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아이가 사회성이 부족하다고 걱정하는 부모님들이 많습니다. 저도 제 큰 딸아이가 초등학교 시절에 학교 친구들과 잘 못 지내는 것 때문에 마음고생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앞으로 얼마간 아동의 기질별로 사회성을 증진시키고 친구를 잘 사귀도록 돕는 방법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아이의 사회성 문제로 클리닉을 찾아오는 부모들의 경우, 흔히 아버지들은 아이의 사회성 문제에 대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애들이 다 싸우면서 크는 것 아닌가’ 하거나, ‘저러다가 환경이 바뀌면 좋아지겠지’ 하는 식의 생각이 많은 듯합니다. 물론 그런 경우도 있겠지만, 실제적으로 사회성 문제가 있는데도 그런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간과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또한 부모들의 세대에 비해서 요즘 아이들의 세대가 자연스럽게 사회성을 배우고 친구를 사귈 수 있는 기회가 적어졌다는 점도 유념해야 하겠습니다. 예전에는 집근처에 놀 수 있는 골목이 있고, 부모들이 그 근처에서 장사를 하거나 마을 어른들이 다 가까이에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집밖에만 나가면 온동네가 다 ‘놀이터’인 셈이지요. 그러나, 요즘에는 자동차의 위험도 많고, 골목이 사라지면서 놀 만한 공간을 찾기 위해서는 적절한 장소를 찾아야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게다가 공부에 대한 압박은 자연스럽게 놀이와 교우관계를 불필요하고,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것으로 폄하하게 되었습니다.
어제 클리닉에 방문한 6학년 성재라는 아이는 다소 억울한 사연을 가지고 방문했습니다. 아이는 왜소한 체구와 소심한 성격때문에 4학년 때까지 줄곧 괴롭힘을 당해왔다고 합니다. 5학년이 되어 키가 좀 자라면서 체구가 커진 성재는 더 이상 맞고만 지내지 않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친구가 좀 괴롭히자, 욱하는 마음에 얼결에 주먹이 나갔다가 친구 얼굴에 상처를 입히게 되었습니다. 피해자 부모는 학교에 진정을 냈고, 성재는 가해자로 몰려서 징계를 받고 클리닉에까지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성재 어머니도 억울한 마음을 저에게 한참 토로했습니다. ‘원래 우리 성재는 그런 애가 아닌데, 억울하게 가해자가 되어버렸다’는 하소연이었습니다. 이해가 가지만, 뭔가 개입이 필요해 보였습니다.
성재는 오랫동안 괴롭힘을 당하면서 안으로 울분을 감추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또한 타고난 기질이 약간 욱하는 성향이 있어서 한번 화가 나면 참지 못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경향도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힘이 약해서 엄마에게나 동생에게 분풀이를 했지만, 좀 힘이 생긴 지금에는 친구들에게 잦은 다툼을 유발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아이는 다른 아이들과 분쟁이 생겼을 때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습니다. 괴롭히거나, 때리거나, 맞거나, 화를 내는 등의 방식만을 경험했지, 적절하게 타협해 본 경험이 없었던 것입니다. 저는 성재와 짧지만 몇 가지 가능한 변화를 이야기해보았습니다. 먼저, 욱하는 성향이 결국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 지를 함께 생각해보았습니다. ‘친구가 놀려서 네가 속상하고 피해를 보았겠지만, 막상 네가 밀치거나 폭력을 사용하게 되면 결국에는 네가 가해자가 되는 것이다. 억울한 일 당하지 않으려면, 욱하는 것은 일단 참아야 한다!’라는 내용이 핵심이었습니다. 두 번째로 갈등이 생겼을 때 타협하거나 피하는 방법을 여러가지 찾아볼 수 있겠습니다. 상대방 말을 잘 듣고, 내 의견을 적절히 이야기하기, 원하는 게 있으면 부탁조로 말하기, 절대로 폭력 사용하지 않기, 둘이 다 좋아할 방안을 찾아보기, 화가 나면 일단 자리를 피하기 등의 방법들을 함께 상의해보았습니다. 성재 어머니에게도 몇 가지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사회성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기에, 집에서 훈련이 필요하다고 조언합니다. 아이와 ‘보드 게임’을 하면서 이기고, 지는 좋은 방법을 이야기해줄 수 있습니다. 이겼을 때 너무 으시대지 않기, 졌을 때 솔직히 인정하기, 게임 중간에 불리하다고 중단하지 않기 등을 함께 연습해볼 수 있습니다. 일단 초등학교 4학년이 넘으면 부모가 일방적으로 게임에서 져주는 것은 좋지 않은 듯합니다. 아이가 지는 경험도 해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소심한 아이, 덤벙대는 아이, 으시대는 아이, ‘안 돼’라고 말하지 못하는 아이, 사회적 기술이 부족한 아이 등등 다양한 기질의 아이들이 친구 사귀기에서 어려움을 겪습니다. 아동기의 사회성 문제는 자존감의 저하, 자아 정체성 수립의 어려움 등을 야기하고, 나아가서는 어른이 되어서도 ‘고독한 아웃사이더’로 만들어 사회적 성공에 장애물이 될 수 있습니다. 미국의 심리학자이자 상담가인 나탈리 엘만(Natalie Madorsky Elman)은 사회적 관계에서는 책에 나오지 않는 불문율(unwritten rules)이 있다고 말하며, 이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사회성 향상에 도움이 됨을 주장했습니다. 사회적 관계의 불문율은 어른의 경우와 아이의 경우가 다르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어른들의 세계에서는 첫 만남에서 상대의 나이를 묻는 것이 실례일 수 있지만, 아이들의 세계에서는 매우 자연스럽게 놀이로 이끄는 시작일 수 있습니다. 어른의 세계에서는 상대방의 연봉을 묻는 것이 실례이겠지만, 아이들의 세계에서는 어디에 사는지, 아버지가 뭐하시는지를 묻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소심한 아이에게는 적절한 사회적 성공 경험과 실제적 사회기술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으시대는 아이는 타인의 관점을 이해하는 ‘공감력’ 증진과 친구를 속상하게 하는 자신의 태도를 돌아보는 상담이 필요합니다. ‘안 돼’라고 말하지 못하는 아이에게는 자신의 의견을 적절히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 ‘표현 훈련’이 필요합니다. 물론 소수의 친구와 지속적인 사회 경험을 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사회적 기술이 부족한 다소 ‘엉뚱한’ 아이에게는 사회적 기술을 조목조목 가르쳐 주는 것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먼저 총론격으로, 엘만이 소개하는 아이 사회성을 증진시키는 방법을 몇 가지 열거하고 설명해 보겠습니다.
첫째, 아이의 선생님과 상담해보라(Talk with your child’s teacher).
아이가 집에서는 보이는 모습과 학교나 어린이집에서 보이는 모습이 사뭇 다를 수 있습니다. 어떤 아이는 집에서는 까탈스럽고 말 많고 으시대지만, 학교에 가면 조용하고 자기 주장을 잘 못하는 ‘순둥이’ 행세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어떤 아이는 집에서는 부모에게 애교 부리고 착하지만, 밖에 나가면 쌀쌀맞고 주도적인 경우도 있습니다. 학교 선생님과 상의하면 아이가 학교에서 어떤 모습을 보이며 지내는지 가장 잘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아이는 집에서 와서 “학교에서 친구가 괴롭힌다” 라고 호소하지만, 정작 담임선생님의 말을 들어보면 “주로 두루 친구들과 잘 지내며 유독 한 아이와 티격태격 다투고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이의 상황을 잘 파악하려면, 아이의 말도 들어보고 선생님의 말도 들어보고, 아이 친구의 말도 들어보고 친구 부모님의 말도 들어보는게 필요합니다.
둘째, 사회성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라(Provide opportunities for socializing).
전술했듯이 골목길이 사라진 요즘 현실에서는 부모가 적절한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필요합니다. 놀이터나 키즈 카페 등에서 짧은 놀이 만남을 주선하는 것도 아이들에게 부담없이 좋은 기회입니다. 또래 친구가 다소 버거운 아이들에게는 친척 형이나 동생과 자주 만나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학교나 유치원이 힘든 아이들에게 교회의 ‘주일학교’나 주말의 ‘축구클럽’ 등이 새로운 만남의 장이 될 수 있습니다.
셋째, 천천히, 그러나 지속적으로 노력해가자(Proceed slowly and consistently).
사회성을 증진시키는 불문율이 있다고 해도, 이것을 달달 외운다고 사회성이 금방 좋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신체 단련의 방법을 안다고 해서 하루 아침에 ‘근육맨’이 될 수 없듯이, 사회성을 배우고 익히는 데에도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하나의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익혔다면 그것에 익숙해지고 편안해질 수 있도록 시간을 주세요. 즐겁게 하나하나 익혀가도록 해야 하지, 억지로 강요해서는 아이를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어쩌면 부모 스스로도 자신의 사회성을 돌아보고 노력해보는 것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나는 친구들과 즐겁고 편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가’ 반성해 볼 수 있습니다. 아마 자신의 문제점을 고쳐나가는 것도 매우 어렵고 시간이 걸리는 일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넷째, 당신의 믿음을 아이와 나누라(Share your confidence).
아이가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하거나 작은 따돌림을 당하여 속상해서 집에 오는 경우, 부모는 어떻게 해주어야 할까요? 아이 말을 잘 들어주고 위로해 주어야 합니다. 상황을 잘 판단해 보고, 잘 모르겠으면 다른 사람을 통해서 상황을 더 자세히 이해할 필요도 있습니다. 아이는 학교 학급이라는 작은 세계가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고, 더 많이 절망하고 낙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는 좀 더 폭넓은 관점에서 상황을 판단하고 아이에게 믿음을 이야기해 줄 수 있습니다. “지금 너를 괴롭히는 짝궁이 다음 달이면 바뀔 수도 있고, 올해는 네가 반에 마음에 맞는 친구가 없겠지만 내년이면 정말 너와 잘 맞는 친구를 만날 수도 있단다.” 부모는 믿음을 가지고 함께 꾸준히 노력해 주는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야 합니다. 사회성의 실패에 집중하기 보다는, 아이가 잘 하는 부분과 발전하는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긍정적으로 이끌어가는게 좋습니다.
학교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곧바로 부모가 문제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매우 신중해야 합니다. 사소한 친구간의 다툼에 부모가 나서서 해결하려 한다면, 아이는 자기 스스로 해결할 기회를 잃게 되고 또한 부모가 자신의 능력을 믿지 못한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물론 아이의 안전에 위급한 위험이 예상된다면 부모가 명백하게 개입하여 해결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아이와 상의하고, 함께 고민하고, 해결책을 제시하고, 기술을 익히도록 기다려주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다섯째, 친절함을 역설하라(Emphasize kindness).
사회성의 가장 핵심에는 ‘타인에 대한 친절함’, 다른 말로 ‘예의’가 있습니다. 약한 자를 괴롭히지 않으며, 타인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행동을 창피해하고, 괴로워하는 사람과 함께 울고 위로하는 것이 모든 사회성의 기본이라는 말입니다. 타인의 권리를 무시하지 않고 존중하는 것, 그리고 자신의 권리도 적절히 주장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부모로서 형제 자매간에 서로 괴롭히는 것을 용납해서는 안됩니다. 사소한 다툼은 용인할 수 있지만, 지속적으로 타인을 무시하고 존중하지 않는 행동은 교정되어야 합니다. 부모가 서로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타인에 대한 ‘친절함’이 사회성의 근본이기 때문입니다.
사회성이 좋으려면 사실 여러 가지가 필요합니다. 어느 정도의 지능과 신체적 매력도 있어야 하고, 환경적으로도 안정적인 학교, 부모, 또래 관계가 도와야 합니다. 또한 ‘영원한 친구’나 ‘완벽한 우정’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누구나 서로 다른 기질을 가지고, 자신에게 적합한 친구와 또래 무리들을 가지고 좋기도 하고 다소 쓰라리기도 한 경험들을 해나가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올해 좋은 친구가 없다 해도 내년에 더 좋은 친구를 사귈 수도 있습니다. 마음만 있다면 친구는 언젠가 생길 수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가져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리고 주위에서 친구를 찾아보아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