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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박종태목사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 /요한일서 1장 6-10절
< 좋은 만남은 좋은 인생을 만듭니다 >
며칠 전에 프릿츠 크라이슬러(Fritz Kreisler)의 자서전을 보았습니다. 그는 유명한 바이올린 연주가인데 어느 날 한 영국 신사가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Stradivarius violin)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영국 신사를 수소문해 간신히 찾아내고 그의 집으로 가서 그 바이올린을 팔지 않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영국 신사는 "그 바이올린은 팔 것이 아니니까 그냥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크게 실망했지만 그는 그 명품을 한번이라도 보고 싶어서 "잠깐 구경이라도 할 수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영국 신사는 크라이슬러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집안으로 안내하고 그 바이올린을 잠깐 만질 수 있도록 허락해주었습니다. 크라이슬러는 그 진귀한 명품을 집어들었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뺨 아래로 그것을 조심스럽게 놓았습니다. 그리고 능숙한 솜씨로 바이올린을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크라이슬러가 연주할 때 그 영국 신사는 나뭇가지 사이로 신비한 바람 소리를 듣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어린아이의 웃음소리와 새들의 노래 소리, 그리고 천국 성가대에서 천사들이 노래하는 것과 같은 소리도 듣게 되었습니다.
약 20분쯤 악기와 한 몸이 되어 연주에 몰입하다가 크라이슬러는 잠깐 눈을 떠보았습니다. 그때 바로 옆에서 영국 신사가 울고 있었습니다. 그는 곧 연주를 멈추고 말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조금 흥분한 것 같습니다. 이 명품이 저의 몸에 닿으니 정신을 잃어버릴 것 같았습니다. 너무 소중하고 아름다운 명품이라서 그렇게 사려고 원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영국 신사가 말했습니다. "그 악기는 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은 당신 것입니다. 그냥 가지세요. 그것의 주인은 바로 당신입니다. 그 명품은 당신의 품에 있어야 하고, 당신만이 그것을 가질 가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명품을 크라이슬러에게 그냥 주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명품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그냥 진열대에 놓여 있기를 원치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선율도 없고, 향내도 없고, 의미도 없이 살기를 원치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아름다운 선율을 내고 향내를 내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고, 세상에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전파하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언제 우리는 가장 향내 나는 삶을 살 수 있습니까? 우리를 창조하시고, 이 땅에 보내신 위대한 매스터(Master)이신 하나님의 손을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음악을 연주할 때 우리는 가장 아름다운 존재가 되고, 우리를 통해 세상에 아름다움이 들어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저를 가져주세요. 하나님만이 저를 연주하실 수 있습니다. 저의 삶은 하나님 손 안에 있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삶에서 아름다운 연주를 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주님! 제 안에 아름다움을 심어주시기를 원합니다. 그것은 주님만이 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저의 삶이 주님의 삶과 함께 움직이고, 항상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길대로, 하나님의 사명대로 살기를 원합니다. 주님! 저의 삶을 연주해 주세요."
인생을 살면서 만남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좋은 만남이 좋은 작품을 만들고, 좋은 선율을 만들어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을 가지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사람은 하나님과 깊이 만나게 해주는 사람이고,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교회는 하나님과 깊이 만나게 해주는 교회입니다. 고난조차 잘 맞이하면 좋은 이유는 잘 맞이하는 고난은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을 주는 초석이 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우리는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을 가질 수 있습니까? 어떤 분은 "휴가를 내서 산에만 가도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하늘을 보고, 들꽃을 보고, 산에 있는 개미만 유심히 봐도 창조주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엄청난 우주를 생각해도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세상은 우연히 생기지 않았습니다. 사람도 진화로 우연히 생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그저 인간이 만들어낸 하나의 상상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은 원래 더러운 곳이 아닙니다. 세상은 성스러운 곳입니다. 그리고 세상 안에 사는 생명도 성스러운 것입니다. 세상은 모두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실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을 하나님의 임재로 가득 채우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 곳에도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도 계십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고, 우리를 품에 안기를 원하시고, 우리에게 축복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을 위해 필요한 것 >
그처럼 우리는 곳곳에 충만하게 계신 하나님을 언제든지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충만하게 계시는 하나님과 깊은 만남을 가지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언제입니까? 죄와 욕심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릴 때 우리는 하나님과 깊은 만남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러면 죄인인 우리가 하나님과 깊은 만남을 가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특별히 4가지가 필요합니다.
1. 첫째, 자백(Confession)이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 8절은 말합니다. "만일 우리가 죄 없다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우리가 진리 안에 살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려면 내 죄와 허물부터 솔직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죄와 허물에 대한 책임을 딴 데로 돌릴수록 하나님은 우리의 비겁한 모습을 외면하실 것입니다.
요새 기독교에서 심리학의 원리를 따라 '과거의 상처'를 많이 얘기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내가 현재 이런 모습이 된 것은 과거의 상처가 큰 역할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주장과 태도가 문제 해결에는 별로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현재의 나의 모습에 대한 책임을 과거의 심리적, 정서적 상처 때문이라고 돌리고, 무의식중에 자기의 책임을 회피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상처' 얘기를 많이 하면 할수록 상처는 더 크게 느껴지고, 더 상처에 예민하게 되는 부작용이 생깁니다.
그런 '심리학의 원리'와 '무속적인 사고'와 '인간의 본능'과 '잘못된 것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태도'가 합작되어 나타난 작품이 바로 '조상의 저주 얘기'입니다. "내가 현재 이렇게 된 것은 내 책임이 아니라 조상의 저주 때문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태도가 나의 현재의 잘못된 모습에 대한 죄책감을 벗게 해서 일시적인 위로는 줄 수 있어도 참된 위로는 주지 못하고, 오히려 마음을 연약하게 만들고, 책임의식을 회피하게 만드는 부작용이 많습니다. 그래서 '조상의 저주 혹은 가문에 흐르는 저주 얘기'를 지나치게 하는 사람에 대해 "이단이다" 혹은 "이단까지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 하고 논란이 많습니다.
어떻든지 간에 사람이 자신의 잘못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고 하면 참된 하나님의 은혜와 위로와 평강이 주어지기 힘듭니다. 우리는 과거 탓, 가정환경 탓, 조상 탓, 다른 사람 탓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자백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자백은 내가 잘못되었고, 내가 죄를 저질렀고, 내가 무능하다는 것을 전제할 때 자백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에 도일 세이저 목사님의 글을 보니까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자백은 하나님의 은혜로 들어가는 문이다. 죄의 자백을 멀리하려는 태도의 뿌리에는 교만이 있다(Confession is the doorway to God. At the root of our unwillingness to confess our sin is pride)." 우리가 교만해서 과거의 상처 탓을 하고, 조상의 저주 탓을 하고, 맨 날 환경 탓을 하면 진실한 자백은 점차 멀어지게 됩니다. 그것은 첫 단추를 잘못 낀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으로 들어가는 길을 방해하게 됩니다.
이사야 6장에서 이사야가 하나님을 만나고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내가 입술이 부정한 자로 전능하신 하나님을 보았다."고 고백합니다. 그처럼 우리가 하나님과 만날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이 얼마나 누더기 죄인인가 하는 것을 이해하게 되고, 하나님의 능력을 볼 때 우리의 연약성을 이해하게 되고, 하나님의 지혜를 볼 때 우리의 어리석음을 이해하게 되고, 하나님의 위대성을 볼 때 우리의 무가치함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처럼 우리가 하나님이 아님을 인정하고, 진실한 자백을 통해 우리의 죄성과 무능함을 솔직히 인정할 때 우리는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을 가질 수 있습니다.
2. 둘째, 회개(Repent)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을 위해서 자백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회개입니다. 자백은 "하나님! 제가 죄인입니다. 제가 하나님께 범죄했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이지만 회개는 "하나님! 제가 그 죄에서 돌아서서 하나님만 바라보겠습니다"라고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백만 있고, 돌아섬과 고침이 없으면 하나님은 그 모습을 기뻐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무엇인가를 고치고, 잘못된 것으로부터 돌아선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본능과 욕심이 참된 회개를 막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회개를 도와줄 것들이 필요합니다. 그런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예배이고, 기도이고, 믿음의 체험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하나님 말씀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통해 도전과 격려를 받고, 하나님 말씀의 거울에 나를 비춰 보면 회개가 보다 쉬워질 것입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중증 비만으로 고생하다가 성공적으로 살을 빼서 옛날 모습을 회복했을 때 한 기자가 "어떻게 살을 뺄 수 있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그녀는 "거울 때문이었습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어느 날, 남편과 버지니아에 여행을 가서 한 모텔에 묵었는데, 그 모텔에는 자신의 전신을 볼 수 있는 거울이 있었습니다. 샤워를 하고 그 거울을 보면서 그녀는 비로소 그녀가 얼마나 뚱뚱한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전까지 그녀는 자기의 뚱뚱한 모습을 보기 싫어서 항상 조그만 거울을 사용했는데, 모텔의 큰 거울 앞에서 자신이 뚱뚱한 것을 깨닫고 나니까 살을 빼는 것이 비교적 쉬웠다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통해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바로 알 때 우리는 변화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마귀는 항상 우리가 작은 거울을 사용하게 만들려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를 피하게 하고, 하나님 말씀을 피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예배에 힘쓰고 말씀을 가까이 해서, 말씀에 비추어 나의 고쳐야 할 부분을 발견하면 과감하게 고쳐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하나님과 깊은 만남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3. 셋째, 믿음(Faith)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죄를 자백하고 회개할 때 한 가지 위험이 있습니다. 그것은 마음속에서 "내가 저지른 여러 죄 중에서 어떤 죄는 도저히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용서하지 못할 죄는 없습니다.
오늘 본문 9절을 분명히 말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이 구절에서 '미쁘시다'는 말은 "믿을만한 분이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너무 율법적인 사고에 매여 지나친 죄책감을 가지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언제나 우리의 죄보다 큽니다. 또한 하나님의 은혜는 언제나 율법보다 더 큰 삶의 변화를 일으킵니다.
어느 국립공원 입구에 있는 플래카드에는 이렇게 쓰여있었습니다. "쓰레기를 버리는 그 마음을 버려주세요." 그렇게 쓰니까 "쓰레기를 버리지 마시오"라는 강요보다 훨씬 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얼마 전 정 집사님이 예배당 입구에 "휴대폰을 잠시 꺼 놓으셔도 좋습니다/ 분당 샛별교회 예배 개선 추진협회"라고 자기 임의대로 가상 협회까지 만들어서 그런 문구를 붙여 놓으니까 "핸드폰을 끄세요"라고 하는 것보다 훨씬 반응이 좋습니다. 은혜로 접근하는 것이 율법으로 접근하는 것보다 더 사람에게 변화를 가져다줍니다.
사람들은 가끔 큰 죄를 반복해서 지을 때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하나님! 저를 저주하시고, 저를 죽여주세요."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부추깁니다. "그렇게 살 바에야 차라리 교회를 다니지 말라!" 그 말을 듣고 "맞아! 이렇게 살 바에야 차라리 교회를 그만 다니는 것이 낫지!" 하는 것은 사단이 나를 죽이려는 술책에 넘어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리 부족한 모습을 보여도 항상 "그래도 하나님은 나를 사랑한다."고 선포하고 믿음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느 날 교회를 잘 다니는 사람이 영화를 보러 갔는데 예상치 못하게 야한 영화였습니다. 속으로 자기를 어쩔 수 없는 속물이라고 단정합니다. 그리고 불안한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하나님! 제 눈을 더럽혔습니다. 제 생각도 더러워졌습니다. 내일 사고가 나면 어떻게 하지. 아이들이 납치 당하면 어떻게 하지!" 그런 식으로 두려움과 공포에 젖어 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이 아닙니다. 우리가 진정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존재 자체를 인정해주실 것입니다. 그것을 생각하고, 감사하고, 기뻐하고, 행복해하고, 죄와 허물 중에서도 다시 한번 새롭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다짐할 때 우리는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4. 넷째, 순종(Obedience)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들이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 14:15) 하나님과 깊은 만남을 가지려면 진실한 자백과 회개와 믿음이 있어야 하지만, 마지막으로 진실한 순종도 있어야 합니다. 가끔 "나는 은혜로 구원받았기 때문에 어떻게 살든지 상관없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순종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변화 받았다는 증거입니다.
디트리히 본회퍼는 말했습니다. "순종하는 사람만이 믿을 수 있고, 믿는 사람만이 순종할 수 있다(Only those who obey can believe, and only those who believe can obey)." 믿음과 순종은 서로 떼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말만 하고 행동은 없는 삶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우리는 립싱크(lip sync)를 하는 가수처럼 입만 움직이는 성도가 되지 말고, 순종하는 믿음과 행동하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성공을 원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성공을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성공하도록 창조하셨지 실패하도록 창조하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성공하도록 이곳에 보내셨지 실패하도록 이곳에 보내신 것이 아닙니다. 만약 우리들이 하나님의 뜻에 우리를 맞춰 하나님 편에 서려는 순종의 자세를 자신을 맞춘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 편이 되어주시고, 깊은 차원에서 우리를 만나주실 것입니다.
<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을 가지십시오 >
그러므로 성공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그 하나님과의 관계가 우리의 성공을 좌우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관계를 새롭게 해서 그 만남의 깊이를 깊게 하는 순간, 우리의 삶은 확실히 달라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기독교라는 종교를 믿는 사람으로 그치지 말고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을 가지기를 더욱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네비게이토 선교회 핵심 멤버인 로이 로버츠(Roy Roberts)는 얼마 전 자신의 책에 자신이 기독교라는 종교를 그냥 믿다가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을 가지게 된 경험을 소개했습니다. 1941년 12월 6일 저녁, 그가 탄 배 웨스트 버지니아 호는 진주만에 정박해 있었습니다. 그날 저녁 그는 몇 명의 해군 동료들과 배에서 외출하여 한 성경 공부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약 15명의 모였습니다. 그때 인도자가 "각자 가장 좋아하는 성경 구절을 하나씩 말해 보라!"고 했습니다. 한 사람씩 성경 구절을 나눌 때 그는 공포에 젖어 그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한 구절도 생각해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마침내 그는 한 구절을 기억해 낼 수 있었습니다. 바로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이었습니다. 그는 조용히 마음속으로 그 구절을 읊어보았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렇게 속으로 읊고 있는데 점차 그의 차례가 가까이 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바로 그의 옆자리에 앉은 동료에게까지 순서가 왔습니다. 그런데 그 동료가 요한복음 3장 16절을 인용해 말해버렸습니다. 순간적으로 그는 정신적 공황에 빠졌습니다. 결국 그의 차례가 왔지만 그는 자기가 좋아하는 성경 구절을 한 구절도 인용할 수 없었습니다. 마치 그의 신앙이 발가벗겨지고, 그의 영혼이 발가벗겨진 느낌이었습니다. 엄청난 수치감이 밀려왔습니다. 그날 저녁 그는 침대에 가서 생각했습니다. "로버츠! 너는 가짜다(Roberts, you're a fake)."
다음 날 아침 7시 55분에 그는 전쟁 대형을 명령하는 배의 경적 소리를 듣고 깨어났습니다. 360대의 일본 함대의 비행기가 그가 탄 배와 다른 군사 시설을 공격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동료 승무원과 함께 기관총이 장착된 곳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있었던 것은 훈련용 가짜 총탄뿐이었습니다. 그래도 그는 일본 비행기를 놀라게 하려고 그 가짜 총탄을 목표물을 향해 맹렬하게 쐈습니다.
그 가짜 총탄을 쏘면서 그는 생각했습니다. "로벗츠! 이렇게 그리스도를 향해 가짜 총탄을 발사하는 것이 이제까지 네가 살았던 방법 아니었느냐?" 그는 가짜 총탄을 쏘면서 자신의 부끄러운 신앙생활을 한탄하며, 일본군의 총탄이 배로 작렬해 퍼부어지는 순간에 그는 결심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이곳에서 살아남게 되면 앞으로 남은 인생은 주님을 위해 보다 진실하게 살겠습니다." 그후 그는 네비게이터 선교회를 창설한 도슨 트롯트만을 도와 수많은 사람들을 구원으로 이끌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기독교라는 종교생활에서 벗어나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을 가질 때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능력 있는 삶으로 만들어주시고, 가장 성공적인 삶을 살게 하실 것입니다. 명품으로 태어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품에 안고, 우리의 삶을 이끌고 연주하시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자백, 회개, 믿음, 순종을 통해 하나님과 깊은 만남으로 들어갈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자신 안에 하나님이 없고, 말씀이 없이 사는 분들이 많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예수님과 진실한 관계를 맺고 있고, 예수님이 여러분 안에 살아 계십니까? 오늘이 다시 한번 여러분들의 믿음이 보다 온전하고 진실한 믿음으로 새롭게 되는 귀한 날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이한규목사(분당 샛별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