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고 차량의 범퍼가 찌그러져 있다.
- ▲ 김건형 조사원이 고객에게 사고경위를 묻고 있다.
- ▲ 현장을 통해 사고내용을 조사한다.
- ▲ 고장난 차량을 권맹섭 대표가 수리하고 있다. / photo 문경연 인턴기자
“여기 불교방송국 근처 골목인데요, 사고가 났어요. 지금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프거든요. 빨리 좀 와서 봐주세요.”
지난 11월 4일 오후 3시33분 김건형(39) 삼성 애니카 사고조사원은 전화를 받자마자 긴급출동차를 타고 사고현장에 도착했다. 전화가 온 건 오후 3시25분이었다. 사고현장에는 검정색 쏘나타 한 대가 사거리 골목 가운데에 서 있었고, SM5는 한쪽 골목에 주차돼 있었다. 두 차량 모두 범퍼가 찌그러진 상태였다. 김건형 사고조사원은 서둘러 고객을 찾았다. 쏘나타에 타고 있던 여성은 입술까지 하얗게 질려 있었다. 곧이어 경찰도 출동했다. 그가 제일 먼저 물은 건 “어떤 차량이 먼저 들어왔죠?” 또는 “어떻게 해서 사고가 난 거죠?”가 아닌 “고객님, 몸은 어떠세요?”였다.
여성 운전자는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듯 계속해서 “내가 지나가고 있는데 저 아줌마가 갑자기 와서 박았다”며 호소했다.
“지금은 누가 피해자인지 가해자인지를 결정하지 않습니다. 현장이 보존된 상태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사고 현장을 분석해서 과실이 나눠질 테니 지금은 보험 처리를 어떻게 하실 것인지만 제게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일단 몸이 많이 아프신 상태이니 치료를 받으러 가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행정 처리는 경찰과, 보상 문제는 보험회사와 후에 차분히 이야기하시면 됩니다.”
출퇴근 시간이 가장 바빠
김건형 사고조사원의 말이 이어지며 여성 운전자의 얼굴에서 불안감이 조금씩 없어지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어쩔 줄 몰라하던 운전자는 사고조사원이 사고 후에 해야 할 절차를 알려주자 점차 안심이 되는 듯 보였다. 김 조사원은 사고 경위를 파악하여 일지를 작성하고 현장을 카메라로 찍었다. 곧이어 견인차가 와서 쏘나타를 끌고 갔다. 이제 막 사고현장을 떠나려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네, 삼성화재 현장출동자입….” “여보세요? 여기 신수동인데요, 어떤 차가 제 차를 뒤에서 박았어요. 빨리 좀 와주세요”
오후 4시1분, 전화가 온 지 4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다. 역시나 김 조사원이 사고현장에 도착해서 묻는 것은 사고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는 “다친 곳이 없는지가 제일 중요하다”고 말했다. “엊그저께는 사망사고도 있었습니다. 그런 현장에 나가보면 모두가 극도의 흥분 상태이지요. 물론 저도 불안하고 흥분이 되지만 계속해서 마인드 컨트롤을 합니다. 현장을 빨리 파악해서 벗어나는 것이 최선의 길이에요. 사고가 심할 때는 현장에서는 결판 지을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어요. 현장이 제대로 보고되어야 그때부터 사고처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거죠. 저의 역할이 바로 사고 현장을 ‘정확히’ 보고하는 것입니다.”
삼성 애니카자동차보험은 2009년부터 우수인력을 따로 뽑아 사고처리전문팀을 만들었다. 이 팀은 사고를 빠르고 정확하게 파악해 보고를 하고 사고를 당한 고객들이 당황하지 않고 사고처리를 할 수 있게끔 안심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이 팀원들에게는 현장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눈과 사고현장에서 침착함을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된다. 도로검정사자격증을 따거나 보험에 대해 공부하면 더 바람직하다.
고객 말 들어주는 것도 업무
김건형 조사원과 함께 일하는 애니카랜드 서울 마포구 대흥점의 권맹섭(52) 대표는 사고 조사뿐만 아니라 긴급 출동서비스도 동시에 하고 있었다. “사고조사원으로 일하다 보면 싸움하는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험한 장면들도 많이 볼 텐데 힘들지 않느냐”고 묻자 권맹섭 대표와 김건형 조사원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짜릿하다”고 대답했다. 김 조사원은 “어려운 상황을 타개해 나갈 때 짜릿함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저는 이 일을 하면서 ‘에잇, 더러워서 못 하겠네’라고 생각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권 대표의 말에 기자가 믿지 못하겠다는 눈치를 보이자 “김건형 조사원에게도 한번 물어보세요. 그런 생각이 들었던 적이 있었는지”라고 말했다. 김 조사원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다는 뜻으로 고개를 저었다. “사고 때문에 짜증이 난 사람을 만나도 의기소침하지 않고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이유가 있어요. 사고에 대해서 잘 모르면 짜증이 나요. 그런데 우리는 사고전문가잖아요. 사고현장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고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사고를 대할 때 침착하게 처리할 수 있는 거예요.” 어떠한 사고의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차분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이야기였다. “세상엔 정말 희한한 사고도 많아요. 두 차량 모두 교통법규를 준수했는데도 사고가 나는 경우가 있을 정도니까요. 큰 사고도 많지요. 마포구 내에서도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사건이 올해 23건이나 돼요. 이럴 때 저희가 큰 힘이 되는 거죠.”
김 조사원은 ‘경청’이야말로 중요한 사고 처리를 할 때 요구되는 소양이라고 했다. “사고 현장에서는 모두들 자기 이야기만 하려고 해요. 내가 얼마나 억울한지 알아달라는 거죠. 그런데 막상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요. 저희가 가서 고객님의 말을 들어주는 역할을 합니다.‘내 편이 왔구나’ 하는 생각에 진정도 많이 됩니다.” 때로는 상대편 운전자에게 욕을 듣기도 한다고 했다. “사고현장에 가면 운전자끼리 감정이 많이 상하고, 때때로 멱살잡이까지 가요. 그런데 우리가 볼 때는 그런 싸움은 아주 사소한 것에 불과하고 곧 끝날 일이에요. 그래서 크게 연연하지 않아요.”
한겨울 오토바이 출동이 가장 고통
마포구 신수동에서 일어난 접촉사고를 보고한 후에 떠나려는데 고객의 차량에 배터리가 방전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김 조사원이 “이렇게 한 차량에서 사고가 연달아 터진 것은 처음”이라며 “이때는 사고조사원이 아니라 긴급출동기사가 와야 한다”고 말했다. 5분이 채 안 되는 시간에 사고조사원과 긴급출동기사 두 가지 일을 모두 할 수 있는 ‘멀티맨’인 권 대표가 현장에 도착했다. 자동차 보닛을 열고 배터리를 충전하는 데 걸린 시간은 놀랍게도 15초 남짓이었다.
보험사가 자동차보험 가입자에게 제공하는 긴급출동서비스는 보험가입 차량이 배터리 방전, 타이어 펑크, 잠금장치 잠김, 운행 중 연료 소진, 기타 고장 및 사고로 인해 운행불능 상태에 빠졌을 때 출동해 운행이 가능하도록 조치하는 것을 말한다.
애니카랜드 대흥점에서 수리와 긴급출동서비스를 맡고 있는 정성우(35) 기사는 “타이어 펑크나 배터리 방전 등 긴급출동을 해야 할 상황이 겨울에는 하루에 30건이 넘는다”며 “10분 안에 도착하기 위해 오토바이를 이용하는데 한겨울에는 ‘살을 에는 듯한’ 추위가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고 말했다. “여름에 출동해서 타이어를 갈아야 하는 경우가 생겼을 때 어떤 고객은 에어컨을 틀어놓은 차 안에서 손가락으로 지시하는 경우가 있어요. 이럴 때는 정말 기분이 나쁘죠. 자동차 배기통에서 뜨거운 기운이 얼굴에 쏟아지면 그야말로 진이 빠져요. 그래도 바쁜 출근시간에 저 때문에 늦지 않고 기분 좋게 출근하시는 분들을 보면 정말 뿌듯해요. 자동차전문가라고 인정해 주시는 고객을 만나는 날이면 그 날의 피로가 싹 풀려요.”
정 기사는 “비상 급유 서비스를 악용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비상 급유 서비스는 차량 운행 중 연료가 바닥을 드러내 주유소까지 갈 수 없을 때 사용하는 서비스이다. “효창동에 사시는 고객이었는데 저희가 비상 급유를 한 연료로만 출퇴근을 하셨지만 지금은 그러지 않으신다”면서 웃었다.
자정 넘어 퇴근… 새벽에도 호출 오면 출동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자 정성우 기사의 휴드폰이 쉴 새 없이 울려댔다. 고객이 콜센터에 전화를 하면 긴급출동서비스의 경우 콜센터는 현장에 가장 가까이 있는 긴급출동기사에게 바로 연락을 해준다. 정 기사는 “출퇴근 시간이 가장 바쁘다”며 긴급출동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었다. 기자도 긴급출동 오토바이 뒷자리에 올라탔다. 전날 마포구의 기온은 1도. 영하권이 아니었는데도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자 옷 속으로 차디찬 바람이 들어와 배가 시렸다. 찬바람이 눈에 들어가 자꾸 눈물이 맺혔다. 추위를 뚫고 서울 마포에 있는 한 오피스텔의 지하 주차장에 도착했다. 주차장엔 남자 두 명이 구부러진 옷걸이를 들고 자동차 문에 붙어서 낑낑대는 모습이 보였다. “열쇠를 차 안에 두고 내려 차문을 열기 위해 옷걸이를 이용하려고 했어요.” “네, 잠시만요.” ‘딸깍’ 정성우 기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차문이 열렸다.
이들의 퇴근 시간은 자정을 넘긴다. 새벽에 연락이 와도 바로 출동해야 한다. 그래서 직원 다섯 명은 돌아가며 당직을 서고, 콜이 오면 바로 출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휴대폰이 몸에서 떠나지 않는다. 권 대표의 휴대폰은 무려 세 개이다. “하나는 휴대폰으로 콜이 걸려올 때, 또 하나는 유선콜, 세 번째 것은 사생활 전용 휴대폰입니다. 항상 베개 위에 휴대폰을 올려놓고 잠자리에 들어요.” 불안해서 어떻게 자느냐고 묻자 “이 일도 10년이 넘으면 달인이 됩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24시간을 근무한다는 것은 녹록지 않은 일이었다. 한가해진 밤 9시에 소파에서 잠깐 눈을 붙인 권 대표는 “휴일도 없다”고 말했다. 함께 있던 김 조사원도 “그렇기도 하지만 불안해하는 고객님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사고가 잘 처리되어 결국 다 웃으며 일이 끝났을 때는 그 개운함을 이루 말할 수 없어요”라고 덧붙였다. 오늘이 결혼기념일이라는 그는 “오늘만은 조금 일찍 집에 들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도 사고가 터지면 어떡할 거냐”는 물음에 “당장 달려 나가야죠”라는 경쾌한 대답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