리 운행시간을 파악한다면 여행 경비 절감에 도움이 됨을 덧붙여야겠다.
이번 울릉도 여행길에서 아직도 아쉬움으로 남는 게 있으니 흐린 하늘과 우리 땅 동쪽 끝에서 굳건히 대한민국의 방패 구실을 하고 있는 독도를 가보지 못하고 돌아온 것이다.
어쩌면 이 아쉬움이 언젠가 나를 다시 울릉도로 내몰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