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했다.
요즘은 나이가 먹어서인지 4시 30분 퇴근시간이 되면 피곤함이 몰려온다.
중학생 큰딸이 5시 30분에 학원에 간다. 큰 아이가 학원에 가기 전에 밥을 준비해주려고 종종거리며 집으로 왔다. 아이에게 밥을 차려주고 설거지를 다 한 후 자리에 앉으려고 하니 6시 즈음에 작은 아이기 들어왔다. 급식 먹고 아무것도 못 먹었다며 배고파하는 아이에게 냉장고를 뒤져서 삼겹살 두어줄 찾아 구어 주었다. 그때 은주언니의 문자가 왔다. “어디야, 나 윤진이랑 왔어.” 그래서 은주언니에게 전화를 했다. 은주언니가 빨리 신창동으로 오라고 했다. ‘갈까?, 말까?’ 망설이다 내일은 현충일이니 오늘은 좀 무리를 해도 괜찮을 것 같아 작은아이와 함께 설거지를 대강하고 신창동으로 갔다.
7시가 넘어서 신창동에 도착한 것 같다. 오늘도 정의감에 불타는 세 명의 열혈교사 진희언니, 주희, 은주언니가 있었다. 가볍게 인사를 하고 자리를 잡아 앉았다. 연극이 시작되었다. 연극의 제목은 '극한직업 열혈교사'였다. 초등 교사들이 날라 오는 쪽지에 몰려드는 행정업무를 하며 초등교사로서의 사명감을 가지고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나아가는 모습의 연극으로 교사들이 열정을 가지고 교사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게 항상 전교조가 힘이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날라 오는 행정업무를 감당하며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하는 교사에게 칭찬과 격려가 있는 학교현장이 아니라 오히려 질책하는 우리 교육현실을 잘 반영하는 연극이었다.
그 연극을 보며 최근 또 다시 중·고등학교에 공기청정기 공문을 내리려고 준비태세를 갖추고 있는 광주광역시 교육청이 생각났다. 초등학교에 이미 공문을 내려서 문제없이 설치되었으니 이번에도 그대로 일선학교에 공기청청기 설치 공문을 내린단다. 공기청정기가 설치되어 가동되고 있으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일까?
'보건교사? 무엇을 하는 교사인가?' 이재남 정책국장이 남도일보에 쓴 기고문의 한부분에는 ‘의사도 교사도 아닌 애매한 형식에서 주는 혼란보다는 차라리 전문가로서 학교간호사 같은 시스템을 일찍 도입한 것을 보면 핀란드 교육의 실사구시적 접근을 들여다볼 수 있다.’라고 적혀져 있다. 보건교사이면 전문가가 아닌가? 학교간호사이면 전문간가? 보건교사를 애매한 위치에 서게 만드는 것이 교육청이 아닌지 이재남 정책국장에게 나는 묻고 싶었다.
아마 내가 임용되기 전부터일지도 모르겠다. 환경관련업무로 보건교사와 행정직 공무원 사이에 갈등이 존재하고 있다. 공기청정기를 모든 초등학교에 설치하는 공문으로 모든 초등학교가 시끄러웠다. 얼마나 시끄러웠는지 신문기사로도 몇 번 이 문제가 거론되기까지 했다. 나도 그때 그 업무로 힘들었었다. 그 업무를 못 하겠다고 하자 나를 비꼬는 교직원들이 있었다.
"보건선생님 바쁘다면서 공기청정기 설치도 안하고 희망교실은 왜 하는지 몰라.",
"보건선생님 왜 공기청정기를 설치 못 하겠다고 하는 거야. 그럼 영양 선생님이 설치하라는 말이야.",
"보건선생님 왜 학교에서 네 일, 내 일 가리고 난리야." ,
"예산이 보건으로 왔는데 왜 못하겠다는 거야.';공동체에 협력 안하는 거야."
“컴퓨터 기자재도 다 우리 교사들이 사는데 보건선생님은 왜 혼자만 못산다고 그러는 거야.”,
“학교 CCTV도 우리 교사들이 다 설치했는데 왜 보건 선생님만 못하겠다고 저러는 모르겠어.”
“학생 건강을 위한 업무이니 보건교사 업무지.”
그리고 나대신 공기 청정기 업무를 하게 된 선생님은 자신의 아들이 키를 재로 왔는데 바빠서 키를 재주지 않았더니 "학생 건강을 최고를 생각하시는 선생님께서 학생 키는 왜 안 재냐며 따지기도 했다.
공기청정기 업무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내가 보건교사로서의 전문성과 사명감을 가지고 했던 모든 일들이 비난의 대상이 되었었다. 내가 열정을 다했던 금연 서포터즈도, 학부모 흡연예방 동아리도, 희망교실도, 보건수업도, 학생건강관련 연구들도......그리고 내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했던 학생 응급처치도......
공기청정기 관련 신문기사의 댓글을 보면 보건교사를 비난하는 글들이 한도 끝도 없다. ‘그것도 안하면 도대체 뭘 하겠다는 건지.’ ‘아픈 아이들 다 병원 보내면서 왜 안 하는 건지’, ‘보건교사가 교사일 필요 있냐?’ 등등.
몇 년 전 한 관리자는 환경관련 업무를 못하겠다고 말했더니 5,6학년 부장을 옆에 두고 대놓고 이렇게 말했다. “보건 선생님께서 본연의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보건 교육 시수를 줄여줍시다.” 그 옆에서 관리자에게 맞장구치던 한 교사는 “요즘 자료 많잖아요. 충분히 우리가 교육할 수 있잖아요.” 그 옆에서 그 관리자는 “예전에 보건선생님 없을 때 우리가 이런 교육 다했어.”라고 말했다. 그 관리자와 그 교사에게 묻고 싶다. 보건선생님이 학생 건강증진을 위해 보건교육을 준비하고 보건교육을 해야 하는 교사인지, 수질검사와 냉온수기 청소를 해야 하는 교사인지......
보건교사를 애매한 위치의 비전문가로 교육청에서 만들어가고 있다. 한도 끝도 없이 업무배정은 학교장 재량이라며 일선학교에 잡다한 행정업무를 내리는 것을 보면 분명하다.
잡무가 많아도 너무 많다. 수질검사, 학교소독, 공기질 업무, 정서행동 특성검사, 공기청정기, 정수기, 냉온수기, 물탱크, 안전공제, 미세먼지 관련한 잡다한 업무 등
전교생을 대상으로 하는 보건선생님들이 보건실을 방문한 아이들의 건강에 집중할 수 있는 보건실 환경을 만들어주면 좋겠다.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교육하고 연구할 수 있게 해주면 좋겠다. 학생 한 명, 한 명 자세히 보며 아이들과 함께 웃고 행복해하는 보건선생님이 있는 보건실을 전국 곳곳에서 보면 좋겠다. 잡무 못하겠다고 하면 왜 못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인지 학교 보건실에 와서 좀 들여다보고 생각해보면 좋겠다. 힘들어하는 보건선생님들에게 격려해주는 학교가 되면 좋겠다. 보건선생님들이 전문성을 가지고 학교에서 일할 수 있게 잡무는 이제 그만 주면 좋겠다.
‘극한직업 열혈교사’연극이 끝나고 운전하며 집에 오는 길에 전교조가 없었다면 보건교사들의 잡무에 대한 싸움이 어떻게 되었을까?, 전교조가 있어 나는 내 뜻대로 학교에서 사명감을 갖고 일할 수 있게 되었다. 부당하다고 이야기하면 들어주고 그 부당함을 교육청을 상대로 이야기해주는 전교조가 있어 참 다행이다. 꽉 막힌 어두컴컴한 방 한구석에서 빛을 볼 수 있게 전교조가 도와주고 있다. 그래서 난 전교조가 참 고맙다. 그리고 정의감에 불타서 전교조 업무에 앞장서는 희숙샘, 주희에게도 늘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