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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앞바다 ~ 강릉항 : 폭풍우 속에서 부산으로 피항.
7월 6일 (목) 오후 7시 20분. 저녁식사로 라면에 계란을 넣고 김치와 함께 먹었다. 문선장님의 멀미가 가라앉은 다음부터는 뭔가 먹는 것처럼 먹는다. 바다는 잔잔하다. 바람도 6~7노트로 잦아 들었다. 2해리 밖이 보이지 않는 안개바다다. 레이더에 5마일 밖 선박이 포착돼도 한참을 기다려 2마일이 될 때까지는 레이더 상에만 존재하는 배다.
VHF 16에서는 통영VTS 와 군산 VTS 에서 선박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안내 무전이 계속 흘러나온다. 반가운 한국말이다. 오늘 통영 앞바다에 어선이 많은가보다. 어선이 너무 많아 화물선들이 이리저리 피하기 곤란하므로 어선들이 견시를 잘 해달라는 당부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2022년 강릉 제주 왕복 항해 때, 모래알 뿌려놓은 것처럼 많은 갈치잡어 어선들을 보았다. 특히 무서운 것은 쌍끌이 어선들. 퉁퉁퉁퉁 소리를 내며 두 대의 배가 똑같이 간격을 벌려 다가온다. 그때도 그 배들을 요리조리 피해 야간항해 했던 기억이다. 오늘도 그런 일이 있을 거라 예상한다. 상당히 빡센 Redeye (야간항해)가 될 거다.
그래도 여기는 우리 바다다. 대한민국해역이다.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기면 119에 전화를 할 수도 있고, VHF16 번으로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다. 어쨌든 극한의 상황은 없다. 각 VTS들의 안내 무전을 라디오처럼 들으며, 마음 편안한 항해를 하고 있다. 지금은 완도와 초도 앞바다를 지나고 있다. 핸드폰은 여전히 먹통이다. 리나 얼굴이라도 보면 좋을 텐데. 사랑하는 내 딸아, 아비는 이제 3일 거리까지 와 있단다.
오후 9시 53분. 광양만 앞바다를 지난다. 레이더에는 수많은 점들이 명멸한다. 제네시스는 저 점들 틈으로 빠져 나가야 한다. 가드 존은 의미 없다. 연이어 알람을 울려 꺼버렸다. 좌전방에 커다란 화물선이 움직이지 않고 있다. 혹시 몰라 화물선 뒤로 돌아 간다. 대기 중인지 여러 척의 화물선들이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 화물선의 마스트가 어지간한 아파트 한 동이다. 조그만 도시 하나가 바다에 떠 있는 것 같다. 문득 번화한 도심을 지나는 착각이 든다. 대기가 엄청나게 습하다. 손바닥에 안개방울이 만져 지는 듯하다. 겨울 점퍼를 입고 야간 견시를 한다. 멈춰선 화물선들 사이로 빠져 나갈 때마다 잔뜩 긴장한다. 쌀쌀한 밤공기에 커피 한 잔을 끓여 들고 검은 밤바다를 바라본다. 불투명한 슬픔이 다가온다. 고개를 젓는다. 나는 고향에 가고 있다. 아름답고 행복했던 장거리 항해는 끝나가지만 반가운 얼굴들, 그리운 사람들을 곧 만날 수 있다.
2023년 7월 7일 오전 6시 30분. 새벽에 견시를 하던 문선장님이 깜짝 놀랐다고 한다. 새벽 내내 어선을 피하느라고 애를 먹고 있었는데, 우후방에서 조업을 마치고 돌아오던 어선 한척이 갑자기 제네시스의 앞을 가로질러 충돌을 피하느라고 360도 회전해야만 했다고 한다. 대강 짐작할 만하다. 예전에 강릉에서 나도 여러 번 겪었던 일이다. 세일 요트는 팔자 좋은 놈들의 놀잇배라고 오해하고, 괜히 심술을 부리는 어선이 여럿 있었다.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어차피 제네시스를 질러가는 배라면 그냥 제네시스 뒤로 가면 된다. 그걸 굳이 쫒아와 앞을 가로지르며 사고를 유발하는 행위. 치기어린 또는 엉뚱한 복수심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나는 어선들과 그들만의 상스런 언어로 다툰 적도 많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는 방법을 바꾸었다. 어선들의 위협운전이나 고의 사고 유발 행위 등이 발생할 때마다. 반드시 해경에 상황을 전화로 알렸다. 물론 해경은 이해하라고 하거나, 심각할 경우 상대 선박에 전화해서 시정을 권고하거나 사과도 받았다. 그러나 이와는 별로도 상황 발생 일시, 상대 선명, 상황, 목격자, 해경 전화 일시, 사후처리 등을 모조리 적어 정리 중이다. 내 배 뿐만 아니라, 같은 세일 요트에 대한 동일형태의 어선 횡포도 모두 기록했다. 그리고 어촌계 관계자에게 말을 전했다.
“어촌계는 사고 시에 공제 처리로 보험 처리하지요? 하지만 혹시라도 세일 요트에 대한 위협운전이나 고의 사고 유발 행위 등으로 사고가 발생하면, 내가 만든 자료를 공제회에 제출할 겁니다. 물론 해경에도 제출할 거고요. 불의의 사고가 아니라, 어민들의 난폭 운항에 의해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사고가, 당연히 발생한 것이라고요. 그래서 민형사상 책임은 물론, 공제 보험을 단 한 푼도 못 받게 만들 겁니다. 운항 주의 의무를 전혀 지키지 않았으니까요.” 이후 세일 요트에 대한 협박 운전이 상당 부분 사라졌다. 만약 다른 곳에서도 어민들의 이러한 횡포가 있다면, 나와 같은 방법을 준비하라고 권해드리고 싶다. 어민과 다툴게 아니라, 공제회가 답이다.
오전 7시. 안개 가득한 통영 앞바다에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문선장님의 실망이 이만저만 아니다. “홍도 앞바다를 지나는데 아무 것도 안보이네요.” 한국 해역에 들어 온지 만 하루가 지났지만, 한국은 아직 아무 것도 보여주지 않고 있다. 제네시스는 오리무중 안개 속을 진행하는 중이다.
오전 8시 30분. 시리얼과 우유로 아침을 마쳤다. 시계가 아주 불량하다. 안개로 50미터 밖에 안 보인다. 한국 해역 항해가 완전 난관이다. 아름다운 한국의 남해 구경은커녕 레이더에 코를 박고 전전긍긍이다.
오전 9시. 디젤 160 리터를 더 주유한다. 그리고 제리캔이 14개 더 남았다. 280리터가 남았다. 현재까지 총 630리터가 남았고 370리터를 소모했다. 6일 동안 하루 61.7리터씩 소모한 거다. 계속 1,500Rpm 으로 왔으니 엔진 데이터가 대략 맞는다.
오전 9시 50분. 안개가 가득하더니 결국 비가 오기 시작한다. 디젤 급유 타이밍이 예술이었다, 한국 영해 항해가 제일 힘들다. 안개로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비구름 때문에 레이더도 사용하지 못한다. 게다가 오늘 저녁부터는 남해안 일대에 풍랑주의보까지 내린단다. 우리는 오늘 오후 5시 쯤 부산을 돌아 나간다. 그때 까지만 고생하자.
오전 11시 30분. 밥을 지어 소시지와 함께 점심을 먹는다. 저녁에 강풍이 분다하니 점심에 잘 먹고, 저녁엔 간단하게 때우자. 저녁을 먹을 수 있을지는 오늘 날씨에 달렸다.
오후 12시 50분. 윈디 예보 상으로는 지금 뒷바람 강풍이 풀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9노트 앞바람이다. 예보와 전혀 다르다. 하지만 남부 지역 바다에 풍랑이 온다고 재난 문자가 막 날라 온다. 재빨리 부산을 지나 동해로 꺾어지자. 그러면 바람의 영향에서 벗어난다. 현재 선속 6.0노트. 3시간 17분 뒤에 부산 앞바다 웨이포인트 도착이다. 여기서부터 점차 북쪽으로 침로를 변경한다. 강릉까지 직행이다.
강릉 지인들을 통해 선대를 확인하고 러더 수리를 알아보고 있다. 50피트가 되니 선박 크레인이 없다. 개별 크레인을 불러야 한다. 배 무게가 12.6 톤이니, 이적저것 합쳐 13~14톤은 될 거고, 50톤 크레인이 필요하다고 한다. 다 돈이다. 배 검사비와 등록비, 세금. 금전의 압박이 다시 어깨를 누른다. 유럽에서 배 사오기. 정말 쉬운 노릇이 아니다.
지금은 통영과 부산 중간. 바다와 거리가 멀어지니 다시 인터넷이 잘 안 된다. 어쨌든 부산까지만 가면 그때부터는 안심이다. 풍랑과 바람이 영향권에서 벗어난다. 비가 그치고 안개가 걷혔다. 그래도 바다밖에 보이는 것이 없다.
오후 3시. 잠깐 안개 속에 부산이 보였다. 센텀 시티의 실루엣도 보인다. 잠깐 그렇게 부산을 보여준 하늘은, 본격적으로 폭우를 쏟아내기 시작한다.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 같다. 바람은 예보대로 뒷바람이 아니라, 완전 크로스홀드 26노트다. 이 난리 통에 부산항을 오가는 대형 화물선들이 즐비하다. 비구름 때문에 레이더도 확인불가다. 이번 항해에서 가장 위험한 해역이 바로 부산 해역이었다. 풍랑주의보가 내린 것 같다.
부산 알로하호의 김기봉 선장님께 전화하여 안부 인사를 올린다. ‘이번에는 못 뵙고 갑니다. 강릉 도착해서 연락드리겠습니다.’ 부산 수영만요트경기장에서 늘 제대로 세일 펴고 운항하시는, 존경하는 선장님이다.
오후 4시 40분. 한창 폭풍우 속을 항해 중일 때 바로 곁에서 해경 함정이 라이트 신호를 보낸다. 16번 채널로 통화한다. 제네시스의 출항항구, 목적 항구 등을 불러주고 선원 인적사항도 불러준다. 임시선박국적증서 사진도 찍어서 보낸다. “선장님 무슨 일이 있으시면 바로 16번으로 해경을 호출해 주세요!” 좋구나, 역시 대한민국이다. 무한한 신뢰가 생긴다. 풍랑속에서 힘이 솟는다.
통신을 마치고 바로 울산 방면으로 침로를 수정한다. 이제 드디어 동해로 접어든다. 북쪽으로 하루만 계속가면 내 고향 강릉 바다다. 울컥한다.
오후 5시. 난리 통에 더 어두워지면 저녁식사가 어려울 것 같아, 컵 스프와 빵으로 저녁을 후다닥 먹어 치운다. 빗방울을 맞으며 흔들리는 콕핏에서 식사를 하다 보니, 마치 고등학교 시절 설악산 캠핑 온 것 같다. 그때도 함빡 젖었다. 어쨌든 저녁식사를 했다. 오늘 밤은 둘이 교대로 뜬눈으로 야간항해를 해야겠다. 비구름 때문에 레이더는 전혀 쓸모없다.
오후 6시 20분. 피항 결정하다. 6.25때 난리는 난리도 아니다. 윈디는 새빨간 거짓말쟁이다. 지금 폭우와 함께 맞바람이 30노트가 넘어간다. 선속이 2.0 노트 미만으로 떨어진다. 곧장 배가 강풍에 밀려 회전한다. 오토파일럿을 끄고 수동 운전 해본다. 전혀 소용없다. 요트가 아니라 팽이다. 방향을 유지할 수가 없다. 슬그머니 부서진 러더가 걱정이다. 이러다 더 크게 이상이 생기는 것은 아닐까? 파도는 점점 높아진다. 도무지 전진할 수 없다. 배가 실속을 하니 롤링과 피칭은 점점 심해진다. 부산 수영만요트경기장으로 피항을 결정한다. VHF16 번으로 해경을 호출한다. 피항 결정을 알린다. 20분 쯤 부산으로 가다가 바람이 좀 약해진 것 같아서 다시 강릉을 향해본다. 어림없다. 파도가 더 커져서 난리다. 다시 선수를 180도 돌려 부산으로 향한다. 윈디 예보는 현재도 여전히 뒷바람이다. 완전 사기다.
얼른 부산의 김기봉 선장님께 전화를 드린다. 달리 연락처를 알지 못한다. 선장님은 고맙게도 15미터 배가 들어갈 적당한 곳이 없으니, 직접 마리나에 가서 확인 후 연락을 주신다고 한다. 믿고 수영만요트경기장으로 향한다. 14.5 해리. 약 3시간이다. 마음이 천근만근이다.
오는 도중에 부산 세관에서 전화가 온다. C.I.Q.를 받아야 한단다. 나는 원래 목적지가 강릉이고, 부산은 풍랑으로 긴급 피항이다. 하고 하니, 피항이라도 한국에 들어왔으니 일단은 C.I.Q.를 해야 한단다. 그럼 내가 내일 강릉으로 출항하는데 지장이 없냐고 하니까, 전혀 문제없단다. C.I.Q.를 하고 입출항 서류를 줄 테니, 그것을 작성해서 강릉의 관할지인 동해시에 제출하면 된단다. 그렇다면 나는 잘 된 일이다. 부산에서 C.I.Q.를 마치고 하루 쉬고 강릉으로 가서 서류만 제출하면 된다. 임대균 선장에서 이 이야기를 하니 ‘이끄심’ 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하느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오후 9시 10분. 출입국사무소, 세관, 검역소에서 연이어 전화가 온다. 계속 통화를 하다 보니 부산 수영만요트경기장 입구다. 김기봉 선장님께서 곧 있을 요트 경기를 위한 임시 폰툰에, 자리를 마련해 놓으셨다고 한다. 사진을 보내 주시고, 그곳에서 기다려 주신다고 한다. 역시 Seaman-ship 이다. 눈물 나게 감사한일이다. 검역과 세관은 오늘 저녁 10시에 오기로 하고, 출입국 사무소는, 내일 오전 8시에 우리가 가기로 했다. 부산세관 옆이라고 한다.
오후 9시 30분. 김기봉 선장님께서 알려주신 곳으로 제네시스를 몰아간다. 대회용 임시폰툰은 짧다. 천천히 후진으로 계류한다. 수영만은 너무나 평온하다. 카타마란들이 야경관광 운항을 한다. 화가 난다. 불과 3시간 전, 우리는 울산 앞바다에서 죽을 둥 살 둥하다 피항까지 했는데 도대체가! 그러나 하늘은 우리가 피항 할 것을 예비하시고 이렇게 임시 폰툰까지 만들어 주셨다. 무한한 은혜다.
선장님이 레이저 빔으로 신호를 주신다. 계류줄을 잡아주신다. 이렇게 늦은 밤 계류 선석까지 확인해 주시니, 정말 방금 전까지 풍랑으로 죽다가 살아 들어온 입장에서 행복하기 짝이 없다. 부산에 온 기념으로 돼지국밥까지 사오셨다. 이렇게 감사할 수가. 수영만요트경기장의 야경은 진짜 대단하다. 명불허전이다. 문선장님은 감탄사를 연발한다. 지옥과 천국은 14.5해리 차이였다.
수영만요트경기장엔 모기가 무척 많다. 모기향을 피워 발치에 둔다. 잠깐사이 몇 방을 물린다.
오후 10시. 세관에서 먼저 나왔다. 그러나 방역공무원이 먼저 와서 일을 마쳐야, 세관원분들도 배에 오를 수 있다고 한다. 철저하다. 김기봉 선장님께서 장소 설명을 열심히 해서 방역 공무원 분들이 잘 찾아 왔다. 그다음부터 서류 + 서류. 방역 공무원들이 방역 관련 검사와 서류 작성을 한다. 방역이 끝나고 다시 세관서류. 다들 너무 친절하고 자세한 설명을 해주신다. 역시 부산은 국제도시다. 오후 10시 40분쯤 모든 서류 작업을 마쳤다. 개항 외 출입수수료 1만원을 문자로 받은 관세납부전용계좌로 납부한다. 수영만요트마리나가 개항이 아닌 것도 처음 알았다.
오후 11시. 드디어 김기봉 선장님과 오붓한 시간이다. 이게 얼마만인가? 장거리 항해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눈다. 역시 노련하신 선장님이시다. 내가 모르는 세계일주 요티들에 대한 말씀을 많이 해 주신다. 이번 항해에 대해서는 ‘장거리 항해를 소망하는 많은 선장들에게 도움이 될 것’ 이라고 하신다. 더 이상 바랄 것 없는 칭찬이시다. 알고 보니 밴드의 항해기록을 꼼꼼히 읽고 계셨다. 오래전 세계일주의 꿈을 주었던 ‘이삭호’에 대한 이야기도 듣는다. 좀 더 검색해 봐야겠다.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오후 12시. 모든 자리를 마치고 뒷정리를 한다. 김기봉 선장님께서 내일 손자들의 일정을 보고, 시간이 맞으시면 아침에 출입국 사무실에 같이 가주시기로 한다. 말씀만으로도 너무 감사한 일이다. 출입국 사무실과의 약속은 오전 8시다. 적어도 오전 7시에는 마리나에서 출입국 사무실로 나가봐야 한다. 나도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아덴만에서는 첫 회항이었다. 부산 피항은 이번 항해의 첫 피항이다. 정말 다양한 경험을 한다. 그러나 대략 전화위복이다.
부산 수영만요트경기장의 피항에 대해 생각한다. 지중해에서 동중국해까지 세계를 돌아 동해까지 왔다. 나는 교만해져 있었을 거다. 곧 있을 조촐한 환영회와 칭찬에 대한 기대도 있었을 거다. 그러나 세계바다의 절반을 돌아 온 내가, 울산 앞바다에서 눈물을 머금고 피항을 결정했다. 울산 앞바다가 전 세계의 어느 바다보다도 크고 위험했다. 그렇다면 한국의 바다를 세일링 하는 요티라면, 누구라도 나와 같은 장거리 항해를 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나는 대단한 세일러가 아니다. 나는 한국의 보통 요티다. 그저 운 좋게 기회가 주어졌을 뿐이다. 잠시 나를 돌아보게 하는 귀한시간이었다.
만약 제주도에서 첫 피항을 했다면 풍랑주의보가 끝나기 전까지 하염없이 기다릴 뻔 했다. 역시 임대균 선장의 말대로 ‘이끄심’ 이 맞을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