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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월 26일 성 베드로 대성당에 들어섰는데 같이 동행했던 아내가 나의 팔을 끌며 성당 한쪽을 가리킨다.
그 유명한 미켈란젤로의 대작 피에타(Pieta)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 앞에 서는 순간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오고 넋을 잃을 수밖에...
정신없이 카메라 셔터를 눌렀는데, 어두운 환경에 트라이포드조차 사용할 수 없어 좋은 사진을 얻지 못해 아쉽다.
참혹한 십자가형의 고통을 겪은 예수님을 무릎에 안고 조용히 아래를 향하고 있는 성모 마리아의 얼굴에서
인간으로서의 비통함과 새 생명에로의 부활이라는 희망이 혼재돼 서려 있는 듯...
억제된 슬픔과 숙연하면서도 침착한 성모 마리아의 표정....
불행하게도 이 위대한 작품의 영적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영안(靈眼)이 나에겐 없다.
나의 어두운 눈으로는 이 작품에 담겨있는 메시지를 읽어 낼 수 없어 어느 신부님이 쓴 글로 대신하고자 한다.
작품 :피에타( 1499)
작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Michelangelo Buonarroti: 1475- 1564)
크기 : 174cm 195cm (좌대 포함) :대리석
소재지: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
역사에 혜성처럼 나타나고 있는 예술가 중 미켈란젤로만큼 재능과 노력을 겸비한 사람은 드물다. 보통 재능이 있으면 노력을 게을리하기 쉬우나 작가는 마치 예술을 위해 태어난 사람인 듯 불같은 노력으로 그의 천재성을 살려 다른 작가들이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빨리 그의 천재성을 발휘할 수 있었으며 이 작품은 그가 25세에 만든 작품이나 대단한 수준이기에 또 다른 의미의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로 들 수 있다.
조그만 은행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부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당시 유명세를 떨치던 화가 기르란다이요(Ghirlandaio)의 공방에 들어가 화가 수업을 시작했으며, 우연히 그의 재능을 발견한 당시 피렌체 공국의 실세인 메디치 가문의 로렌죠의 도움으로 그는 날개를 단 천사처럼 자유롭게 자신의 예술혼을 꽃피우면서 여러 걸작을 남기게 되었다.
피에타(Pieta)라는 말은 “동정” “불쌍히 여김” 등의 뜻이 있는 이탈리아 말이며, 교회에서 미사 중 사용하는 “주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기도의 앞부분인데, 14세기 독일을 중심으로 일어난 주님 수난절에 십자가에 참혹히 죽은 아들을 안고 있는 성모님의 슬픔을 노래한 스타바트 마텔(Stabat Mater)이라는 시에 영감을 받아 피에타라는 주제의 많은 작품이 제작되었다.
이것이 이탈리아에 와서도 도나텔로(Donatello: 1386-1466)나 루카 시뇨렐리( Luca Signorelli:1450- 1523 )에 의해, 죽은 아들을 안고 있는 성모님의 말 못 할 슬픔과 비통이 주제인 내용으로 많이 제작되었으나, 작가는 이런 전통적인 표현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점에서 이 주제에 접근했다.
그는 하나의 돌에 두 개의 인물, 남성과 여성이라는 대비적 존재를 서로 응축된 한 덩어리 안에 담는다는 대단히 혁신적인 시도를 성공적으로 이루었다.
먼저 작가는 어떤 고통에도 이지러지지 않는 침착하고 기품 있는 여인으로서의 성모님을 표현하고자 했으며, 처참한 십자가의 고통을 겪고 어머니의 품에 누운 예수님의 모습에서 인간 육체의 아름다움을 완벽히 표현해서,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비극적인 내용보다 하느님이 만든 걸작으로서의 인간 육체의 아름다움에 눈뜨게 만들고 있다.
작가는 이미 17세에 피렌체 산토 스피리토 수도원 부원장의 허락을 받아 시체실에서 숙련된 의사의 지도 아래 해부학을 공부했기에 인체 묘사에 완벽성을 기할 수 있었으며 이것이 성모님의 무릎에 누인 주님의 모습에서 더없이 아름답게 표현되고 있다.
이 작품은 바로 해부학의 두 요소 즉 신체의 조화와 균형이라는 면 외에도 머리와 가슴, 배와 다리, 신체 각 부분 특히 성모님의 품에 안긴 채 늘어져 있는 주님의 모든 골격이 새로운 생명의 가능성을 담으면서 더없이 아름답게 표현되고 있다.
성모님의 품에 안겨있는 예수님의 몸에는 아직 따뜻한 체온이 남아 있는 것 같은 또 다른 생명감을 느끼게 하면서, 이 작품을 바라보노라면 과연 이것이 단단한 대리석으로 만든 것인지 의심하게 만들며, 성모님의 머릿수건, 옷의 주름 등 모든 것이 너무 자연스러우면서도 정교하고 섬세하게 묘사되어 어디 하나 어색한 곳이 없이 완벽하다.
성모님은 바위 위에 앉아 계시며, 무릎 부분을 넓게 만듦으로서 아들을 안고 있으면서도 전혀 무게를 느끼지 않고 안정된 느낌을 주도록 했으며, 성모님의 머리로부터 가로누운 예수님의 몸 전체가 안정된 삼각구도를 이루면서 고통, 장엄, 체념의 분위기를 완벽히 재현하고 있다.
이 삼각형의 구도는 시각적으로 가장 편안한 인상을 주는 것으로 관객들이 이 슬프고 기품 있는 아름다운 모습에 한껏 몰입하게 만든다, 십자가의 형벌이라는 처참한 고통으로 생명이 끊어진 예수님의 몸은 살아 있는 사람처럼 아름다우며 머리, 가슴, 배 다리가 물결 모양의 S 곡선을 이루고 있는데 이것은 인체에서 가장 아름다운 표현인 콘트라포스토(contraposto) 자세로 하느님의 걸작품으로서의 인간 육체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다.
작가는 십자가에서 처참한 죽음을 한 아들을 껴안은 어머니의 비통함을 묘사하던 과거 작품과는 달리 성모님은 조용히 머리를 숙인 채 아래를 바라보는 슬픔을 초월한 모습이다.
이런 예외적인 표현은 작가의 독특한 견해 즉 “하느님의 어머니는 어떤 경우에도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라는 자기 신념을 표현하고 있다.
성모님의 품에 안기신 그리스도의 처참한 희생은 죽음의 슬픔으로 마무리될 사건이 아니라 새 생명에로의 부활이라는 큰 희망의 서곡이기에 아드님 죽음의 영성적 의미를 확인한 성모님은 평범한 어머니들이 느끼는 절망적 슬픔의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에 이렇게 절제된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다.
작가는 당시 50은 되었을 성모님의 모습을 너무 젊게 표현한 반면 예수님은 33세의 나이로 표현하고 있다. 성모님의 파격적인 젊음과 반대로 예수님은 33세의 자기 나이를 고스란히 표현하고 있는데, 이것은 작가 나름대로의 그리스도 인성(人性)에 대한 의미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인간으로 오셨다는 것은 “죄 외에 모든 점에서 우리와 같은 모습”이라는 것이 히브리서의 말씀에 근거하고 있다.
인간으로 오신 그분은 이 세상에서 여느 인간이 겪는 모든 고뇌와 애환을 체험하고 나누셨는데, 이런 주님께서 여느 인간이 당해야 하는 늙음의 슬픔도 함께하셨다는 <너무도 인간적인 존재>로서의 예수님의 인성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며 작가 나름의 신학 표현이다,
반대로 실제로는 오십이 넘었을 성모님을 이토록 젊은 모습으로 만든 것은 동정녀 성모님이 지니신 완전한 순결의 결실로 표현하기 위해서이다.
이 작품을 구성하는 모든 형상은 아래, 즉 땅을 향하고 있다. 아래를 향한 마리아의 머리 및 손과 팔, 또한 밑으로 내려앉은 예수의 머리와 팔, 다리 등등 바로 모든 것이 아래로 향했기에 고개 숙인 마리아의 슬픔이 더욱 측은하게 느껴진다.
땅을 향한 성모님의 모습은 아들을 잃은 한 어머니의 헤어날 수 없는 슬픔의 표현으로,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깊이 이해하면서도 하나뿐인 자기 아들이 이 희생의 제물로 선택된다는 것은 너무 괴로운 일이기에, 어머니로서는 너무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슬픈 모습이기에 관객들의 심금을 울리며 더욱 가슴 깊이 박히는 것 같다.
모든 시선이 아래로 향하면서 깊은 슬픔을 표현하는 한편 예수님의 오른편 겨드랑을 잡고 있는 성모님의 큰 손은 예수님의 늘어진 몸을 받치기 위해 하늘을 향하고 있는데, 이것은 아들을 아버지이신 하느님께 봉헌하는 신앙의 여인으로서의 성모님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자기가 낳은 아들의 죽음을 지켜봐야 하는 어머니의 한 맺힌 슬픔을 신앙으로 극복하면서 "하느님 당신이 주신 아들, 당신께 도로 돌려드립니다."라는 인간 모성을 초월한 성모님의 신앙적 결단이 권투선수의 손보다 더 크고 우람찬 오른손으로 표현되고 있다.
성모님의 품에 안겨 아래로 늘어트린 주님의 왼편 발은 나무뿌리에 닿아 있는데 이것은 죽음 후의 생명을 상징하고 있다. 가장 슬프고 비참한 죽음의 형상인 주님의 몸에 이미 새로운 생명에로의 부활을 암시하고 있다.
작가가 작품을 완성했을 때 둘러본 사람 중 어떤 이가 성모님이 너무 젊고 아름답게만 표현되었다고 불평을 했을 때 작가는 동정녀이신 성모님의 모습이 젊어야 할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순결한 여인은 이 세상 순결하지 못한 삶을 사는 여인들 같은 노화의 운명을 결코 겪지 않기에 성모님은 비록 아들의 처참한 죽음을 안고 있는 상태에서도 영원한 젊음과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남는다는 자기 견해를 밝힌 바 있는데, 이것은 그의 주관적 감정 표현이 아니라 그가 깊이 심취했던 단테의 신곡 영향이었다.
강생으로 인간의 모든 것에 동참하신 예수님은 여느 인간들이 다 겪어야 하는 늙음의 고통까지 수용하셨으나, 일개 피조물에 불과한 성모님은 하느님의 은총에 의해 순결한 동정녀로서 어머니가 되셨기에 노화에서 면제되었다는 역설적인 표현을 하고 있다.
단테는 지성과 이성의 상징인 로마 시인 베르질리우스(Vergilius)의 안내로 지옥과 연옥을 방문한 후 신앙과 사랑의 상징인 베아트리체(Beatrice)의 안내로 천국을 방문하게 되는데, 주님의 뜻을 따라 아름다운 삶을 살았던 여러 성인 성녀를 상봉한 후 그 정점인 33편에서 성모님을 만나면서 다음 찬사를 남기게 된다.
- 단테의 신곡 33편 -
동정녀 어머니, 당신 아드님의 따님이시여,
어느 피조물보다 더 겸허하고 높으신 분이여,
영원한 성지의 확고부동한 끝이시여.
당신은 인간의 본성을 고귀하게
높이신 분이기에, 창조주께서 스스로
피조물이 되시는 것을 꺼려 하지 않으셨습니다.
당신의 복중에 사랑이 불타올랐고 그 사랑의 뜨거운 열기를 통해
이 꽃이 이토록 영원한 평화안에 싹을 틔운 것입니다.
(한형곤 번역 인용)
죽은 아들을 안고 있는 여느 어머니의 슬픈 모습과는 거리가 먼 성모님의 젊고 아름다운 얼굴에서 맑은 영혼의 세계를 살아가는 믿음의 인간들만이 보일 수 있는 영적 미를 발견하게 된다.
성모님의 얼굴은 근심에 가득 차 있지만 표정을 더없이 평화롭다. 작가는 어머니로서의 더없는 슬픔의 순간에도 기품을 잃지 않은 성모님을 아름답게 표현하면서 앞이마에 가는 선을 새겼는데, 이것은 자연 광선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 비출 때 그늘이 지는 경계선이 되면서 기품 있는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다.
그는 비록 아들의 비참한 죽음이 하느님의 계획임을 알 수 있는 신앙의 여인이지만, (루까 2, 51) 육신의 어머니로서의 슬픔에서 제외되지 않았기에 고개를 약간 수그린 표정을 짓고 있다.
성모님의 가슴에 있는 장식 띠에는 놀랍게도 라틴어로 미켈란젤로 자신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MICHELANGELUS BUONARROTUS FIOLENTINUS FACIEBAT : 피렌체 사람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작품임"
중세기 어떤 작가는 작품에 자기 이름을 새기는 예는 있으나 한 모퉁이에 조그맣게 새기는 것이 보통인데, 작가가 이런 파격적인 행동을 한데는 그의 젊음의 미숙함과 누구에게나 지기 싫어하는 성격의 단면의 표현이다.
이 작품이 처음 제작되었을 때 관람한 사람 중의 하나가 너무 걸작이라 피렌체 공화국과 언제나 적대관계에 있었던 롬바르디 사람의 작품 같다고 말했는데, 언제나 피렌체 사람이라는 자기 출신에 대단한 긍지를 지닌 그가 자기 작품을 엉뚱하게 말하는 데 대해 화가 나 이것을 반박하기 위해 자기 이름을 새기게 되었다.
그 후 어느 날 저녁별이 총총한 아름다운 밤하늘을 보면서 하느님의 작품인 이 아름다운 하늘 어디에도 하느님의 이름이 새겨진 것이 없는데, 미숙한 혈기를 이기지 못해 자기 이름을 새긴 경솔을 후회하면서 그 후로는 이름을 새기지 않았기에 이것은 그의 작품 중 유일하게 이름이 새겨진 것이다.
이것이 그의 초기 작품이긴 해도 원채 걸작인 데다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기에 그의 대표작처럼 인정받게 되었다.
이 작품은 인생의 역설적인 면, 삶과 죽음, 고통과 영광, 슬픔과 기쁨의 참 의미를 완벽히 표현하고 있으며, 죽음으로서 무너질 수 없는 신앙의 고귀한 아름다움을 너무도 생생히 제시하고 있다.
2016년 6월 20일 오래된 여행 기록을 더듬어 작성하다. 열운(洌雲)
첫댓글 탄생의 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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