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메르인들은 자신들의 문자가 시를 쓰는 데 부적합하다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
그들이 문자를 발명한 이유는 궁를 복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어가 하지 못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였다.
콜럼버스가 미 대륙을 발견하기 이전 안데스 산맥의 문화와 같은 일부 문화들은
역사 내내 불환전한 문자체계를 사용했지만,
그 한계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으며 완전한 문자체계의 필요성도 느끼지 않았다
안데스 산맥의 문제체계는 수메르의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
사실 너무 달라서 문자체계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것은 점토판이나 종이 위에 쓰인 것이 아니었다.
그 대신 키푸(잉카 제국의 결승문자)라고 불리는 색색의 끈을 매듭짓는 방법으로 표현되었다.
키푸는 양모나 면으로 만들어졌으며 색색의 끈으로 구성되었다.
하나의 키푸가 수백 개의 줄과 수천개의 매듭으로 구성될 수도 있었다.
각기 다른 색을 지닌 각기 다른 줄에 각기 다른 매듭을 지음으로써,
그들은 예컨대 세금 징수나 재산 소유권과 관련된 대량의 수학적 데이터를 기록할 수 있었다.
키푸는 수백년, 아마도 수천 년 동안 도시와 왕국과 제국의 상업에 핵심적 역할을 했다.
그 기능은 잉카 제국에서 최고조에 이르렀는데,
오늘날 페루, 에콰도르, 볼리비아 그리고 칠레, 아르헨티나, 콜롬비아의 상당 부분을 지배하며
1천만 ~ 1,200만 명의 백성을 다스렸다.
잉카인들은 키푸 덕분에 대량의 데이터를 저장, 처리할 수 있었다.
이것이 없었더라면 그처럼 거대한 제국에 필요한 북잡한 행정기구를 유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사실 키푸는 매우 효가적이고 정확하여,
스페인인들은 남미를 정복했던 초기에 자신들의 새 제국을 다스리는 데 키푸를 활용했다.
다만 스레인 사람들은 키푸를 쓸 줄도 읽을 줄도 몰라서 현지 전무가들에 의존해야만 했다.
대륙의 새 지배자들은 이 때문에 자신들의 지위가 약해진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현지인 키푸 전문가들이 주인을 오도하거나 속이기가 쉬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페인의 지배가 좀 더 굳건하게 정착되자 키푸는 단계적으로 폐지되었으며,
새 제국의 기록은 순전히 라틴 문지와 숫자로만 쓰였다.
그페인 점령기를 거치고서 살아남은 키푸는 극소수뿐이고 남아 있는 것도 대부분 판독이 불가능하다.
해독 기술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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