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화. 요한 공동체 마을
신성한 매실 758
이건 그간의 경험에서 나온 수사관의 감이었다.
그러지 않아도 권 팀장은 윤 보살이 사체 운운할 때부터 범인과 어떤 연관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엇인가 사건의 실마리가 술술 풀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권 팀장은 김유리에게 커피 두 잔을 더 시켰다.
“좋습니다. 내가 필요한 건 그놈들의 행방이니까. 자. 뭐부터 말씀하실래요?”
그러자 그는 금방이라도 석방이 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저도 여기 와서 들었습니다. 형사님들은 점집 계곡에 버려진 오토바이의 주인을 찾는 것 아닙니까? 그 젊은이 두 명.”
그의 말에 권 팀장은 심장이 터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입은 바짝 마르고 숨이 차오르고 있었다.
“아십니까?”
“알다마다요.”
그 말에 권 팀장은 눈이 번뜩 뜨였다.
“그 친구들이 솔봉에 매번 사체를 버리고 간 사람입니다.”
‘뭐라?’
“그리고 자기네 마을을 나와서 어디선가에서 일을 보다 돌아갈 때는 항상 우리 점집을 통해 올라갔거든요. 가끔 점집에 들러 물도 얻어 마시고 가곤 했었죠.”
권 팀장은 속으로 만세를 불렀다.
이제 곧 초미의 사건, 전국적인 전대미문의 사건이 해결되는 것 같았다.
그중 자신의 구역에서 일어난 사건의 범인을 잡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앗 뜨거, 뜨거!
그러자 그만 뜨거운 커피를 단번에 마시다 혓바닥을 데었다.
그런데도 권 팀장은 범인을 잡은 뒤의 상상들, 이를테면 서장으로부터 칭찬과 격려, 포상금과 일 계급 특진 그리고 언론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등을 꿈꾸었다.
‘나도 지방 경찰청으로 승진되어 가는 거야.’
그리되면 그는 이 지긋지긋한 시골을 떠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범인들 얼굴을 보면 알 수 있다는 것 맞죠?”
“뭐, 자세히는 못 봤지만 그래도 대충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는 그제야 이 사건의 실마리를 쥐고 있는 것 같은, 거만한 태도를 보였다.
권 팀장은 이런 그가 가소로웠지만, 일단 참기로 했다.
“그런데 왜 윤 보살은 아무것도 모른다며 시치미를 뗐을까요?”
권 팀장의 말에 그는 웃었다. 그 웃음이 야비하게 보였다.
“그야, 귀찮으니까요. 세상 어느 점집에 경찰이 들락날락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러니 그저 모르는 척했던 거죠.”
권 팀장은 여기서 그와의 대화를 끝내기로 하였다.
그리곤 눈이 그치기만을 기다리기로 했다.
눈이 그치면 이 자를 앞세워 그가 말하는 공동체 마을을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의외로 사건이 술술 풀리자 권 팀장은 하늘이 자신을 돕는다고 생각했다.
“이봐! 김유리 형사”
“네.”
“이 박수무당에게 소주 한 병과 돼지머리 눌린 것 한 접시 시켜줘.”
이제 범인 검거는 시간문제였다.
권 팀장 일행은 아침 일찍 박수무당이 말한 공동체 마을로 향하였다.
물론, 출발 전에 서장에게 반드시 범인을 검거해오겠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아직 눈이 그치지 않아 일부 간부들은 만류하는 분위기였다.
행여 그곳에서 수색작업을 하다 의무경찰들이 안전사고를 당하면 낭패였다.
그런데도 권 팀장은 강행하기로 하였다.
“모두 출발한다.”
연일, 매스컴에서 이 사건으로 떠들어대는 바람에 그도 윗분들에게 볼 면목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는 봉고차 두 대를 동원하였다.
대원사 방면으로 가는 내내 눈이 차장을 때렸다.
눈 때문에 권 팀장을 제외한 형사팀 전원은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의경들 역시 하필이면 날씨도 궂은 날에 지리산으로 출동하는 것을 불평했다.
선두 봉고차가 대원사를 지나 일전에 차를 대었던 곳에 주차했다.
그러자 권 팀장과 대동하던 박수무당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래? 이 길이 맞잖소. 우리도 그때 이리 올라갔는데.”
권 팀장은 혹시 박수무당이 마음이 바뀔까 봐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였다.
“맞긴 맞지만. 저 내리는 눈을 보십시오.”
그의 말에 권 팀장도 살짝 눈빛이 어두워졌다.
“이리 올라가다간 조난하기 딱 좋은 날입니다.”
이번에 옆에 있던 김유리도 거들었다.
“맞습니다. 팀장님. 아까보다 눈이 더 내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리하게 올라가는 것보다 이다음에 눈이 완전히 그치면 올라가시는 게.”
“시끄러워!”
그러나 권 팀장의 의지는 확고했다.
여기까지 와서 눈앞에 있는 범인들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도 주위에서 날씨 운운하자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때 문득 김유리가 한 말이 생각났다.
“이봐! 김유리 형사. 그렇다면 네가 말한 대로 도평마을로 가지.”
“도평마을요?”
“그래, 차로 갈 수도 있고 그 길이 더 빠르다며?”
권 팀장의 말에 김유리는 아차, 했다.
그래도 자신이 한 말도 있고 해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결국, 봉고차 2대는 한 시간이나 걸리는 도평마을로 올라갔다.
도평마을 주차장엔 등산객 차량은 아예 없었다.
아무리 겨울이라지만 이곳에서 천왕봉까지의 거리가 가장 가까웠다.
그래서 평소에는 차량이 꽤 있는 편이었지만, 오늘은 그만큼 이곳 날씨가 안 좋다는 말이었다.
권 팀장은 박수무당을 제일 앞에 세웠다.
“하긴, 이 길이 아까 그 길보다는 무려 한 시간 정도 단축될 겁니다.”
박수무당은 포기했는지 선두에 서서 성큼성큼 걸었다.
그 뒤로 권 팀장과 형사팀원 그리고 의경들이 줄을 지어 따랐다.
하지만 얼어붙은 땅 위로 폭설이 내리는 산길은 상상외로 힘들었다.
오랫동안 산에서 살던 박수무당조차 걸은 지 30분이 채 안 되어 헉헉거렸다.
오히려 권 팀장에게 쉬어가자고 제안할 정도였다.
그때마다 권 팀장은 박수무당을 다독이며 한발 한발 산으로 올랐다.
그렇게 하여 겨우 공동체 마을로 가는 팻말 앞에 도착했다.
“뭐야? 정의와 공정을 지향하는 요한 공동체 마을?”
권 팀장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이, 무당 선생. 여기가 맞소?”
“맞습니다. 여기서부터 우측으로 가면 대략 한 시간이면 도착합니다.”
“좋아. 한 시간쯤이야. 모두 힘내자!”
권 팀장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재차 선두에 섰다.
이제 곧 범인을 검거한다고 생각한 그는 신이 났다.
하지만 뒤를 따르던 모든 자는 불만을 터뜨렸다.
“니미럴, 십 분도 안 쉬네.”
결국 일행은 한 시간 반 만에 마을 입구에 도착했다.
고개를 넘어 마을이 훤히 보이는 언덕에 섰을 때 시간은 벌써 오후 1시였다.
그제야 권 팀장은 잠시 쉴 겸 작전계획을 짜야 했으므로, 휴식을 명령했다.
형사팀과 의경들은 각자 가지고 온 언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언덕에서 바라본 마을은 꽤 넓었다.
권 팀장의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은 넓은 밭과 큰 규모의 양계장이었다.
그 앞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는데 중간에 큰 목조건물이 보였다.
“무당 선생. 저기 저, 큰 목조건물은 무엇이오?”
박수무당은 언 김밥을 먹다 말고 고개를 돌렸다.
“뭐, 대충 마을회관이나 강당쯤 되지 않겠습니까? 저도 그때 얼핏 봐서요.”
“음, 그렇다면 우리는 먼저 저 건물로 간다.”
그리곤 나머지 팀원들에게 명령했다.
“이봐! 조 형사. 팀원 몇 명과 의경들을 데리고 마을 주변을 에워싸도록!”
“네, 알겠습니다.”
“특히 저 밭과 양계장 주변에 제일 먼저 의경들을 배치하여 단 한 명도 마을을 빠져나갈 수 없게 조치해. 알았어?”
의경과는 달리 조 형사는 밥을 먹다 말고 건성으로 ‘네’, 하고 대답했다.
“김유리는 여기 무당 선생과 나와 함께 저 건물로 간다. 알았지?”
“그러죠.”
“자! 우리 팀원들은 혹시나 모르니 반드시 실탄 장전을 하도록! 그리고 무슨 일이 생기면 아까 지급한 호루라기를 불어. 다들 알겠나?”
잠시 후, 권 팀장을 비롯한 형사팀들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조 형사가 다른 형사와 함께 조를 나누어 의경들을 마을 주변에 배치하였다.
그 사이에 권 팀장 일행은 정문으로 들어가 마당을 가로질렀다.
똑, 똑, 똑.
김유리가 앞서 건물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어떤 사내가 나왔다.
“누구시죠? 무슨 일로?”
권 팀장에 재빠르게 앞으로 나서서 사내에게 신분증을 보여주었다.
그래도 사내는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권 팀장은 재빠르게 요구했다.
“여기 책임자가 누구요? 책임자를 만나고 싶습니다.”
“무슨 일인지 묻지 않습니까?”
사내는 경찰을 눈앞에 두고도 튕겼다.
권 팀장은 약간 당황했으나, 대수롭지 않은 태도로 일관했다.
“이봐요. 경찰이 이곳을 방문했을 땐, 뭔가 이유가 있겠지요. 당신은 누구요? 여기 책임자요? 아니면 얼른 그 사람을 불러주세요.”
그런데도 사내는 막무가내로 여기에 온 이유를 말하라며 실랑이를 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