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2009년 77일 동안 벌어진 쌍용자동차 공장점거파업 이후 8․6 노사합의가 도출되었다. 2012년 2월11일부로 정리해고 철회 투쟁은1,000일을 맞았지만 합의는 이행되지 않았고 또다시 조합원이 목숨을 잃었다. 이로 인해 대한문과 전국에 분향소가 설치되었고 먹튀자본과 정부관료들의 돈놀음 속에 희생당한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문제가 사회적인 다시 제기되기 시작했다. 5월19일 22번째 죽음을 맞은 조합원의 49제를 지나 22일부로 투쟁 3주년을 맞은 쌍용자동차지부는 또다시 투쟁의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사노신은 6월10일부터 16일까지 진행되는 '쌍용자동차 해고자 전원복직을 위한 범국민행동 주간'을 맞이하여 쌍용자동차의 정비노동자, 비정규직노동자, 생산직 노동자였던 이들의 기획인터뷰 [어떻게 지내세요?]를 차례로 연재할 예정이다. 함께 투쟁하고 있지만 각기 다른 상황과 사연을 가지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 정비지회 원상연
대한문 분향소에서 지내는 원상연 동지는 쌍용자동차 정비노동자였다. 49제를 앞둔 5월17일 대한문에서 원상연 동지를 만나 정리해고 이후의 상황과 희망운동에 대한 생각, 투쟁 속에서 생기는 고민을 들어보았다.
정비지회 원상연 동지가 분향소를 지키고 있다 |
대한문 분향소에서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되나요?
일정친 않은데요. 6시 정도 일어나는 분도 계시고 전날 한 잔 하면 7~8시 정도 일어나는데 보통 7시 정도에는 일어나서 주변 정리하고 청소할 거 하고 분향소 정리한 다음에 아침 분향드리고 시작하죠.
하루에 분향하는 분들은 얼마나 오세요?
처음보단 많이 줄었어요. 지나가는 일반 시민 분들은 분향이라기보다는 관심을 가지고 서명을 한다든지 모금해주시는 분들이 많고. 단체에서 오신 분들은 분향도 하시는데 하루에 20~30명 좀 넘게, 어떤 행사가 있거나 그러면 좀 많고 그렇지 않은 일반적인 날에는 별로 없고.
요즘엔 시민상주단이라고 해서 단체에서 돌아가면서 많이 오세요. 문화제도 특정 단체가 주관해서 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단체에 속하신 분들이 많이 오시고. 낮에는 그렇고 밤에는 좀 더 많다고 볼 수 있어요.
쌍용차지부 정비지회 부지회장을 맡고 계신다 들었어요.
형식적인 역할입니다. 별 의미를 안 두고 있어요. 남아 있는 동지들이 한 7~8명 되는데 집안 사정이나 다른 사정에 의해서 잠시 나가있는 동지들까지 합치면 10명 가까이 되긴 하지만. 현재 활동하고 있는 동지들은 7명, 6명 그 정도밖에 안돼요. 지금 한성카센터에는 두 분 계시고 대한문에 한 네 분정도 계시고, 김정우 지부장은 어차피 지부장이니까. 한 사람 지회장, 한 사람 부지회장, 사무장, 대의원까지 합치면. (웃음) 그렇게 큰 의미를 안 둡니다 저희는.
정비지회 동지들이 10명이라고 하셨는데 모두 해고자 분들인가요?
싸우고 움직이는 사람들이 그렇고, 전체 조합원 따지면 50명이 넘어요. 해고잔데도 지방에 계신 분들, 주도적으로는 못하고 생계 때문에 나가신 분들은 저희들한테 월 얼마씩 도와주고 있어요. 무급자 동지들 중에서도 조합원이 있는데 조합비 납부의 의무 정도이고, 자발적으로 도와주시는 분들도 있어요.
한성카센터 운영은 잘 되고 있나요?
돈을 벌려고 시작한 거지만 지금 내놨어요, 장사가 안 되서. 초창기에는 좀 되다가 시스템이 잘못되었는지 여러 요인이 있지만. 저희들이 그 쪽을 인수할 때 (카센터가) 굉장히 오래 됐었어요. 20년 이상 됐던 자리이기 때문에 고정 고객들이 많을 것이다, 했는데 사장이 몇 번 바뀌고 거기서 일하던 사람이 불성실하게 하면서 고객들 관리가 안 된 거에요. 그래서 고객이 많이 떨어져 나간 상태에서 저희들이 인수하는 바람에, 지금 와서 얘기하는 거지만 사기 당했다, 그런 식으로까지 얘기하고 있고.
초창기에는 연대 동지들이 많이 오셨는데 서로가 불편한 것이 있어요, 이게 돈을 받고 하다보니까. 자동차라는 게 좀 그렇잖아요. 인식이 어디가면 바가지를 쓴다, 그런 게 있기 때문에 굉장히 조심스러워요. 견적 내고 할 때.
그리고 저희들의 자동차에 대한 인식하고 일반 소비자들은 차이가 있어요. 어느 부위가 고장 나면 해당하는 부위를 한꺼번에 같이 교환해야 되고, 물론 필요성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사고)예방 이런 것에도 받아들이는 사람은 ‘이 정도를 굳이 뭐’ 이럴 수도 있고. 그러다보니까 오해 아닌 오해가 생길 소지도 많고. 이게 좀 어렵더라고요.
아는 분들이 오시면 잘해드리고 싶긴 한데 그런 것 때문에 서로가 어려워하는 긴장 관계가 생기니 요즘은 많이 줄고. 또 (이미 와서 정비)하셨고. (연대동지들 입장에선) 도와줘야 하니 오긴 와야 하는데. 우리도 (연대동지들에게) 뭔가 해드리긴 해야 되는데, 라는 부담감이 조금씩 있어요.
정리해고 그 이후
정리해고 당시 정비노동자는 몇 명 정도였나요?
77싸움 전에는 한 400명 정도 됐죠. 거슬러 올라가면 1,600명 이상 된 적도 있었고. 97년 IMF 때부터 대우자동차로 팔렸다가, 다시 나왔다가 상하이로 갔다가 그렇게 절반, 절반, 절반 떨어져 나가서 400명 정도 남았다가 (09년) 정리해고로 절반. 지금 200명 정도 일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공장에서 일하는 분들 상황은 어떤가요.
노동의 유연화라는 것, 고용의 유연화 말고 일할 때의 유연화를 말씀드리는 건데. 커피를 한 잔 마실 수도 있고 담배를 한 대 피울 수도 있는데 그런 것들에 대한 통제(가 심해졌어요). 정비는 라인하고 달라서 휴식시간 그런 게 따로 정해져 있지 않아요. 일할 때는 서너 시간 미친 듯이 일하다가 일 없으면 서너 시간 놀기도 하고. 고객들하고 얘기를 하다보면 그게 한 20분 될 수도 있고, 같이 시내를 나가서 한 시간 이상 돌아다니면서 설득시키고 그런 작업이 많이 있어요. 때문에 작업이 딱 정해지면 야간까지 작업하는 경우도 있고.
그런데 그게 타이트해졌다고 보면 되죠. 옛날에는 잔업까지 해서 8시, 9시까지 해야 하는 작업이라면, 현장관리자들이 경력 좀 있고 그런 애들이 하다보니까 ‘야 너는 왜 밤까지 안 해도 되는 걸 붙들고 있냐’라는 식으로 해서 압박을 주는 거죠.
맨아워라는 게 있어요, 작업마다. 그 시간 안에 안 되면 뭐라고 하기도 하고. 간섭이 많아지고. 현재 노동조합 자체가 흔히 말하는 어용노동조합이라고 표현하는데 노조 자체가 아무런 견제세력이 못되다 보니까, 현장에서 운신의 폭이 굉장히 좁아진 거죠, 조합원들이.
그러면 공장 안의 노동자들은 모두 어용노조원인가요?
쌍용자동차는 유니온샵이잖아요, 조합비는 자동이체가 되는 거고. 회사도 그렇고 노동조합도 그렇고 현재 저희들의 실체를 인정안하는 거죠. 그러니까 당연히 그 사람들은 그쪽 노동조합으로 가게 되어있고. 이중으로 가입되어 있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 사람들은 쉬쉬하고 있는 거죠. 계속 기업(어용)노조에서 ‘이중가입하면 불이익 주겠다, 제재가하겠다’는 얘길 계속하기 때문에 대놓고 저희한테 조합비를 내고 있다는 얘기는 못하지만 이중으로 하는 분들도 계세요.
동지들 중에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과 연락을 계속 취하고 있는 분들이 있나요?
연락을 맘먹으면 할 수는 있겠지만 어차피 다른 길을 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굳이 연락할 이유가 별로 없죠. 친목단체나 이런 게 아직 유지되고 있다면 연락해서 만나겠지만. 현재 우리가 싸움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만날 일은 거의 없다고 봐야죠.
정비사업이 외주화 되었다면 사업소가 없는 건가요?
쌍용자동차라는 공장이 있고 생산부분, 정비, 영업, 해외 이렇게 있는데, 영업정비라고 하는 직영사업소가 있어요. 옛날에는 (직영사업소가) 지방마다 하나씩 있었어요. 부산, 광주, 양산 이렇게.
보통 직영사업소는 모든 정비를 다 할 수 있는 규모가 큰 곳이고, 서비스 프라자는 흔히 말하는 카센터인데 이것은 어느 정도 조건이 갖춰져서 쌍용자동차에서 인정을 해주는 데가 있는데 그건 굉장히 많죠.
직영서비스 공장은 구로에 하나 있고 구로의 규모였던 것들이 다 분사화 되어 버렸어요. 광주, 대전, 부산, 양산 이런 데가 법인으로 바뀌어서 남아있는 거에요, 외주화돼서.
그럼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쌍용차 노동자가 아니겠네요.
당연하죠. 법인이 다른데.
구로 정비소는 어떻게 운영이 되고 있나요.
내부사정은 정확히 알지 못하는데 그렇게 좋은 상태는 아닌 것 같아요. 쌍용자동차가 차를 고치는 회사가 아니라 차를 판매해서 수익을 내는 회사이기 때문에 서비스에서 이윤을 남기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거고 장기적으로 봤을 때에도 서비스는 적자를 보더라도 계속 늘려나가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제가 자본의 입장에서 봤을 때에도 그게 맞는 것 같은데, 쌍용자동차는 계속 분사화 시키고 외주화 시켜서 서비스의 질만 떨어뜨리는 형태가 되고 있어요.
자동차에 대해서 잘 모르는 고객들은 계속 피해만 보는 거죠. 외주화 되고 분사화 돼버리면 어차피 그 사람들은 어떻게든 이윤을 취해야 되니까 골탕 먹는 건 소비자들이고.
지방사업소가 구로에 하나밖에 없는데 거기에서까지 이윤을 생각한다고 하면 서비스는 쌍용차에서는 끝났다(고 할 수 있죠). 사실 쌍용차를 선택한 사람들이 돈 주고 차를 사서 당연한 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비직영 같은 경우는 돈 안 되는 것들은 직영(구로 사업소)에 전부 다 미뤄버리는 형식이 되요. 불만 많은 고객들은 다 구로 쪽으로 돌려버리고. 돈이 좀 된다, 보증기간이 지난 차들 같은 경우 덤태기 씌워 버리고. 그러니 구로정비 사업소가 보루가 된 거죠, 서비스의.
쌍용차지부 안의 여러 노동자들
생산직 노동자들과 정비 노동자들은 일도 다르고 상황도 좀 다른 것 같은데 어떤 다른 점이 있나요?
다르죠, 일이 다르고. 보통은 타사를 봐도 큰 집이라고 표현하는 지부가 대 부분 공장이죠. 쌍용자동차 같은 경우는 비정규직지회가 있고 정비지회가 있고 창원지회가 있어요. 창원은 엔진을 만드는 데에요. 거기가 정비보다는 조합원수가 좀 더 많은데.
보통 싸움, 투쟁계획이 지부에서 많이 이루어지고 지회는 회의는 참석하지만 투쟁계획에 따라가는 입장에 많이 있어요. 다만 성향이 조금 차이가 있을 수 있어요. 흔히 말하는 투쟁력이나 그런 걸로 표현하기는 그렇지만 의식관계가 그런(다른) 게 있어요.
쌍용자동차노동조합의 예전의 행태들이 앞서가는 민주노조는 아니었지만 저희 정비(지회) 같은 경우에는 그래도 어느 정도 (전투적인 성향인데), 탄압을 많이 받으면 그만큼 생각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어요. (지역적으로도) 저희 주변에 기륭전자도 있고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 문재훈소장님부터 시작해서 추모연대 선배들까지 거대한 (연대 흐름) 그런 것들이 있어요. 같이 투쟁하고 얘기하고 하다보면 가야해야 할 길이 명확하게 나와 있거든요.
그런 차이가 있는 거죠. 77 때도 그렇고 이후에도 그렇고 그런 차이들이 좀 보이긴 했었어요. 지금도 지부하고 회의를 하면 못마땅한 것도 좀 있고. 대한문 같은 경우에도 지부에 허락을 맡아서 한 게 아니고 우리 이거 하겠다 해서 한 거거든요, 독자적으로.
77싸움 거치면서 지부도 그렇고 싸우는 동지들의 의식도 많이 변한 건 사실이에요. 대한문도 상황이 이렇게 되면 당연히 이쪽으로 결합하는 게 맞고 집중하는 게 맞기 때문에 지부도 같이 하기로 결정한 거고. 같이 모아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정비지회도 그렇지만 비정규직지회가 따로 가기도 하고 같이 하기도 하는 것 같아요. 희망텐트를 하던 시기에 원유철 한나라당 의원 사무실 앞에서 천막농성을 따로 했잖아요.
같은 지부 내에 지회가 있지만 투쟁을 바라보는 자기 입장이나 지회 입장, 절실함의 차이도 조금씩 있어요. 정비지회 같은 경우는 그 전부터 계속 지부하고 (함께)했고 비정규직지회 같은 경우에는 77 때 같이 지회로 (지부에 편제)됐기 때문에 그 전부터의 관계(입장 차이)가 있었어요.
지부의 투쟁 상황에 따라서 소소하게는 정비지회 나름대로의 지역투쟁 이런 걸 했었지만 극단적으로 하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비정규직지회 같은 경우는 자기들만의 투쟁계획이 있었으니 지부하고 마찰 아닌 마찰이 좀 있었고. 자기들의 계획이 계속 딜레이 되는 것에 대한 (불만), 그런데 지부의 계획이 또 있었거든요, 그 당시에. 희망텐트라든지 그런 걸 준비하고 있는 상황에서 같이 해야 된다는 그런 게 있었는데. 인식의 차이도 있고 (사안을) 바라보는 차이가 분명히 있었던 것 같아요.
비정규직지회 동지들 같은 경우에는 지역 국회의원에 대한 압박이 없이는 비정규직 문제 해결이 안 된다는 게 있었고 지부 같은 경우는,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정리해고에 대한 문제를 큰 틀에서 해결하지 않으면 비정규직 문제도 해결될 수 없다, 같이 해결해야 된다는 입장이었어요.
비정규직지회는 절실했고 급했던 거죠. 왜냐면 우리보다 더 투쟁을 일찍 시작했었고, 그렇기 때문에 많이 지쳐했었어요. 그래서 단시간에 승부를 봐야 된다는 시간에 대한 (압박감) 그런 것들이 있었기 때문에 급하게 준비했었고. 제가 봤을 때는 그렇습니다.
비정규직지회 동지들이 텐트를 걷을 때 평가를 어떻게 하셨는지 모르겠는데. (지부) 전체적인 평가는 없었던 것 같아요, 천막농성에 대한. 어차피 (지금은) 지부와 같이 하기로 마음을 모았어요.
(원유철 사무실 앞 농성이) 어느 정도 소정의 성과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소정의 성과라면 공장 한 번 들어가서 노무담당 한 번 만나서 얘기해본 게 단데, 입장차이만 확인한 거고. 그런 것만 따져도 사실 이건 일개 국회의원이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게 명확해진 거거든요.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성과가 너무 미약했던 건 사실이죠. 제 생각에는 지부가 좀 서운한 게 있고 그렇더라도 설득하고 같이 나가 할 수 있는 걸 모색해야 하지 않나하고 생각합니다.
투쟁방향에 대해서
희망버스로 시작된 희망운동과 같이 과거 노동운동과는 다른 운동방식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제가 생각하는 이 투쟁의 끝은 어차피 정부, 이명박을 움직이지 않으면 해결이 안 될 거라고 봐요. 지금까지의 행태를 봐서 그건 어차피 (정부 차원으로) 내맡겨지지 않았나 생각이 드는데.
희망버스 자체가 그거(대정부투쟁)였잖아요. 사실 한진 동지들이 싸움을 했다? 싸우는 걸 난 못 봤어요, 사실. 난 냉정하게 말하면 김진숙 씨 때문에 싸움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해요).
그럼 지금 쌍용차는 어떠냐. 77 이후로 한 게 없어요. 끽해야 (희망)뚜벅이부터 시작된 공동투쟁 같이 결합하고 산업은행(에 농성) 잠깐 있다가 뭐 그런 것들. 공장을 벗어나서는 투쟁의 한계가 있는 거고, 사람이 자꾸 죽어나가는데 목숨을 건 투쟁을 해야 되냐. 물론 나중엔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하다하다 안되면 곡기 끊고 그 때 또 높은 데 올라가고 그럴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이 나라 국민을 움직여서 정부를 움직이는 거에요.
희망버스의 예를 들었지만 그런 게 어떻게 보면 가장 정확할 수도 있고. 그래도 최선을 다하고 주변에 문제를 계속 알려내고 조직하고 광고하고 호소하고, 해도 해도 안 되면 다른 걸 선택할 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국민들의 공감대가 어느 정도 형성이 돼서 중요한 문제를 같이 해결할 수 있는 그것이 가장 절실하지 않느냐 그런 생각이 들고요.
광장 사업이라든지 (희망)뚜벅이는 그 테두리 안에 갇히지 않았나 (생각해요). 어차피 시청광장이라는 상징성이 있어서 계속 알려내기 위해 있어야 했지만 광고나 투쟁에 있어서 평가는 굉장히 분분하긴 한데 계속 막혔잖아요. 물론 그것 자체가 어느 정도의 선전의 효과는 있지만 효과적인 선전이었느냐에 대해선 비판이 많이 있잖습니까. 다음에 무슨 사업을 할 때 참고사항은 되겠지만 비타협적인 사업을 하면서 하기에는 그럴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여건들이 있었거든요.
경찰은 계속 막고 고립되긴 했었지만 어느 정도 의의는 있었어요. 뚜벅이 때부터 장투사업장들이 같이 모여서 서로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기회도 많이 있어서 굉장히 좋더라고요, 저는. 광장보다는 개인적으로는 뚜벅이가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그 때 만난 동지들이 지금도 계속 인연을 이어가고 있고. 서로가 진짜 가슴아파할 수 있는 동지들이 생기지 않았나. 뚜벅이가 있었기 때문에 광장까지 계속 이어질 수 있었고요. 코오롱이나 콜트 콜텍, 쌍차, 사안마다 같이 모일 수 있는 원동력을 그런 데서 찾을 필요도 있을 것 같고.
저희들이 대한문에서 싸우는 것은 사업장을 모아낸다기보다도 민주노총이나 제도권에 있는 조직된 사람들하고 진보정당이라고 요즘 많이 시끄러운 그런 데에도 같이 한 번 모아내 보자라는 (의미가 있어요). 수세적이었던 것에서 공세적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더 좋고. 그런 것들에 대한 고민이 막 생기더라고요, 초기에는 그런 고민이 없었는데. 아 그렇게 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가능성도 좀 열리는 것 같고. 해보자, 그런 식이 되는 것 같아요.
공장 중심의 전술을 계속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나요?
쌍용자동차 개별 기업과 해고노동자들의 싸움은 이제 지나버린 거에요. 그렇다면, 쌍용자동차가 그렇게 버틸만한 힘이 있었겠냐, 내가 보기에는 없다는 거에요. 걔들(사측)도 믿는 구석이 있는 거에요, 제가 봤을 때는. 정부나 이명박이 같이 한 거죠. 때문에 걔들이 그렇게 당당할 수 있는 거라고 판단해요. 개별 쌍용자동차를 압박하기는 것은 물론 전술적으로는 그렇게 할 수 있겠죠. 마힌드라도 있고. 그렇지만 일단은 대정부 투쟁을 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태가 아닌가 (해요).
민주당도 쌍용자동차 문제 해결을 위해서 특위 꾸렸는데 기대가 있나요?
(웃음) 77 때 추미애 의원이나 그런 사람들이 왔었어요. 사실 투쟁하는 노동자들 어려운 상황에서 높으신 양반들 오면 얼마나 고맙겠어요. 그런 고마움이 있고 혹시 해결하려고 왔나 그런 기대는 있죠. 그 당시만 하더라도 노무현 정권이 상하이차의 시초를 저질러놓고 그 의원들이 왔다는 것 자체를 그 당시에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 걸 떠나서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나보다 라는 (기대를 했죠).
사실 해결은 안됐잖아요. 그리고 이제 와서 뭔가를 하는데 우리의 요구가 100% 받아들여지겠냐 (싶어요). 다만 이런 정치적인 움직임이 일반 시민들한테까지 전파가 되어서 ‘아 이런 일들이 있고 정치인들까지 신경을 쓰고 있구나’ 하는 어느 정도 광고효과만이라도 알려내고 심각한 문제의식이 시민들한테 받아들여지게 된다면 그것만이라도 어느 정도 성과가 있지 않겠나하고 받아들이고 (있어요).
까딱 잘못하면 정리해고가 철회되어야 하는데 무급자들만, 86 노사합의에 관한 것만 제한되어버리면 그건 역효과죠. 그것을 저희가 경계를 하고 있는 부분이에요. 어쨌든 범대위가 됐든 정치권이 됐든 우리하고 같이 할 수 있다는 것에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죠.
민주노총, 금속노조, 쌍차지부, 민주당 간사 이렇게 해서 어제도 모임이 있었나 본데, 우리의 요구를 정확히 전달하는 게 일차적인 목표에요.
그렇다면 현재 걸고 있는 요구안은 무엇인가요.
정리해고 철회, 책임자 처벌, 진상규명 뭐 그런 것들이죠. 그런데 민주당에서 흘러나오는 얘기는 86노사합의를 자꾸 얘기하는 것 같아서 이것(우리의 요구)를 좀 더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에서 같이 만나서 만들어 가려고 하는데, 어디까지 가능할지는 두고 봐야 하고.
사실 제가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비관적이죠. 당신들이 저지른 일을 진상규명을 한다? 스스로가? 그것은 어불성설이다, 끽해야 무급자들 언제까지 복직시킬지 약속받아내면 진짜 잘한 거다라고 생각하지만 쌍용차 투쟁 자체가 그걸로 한정돼버리면 그거는 아니한만 못한 게 돼버리기 때문에 그것을 걱정하고 계속적으로 요구하고 한 거죠.
앞으로의 계획과 고민들
위령제 이후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범국민추모위원회에서 범국민대책위원회로 바뀔거에요, (5월)19일 이후로. 그러면 분향소는 분향소대로 그냥 놔두고 일차적인 거점 마련을 한다, 이쪽에서. 그리고 2차 거점을 어디다 만들 수도 있다, 이건 한나라당으로 갈 수도 있고 청와대 앞으로 갈 수도 있고 다양한 것들을 고민하고 있는 상태고.
그런데 19일 이후로는 서울경찰청에서도 정리를 한다고 계속 연락을 해오고 있는 상태라서 일단 이것을 유지하는 게 1차적인 목표니까, 그게 안정화되면 계속해서 다른 투쟁계획을 고민하는 거죠.
평택에 거점이 있는데 평택지역에 대한 선전활동이라든지 분향소도 지금 평택역 앞에 있거든요. 그것도 유지해야 되고 100% 여기 다 올라오긴 무리여서 최소인원 남겨놓고 이쪽으로 올라온다, 그런 결의에 대한 것들을 얘기했죠. 조편성이나 그런 구체적인 사항을 같이 얘기했죠.
5월19일 열린 쌍용차 희생자 범국민추모대회 |
이러한 계획이 다른 동지들과 함께 이야기 되어 결정되었나요?
전체회의에서 그런 얘기를 많이 해요. 범추위에서 범대위로 바뀌었는데 지금 상황이 만약 수그러든다면 다시는 이런 기회가 찾아올 수 없다, 최대한 활용하고 투쟁열기가 가라앉기 전에 계속 뭔가를 만들어내고 해야하는 것을 얘기하고 계속 투쟁계획도 생기고 집중하게 되는 그런 과정이 좀 있었죠. 어느 정도는 다 공감하고 있다고 봐요.
지금 쌍용차 해고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장투사업장이 다 그렇듯이 가끔 고민이 너무 많아지는 경우가 있죠. 승리에 대한 확신이나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정당성이, 이게 맞는 거냐는 회의가 간혹 들어요. 그럴 때마다 그것을 극복해야 하는 게 맞냐, 아니면 회의들 때 정리해야 하는 게 맞냐.
사실 정답은 같이 투쟁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극복해서 다시 하는 게 맞겠죠. 나는 그런 생각이 참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생각이 들면 어떻게 극복하고 어떻게 한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왜 그런 생각이 들고 왜 그랬는지에 대한 생각도 하고. 또 고민이 필요할 때는 진짜 고민을 해야 된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흔히 말하는 운동에 대한 중요성이나 모든 걸 가정이나 인간관계를 다 파괴시키면서 이 길을 반드시 가야 된다? 아무 고민 없이 그러면 안 된다고 제 개인적으로 생각하거든요. 그런 생각이 들 때 좀 더 고민하고 다른 사람하고 얘기도 많이 하고. 그런 생각이 들죠, 왜 안 들겠어요.
중요한 말씀인 것 같아요. 모든 장투사업장,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겪는 고민인 것 같아요.
결의를 외치잖아요. 발언하고 그럴 때 끝까지 어쩌고 뭐, 죽을 똥 살 똥... 하지만 사실 들여다보면 쟤가 맘에도 없는 얘길 왜 하지... (웃음) 꼭 위원장이나 그럴 때는 끝까지 해서 총파업하고 어쩌고.... 그런 점에서 해서 좀 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들면 잘 발언도 안하지만 발언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지죠, 사실. 내 마음이 이런 데 결의에 대한 발언을 어떻게 하냐. 정리가 되고 그러면 하는 거고.
물론 진짜 열심히 하고 그런 친구들도 많이 있지만 무조건 이런 마음까지 다 접으면서까지 막 결의하고 어떻게 해야 된다, 그건 역효과다 (라고 생각해요). 고민할 땐 고민하고 다시 시작할 땐 시작해야 되는 거죠.
내부 의견이 어떤 게 있는지 알아보고 어떻게 정리되어서 나아가는 지 궁금했어요. 전조합원 토론이 자주 있으면 좋지만 그럴 기회가 적고, 개인이 문제제기할 힘이 없거나 귀찮으면 안 해버리거나 자기 목소리가 반영이 안 되면 실망하거나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제발 좀 그랬으면 좋겠어요, 문제제기하고 얘기를 좀 많이 하고 그랬으면 좋겠는데. 이렇게 나가는 방향이 맞다는 걸 다 알고 있지만 솔직히 그것에 대해서 반박을 제시할 순 없죠. 이게 맞는 건데. 그렇게 되면 투쟁하지 말자는 얘기냐 그런 식이 되어버리는 경우도 있고. 사실 말이 없어요. 왜? 그건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 하나는 그게 맞기 때문에 그냥 따라가는 거고 하나는 체념을 해버리는 거고, 조직의 뜻이. 의식 자체를 안 하려고 하는 그런 것도 있겠죠. 체념을 해버리는 수도 있고.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알리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장투사업장들이 다 겪는 문제지만 쌍용차가 특별하다는 건 아닌데, 현재 싸우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내부 이야기를 조금 더 해줬으면 생각이 들어요. 연대단위나 그런데서 요구하고 우리를 바라보는 시각이 뭐냐면 ‘쟤들은 22명이 죽었는데 전혀 움직일 생각이 없어, 투쟁할 생각도 없고 의욕도 없어’ 그런 얘기를 많이 해요.
물론 저도 그런 적도 있었고. (그런데) 내부를 들여야 보면 의욕이 생길 수가 없죠. 가정이 다 파괴됐고, 물론 지금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근본적인 문제는 거의 인생을 파괴하는 거니까. 대부분 그런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과연 아무 생각 없이 투쟁만 집중하고 결의를 다지고 그럴 수 있겠는가. 그럴 수도 있겠죠. 다 포기하고 그냥 포기하는 순간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 올지는 모르지만. 죽음을 막겠다고 싸우는 사람들이 나는 솔직히 지금까지는 목숨을 걸면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우리의 안을 심도 깊게 들여다볼 수 있는 그런 시각이 필요하지 않나 (해요). 좀 지나면 정리가 되겠죠. 싸움을 지속해야 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는 동지들도 많이 있고, 그렇게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뭔가는 해야 되겠고. 고민이 있죠.
<출처 - 사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