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미국으로 이민온 1세인 엄마 네 명과 미국인으로 살고 있는 그들의 딸 네 명의 이야기, 즉.여성들의 이야기이다.
(여성들의 영화...하면 생각나는 영화들 중에,'바그다드 카페'가 있는데 이 영화를 떠올리면 코허리가 찡해지면서 가슴이 따뜻해지곤 한다.
또 하나,'델마와 루이스'는 이야기가 잘(?) 진행되어 가다가 마지막에 주인공인 델마와 루이스가 둘이 손잡고 계곡으로 뛰어내리는장면으로 너무 허망한 결말을 맺는 바람에, (그들로서는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다고는 하나) 살아남아야 하는 여자관객들에게는 좀 무책임한 마무리여서 영화 전체가 만화가 되어버렸다.
이 두 영화에 비하자면 구성이 좀 밋밋하긴 하지만 '조이럭 클럽'은 영화의 작품성이나 예술성을 따지기 이전에 내게 강요되지 않은 자연스러운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영화였다.
4살 때 정혼한 남자와 강제결혼을 했다가 꾀를 써서 그곳을 가까스로 빠져나와 미국으로 건너온 린도와 그녀의 딸의 문제점은 모녀간의 갈등이다.
어릴때 체스계의 신동이라 불리웠던 딸 웨이벌리는 린도의 자랑이었고,아무나에게 딸을 자랑하고 다니는 어머니에게 "그렇게 자랑이 하고 싶으면 직접 체스를 두세요."라고 반항한 어린 웨이벌리는 그것을 계기로 체스를 그만두게 되었지만,어머니 (또는 어머니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와지기는 커녕 평생을 어머니의 눈치를 보며 전전긍긍한다.
(어머니의 권위에 반항한 웨이벌리는 반항과 동시에 자신감을 잃어버린다)
어머니가 찬성한 중국인 남자와 결혼한 웨이벌리는, 결국 그 남자와 이혼하고 새 남자를 어머니에게 선보이려한다.
외형적으로는 성공한 당당한 커리어 우먼이고, 그남자를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에 확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끝없이 어머니의 눈치를 보며 불안해 하는 모습은 어디선가 낯익은 모습이다.
딸들은-여기서 딸이라든가 여성이라든가 하는 단어는 내가 생각하는 일반적 우리 이웃의,지금 현재 살고 있는, 동양의 여자들을 말한다- 그들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생각하는가 보다 무엇을 원하고 좋아'해야한다'고 '대답'해야하나-를 먼저 생각하게 주입받아왔다.
(학교로부터,가정으로부터,또 사회로부터)
어릴 때 반항하는 딸에게 하는 어머니의 말,
"딸은 두 종류 밖에 없어.
말 잘 듣는 딸과 그렇지 않은,제 멋대로,제 고집대로 하는 딸,
우리 집엔 이런 딸은 필요가 없어"
라는 말은 우리 역시 비슷하게 듣고 컸던 말이다.
세상에는 이와 비슷한 부자(父子)의 갈등은 많지만,이런 말을 듣고 크는 아들은 드물다.
성인이 된 딸과 늙어가는 엄마가 미장원에서 화해하는 장면에서
나는 한번도 어머니의 기대(expect)를 충족시킨 적이 없다고 울음을 터뜨리는 딸에게 엄마는 말한다.
내가 너에게 가진 것은 기대(expect)가 아니라 희망(hope)이었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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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사랑하던 남자와 꿈처럼 행복한 결혼을 해서 살던 잉잉은,결혼 후 시작된 남편의 바람기와 잔인함에 치유할 수 없을 만치 큰 상처를 입고 지쳐간다.
그리고 아들을 잃는다.
잉잉은 미국으로 건너와 새로운 가정을 꾸미고 딸 레나를 갖지만 영혼의 어딘가에 항상 빈 구석을 지니고 산다.
너무 심한 상처를 입은 그녀는 이미 딸에게 나눠줄 영혼이 없다.
그런 불안한 엄마의 곁을 외롭게 맴돌다 사랑 받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모르는 채 결혼한 딸 레나는 남편과의 생활이 겉으로 드러나보이는 것처럼 원만치 못하다.
둘은 모든일과 경제적 부담을 정확하게 반으로 나누어서 해결한다. -근데 사실 이것은 공평한 일이 아니다.레나의 수입의 7배가 넘는 남편과 공평하게 분담한다는 것은 시작부터 공평할 수가 없을 뿐더러 둘이 같이 쓰는 것과 각자 쓰는 것을 구별하는 것도 쉽지 않다.
딸의 결혼생활의 내면을 꿰뚫어본 엄마는 충고한다.
네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영혼의 자유라면, 존중과 다정함이라면, 이 뼈대만 남은,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아니, 이미 무너지기 시작한 바람부는 차가운 집에서 나가라고...
남자를 잃더라도 사랑받아야 할 자신을 먼저 찾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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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전쟁 중에 피치 못할 사정으로 어쩔 수 없이 길에서 쌍둥이 딸을 버려야했던 수우얀.
그녀는 평생 그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그 상처와 버린 딸들에 대한 죄책감은 미국와서 낳은 딸 쥰에 대한 관심과 기대로 퍼부어지고, 별로 똑똑하지 않은 딸 쥰은 엄마의 과도한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자신을 돌아보며 또다른 죄책감을 갖는다.
이 영화는 쥰이,엄마들의 모임인 조이럭 클럽(사실은,joy도 luck도 아니라 hope였던)에서 돌아가신 엄마를 대신해서 참석,마작을 하는 것으로 시작, 평생 그토록 잃어버린 딸들을 찾으려 애썼던 엄마가 돌아가신 뒤에야 비로소 찾게 된 쌍둥이 이부언니들을 찾아 중국으로 가는 것으로 끝난다.쥰은 비로소 엄마를 이해하고 엄마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남아있음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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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있어 가장 인상깊은 인물은 안메이의 딸 로즈이다.
안메이의 딸 로즈는 분에 넘치는 집안의 백인남자와 결혼한다.
결혼식 이후 로즈는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다.
어떻게 하면 남편을 잃어버리지 않을까,어떻게 하면 남편의 눈에 어긋나지 않을까가 하루의 목표가 되어버린 로즈는 그것이 사랑하는 방법이라 생각하며 정작 남편은 바라지도, 알지도 못하는 사소한 일들에 하루의 모든 시간을 보낸다.
자신의 말도 의견도 잃어버리고,-물론 표현할 줄도 모르고-그토록 원하던 대학원 진학도 포기한 채 바깥일에 바쁜 남편의 뒷바라지만 하다가-마루바닥에 엎드려 남편이 들고 있던 잔에서 흘린 액체를 무릎 꿇고 닦고 있는 그녀의 모습!- 마침내는 남편을 붙잡아두기 위해서라는 최악의 이유로 딸을 낳는다.
나 여기 있어요,당신은 원하는 것만 말하면 돼요, 라고 로보트처럼 말하고,(또 생각하고) 살던 그녀는 어느 날 남편에게서 이혼통고를 받는다.
그 남편이 이혼 후의 일을 의논하기 위해 집에 오기로 한 날, 로즈는 자기는 입에도 대지 않지만 남편이 좋아하는 파이를 굽기 위한 재료를 산다.
한 조각을 먹고 가면 나머지는 버리게 될 파이를...
이런 로즈를 바라보던 엄마 안메이는 외할머니 이야기를 들려준다.
로즈의 할머니는 젊어서 미망인이 된 후, 강요된 상황으로 부잣집 남자의 네번째 첩이 되고 이 사실로 인해,친정과 모든 사람들로부터 철저히 버림받고 모멸당한다.
그녀는 친정으로부터 딸 안메이를 데리고 온뒤 자살한다.
이 일로 안메이는 의붓아버지의 정식 상속자가 되고,안메이의 엄마,즉 로즈의 할머니는 죽음 뒤에야 정식으로 제1부인이 되어 명예(?)를 회복한다.
아편 과다 복용으로 죽어가던 외할머니가 엄마에게 남긴 유언은, 자신의 나약한 영혼을 죽여 딸에게 강인한 영혼을 주고 싶었다는 말이었다.
(실제로 그날부터 딸 안메이는 소리치는 법을 배웠다.자신의 의사를 말하는 방법을)
안메이는 딸에게 말한다.
"네가 네자신의 가치를 모르는 건 네게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나는 중국식으로, 욕심내지 않고 불행을 속으로만 삭이라고 배웠지만 딸은 그렇게 키우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결국 똑같아져버렸구나.
넌 할머니와 똑같이 너 자신의 가치를 모르고 있다.
할머니가 자신의 가치를 알았을 때는 너무 늦었지만 넌 그렇지 않아, 아직 늦지 않았어."
그리고 충고한다.
자신을 찾으라고...
오랜 고뇌 끝에 마침내 로즈는 집으로 온 남편을 향해 자신의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내 집에서 나가!
당신은 내가 누군지 몰라. 난 60년 전에 아편을 먹고 딸을 위해 죽었어."
로즈는 비로소 자신의 발로 똑바로 서서 스스로의 존재를,가치를 인정하게 된것이다.
-내 집에서 나가!
(여긴 내 집이야,내가 소중하게 내 시간과 노력으로 가꾸어온 내 집이야.나라는 존재는 결코 당신 집에 빌붙어서 당신의 사랑을 구걸하면서 사는 거지가 아니야.)
-당신 사랑이 내 사랑보다 소중하다고 한건 나였어.
(말도 안되는 어리석은 소리였어!)
-그러니 당신 잘못은 아니야.
(스스로 바로 설 수 있어야,상대를 정당하게 대할 수 있는 법)
가끔, 내가 참 비겁한 인간,여자라고 느낄 때가 있다.
그럴 때 문득문득 이 대사가 떠오른다.
내 집에서 나가!
그런 당당함 위에 서서야 비로소 내 식구들을, 내 이웃들을 제대로 사랑하고 껴안을 수 있는
것 아닐까..........
joy luck club end titles/Rachel Portman
joy luck club 中 one fine day-The Chiffons
(린도가 딸 웨이벌리를 자랑하러 다닐 때 나오는 곡)
(2007.10.8)
첫댓글 웨인 왕의 영화 중에 이 영화를 스모크보다 먼저 봤던 것 같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웨인 왕 감독이 궁금해졌었으니까...이 영화 역시 지난 번 모임에서의 대화 도중 잠시 나온 영화. 이 영화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눈이 나른하고 둥글어지는 분이 계시길래, 역시 낡은 메모지만 갖고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