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유경 제4권
95. 한 쌍의 집비둘기의 비유
옛날 암수 한 쌍의 집비둘기가 한 둥지에 살면서 가을에 과일이 익자, 둥지에 가져다 채워 두었다.
얼마 뒤에 과일이 말라 차츰 줄어들어 반 둥지밖에 남지 않았다.
수컷은 암컷에게 성을 내어 말하였다.
“과일을 모으느라고 얼마나 애를 썼는데, 왜 혼자서 먹어치워 반만 남았는가?”
암비둘기가 대답하였다.
“나는 혼자 먹지 않았습니다. 과일이 저절로 줄어든 것입니다.”
그러나 수비둘기는 믿지 않고 성을 내며 말했다.
“네가 혼자 먹지 않았다면 어째서 줄어들었는가?”
그리고는 곧 부리로 암비둘기를 쪼아 죽였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 하늘에서 큰 비가 내리자, 과일은 차츰 불어 예전과 같이 둥지에 가득 찼다.
수비둘기는 그것을 보고서야 비로소 후회하며 말했다.
“암비둘기가 먹지 않은 것이 사실인데도 내가 망령되게 그녀를 죽였구나.”
그리고는 곧 슬피 울면서 암비둘기를 불렀다.
“너는 어디로 갔느냐?”
범부들도 이와 같아서,
뒤바뀐 생각을 마음에 품고 망령되이 쾌락을 누리면서, 무상함을 보지 않고 중한 계율을 범하다가 나중에는 결국 후회하지만 어쩔 수가 없어 슬피 탄식하니,
마치 저 어리석은 비둘기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