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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백담사 대청봉 공룡능선 산행 후기
일시: 6.30일(일) 03:10용대리- 16:00 설악동(약 35킬로)
코스: 용대리-백담사-영시암-오세암-봉정암-소청-중청-대청-중청-소청-휘운각-공룡능선-마등령-비선대-소공원
1. 드림팀의 ‘자유’-다기망양(多岐亡羊)
철쭉꽃 피기 전에 설악에 간다고 했는데 철쭉꽃도 다 지고난 후에 너무 늦게 그곳에 갔다. 작년에는 지리산에 앞서 찾는 산이 설악산이었건만, 이번엔 지리를 앞세우고 설악은 마지못해 찾듯, 올해 상반기 마지막 날- 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에 찾아가게 되었다.
드림팀은 자유다. 이 말은 카페지기 산삼님의 철학이 담긴 말이다. 드림팀의 산행에 애정을 듬뿍 갖고 계신 산삼님, 드림팀에겐 늘 주어진 시간 내에 마음껏 코스를 정해 산행을 할 수 있는 자유를 제공하신다. 그래서 드림팀에는 산행 대장이 따로 없다. 가는 분들끼리 의논해서 그날의 코스를 정할 뿐이다. 특히 이번 산행에는 거리가 긴 만큼 가는 길도 여러 길이다. 그러니 산 속 기후 변화만큼이나 가는 이의 마음도 자주 바뀔 수밖에...
‘多岐亡羊(다기망양)’이라 했든가? “달아난 양을 찾다가 여러 갈래 길에 이르러 길을 잃었다”는 뜻으로 열자(列子)에 나오는 말- 코스가 다양하다 보니-드림팀, 자연팀, 우리팀- 가는 순간까지 내 마음은 목표점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방의 마음 갈대처럼 흔들린다. 으례히 치북님팀에 낄까? 이번엔 기록산행을 하지 않고 ‘즐산’을 하신단다. 더운 날 ‘대청’에 갈 이유가 없단다. ‘만경대’와 공룡능선 최고봉 ‘1275’.신선봉 정상에 올라 주변의 장관을 감상하다 오는 코스다. 아니면 말객님처럼 드림팀의 최장코스38.5킬로(용대리-마등령-공룡-휘운각-대청-천불동)에 도전할까? 아니면 봉정암에서 대청봉거쳐 공룡능선을 탈까? 처음엔 치북님 팀대로 가겠다고 생각하고 막걸리 두 병 얼려서 배낭에 넣고 집을 나섰다.
2. 용대리-백담사-영시암
예정보다 삼심 분 일찍 새벽 세 시에 버스가 용대리에 우리들을 풀어 놓았다. 버스 안에서 어설픈 잠 때문에 비틀어질 듯 아픈 목-닭모가지 비틀 때 아픔이 이런 아픔 아닐까?-을 겨우 달래고 피곤한 몸을 수습한 채, 어둠 속에 장비를 꾸려, 우리는 백담사를 향해 각자 아니면 삼삼오오 산행을 시작한다. 보쌈해 가도 모를 어둠 속에서 불도 안 밝힌 채 홀로 생각에 잠겨 걸어가는 어여쁜 여성 회원님부터, 마치 축지법을 쓰듯 반바지차림에 쏜살같이 곁을 스쳐가는 말객님, 일찍 드신 술이 아직 안 깨신 듯 평소와 달리 발보다 빠른 말소리로 이 길로 송이 추렴하러 가던 일부터 여러 추억을 주워섬기시는 ‘간송님’얘기를 치북님과 함께 벗삼아 들으며 어둠 속의 백담계곡을 지나간다. 치북님은 누군가 알아보고 인사와 얘기를 건네는데 그 싹싹한 인사성은 어둠 속에도 예외 없이 발휘된다.장사하면 크게 성공하셨을 분 같은데...
백담은 특유의 하얀 돌과 풍성한 물대신 어둠 속에서도 곧은 소리로 자신의 존재감을 알린다. 백담이 아니라 흑담이다.-물론 백담이란 백개의 물웅덩이가 있는 곳이란 뜻인데 내가 한 번 말장난 해 본 소리다. 소리가 멀면 그만큼 계곡과 떨어진 것일 테고, 가까우면 바로 옆을 걷고 있는 것이겠지 생각하며, 달무리진 반달 아래 두 산이 포개진 안개 낀 계곡의 끝을 향해 걸어 갈수록 회원들의 모습은 반딧불처럼 희미하게 불빛만 여기 저기 보였다 사라졌다 한다. 실제 반딧불이가 길옆 암벽에서 잠깐씩 번쩍이기도 했었다. 다리를 몇 개 거쳐, 드디어 백담사의 일주문이 어둠 속에서도 그 위용을 드러냈다. 일 단계 코스 7킬로미터는 한 시간 십 여분 정도 걸렸다. 회원들이 잠시 쉬면서 서로 얼굴을 확인한다. 먼저 간 청산과 풍월님을 거기서 만났다. 풍월님과는 3월 어느날 산행 이후에 처음이다. 늘 배낭 속에 마실 것과 먹을 것을 많이 챙겨 무거운 배낭을 매시는 분으로 산에서 꼭 필요한 먹을 것을 주방장처럼 조리해서 대접해 주시기에 회원들에게 항상 함께 가고 싶은 분으로 꼽힌다.오늘도 짜파게티 먹이겟다고 각종 장비와 5리터 물을 지고 가신다.3월 어느 날 경기도 빡빡산에서 먹은 떡,햄버거 라면 맛은 얼마나 맛있었는지 잊히지 않는다. 청산님은 치북님 부군으로 산에 오면 간송님께 어부인은 맡기고 앞장서서 먼저 가시는 편이다. 이번에도 ‘이혼’당하지 않으려고 간신히 산에 발걸음을 하신 모양이다. “류현진 야구도 봐야지, 바둑도 둬야지” 댁에서 하고 볼 일이 많은 날일 텐데..청산님은 ‘아내 무섬장이’가 아닐까.남자들 다 저렇게 사는 거죠? 간 큰 남자 멸종시대에..간송 사장님 빼고.
날이 서서히 밝아지면서 만해 한용운 선생이 떠오르는 곳이며, 전 대통령도 흔적을 남겨 유명해진 절인 백담사의 모습이 보인다. 백담계곡의 진수가 펼쳐진다. 안개 낀 산을 배경으로 절벽 옆에 마치 중국의 ‘잔도’처럼 놓여진 길을 따라 오른 편에 펼쳐진 무수한 흰 돌 사이를 흐르는 맑은 계곡물을 만끽하며 영시암을 향해 걸어간다. 이 길은 설악산에서 본 풍경중 가장 다정다감한 느낌을 주었다. 설악은 안 가도다시 보고 싶어 백담을 들르게 할 만한 곳이다. 특히 무수한 하얀 돌의 모습은 마종기 시인의 ‘강원도의 돌’을 떠올리게 한다.
나는 수석(水石)을 전연 모르지만/참 이쁘더군,/강원도의 돌./골짜기마다 안개 같 은 물냄새 /매일을 그 물소리로 귀를 닦는/ 강원도의 그 돌들,/참, 이쁘더군.
세상의 멀고 가까움이 무슨 상관이리./물 속에 누워서 한 백년,/하늘이나 보면서 구 름이나 배우고/ 돌 같은 눈으로/ 세상을 보고 싶더군.
세속을 떠나 자유롭고 편안하게 살아가는 흰 돌들의 모습이 너무 예쁘게 보인다. 새벽에 바라본 백담사의 돌처럼 자유롭게 누리고 사는 <자연속> 회원님들의 모습도 정말 “아침의 천사”[‘Angel of the morning']가 아닐까? 특히 백담의 아름다운 계곡을 배경으로 선 <자연 속> 카페의 어여쁜 여성회원들 안경 낀 내 눈엔 모두 다 ’창 밖의 여자‘로 보인다.
3. 영시암-오세암-봉정암
영시암에서 약수로 목을 축인 뒤에 이젠 길을 확정해야 할 차례다. 영시암에서 봉정암을 경유해서 대청으로 가는 길이 가장 수월하고, 오세암, 마등령 거쳐 공룡을 타고 대청에 오르는 길은 가장 멀다. 물론 대청을 포기하는 선택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일단 오세암까지 가기로 했다. 오세암은 꼭 가 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세암이 ‘아제 아제 바라 아제’와 같은 여러 영화에 나온 유명한 암자여서가 아니라 또 만경대에서의 조망이 멋지다는 치북님팀과의 제안 때문도 아니었다. 몇 십 년 전 추억이 있는 곳이기에 그 추억의 공간으 다시 가보기 위해서다.
오세암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는 곳이다.
이 암자를 오세암이라고 한 것은 1643년(인조 21)에 설정(雪淨)이 중건한 다음부터 이며, 유명한 관음영험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설정은 고아가 된 형님의 아들을 이 절에 데려다 키우고 있었는데, 하루는 월동 준비 관계로 양양의 물치 장터로 떠나게 되었다. 이틀 동안 혼자 있을 네 살짜리 조카를 위해서 며칠 먹을 밥을 지어 놓고는, “이 밥을 먹고 저 어머니(법당 안의 관세음보살상)를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하고 부르면 잘 보 살펴 주실 것이다.”고 하는 말을 남기고 절을 떠났다. 장을 본 뒤 신흥사까지 왔는데 밤새 폭설이 내려 키가 넘도록 눈이 쌓였으므로 혼자 속을 태우다가 이듬해 3월에 겨 우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런데 법당 안에서 목탁소리가 은은히 들려 달려가 보니, 죽은 줄만 알았던 아이가 목탁을 치면서 가늘게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있었고, 방 안은 훈훈 한 기운과 함께 향기가 감돌고 있었다. 아이는 관세음보살이 밥을 주고 같이 자고 놀아 주었다고 하였다. 다섯 살의 동자가 관세음보살의 신력으로 살아난 것을 후세에 길이 전하기 위하여 관음암을 오세암으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이십여 년 전 신혼 초 한 겨울에, 그 즈음은 설화 속처럼 눈이 많이 내렸었다. 집사람과 함께 설악산을 등산하기로 한 뒤 비선대까지 올랐다가 몇 사람들이 가길래 입산금지구역인 마등령쪽으로 무모하게 길을 잡게 되었다. 눈으로 인해 길이 없어지고 줄곧 오름길이 계속되었는 데 아주 힘겨웠다. 같이 가던 분들이 몇 있었지만 그분들도 안 보이고 우리 부부만 계속 걸었다.그래도 그 날 중 용대리로 넘어갈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생각에 걸음을 재촉했다.중간에 라면을 끓여 먹으려 했지만 추위에 가스 버너가 잘 작동되지 않았고 겨우겨우 설익은 라면을 먹었던 것 같다.우여곡절 끝에 다섯 시가 넘어 오세암에 도착했다. 용대리까지 길을 모른체 계속 갈까 하다가 날이 어두워지는 기미가를 보이기에, 거기에 불목하니로 계시는 아주머니에게 물어 불을 때지 않은 요사채에서 겨우 자고 갈 수 있게 해 주셨다. 밤에 어찌나 춥던지 둘이 꼭 껴안고 잠을 청해도 한 시간도 못 돼서 계속 잠이 깨곤 하면서 거의 날밤 새우듯 하루밤를 지냈다.그 다음날 용대리까지 걸어 나오는데 어찌나 멀던지 만약 오세암에서 자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하는 생각이 미치자 모골이 송연했던 기억이 있는 곳이다. 혹시 죽어 신문에 날 수도 있었던 일이었겠죠? 오세암의 설화에 나오는 관세음보살이 우리에게도 미치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래서 늘 고마운 곳으로 기억되는 암자인데 그 이후로는 처음으로 방문하게 되니 이곳을 지나칠 수 없었던 것이다. 오세암의 그 요사채는 그대로인 것 같은데 옛 모습이 잘 생각이 나지 않고 감회만 사무쳤다.
그런데 오세암에서 우연찮게 두 번째 가호를 입게 되었다. 말객님처럼 긴 종주에 도전해 볼까 생각했지만 “좃도 무리데스네”라는 생각이 들었고, 대청봉에 안 가신다는 치북님 팀의 생각과도 뜻이 안 맞는 것 같아 -무박 종주가 필요없잖아? 당일로도 가능한데- 그래서 봉정암으로 해서 대청에 가자고 생각하여 치북님 팀과 헤어져서 길을 가려는데 아침공양을 위해 사람들이 줄 서있다. 잽싸게 줄을 서서 식판에 찐 밥과 미역국, 오이짠지로 된 아침 공양을 먹었다. 이날 부상없이 종주를 잘 할 수 있었던 비결은 오세암의 아침공양 덕분인 것 같다. 오세암에 오면 좋은 일이 생기나 보다.
오세암에서 봉정암으로 가는 길은 순례자의 길처럼 새벽부터 봉정암에서 오는 많은 신도들이 보인다. 지나가면서 들으니 왁살스런 경상도 사투리뿐이다. 이 강원도 땅에 있는 오세암이 옛 불국의 나라의 후예들인 경상도에서 온 불제자들의 성지 순례지가 된 것 같다. 물이 흐르는 봉정암 계곡부터 봉정암까지 약 1.5킬로미터는 가파른 오름길이라 숨이 찬다. 봉정암 정상에 오르니 좌청룡 용아장성과 우백호 공룡능선이 가까이 보인다. 그 아래 수백 명 이상 수용가능하다는 봉정암에 사람들로 붐빈다. 잠시 쉬다가 황토, 호거님 일행을 뵈었다.
죠대장일행은 소청으로 향했다고 한다. 그분들은 내가 내려온 길을 올라 적멸보궁을 보러간단다. 기다리다 혼자 소청으로 향한 길을 걸었다.
4. 소청-중청-대청-휘운각
봉정암에서 대청까지 가파른 오름길에 연속이었다. 이미 봉정암을 오르느라 지칠대로 지친 육신을 다시 휘잡고 올라가야 했다. 소청 산장에 이르니 가까운 용아장성, 공룡능선부터 저 멀리 저항령 너머 황철봉이 정면으로 보이고 왼 편으로는 서북능선 귀때기 청봉과 오른 편으로는 구름 속에 모습을 내민 울산바위의 모습까지 설악산 전경이 한눈에 다 들어온다.만경대 못지 않은 조망터이다. 중청 근처에서 공룡으로 향하는 죠대장 부부를 만났다. 연일 30도가 넘는 날씨에 대청에 오르는 일은 가기 전에는 끔찍한 상상이었건만 막상 대청에 오를 때 선득선득함이 느껴질 정도로 가을 같은 계절감이 느껴졌다. 대청에는 아직 여름이 오지 않은 것 같다. 날씨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대청봉은 8월은 되야 진짜 한여름이 될 것 같다. 지난 가을 대청에 올랐을 때처럼 세찬 바람에 몸을 숨길 곳 없는 굴뚝새같은 꼴이 될까 걱정했는데 대청에는 바람도 없고 올라오는 사람도 별로 없어 고요함마저 느껴졌다.
이내 하산하다 벌써 마등령과 공룡, 휘운각을 거쳐 대청 정상에 올라오시는 말객님을 만나 그 엄청남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오늘은 즐기면서 천천히 올라오는 것이라는 말이 더욱 더 놀라게 한다. <자연 속>의 ‘국대’이자 ‘어나니머스’인 말객님에 대해서는 전설같은 얘기와 말씀은 많이 들어봤지만 지난 해 달마산 이후 나도 등산하시는 모습을 처음 본 것이다.
그 능력을 실감할 수 있는 기회였다. 말객님은 비유컨대 풍부한 재력으로 과시적인 소비를 일삼는 등산계의 ‘유한계층’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반면에 말객님의 후예가 되고자 기록에 도전하는 우리같은 사람들은 유한계층을 모방해서 자신의 경제력을 넘어 과시적인 소비를 일삼는 등산계의 ‘하층계급’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층계층은 유한계층에 대해 시기와 선망을 함께 갖듯, 우리들 심리 속에도 그런 비슷한 것이 없을 수 없다. 하지만, “ 뱁새가 황새 따라하다 가량이 찢어진다 ” 속담처럼 오르지 못할 나무 쳐다보지 말아야겠다. 후에 하산주를 함께 하면서 그동안 신비에 가려진 말객님을 모시고 말씀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J3에 산행 후기를 올리기도 하시기에 우리는 모두 산악계의 ‘아이리스’가 아닐까 생각했지만, 그냥 후기만 몇 번 올리셨다고 한다. 50대 후반 나이에 40초중반 정도로 보이는 동안이시다. 아마 바둑 5단에 마라톤 풀코스를 세 시간(겸손하게 서브 3는 아직 못 했다고 하시지만)에 완주하시고 테니스 고수이시다. 또 어떤 능력이 있으신지는 모르겠다.다만 양파처럼 벗길수록 계속 재능이 나올 것 같은 신비스런 분이다. 타고난 체력과 집중력이 좋아 남들이 볼 때 특이하게 보일지 몰라도 당신은 타고난 능력만큼 산행하시는 분이고 과시의 동기는 전혀 없어 보인다. ‘말객’이란 닉도 말처럼 산을 잘 타셔서 쓴 과시적 닉이 아니라 당신이 관심을 갖고 있는 ‘기마민족’ 고구려 역사 속에 나오는 관등이라 한다. 신비주의자 말객님에 대해 그 동안 궁금해 하던 ‘언졸브드 미스테리’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자주 뵙고 싶어도 말객님이 흥미를 가질 만한 프로그램을 자주 만들 수 없는 게 <자연 속>의 한계인 것 같다.그래도 카페 활동에 부단히 관심을 가져 주시기 고맙기 그지 없다.
5. 공룡능선-비선대-소공원
휘운각에서 조리퐁 대장 부부와 함께 공룡능선에 오른다. 죠대장에게 이번 산행은 번번히 못 가본 공룡능선을 꼭 타보는 것이다. 그래서 각오와 기대가 대단했다. 중간에 치북님 팀을 만나 무겁게 짊어지고 다녔던 막걸리 두 통을 함께 나누면서 얘기를 나눴다.1275봉 근처에서 헬기가 있기에 거기 오른다던 팀이 걱정이 됐는데 올라갔다 구경 잘하고 내려와서 공룡 끝머리에서 쉬는 중이란다. 그리고 아듀하고 각자 반대방향으로 향했다.
여기서부터는 등산을 하는 것이 마치 게임을 하는 것 같은 과정이다. 게임 속 주인공은 수많은 화면이 전환되며 무수한 장애물을 넘어 목표점에 도달하는 과정이 점수로 환산된다면, 우리는 상황이 바뀔 때마다 다양한 장애물을 끝도 없이 헤쳐 가는 과정이기에 혈압이 오른다고나 할까? 체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마등령을 향하는 5킬로의 길은 이미 경험해 봤지만 여전히 익숙치 않은 간난신고의 연속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난적은 날씨가 아니라 길바닥의 돌이 아닐까 한다.“오 돌, 지겨운 짱돌들” 백담에서 그리도 곱고 예뻐 보이던 놈들이 정말 지겹게 나를 괴롭힌다. “원 세상에!” 어느 도깨비가 하룻밤 사이에 전국의 돌들을 다 모아 설악산 공룡에다 뿌려놨나? 어떤 놈들은 뾰족뾰족, 둥굴둘글, 어떤 놈들은 물 묻은 놈, 흙묻은 놈, 경사진 놈 편편한 놈, 각양각색의 돌들이 똘똘 뭉쳐 나를 괴롭힌다. 이번에는 침대 산행 안 할라고 작정했건만 내리막길에선 어림도 없다. 뒤로 미끌어트리거나 앞으로 자빠뜨리거나 집단적, 연쇄적으로 린치를 가하는 돌들을 보고 또 보면서 마치 내 몸에 생겨난 무수한 발진을 보는 것 같아 몸서리가 쳐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다리에 힘이 빠지고 속도는 저질 속도, 돌들에게 애교부리듯 살살 내려가다 또 부들부들 떨며 올라가기를 반복한다.
공룡능선보다 더 힘든 것이 마등력-비선대 길이다. 말 그대로 너덜길 내려가다 사지가 ‘마-비’될 것 같은 지겨운 길에서 일면식도 없는 혼성일행들이 나를 범인 쫓듯 빠른 속도로 따라올 때, 까닭없는 신경증이 발동해서 그 친구들과 암묵적인 배틀을 벌이면서 쫓기듯 오르고 내리는 일이 있었다. 특히 상대가 뒤바뀌였지만 여성일 때 더 열받아서 선두를 뺏기지 않겠다고 필사적으로 달리듯 걷는다. 마치 영화 매드맥스에 나오는 오토바이 탄 불한당놈들에게 쫓기는 주인공처럼 타닥타닥 걸으면, 또그닥 또그닥 따라붙는 발자국 소리를 의식하면 쫓기듯 달리다가 결국 심리적 압박감을 못 이기고 휴식을 핑계로 쌍판 한 번 쳐다보고 “너 잘났다. 먼저 가라”해 놓으니 심기가 후련해지더라. 그 이후에 그 친구들 뒷 모습도 못 봤다. 내리막길에서 아직 내가 익숙치 못함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것 말고도 또 힘들게 하는 것이 “좀 더 가서 쉬자” 증독증이다. 저기만 올라가면 내리막길일 것 같아 팍팍한 다리를 달래서 숨이 턱밑에 차는데도 참고 간다. 거기도 도착하면 좀더 높거나 낮은 곳이 나와 또 거기쯤 가서 쉬는 게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또 참고 간다. 그러기를 반복하면 계속 가게 되고 쉬지 못하는 중독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쉬는 것을 존심 상하는 일이나 죄악시하게 되어 물도 못 마시고 계속 걷게 하는 중독증! ‘공-마-비’ 구간 내내 두 번 쉬었나? 옆에 날씨가 흐려 안개낀 수묵화 같은 풍경이 계속되도- ‘공룡화첩’이라 부르고 싶을 정도로 멋진 풍경이 가끔씩 펼쳐졌다.- 눈길 한 번 주고 쉬지 못하는 딱한 중독증. 이것도 언젠가 버려야할 나쁜 버릇이다.
비선대에 내려왓지만 보는 물은 풍성한데 씻을 물은 안 보인다. 알탕 생각 간절한데 강원주민 식수원에 들어갔다 범법자가 될까 두려워 끈적한 몸으로 터덜터덜 소공원을 내려오다 왼편에 뜻밖에 조그만 개울이 살짝 흐르는 게 보인다. 겨우 발을 담글만한 정도였다. 우선 발이나 담그고 세수나 하자 하고 염치 불구하고 길가에 신발 벗어놓고 들어가니 시원하다. 머리도 담그고 손수건 적셔 몸뚱이도 닦다 보니 어느 틈에 지나가던 사람들도 내 마음 같았던 모양이다. 줄줄이 몰려든다.졸지에 달동네 공중 목욕탕이 되었다.그들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치북님 ‘백 산 기념 모임’으로 찾아갔다.
말객님 못지 않게 또 한 분의 여성 영웅! 상반기 마지막 날 설악산 산행으로 올 해 목표(200산행)의 절반인 백 산(100회 산행)을 채우셨다.(닉이 백산이신 분 혹시 백 산 채우셨나요?)대다수가 관악산이긴 하지만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사부님이 동분서주하며 안주와 술을 준비하시고 치북님이 축하 손님들 연락해서 술을 두고 말객, 호거, 풍월, 간송, 죠리퐁, 꽃돼지 님 등이 모여 조촐하지만 화기애애한 이야기를 나눈다. 게다가 치북님은 우리 모두 숙원인 자연속 카페의 운영자까지 되셨기에 더욱 의미 있는 자리가 되었다. 우리가 축하해드려야 하는데 염치 없이 술과 안주를 얻어먹어서 죄송했습니다. 담에는 자축이 아닌 축하를 받으셔야죠.
6. 끝
이번 34-35킬로 산행을 하면서 다시금 산행의 힘듦을 경험하면서 긴 산행은 자제하자고 생각했다. 사지 마비구간에선 정신 착란 증세까지 겹친 듯 “지겨운 설악이여 이젠 널 찾아 다시 오나 바라. 굿바이”다짐했건만 갔다 온지 하루 뒤에 이 글을 쓰면서 맘이 쪼금 바뀌었는지, 웬지 설악에의 기억이 아련하게 에쁘게 기억되려 한다.여자들이 애 낳고 다시는 애 안 났겠다고 하다가 둘 셋 넷 거푸 나듯 하는 거짓말이 될 것 예감이 슬며시 든다. 헷세의 소설 “청춘은 아름다워라” 라고 제목이 되어 있지만 그 내용을 잃어본 분이면 알겠지만 아름다운 청춘은커녕 실연으로 시퍼렇게 멍들어 떠나는 청춘밖에 없듯이 지나고 나면 기억은 아픈 것도 다 추억이란 이름으로 아름답게 변질시키는 것 아닌가 한다. 2013 여름에 경험한 설악 종주. 힘들었지만 아름다웠다.
Good-bye 설악! But Good-bye is just another word.(Lobo)
첫댓글 한편의 수필을 봅니다. 산행을 하고 와서 또 하나의 즐거움은 산행 후기를 읽는 겁니다. 마치 수학 여행을 갔다와서 사진 나오기만을 기다리는 학생들 처럼..특히 우리 산악회에는 황방님과 호거님이 계셔서 글 읽는 재미가 쏠쏠 합니다. 그리고 황방님도 똑딱이 하나 사서 사진 찍으면서 다니면 또 다른 재미가 있고 글 쓰시는 데도 훨씬 도움이 되실 겁니다. 하나 구입하시길 권유합니다. ^^*
말객님의 사진과 짤막한 감상의 글이 더 일품입니다.잘 보고 읽엇습니다.'사진 없이 감동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글 잘보았읍니다 그리고 수고많았읍니다 다음에도 같이할수 있기를 바람니다
간 만에 함께한 산행과 뒷풀이 정말 좋앗습니다.좋은 술, 좋은 친구네요. 순박하면서도 우직한 인품이 늘 끌립니다.
멋진 단편을 읽었습니다 나는 아무생각 없이 산을 탓는데 - 그리도 많은 생각이 나더이까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아름다움은 실천한 사람만이 알수 있겠죠 하지만, 저리도 그림처럼 잘 써주시니 조금은 마음으로 이해를 하게 됩니다 - 수고 많으셨구요 - 이런 참 산악인들의 행복이 있기에 덩아 행복합니다 감사합니다@
역시 기록산행으로 큰 산을 경험하셨네요. 황방님 산행기에 세심함과 지혜까지 감사 합니다.
무엇보다 신선봉 아래서 역으로 만남과 주신 막걸리 고맙습니다. 저도 청산님처럼 부드러운 남자인데 술이 문제죠...늘 건강하세요.
간송님 술 잘 안 하시는 분이신 줄 알앗는데, 술 잘하시고 산 잘 타시고, 글 재미있게 잘 쓰시고, 말씀 잘하시고, 사진 잘찍으시고(너무 치북님만 찍지 마세요), 일종에 지고 못 사는 오기도 있으신 것 같고, 자존감이 높으신 분이시니 머잖아 말객님 같은 리더가 되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다섯살 때에 부처가 되었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 오세암!! 오세암도 가보고 싶은 곳이었는데 방향이 틀어져 못갔습니다. 자세한 설명과 느낌에 가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네요...힘든 산행도 지나고 보면 아름답다는 말..다시 한번 공감을 하게 됩니다.
저도 호거님 사진을 보니 영시암-봉정암 코스가 더 운치가 있는 길인 것 같은데 가보지 못해 아쉽네요.설악은 앞으로도 몇 번은 더 가게 되겠죠? 이번에는 시원한 사진 풍경으로 만족할랍니다.
황방님 글을 보니 제가 꼭 설악산에 있는듯한 것 처럼 어찌그리 감칠맛나게
표현하셔나요 가고싶어지 ,,,,아쉽네요 하지만 황방님 후기글에 만족 할랍니다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 담에 도 ,,,,,부탁
함께 했던 추억이 있는 길을 나 홀로 걸어보는 것도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합니다.영시암-봉정암 코스에 비해 오세암 가는 길은 별 특징은 없습니다만 추억이 어린 길이라 꼭 가고 싶었습니다.오세암도 보고 싶었구요. 감사합니다.
오세암서 봉정암 길을 가 보지 못했는데~~~언젠가 저도 가겠죠? ............ 언제나 넓은 맘으로 모든이를 챙기시는 모습 알랑가 몰라?... 같이 산행 하다 보면 전 황방님이 언니 같아요~~~ㅎㅎㅎ 무지하게 편해유~~~ 그리고 저 장사 하면 한달도 못가 망할 거예요...산에 가고 싶어 가게나 지키겠어요? 언제나 함께 오래도록 자연 속에서 취하며 귀한 글 마니마니 보여 주세요....
긍정적이시고 싹싹한 성격으로 안으로 사람을 감싸는 힘이 있으신 치북님 운영자로서 그간의 산행 경험을 활용하여 산을 찾는 저같은 중생들에게 아낌없는 보시를 베풀기 바랍니다.
산행하신 걸음이 무척 분주하게 느껴집니다. 마등령에서 비선대 내려오시는 길에 화채능선 위로 펼쳐진 실루엣과
저항령위에서 쉬어가는 뭉게구름이 참 아름다웠을텐데... 설악은 앞을 보고 걷는 산이 아니라 옆을 보며 걷는 산이지요
더운 날씨에 먼 산행하신 걸음 잘 읽었습니다.
nothing to say but it used to be. 옆을 보며 걷는 산행은 그만큼 사람이 산만큼 커져야 될 것 같네요. 좀더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제가 설악을 타고온느낌? 아름다운 설악을 보지못한 아쉬움속에 여러회원님들 사진으로나마 마음을 달래보려 합니다 다음산행에는 뒤을 졸졸 따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청대장님이 앞장 서야 합니다.제 별명이 졸졸이예요.졸졸이는 제 전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