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에서
한바탕 비 내리고 난 다음 날
화창한 봄이 성큼 다가선 것 같아
점심 길에 좀 걸었다
이발소, 김밥 나라, 닭집, 핸드폰 판매점, 안경점, 황금 노래방, 호프집, 부산 횟집, 햇빛 당구장, 압구정 돼지 갈비집, 24시 인터넷방, 아크릴 간판집, 대구 슈퍼, 길 건너서
공사장, 어느 때보다도 안전모를 모두들 잘 쓰고 있다
보일러 판매점, 전자 제품 대리점
행인들, 한 손에 든 휴지 꾸러미 앞세우고 아주머니, 할머니들 걸어오고
노변에 깔아놓은 과일들, 생선, 채소, 채소를 다듬는 아주머니의 손이 거칠고 뭉특하게 불어터 있다 목공예품, 과일 깍을 예리한 칼을 곁에 놓고 넋나간 듯 어느 아저씨
지나는 차들과 행인들을 쳐다보고 있고
이젠 빵가게, 옷집, 약국, 울타리 없는 만두집, 또 횟집(수족관에는 싱싱했던 도미 몇 마리 허연 배를 까뒤집고 벌써 뻗어 있다), 노래방, 호프집,
시장 입구를 자나쳐 간다
그 시간, 정오 바로 오분 전까지
상기된 마음으로 길을 걸었던 나는
조금 전 주유소를 그 안에
체력단련실을 갖춘 곳을 그리고 아파트 입구를 지나 걷고 싶은 때까지 직선으로 쭈욱 뻗은 약간 고바위도 멀리 보이는 도로를 따라 걸어보려고 했다가,
아침에 어머니의 쌈지를 털어 얻은 동전 백원 짜리(오백원 짜리 주화 포함) 스물 다섯 개를 맞춰
옆으로 있던 김밥집에서 그만 마무리
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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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길가에서
정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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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2.27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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