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암민속마을(12.29)
현충사를 떠나 외암민속마을로 갔는데 아마도 오후 5시가 넘어서 인지 입장료도 받지 않았다. 너무 늦게 가는 바람에 구경을 많이 할 수 없었는데 느낌이 아주 좋은 민속마을이었다. 그동안 용인민속촌, 제주도 성읍민속마을, 낙안읍성 등을 갔었는데 외암민속마을도 나름대로 가볼만한 곳이었다. 들어가는 입구에 섶다리가 있었는데 출입금지라고 쓰여 있었다. 사람들이 마을로 들어가는 다리는 돌로된 다리인데 반석교라고 이름이 새겨 있었다. 반석교를 건너가니 반석이 개천에 있고 동화수석, 이백선서란 글이 보였다. 생각보다 집들이 보존이 잘 되어 있어 우리의 옛 향취를 맛볼 수 있는 곳이었다. 시간이 없어 서둘러 민속가옥 전시관을 둘러 보았는데 상류층, 중류층, 서민층 가옥을 차례로 전시시켜 놓아 예전 생활상을 잘 살펴볼 수 있도록 하였다. 이런 것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는 것이 정말 신기했다. 예전 생활용품과 밀랍으로 만든 인형을 전시시켜 놓아 아주 실감이 났다. 날이 어두워져 서둘러 둘러 보고 왔는데 사람들이 실제 살고 있는 생생한 곳이었다. 초가집에 사람이 사는 지는 확인을 못해보았지만 기와집에는 분명 불이 켜져 있고 사람 소리가 들리었다. 정신없이 시간에 쫓겨 마을을 나왔는데 나중에 인터넷을 살펴보니 우리가 본 것은 마을의 1/4 정도에 불과했다. 화장실 쪽으로 마을이 많이 형성되어 있는 것같았다. 나중에 시간을 내어 이 마을을 하루종일 구경을 해야 할 것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래 내용은 아산시청 홈페이지에서 가져 온 것입니다.
국가지정 중요민속자료 제236호로 (1999년 12월 28일) 국가에서 지정 보호하고 있는 마을로 아산시 송악면 설화산밑에 위치하고 있는 외암리 민속마을 에는 약5백년 전에 이 마을에 정착한 예안 이씨 일가가 지금까지 주류를 이루어 살고 있다. 문중에 걸출한 인물들이 많아서 큰집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지금도 옛 모습을 간직한 집들이 이끼 낀 돌담을 돌면 이 마을의 역사를 짐작할 수 있는데 돌담너머로 집집 마다 뜰 안에 심어 놓은 과일나무 및 마을 입구의 장승을 비롯하여 조선시대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디딜방아, 연자방아, 물레방아, 초가지붕 등이 보존되어 있으며, 이밖에 많은 민속 유물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특히 이 참판댁과 중요민속자료 95호로 지정되어 있는 영암군수댁(건재 가옥)은 아름다운 정원과 더불어 조상들의 삶의 모습을 느껴볼 수 있는 장소이다. 최근에는 이곳에서 사극이나 영화 촬영이 종종 있으며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고 있다. 원래 외암마을의 주인은 평택진씨였다. 지금도 참봉 진한평(陳漢平)의 묘가 외암 마을 남쪽으로 약 500m의 거리인 구릉의 골말에 위치하고 있어, 과거 이 마을의 주인이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오늘날 외암마을에 거주하는 주민의 절반이 예안이씨다. 시작은 평택진씨 참봉 진한평의 사위인 이사종이다. 당시 진한평에게는 아들이 없고 딸만 셋 있었는데, 예안이씨 이사종이 진한평의 장녀와 혼인하면서 마을에 들어와 살게 되었다. 외암 이간 선생이 쓴 [외암기]에 "예안이씨가 온양에 들어와 살게 된지 이미 5세가 되었다" 고 하였는데, 조선 명종 때 장사랑을 지낸 이연은 6대조이고, 이사종은 5대조가 된다. 그렇다면 이사종 때부터 이곳에 살았던 것이 분명하다. 또한 [외암기]에서는 선조 이사종이 그의 부친인 이연의 묘를 송악의외록에 정하면서, 별업을 외암에 지어 열승정(閱勝停)의 위치에 대해 읍지에서도 기록되어 있을 만큼 널리 알려져 있었다. 예안이씨는 전의 이씨에서 갈라져 나온 분파로 10세손인 익(翊)이 예안이씨의 시조가 된다. 7세손인 이연에게는 아들이 셋 있었는데 둘째 아들 이사종 계열만 번창하고 있는데, 이사종부터 예안이씨 온양파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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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금수강산 원문보기 글쓴이: 청초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