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 판단의 사회적 비용
과거를 두고 서사를 만드는 인간의 머리는 논리를 짜 맞추는 기관이다.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면 우리는 즉시 세계관을 조정해 그 놀라운 상황을 수용한다.
승률이 같은 두 팀이 맞붙은 미식 축구를 본다고 상상해보자,
경기는 한 팀이 완승을 거두면서 끝났다.
이제 세계를 바라보는 모델이 바뀌어, 승리한 팀은 진 팀보다 훨씬 강한 팀으로 인식된다.
이 새로운 인식은 미래뿐 아니라 과거를 바라보는 시각도 바꿔놓는다.
놀라운 사건에서 무언가를 배우는 일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지만
이때 다소 위험한 결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인간의 정신은 일반적으로 과거의 지식이나 바뀐 신념을 재구성하는 능력이 불완전하다는 한계가 있다.
일단 세계를 (또는 세계의 일부를 )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면,
그 전에는 어떤생각을 했었느지 기억하는 능력이 빠른 속도로 떨어진다.
많은 심리학자가 사람들이 마음을 바꿀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연구했다.
실험 진행자는 사형제도처럼 사람들이 입장을 완전히 정하지 않은 주제를 골라
그 주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주의 깊게 측정한다.
그런 다음, 참가자들에게 찬성 또는 반대의 설득력 있는 주장을 들려주거나 보여준다.
그리고 사람들의 입장을 다시 한 번 알아본다.
그러면 대개는 자기가 듣거나 본 설득력 있는 주장에 가까운 입장을 내놓는다.
마지막으로 참가자들에게 앞서 자신이 어떤 의견을 갖고 있었는지 묻는다.
생각보다 무척 어려운 작업이다, 과거 생각을 재구성해 보라고 하면
사람들은 현재의 입장을 회고하면서(바꿔치기),
다수가 그 전에는 다르게 생각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한다.
과거의 생각을 재굿ㅇ하지 못하다 보니 과거 사건에 자신이 놀랐던 정도를 과소평가할 수밖에 없다.
바루크 피시호프는 예루살렘 학생 시절, '내 그럴 줄 알았지'라는 식의 '사후 판단 편향(hindsight bias)'을
처음으로 증명해 보였다.
피시호프는 (역시 우리 제자인) 루스 베이스(Ruth Beyth)와 함께,
리처드 닉슨이 1972년에 중국과 소련을 방문하기 전에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닉슨 외교 정책의 열다섯 가지 가능한 결과를 두고 그것이 일어날 확률을 묻는 것으로,
가령 이런 질문들이 있었다.
마오쩌둥은 닉슨과의 만남을 수락할까?
미국은 중국을 국가로 인정할까?
수십 년간 적대 관계였던 미국과 소련이 의미 있는 사안에 합의할 수 있을까?
닉슨이 미국으로 돌아온 뒤, 피시호프와 베이스는 똑같은 사람들에게
열다섯 가지 가능한 결과에 예전에 자신이 어떻게 대답했었는지 기억해보라고 했다.
결과는 명확했다. 열다섯 가지 결과중에 실제로 일어난 사건의 경우,
응답자는 자신의 과거 예상 확률을 과장했다.
반면에 일어나지 않은 사건의 경우 원래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며 엉터리로 회상했다.
다른 실험에서도 사람들은 자신뿐 아니라 타인의 과거 예상까지 그 정확도를 과장하는 성향을 보였다.
O.J.심슨 살인 사건 공판이나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탄핵처럼
대중의 관심을 사로잡은 사건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타났다.
자신의 과거 생각을 실제로 일어난 상황에 맞게 수정하는 성향은 막강한 안지 착각을 만들어낸다.
사후 판단 편향은 의사 결정자들을 평가할 때 심각한 악영향을 미친다.
관찰자들은 결정의 질을 평가할 때 결정 과정의 타당성은 따지지 않고
결과가 좋았는지 나빴는지를 따진다.
위험이 낮은 외과 처치를 하다가 예상치 못한 사고로 환자가 사망했다고 해보자,
사건이 일어난 뒤에 배심원들은 그 처치가 사실은 위험성이 높았고,
처치를 지시한 의사는 더 신중했어야 한다고 믿기 쉽다.
이런 결과 편향 탓에, 처음에는 타당하다고 믿었던 결정을
사후에 제대로 평가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사후 판단은 의사, 재무 설계사, 3루 코치, 최고경영자, 사회복지사, 외교관, 정치인 등
누군가를 대신해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에게 특히 매정하다.
원래 좋은 결정이었으나 결과가 나쁘면 우리는 그 결정자를 십게 비난하고,
결과가 나온 뒤에야 좋은 결정이었음을 알게 된 경우에는 결정자를 칭찬하는데 인색하다.
'결과편향'은 분명히 존재한다.
결과가 나쁘면 의뢰인은 벽에 빤히 쓰인 불길한 글자도 못 읽느나며 비난하기 일쑤지만,
사실 그 글자는 보이지 않는 잉크로 쓰여 나중에나 식별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망각한 것이다.
사전에는 신중해 보였던 행동도 사후에는 무책임하게 부주의한 결정으로 보일 수 있다.
캘리포니아 학생들에게 실제 법정 사건을 기초로,
미네소타의 도시 덜루스가 막대한 비용을 들여 다리에 24시간 감시 장비를 대여 설치해,
쓰레기가 물의 자유로운 흐름을 방해하는 위험에 대비하기로한 결정이 옳았는지 물었다.
이때 한 집단에게는 그 시가 결정을 내릴 때 확보할 수 있었던 증거만 보여주었다.
그러자 24퍼센트가 비용을 들여서라도 홍수 감시 장비를 설치해야 한다고 느꼈다.
두 번째 집단에게는 실제로 쓰레기가 강을 막아 큰 홍수피해를 초래했었다는 정보를 알려주었다.
그랬더니 56퍼센트가 감시 장비를 설치했어야 했다고 대답했다.
사후 판단에 휘둘리지 말라고 분명히 지시했는데도 이런 결과가 나왔다.
결과가 나쁠수록 사후 판단 편향은 더 커진다.
특히 9.11 같은 대참사가 발생하면 사건을 예상하지 못한 공무원들을
태만했거나 무지했다고 쉽게 단정해버린다.
2001년 7월 10일 , 미국중앙정보국 (CIA)은
알카에다가 미국에 대규모 공격을 계획하고 있을 수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cia국장 조지테닛(George Tenet)은 이 정보를
조지 W.부시 대통령이 아니라 콘돌리자 라이스 국가안보 보좌관에게 전달했다.
나중에 이 사실이 불거지자
〈워싱턴포스트 The Washington Post〉의 전설적인 편집국장 벤 브래들리(Ben Bradlee)는
"역사를 좌우할 이야기를 손에 넣었으면 대통령에게 전달하는 게 상식 아닌가"라고 단호히 말했다.
그러나 7월 10일에는 이 짧은 정보가 역사를 좌우할 줄은 아무도 몰랐고 알 수도 없었다.
정해진 절차에 충실한 것을 두고 나중에 왈가왈부하기는 어려우니,
나중에 자신의 결정이 도마에 오를 것같다 싶으면
관료적 해법대로 위험 부담을 최대한 피하면서 정해진 절차를 고수하기 쉽다.
배임 소송이 갈수록 흔햊면서, 의사들은 여러 방식으로 절차를 바꿨다.
검사를 더 많이 실시하고, 갈수록 많은 환자를 다른 전문가에게 보내고
전통적 처치법이 도움이 안될 것 같은 데도 그대로 사용했다.
이런 행위는 환자를 이롭게 하기보다 의사를 보호하면서, 이해 충돌의 여지를 만들었다
이처럼 책임증가에는 장점과 단점이 공존한다.
사후 판단 편향과 결과 편향은 일반적으로 위험을 회피하게 하지만,
무모한 도박을 벌여 승리한 장군이나 사업가처럼
무책임하게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들에게 과분한 포상을 안겨주기도 한다.
운이 좋아 좋은 결과를 낸 지도자가 과도한 위험 부담을 떠안았다는 이유로 처벌받는 일은 절대 없다.
오히려 성공을 예견하는 타고난 재주와 혜안을 가졌다고 평가받는다.
반면에 그들을 의심한 분별 있는 사람들은 나중에 소심하고 나약한 그저 그런 부류로 취급된다.
몇 번의 성공적인 도박은 무모한 지도자에게 선견지명과 대담함이라는 후광을 씨워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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