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외곽에 있는 다차나 시골 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통나무집 이즈바. 추위를 막기 위해 이중 덮게 장문이 달려 있는데, 그 장식들이 장난아니다. 디자인을 넘어 예술작품 수준. 정경원 세종대...
러시아 모스크바의 외곽 지역으로 다니다 보면 시골집 창문은 다양한 나무 장식으로 치장되어 있다. 기온의 연 교차가 60도를 넘나드는 기후 조건과 전통 신앙이 깃든 주거 문화의 흔적이라고
정경원 세종대 석좌교수가 말한다.
러시아 특유의 통나무집을 '이즈바(Izba, Изба 사진)'라고 한다. 정 교수는 한 기고문에서 "이즈바는 9세기부터 짓기 시작하여 점차 러시아의 대표적인 건축 양식으로 자리 잡았다"며 "러시아 전역에서 자생하는 소나무 등 침엽수 목재의 원목을 끼워 맞춤 방식으로 쌓아 올리는 공법이 단순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통나무 집은 생각보다 보온 효과가 높아 더운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
정 교수에 따르면 이즈바의 창틀을 정교하게 장식한 것은 창문으로 혼령이 드나든다는 민속신앙에서 유래했다. 사람의 얼굴과 올빼미의 몸통을 가진 상상의 동물인 러시아판 '인면조(Sirin)' 등의 문양으로 창문틀을 치장하면 악령의 침입을 막아준다는 것이다. 그들은 한국과 비슷하게 가정에서 모시는 조상 추도식에 혼령이 집을 제대로 찾아오려면 창문틀에 친숙한 문양이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19세기 말 유럽 전역에서 유행하던 아르누보의 영향으로 창문틀 장식은 주술적인 의미보다는 예술적 유행으로 전성기를 맞았다. 해와 달, 별, 꽃, 잎사귀와 줄기 등을 기하학적 문양으로 표현한 나무 창틀을 취향대로 주문해 설치하곤 했다. 러시아 혁명이후 20세기 구소련 시절에는 디자인에 공산당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별이 더욱 많아졌고, 망치와 낫도 등장했다. 그래서 디자인이라기 보다는 촌스럽기만 하다.
시골에도 아파트가 유행하는 요즈음은 더 이상 이즈바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그래서 이반 하피조프(Ivan Hafizov) 등 사진작가들이 독특한 나무 창틀 디자인을 보존하자며 '창틀사진 가상박물관' 건립을 위해 모금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