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맛비와 수해(水害)
안타깝다. 하늘에는 아직도 검은 구름이 움직인다. 검은 구름 속에는 사람 키보다 깊은 호수가 숨어있다. 장마다, 이 땅에 물을 들이 부었다. 장화를 신고 카페 ‘시월(詩月)’ 뒤쪽에 있는 ‘시월서고(詩月書庫)’ 주변을 점검하면서 배수로를 확인한다. 이미 장마에 대비하려고 서고 뒤편 키 큰 나무들 가지를 치고, 물이 잘 빠질 수 있도록 건물과 이어지는 비탈 사이를 손질했다. 서고 지붕도 돈을 들여 포스코칼라 강판을 기존 지붕 위에 덧씌웠다.
그야말로 난리다. 물난리다. “중부지방 '물폭탄' 8명 사망·7명 실종”. “서초터널에 운전자 고립”, “강남 폭우에 차량 5천 여 대 침수. 외제차만 1천대 넘어”, “충청권 '최대 300mm 물폭탄' 시작. 수도권은 내일까지 숨고르기”, “尹대통령 ‘최악 염두에 두고 대응.. 국민안전, 국가가 무한책임’", “흙더미가 집 덮쳐 살 길 막막.. 다들 강남역 얘기만"이란 인터넷 기사가 9일, 10일. 11일 연속으로 이어졌다. 여름 재해로 가뭄과 장마, 태풍은 우리나라에서 해마다 겪는 일이다. 어느 하나 대충 지나가는 일 없이 우리나라 국민들을 힘들게 한다. 특히 가난한 사람들을 더 어렵게 만든다. 요즘 겪는 자연재해는 우리나라만 겪는 일은 아닌 것 같다. 유럽은 섭씨 40도 넘나드는 고온에 곡식이 타들어가고, 알프스 산과 그린란드 빙하도 녹는다고 한다. ”폭염에 알프스 빙하 빠르게 녹아.. 반세기전 추락 비행기·유해 잇따라 발견”이란 기사까지 뜬 것을 보면 재난이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살아오면서 몇 번에 걸쳐 자연재해 현장을 보고 겪었다. 1972년 고등학교 1학년 때 겪은 수해는 아직도 눈앞에 생생하다. 여름방학이었다. 당시 아버지는 공무원으로 제천 청풍면(淸風面) 농촌지도소로 발령을 받았다. 집에 오셨던 아버지는 나와 남동생 둘을 아버지 하숙집에 며칠간 머물게 할 요량으로 데리고 갔다. 오송에서 충북선 기차를 타고 제천까지 간 후 버스로 갈아타고 수산면에 도착하였다. 그곳 나루터에서 나룻배를 타고 남한강을 건너 청풍으로 갔다. 남한강변에 있는 청풍은 이름처럼 아름다웠고, 마을 강변엔 고려시대 지은 건물 ‘한벽루(寒碧樓)’라는 정자도 있었다. 우리가 청풍에 도착한 날이었다. 비가 손님맞이하는 것처럼 극성스럽게 내렸다. 굵은 장대비였다. 강물이 불기 시작하더니 낮은 지역의 집들이 둥둥 떠내려갔다. 발만 동동거렸다. 농작물과 돼지도 강물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 오랜 세월 버틴 정자 ‘한벽루’도 물길에 넘어지며 마을 사람들은 높은 지역으로 피난가야 했다. 우리 가족도 살길을 찾아 산길을 걸어 낯선 마을로 피난갈 수밖에 없었다. 대피했던 마을 어느 집에서 피난민을 위해 기르던 토끼를 잡아 대접했다. 그 마을이 어느 곳인지 지금 기억에 떠오르지 않지만 다음날 청풍면소재지로 되돌아왔을 땐 그야말로 아수라장 현장을 목격해야 했다. 많은 집이 무너졌고, 아버지가 근무하는 농촌지도소 슬라브 건축 사무실에도 천정 가까이 물이 들어왔다가 나가면서 집기들을 쓸고 간 것이다. 몇 권의 교과서와 책, 옷을 담은 가방을 서랍장 위에 올려놓고 피신했는데 그것도 사라졌다. 바닥에는 무릎까지 빠지는 진흙이 쌓여 종일 그것을 치우는데 땀을 흘려야 했다. 이웃 마을에서 수재민을 위해 먹을 것을 광주리에 이고, 지게에 짊어지고, 리어카에 끌고 왔다. 참, 고마웠다.
또 한 번의 수해는 1980년 7월 보은에서였다. 경북과 접한 마로면 관기초등학교에 초임 교사로 근무했던 나는 당일 보은읍내 삼산초등학교에 연수차 참석했다. 종일 비는 쏟아졌고, 곳곳에 물난리라는 정보가 선생님들의 입과 입을 통해 귀에 들어왔다. 학교 운동장에도 물이 찰랑찰랑 고였다. 보은읍을 관통하는 보청천은 일부가 유실되어 농경지가 침수되었고, 곳곳에서 산 산태로 인명피해가 났다는 미확인 소식이 이어졌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죽은 후 부통령이었던 최규하 대통령이 정무를 보면서 나라는 어수선한 상태였다. 군부의 핵심이었던 전두환 국가보위 비상대책위원회 상임위원장이 수해 현장을 찾았다는 보도가 다음날 신문을 채울 때였다. 불보다 무서운 것이 물이라는 이야기를 다시 확인한 때였다. 경험해서는 안 될, 쉽게 볼 수 없는 물난리였다. 수많은 사람이 산사태로 사망했고, 집들은 사라졌다.
태어나서 죽기까지 전쟁을 겪지 않는 사람은 복 받는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나라와 나라 사이에 벌어지는 전쟁을 비롯하여 우리나라처럼 동족상잔까지 인간의 탐욕은 한 세기를 무탈하게 넘기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뜻일 것이다. 지금도 지구상 많은 곳에서 힘을 과시하며 상대를 없애려 무기를 만들고, 구입하고, 총질하고 있다. 전쟁을 다른 말로 하면 난리다. 난리(亂離)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전쟁이나 폭동, 재해 등으로 세상이 몹시 어지럽고 무질서하게 된 상태’를 의미한다. 러시아 속담엔 “나쁜 평화라도, 뜻있는 전쟁보다는 낫다.”란 말이 있다. 2022년 8월 우리나라 중부지방에서 보듯이 집중호우는 전쟁이며 난리다. 나쁜 평화를 생각할 수 없는 재해 전쟁이다. 길이 잠기며 끊어지고, 차가 망가지고, 다리도 끊기고, 사람이 다치고 하물며 이웃이 죽고, 실종되기까지 했다.
세상 곳곳에서 일어나는 자연현상을 보면 자연재해는 당면한 문제라고 생각된다. 이미 우리들 삶의 양식은 자연 환경을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비틀어 놓았다. 오래 전 환경운동가들의 지적처럼 이미 환경파괴의 부메랑은 되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적군의 은밀한 내습처럼 뒤틀린 환경은 우리 앞에 폭염, 가뭄, 수해, 폭설 등으로 보복하고 있는 것이다. 보복이라는 단어를 쓰니 문장 어딘가 궁합이 안 맞아 보이지만 이미 인간의 자연 파괴에 따른 재앙은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치산치수(治山治水), 유비무한(有備無患)이라는 사자성어가 가르치는 의미를 되새길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어떤 어려움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을 기르며 내일을 대비하지만 내일을 맞이하고 지나고 보면 부족한 것이 많음을 발견한다. 그렇기에 재해에 대비하가 위한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기다. 이것은 개인도 중요하지만 모든 단체의 책임자, 공무원, 국회의원 더 나아가 나라의 키를 잡고 있는 장관, 대통령까지 나서서 현장을 답사하고, 백년 이상 하자 없이 고쳐야 할 것을 자연친화적으로 튼튼하게 변모시켜야 한다.
사람은 살면서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긴다. 돈 때문에 죽는 사람도 있고, 물 때문에, 불 때문에, 교통사고 때문에, 술 때문에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기습적으로 닥치는 불의의 사고에 사람들은 상하고 망연자실(茫然自失)한다. 기록적인 호우, 폭설, 한파, 가뭄, 폭염, 화재 등은 앞으로 언제 또다시 우리 앞에 닥칠지 모른다. 충분히 막을 수 있는 것을 대책 없이 당하는 일은 무능이다. 남 탓하는 것을 대책이며 묘안이라고 내세우는 것은 더 큰 무능이다. 무능을 넘어설 수 있는 발 빠른 사후 처방, 그에 따른 판단과 실행이 기록적인 폭우에 피해 입은 사람을 위로하는 일이며, 더 큰 피해를 막는 일이다. 기상청이 생긴 이후 가장 많은 폭우가 쏟아졌다는 2022년 여름의 당면한 현실 앞에 또 다른 재해를 막기 위한 혜안을 찾아 피해를 당한 우리 이웃의 아픔을 정성을 다해 쓰다듬을 때다. 창밖으로 쏟아지는 햇살이 보고 싶은 날이다.
- 2022년 8월 11일(목) 카페 ‘시월(詩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