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숙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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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구 팔팔 이 삼사
srkang
2017-12-15
6.구구 팔팔 이 삼사
추정/강 숙 려
얼마나 아득한 바램인가! 얼마나 간절한 소원인가!
사람들은 그저 오래 살기를 간구한다. 팔팔하게 백세를 추구하며 겸손을 더하여 99세라 말한다. 두고 갈 것이 많아 그러한가?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 말한다.
성경 신구약을 다 썼더니 볼펜이 18자루가 닳았다고 웃으시던 아흔여섯의 어머니는 성경 읽으시며 찬송하시며 간절히 기도하신다. 주님 불러주시면 언제든지 자는 듯이 가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신다. 그러시던 어머니가 때 마침 한국에 일이 있어 나간 이튼 날 응급실에 가신다는 급한 전화를 받게 되었다.
마른 꽃잎 같아 한줌이나 될까 모를 어머니는 고관절이 부러져 쇠를 박아 붙이는 큰 수술을 하시고, 잦아드는 숨소리를 내시며 잠이 드셨다.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주시던 그 손길은 앙상한 핏줄로 퍼렇게 멍이 들었고 깊숙이 감은 눈 속엔 세월이 흘러간다. 오매불망 고명딸이라 품에 두시드니 아마도 마지막 나의 효도라도 받으실 양으로, 내가 나가자 자리에 드신 것 같아 안타까움이 가슴을 저리게 한다.
내 일을 일단 미루고 어머니 곁을 일주일을 지키며 수술 후유증에 시달리는 어머니를 간병하면서, 잠만 들면 먼 세월을 넘나 드시는 어머니를 바라보는 것은 안타까움 이었다.
웃으시고 옛 얘기를 하시고 손짓하시는 것이 아마도 행복했던 날이 많으셨던 것 같다. 섬망증譫妄證은 연로하신 어른들께 수술 후유증으로 삼사일 씩 나타나는 증상이라 한다.
간간히 깨어나시면 “나는 아무 여한이 없다. 이만큼 살았으면 족하다. 충분히 수壽를 다 누렸으니 울지도 말거라.” 하신다. 얼마를 사는 일이 족한 수壽일까?
한치 앞을 모르는 인간이면서 백세를 갈구하는 이 세대의 가치관 앞에 죽음은 너무나 먼 나와는 상관없는 길이라 여긴다.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이삼일 앓은 후 갈 수만 있다면야 더 바랄 것이 있겠는 가마는. 죽음을 위하여 우리는 무엇을 준비하여야 옳은지를 알아보는 것도 지혜가 아닐까 싶다.
96년 전 어머니는 정씨 가문의 만석지기의 맏딸로 태어나시어 막 피어나는 열일곱 꽃으로 노비들을 거느리고 가마를 타고, 강진사댁으로 시집오시어 슬하에 삼남매를 두셨다. 한량이시던 아버지를 보필하며 시어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하셨다.
삼종지의三從之義를 엄격히 교육 받으신 어머니의 삶은 순종의 삶이셨다. 이후 하나님을 알고 얼마나 감사해 하셨는지 모른다. 어머니는 자기의 길을 예비하시고 자식들에게도 분명한 길을 주신 분이시다. 존경을 받아 마땅하신 내 어머니의 길은 꽃길이시고 하늘 길이 시다.
이제 경과가 좋아 병실로 옮기시고 떠나오긴 했지만 맘은 함께 오지 못하고 어머니 곁에 머물고 있다. 언제든지 보고 싶다 하시면 곧 바로 비행기를 타겠다고 약속을 했지만 그런 전화가 올까 두렵다. 어머니는 쉬 가고 싶어 하시지만 우리는 아직 보내드릴 준비가 안 되었기 때문이다. 한번 가면 다시는 이 세상에서의 정을 나눌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아쉬워하고 슬퍼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부모형제 자식 간의 죽음은 백세가 되어도 역시 우리를 슬프게 하고 아쉽게 할 뿐이다. 어머니의 백수를 기도하며 아픈 마음을 달랜다. (‘17. Dec.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