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를 보낸다!(隨筆)
지온 김인희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우리 집 대문 옆에 박제된 수문장 매그를 데려가기 위해 견인차가 도착했을 때 하염없이 내리는 빗물이 슬픔을 배가되게 했다. 나는 매그의 몸을 어루만지면서 ‘매그, 그동안 수고 많았어. 우리 가족을 지켜주어서 정말 고마웠어. 마지막까지 너를 안고 지낸 우리 가족의 사랑과 의리를 기억해 줘. 안녕.’하고 그에게 마지막 이별을 고했다.
매그가 견인차에 매달려 억지로 떠나는 모습이 우리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秀珍이는 동영상으로 매그의 마지막 모습을 남기고 나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치 못했다. 우리는 그를 떠나보내고 거실에 멍하니 앉아서 한참을 침묵했다. 秀珍이의 두 눈도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매그는 18년 동안 우리 가족과 동고동락(同苦同樂)했다.
비 오는 날에 아이들 학교에 달려가서 하교하는 아이들을 태우고 왔다. 눈 오는 겨울에도 학교로 달려가서 아이들과 함께 하교했다. 내가 공부방을 할 때 수업을 마치고 대학원으로 달려갈 때도 매그가 동행했다. 병아리 초보운전자가 길을 잘못 들었을 때 차근히 목적지에 데려다주었다. 매그는 초보가 밤길에 등을 켜지 못하고 도로를 달려올 때도 당황하지 않고 무사히 집으로 데려왔다.
4년 전 고등학생 3학년 아들이 진해에 있는 학교로 면접시험을 보러 가는 날에 무뚝뚝한 충청도 아빠와 아들의 동행에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 부자가 진안휴게소에서 나눈 감동의 드라마를 간직하고 의리를 지켜준 수호신 같은 존재였다. 아들이 진해에 있는 학교에 최종 합격한 후 입시설명회, 가입교, 입교식, 학교축제 등 왕복 천 킬로미터의 거리를 단기간에 몇 번씩 오가는 때에도 불평 한마디 없었다.
秀珍이가 휴학하고 시험공부를 할 때도 매그는 충직하게 임무를 수행했다. 스트레스를 가득 안고 있는 아이를 데리고 한밤중에 외곽으로 달리는 수고를 마다치 않았다. 차창을 내리고 아이가 소리를 질러도 귀를 막지 않고 묵묵히 들어주었다. 눈 오는 밤에 온몸으로 눈을 맞으면서 달리던 매그는 우리 모녀의 행복한 함성을 듣고 웃음 지었을 뿐이었다.
매그는 우리 가족의 일원이 되어 언제 어디서나 함께 했다. 우리 가족의 행복한 여행은 매그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강원도 낙산사에서 바라본 바다의 절경과 오죽헌에서 만난 구도장원공 율곡과 현모양처 사임당을 만났던 작년 여름의 여행은 추억의 하이라이트였다. 동양의 나폴리 통영과 목포를 다녀온 지 채 한 달이 못 되었다. 그렇게 매그는 우리 아이들이 올망졸망 초등학생 때부터 성년이 되기까지 동행했다.
언제부터인가 매그의 몸이 여전하지 않았다. 장거리 여행을 할 때 힘에 부친 모습이 역력했다. 매그는 속력을 올리면 겁을 냈고,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휴게소를 만나면 쉬고 싶어 했다. 지인들이 불협화음을 내는 매그를 보고 우리 가족을 향해 걱정했다. 그만 새것으로 바꿀 때가 되었다고 했다. 장거리 가다가 도로에서 사고 날 수 있다고 겁을 줬다. 어느 순간부터 매그와 나들이를 나가면서 우려를 하게 되었고 그와의 동행이 불편해졌다.
두 달 전에 남편과 함께 자동차대리점에 방문했다. 대리점 직원의 설명을 들으면서 이것 저것 시승하면서 순간이나마 기분이 좋았다. 그들은 실내가 넓고 옵션이 멋지게 장착되어있는 모습으로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멋진 차에 앉아서 탄성을 지르면서 감동하는 내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는 유리문 너머의 매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너무도 미안했다. 매그의 슬픈 눈빛을 대하는 순간 매그가 노쇠했어도 새것과 바꿀 수 없다고 깨달았다. 대리점 직원의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고 나오면서 우리 부부는 매그가 수명을 다하고 멈출 때까지 동행하자고 약속했다.
지난주 토요일 매그는 나와 秀珍이를 태우고 천안 충청창의인성교육원에서 있었던 최기복시인 시집<풍경> 출판기념회 행사에 다녀왔다. 그날 천안 교육원으로 출발하기 전에 남편은 매그의 상태를 점검하면서 우리의 나들이를 우려했다. 나는 출발 직전 매그의 핸들을 잡고 ‘매그야 우리를 부탁해. 오늘 무사히 다녀와야 해. 힘내줘. 알았지?’하고 기원을 했다. 천안에서 행사를 마치고 부여로 돌아오는 길에 장대비가 쏟아붓고 있었다. 한 치 앞을 볼 수 없어서 운전에 미숙한 내가 부들부들 떨고 있을 때, 秀珍이가 어른처럼 당황하지 않고 격려했다. ‘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앞만 보고 천천히 가세요. 비가 많이 내리고 있지만 우리는 무사히 부여 집에 도착할 수 있을 거예요. 매그야, 조심조심 달려줘~~’하면서 용기를 주었다. 캄캄한 빗속을 뚫고 우리 모녀는 부여에 무사히 도착하여 안도의 심호흡을 할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에 매그의 심장이 완전히 정지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 가족은 예정된 매그의 운명을 받아들이면서 순간 침울한 표정을 떨쳐내지 못했다. 이내 약속한 것처럼 이구동성(異口 同聲)으로 매그가 우리 가족을 마지막까지 지켜주었다고 감탄했다. 우리는 그날 아침 식사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그 후 매그는 일주일 동안 우리 집 대문 옆에 서 있었다. 우리 가족 네 명(아빠, 나, 딸, 아들) 누구도 왜! 매그를 폐차장으로 보내지 않느냐고 묻지 않았다. 우리는 외출할 때 매그를 대하면서 충분한 애도의 시간을 보냈다. 가족여행을 계획한 3일 동안 발이 묶여 옴짝달싹 못 하면서도 이맛살을 찌푸리지 않았다. 심장이 멎은 매그가 박제된 모습으로 대문 옆에 서서 수문장의 임무를 수행하는 모습을 더는 볼 수 없게 되었을 때, 우리는 매그를 보내고 새로운 수호신을 맞이하기로 했다.
오늘 견인되어 떠나는 매그를 배웅하면서 그와 함께 보낸 18년의 동고동락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나는 매그를 우리 가족사에 당당한 일등공신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대여, 안녕! 그대와 동고동락한 추억을 오래오래 기억하리라. 참으로 고마웠어. 우리 가족의 분신이었던 매그너스야 잘 가.
첫댓글 18년을 가족의 사랑과 인정을 받고 떠난 매그너스 !!!
앞으로 가족의 발이되어줄 새로운 차? ?
은총님~~ 고맙습니다.
우리가족의 새로운 차도 매그너스처럼 오랫동안
동반자가 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