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국제시장’에 이어 TV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란 드라마 시청률이 고공행진인 모양이다.
‘응팔’은 바둑을 주요 뼈대로 들고나왔는데, 이건 정말 무릎을 칠 만큼 영악한 전략이었다.
시대적 ‘반짝 즐거움’을 돈 한 푼 안 들이고 차용해 톡톡히 효과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바둑 용어로 말하자면 추억 마케팅의 급소(急所) 일격이다. 디테일과 무대 설정, 시점(時點) 등 많은 것이
현실세계와 큰 차이를 보였지만 다큐멘터리가 아닌 드라마를 놓고 시비를 걸 일은 아니다.
한국의 바둑은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선비들의 사랑방 소일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바둑 전담 관청을 만들고 최고 통치자가 고수들에게 녹봉을 주던 중국이나 일본처럼 국가적 지원을 받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 한국 바둑이 오로지 민병(民兵)의 힘만으로 1990년대부터 십수년간 세계를 완전 지배했다는 건
불가사의에 가깝다.
세계 어떤 문화, 어떤 나라의 역사를 뒤져봐도 이 같은 압축 성장으로 특정 세계를 완전 장악한 예를
찾아볼 수 없다. 그 도약의 시대를 다시 한 번 돌아보면서 한국 바둑의 위대함,
한국인의 우수성에 새삼 놀라게 된다.
1980년대에 접어들어 한국·중국·일본 프로들의 교류전이 빈번해지더니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첫 국제대회가 태동하기 시작했다. 대만 재벌 잉창치(應昌期)씨 주도의 잉씨배가 창설된다는 소문이 떠돌자
일본이 서둘러 후지쓰배를 열었다.
‘바둑의 메카’로서 최초의 세계대회를 빼앗길 수 없다는 자존심이 발동한 것이다.
1988년 7월에 끝난 제1회 후지쓰배 결승서 일본의 다케미야(武宮正樹)가 우승했고,
4년 주기인 잉씨배의 첫 왕관은 1989년 1월 한국 조훈현의 머리 위에 얹어졌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주인공 최택9단(박보검)과 실제 인물 이창호9단의
공통점과 차이점
공통점
1. 최택 九단의 아버지 최무성이 봉황당 금은방을 하듯이 이창호 九단의 아버지 이재룡도
전주에서 금은방을 했었다
2. 최택 九단이 대국을 할때 항상 정장을 입는것은 이창호 九단이 대국 시 바둑에 대한 예의를 지키기 위해서
정장을 입는 이유와 동일하다
3. 최택 九단의 IQ는 139, 이창호 九단이 초등학교에서 들어가서 IQ검사 결과 역시 139가 나왔었다고 한다
4. 최택 九단의 별명은 돌부처, 이 역시 이창호 九단의 별명 중 하나이다
5. 최택 九단이 콘세트 연결에 애먹는 모습 또한 이창호 九단과 비슷하다.
이창호 九단은 11살에 스승 조훈현 九단의 집에 들어가 내제자 생활을 했는대 처
음 1~2년동안 머리를 혼자 감지 못해 사모님이 직접 감겨주었다고 한다.
또한 신발끈을 묶지 못해서 찍찍이 신발만 신겼다고 한다.
결국 공익근무를 위한 훈련소 생활 중에도 신발끈을 묶지 못해 고심끝에 조교가 똑딱이 군화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6. 11살에 프로에 입단해 13살에 최연소 타이틀을 획득한 최택 九단의 모습은 4살때 처음 바둑을 접한 이후
11살이 되던해에 최연소 2위로 프로에 입단(1위는 조훈현 九단) 13살에 바둑왕전 최연소 타이틀을 획득한
이창호 九단의 모습과 동일하다
7. 2화에서 최택九단은 제3회 동양증권배에서 우승한다. 생일 이전에 우승했으므로 만16살이었다.
이창호 九단은 만16세에 최연소 세계 챔피언이 되었으며 그 대회가 제3회 동양증권배였다.
15화에서 최택 九단은 제4회 동양증권배의 대국에서 이기는 장면이 나온다.
이창호九단 또한 제4회 동양증권배를 우승해 대회 2연패를 했었다
8. 4화에서 최택九단이 설명서 없이 큐브를 맞추는 장면이 나오는대 이는 이창호 九단이 5살(?!!)때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9. 6화에서 국제대회에 참가 일본과 중국의 바둑기사를 상대로 5연승으로 리버스 스윕하는 장면은 2
005년 농심배와 동일하다
10. 15화에서 최택九단이 부르마블에서 완승을 거두는대 이창호 九단이 가장 자주하는 보드게임이
부르마블이라고 한다
11. 16화에서 오락실에서 갤러그를 하고 최고점을 갱신하는 최택九단의 모습은 이창호 九단이
한국기원에서 바둑을 두다가 잠깐 쉴때
오락실에서 스트리트파이터2를 하는것이 낙이었다고 한다.
철권도 즐겨하는대성인이 된후 정장을 입고 게임하는 그를 볼수 있다고 한다
12. 15화에서 대국 후 복기 중에 상대기사가 "이렇게 했으면 이겻을라나?"하는 물음에
단지 최택 九단이 단지 "예"라고 대답하는 장면은 조훈현 九단과 사제간 대국 후 복기 때,
패배한 조훈현 九단이 "이렇게 하면 어떻게 돼?"등의 질문에, 이창호 九단이 "예"로 일관했다고 한다.
말을 어려워 하고 복기시 손과 바둑돌로만 의사전달하는것에 익숙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13. 16화에 최택 九단이 칭하오 九단에게 이기고 소감을 얘기할때, "컨디션은 괜찮았다.
실리적인 바둑과 전투적인 바둑을..."하면서 운을 떼는대, 이는 이창호 九단이 제3회중환배 우승소감으로
했던 말이라고 한다.
14. 17화에서 최택九단은 한해 통산 최고 승률 86.7% 최다연승 41승, 최다대국을 달성한다
이창호 九단은 89년 11대국을두었고, 90년에 41연승과 승률 86.7%를 기록한다
이는 2007년 목진석 九단의 122국에 의해 기록경신되기전까지 최다대국 1위였다
41연승은 최다연승기록인대 이당시는 국제기전성적은 인정하지 않아 국내기전으로만 이룬 성적이라고 한다
15. 최택 九단은 도요타배 우승부상으로 자동차를 받게 되는대, 이부장님의 주차하는대 백번 왔다갔다했다는
말에서 주차실력이 미숙함을 알 수 있다. 이창호 九단은 02년 초대 도요타배에서 우승을 해서 렉서스를
부상으로 받았다. 물론 초반에 주차실력이 약해 기원에서 주차를 하다가 다른 차를 긁고 말았다
차이점
1. 최택 九단에게는 쌍문동 친구들이 많이 있지만, 이창호 九단은 어린나이에 입단해 친구가 별로 없어서
부럽다는 인터뷰를 하였다
2. 최택 九단이 1억을 벌었던 시기에, 이창호 九단은 3억을 벌었다고 한다.
이창호 九단은 93년도부터 22년간 99억의 상금을 벌었다.
93년도 이전까지 합치면 100억이 훌쩍 넘을것이라고 한다(?!!)
3. 최택 九단은 중졸이지만, 이창호 九단은 바둑으로 유명한 충암고를 나왔다.
4. 최택 九단은 외동이지만, 이창호 九단은 삼남중 둘째이다.
5. 최택 九단은 어머니를 여의였지만, 이창호 九단은 부모님 두분 모두 정정하시다
6. 최택 九단은 흡연자이지만, 이창호 九단은 비흡연자이다.
7. 최택 九단의 대국 시 안경 착용이나, 두통호소는 최택 九단만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