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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치무라 간조는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파견하신 세계적인 예언자요 종교개혁자요 성경학자였다고 나는 단언한다. 그의 모든 글을 사심과 편견 없이 읽고나면 나의 이 단정이 그릇되지 않았음을 깨달을 것이다. 그냥 들은 풍월로 우치무라 간조와, 그가 제창한 무교회주의를 그 명칭만 가지고 비판하거나 배척하려 해서는 안 된다.
우선 우리 한국의 기독교계에서는 ‘무교회주의’라고 하는 명칭 자체에 거부감을 가지고, 그 내용(contents)을 스스로 지레짐작해서 경계심부터 갖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선 안 된다. 그 이름으로 포장된 알맹이가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교회주의’라고 하는 이름에 지나치게 경계심을 갖지 말고 우선 우치무라가 그 명칭으로써 무엇을 가장 소리높이 외치고 싶어 했는가, 와 또 그가 뿌린 씨앗의 열매가 어떠한가를 진지하게 고찰해 보아야 한다. 무교회주의는 기독교의 하나의 종파가 아니다.
그것은, 어떻게 하면 가장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까를 염두에 둔 정신상의 흐름이다. 무교회주의를 그 이름만 언뜻 보고서, 교회를 없애고 모이기를 폐지하고 성도 간의 코이노니아를 배격하는 위험스런 기독교의 한 집단쯤으로 대충 지레 짐작하는 우를 범해서는 결코 안 된다. 무교회주의는 교회를 없애자는 주장이 절대로 아니다. 무교회주의는 무 ‘교회주의’다. 즉 교회주의를 없애자는 것이다. 제도로서의 교회, 의식으로서의 교회, 겉껍데기만 붙잡고 있는 교회를 개혁하자는 것이다.
그리하여 기독교 신앙의 핵심인 십자가의 속죄와 부활의 대업을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붙잡자는 주의다. 오늘날 교회주의 에서 파생되는 문제점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것을 과감하게 시정하고 예수님과 사도 바울과 초대교회로 돌아가, 참된 성경 진리에 입각한 신앙생활의 본질을 철저히 구명하여, 그렇게 믿고 그렇게 살자, 고 하는 인류 정신사(史)의 한 값진 유산이 우치무라의 무교회주의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부터 약 400년 후에 우치무라 간조를 하나님께서 보내주셨다. 우치무라의 무교회주의는 루터와 칼뱅이 못다 이룬 종교개혁의 계승이다.
종교개혁의 역사와 흐름을 더듬어보면 예레미야---예수---바울---루터---우치무라, 이렇게 이어진다고 볼 수 있다. 인류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진리가 청렬한 지하수의 수맥처럼 흘러내려서, 시대를 뛰어넘어 여러 나라에서 치솟아 오른 것이다. 그런데 세월이 흐름에 따라 그 개혁이 형식화해서 생명을 잃어버리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시기와 민족을 선택하셔서 영원한 진리의 샘을 또다시 새롭게 터뜨려 치솟게 하시는 것이다.
독일의 루터, 프랑스의 칼뱅에게서 개혁 정신을 배워야 한다면, 근세의 개혁자로 하나님께서 동양에 보내신 우치무라에게서 그리스도 복음의 진수(essence)를 배워야 할 의무와 특권이 우리에게는 있다. 우치무라의 종교개혁의 특색은 역시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는다’고 한 로마서 3장 28절의 원리를 강하게 그리고 명쾌하게 전했다는 점이다. 그는 자신의 개인적인 신앙의 체험을 통해 이 사죄의 복음을 깨달았고, 이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 성서를 연구했다. 그러기에 그가 가장 역점을 둔 것은 로마서였다.
우치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우주적이며 영적인 교회(the invisible, universal and spiritual church)를 매우 강조하였다. 그리고 늘 그것을 소망하고 동경하였다. 그리스도의 신부로서의 신령한 교회의 지체들이 곧 우리 크리스천이라고 그는 힘주어 가르쳤다. 그러나 이 지상의 제도와 전통과 교리와 의식과 건물을 마치 그 본질인줄로 착각하고 있는 교회주의자 들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노우’를 외쳤다. 스데반도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않는다.
예언자(이사야)가 말한 바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다. 너희가 나를 위해 무슨 집을 지을 것이며, 내가 안식할 처소가 어디냐? 고 하였다 (행 7: 48-49). 눈에 보이는 성전이 세워지고난 후 사람들은 마치 특수한 건물이 하나님이 사시는 곳으로 잘못 알아 거기만 신성한 곳으로 착각했다.
이 잘못을 깨우치고, 사람이 만든 건물 곧 성전이나 교회당, 그리고 사람이 만든 제도나 의식이나 신조나 관례를 초월해 계시는 하나님을 영과 진리로 예배하자는 것이 이사야와 예레미야의 흐름을 이어받은 스데반의 정신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스데반은 신약에 있어서의 무교회주의의 선구자라고 할 수도 있다. 지면에 제약이 있어 다 쓰지 못하지만 이런 안목으로 읽어보면 바울 서신이나 요한 문서, 그리고 특히 히브리서 등은 명백히 무교회주의 정신을 역설하고 있는데, 다만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지나쳐버리기 때문에 모를 뿐이다.
우치무라 간조는 교회나 교파나 학파 등의 고정관념에 전혀 구애받음이 없이 자유롭고 대담하게 순수한 복음 진리만을 캐내어 후세에 전하였다. 위에서 나는 그의 열매를 보아서 그의 신앙을 안다고 하였다. 그의 일생은 그의 전기를 읽어보라고 권하는 수밖에 없다. 다만 제자를 보면 그의 스승을 알 수 있다는 말처럼, 우치무라 문하의 제자들의 면모를 극히 일부만 소개하는데 그치겠다.
우선 우리나라의 목사님들이나 성경 연구가들이 애독하는 구로사키 고기치 (黑崎幸吉)의 주해 신약성서 의 저자를 꼽을 수 있다. 또 전쟁 후 도쿄대학 총장을 두 번이나 지낸 야나이하라 다다오(矢內原忠雄)도 우치무라의 제자이다. 그리고 쓰카모토 도라지 (塚本虎二)는 자그마치 8권이나 되는 예수 전 연구 를 써낸 세계적으로 독보적인 성경학자이다. 그는 도쿄대학 법학과를 나온 수재이었는데도 스승 우치무라를 만나고 나서 세상 직장을 다 포기하고, 히, 헬, 영, 독, 라틴어 등 성서 어학을 통효해서 오직 성경 연구와 전도에만 90 평생을 바쳤다.
작년 (2000년) 에 별세한 세키네 마사오(關根正雄)는 세계적인 구약학자로서, 구약 전서를 혼자서 구어 현대어체로 번역했고, 역시 전도와 교육에 평생을 헌신했다. 그 밖에도 여기에 다 쓸 수는 도저히 없을 정도로 많은 제제다사가 우치무라의 문하와 무교회 진영에서 배출되었다. 이런 분들의 저서나 글을 읽어보면 얼마나 성경의 근본정신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중심의 신앙을 굳게 파악하고 그 정신과 신앙을 올바로 전하려고 애쓰고 있는지 다만 놀랍고 부러울 뿐이다.
이런 소중한 열매를 맺은 거목(巨木) 우치무라 간조와 그의 무교회주의 십자가 정신이란 과연 어떠한 것이기에 그토록 알찬 열매가 맺혀지고 있는가를 알아보고자 하는 노력을 아낀다면 그것은 큰 손실일 것이다. 끝으로 우리나라 사람으로서 우치무라 간조의 제자 중 두드러진 세 분을 들 수 있는데, 독자들의 오해를 풀게 하기 위해 이를 덧붙인다. 김교신과 송두용과 함석헌의 세 분이다. 이 세 사람은 일본 도쿄에 유학 가서 친히 우치무라 문하에서 성경과 신앙을 배우고 귀국해서 성서조선 이라는 월간 신앙 성서잡지까지 함께 발간하면서 전도했다. 김, 송 두 사람은 끝까지 무교회주의 정신에 입각해서 신앙을 잘 지켜냈다. 문제는 함석헌이다.
그도 20대인 청년시절에는 십자가 복음 신앙을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잘 지키며 사는 듯 했다. 하지만 그는 30대 중반부터 기독교만이 유일한 구원에 이르는 종교라고 하는 시각에 회의를 품기 시작했다. 그래서 결국 자신의 종교관이 무교회주의 운동과 더 이상 같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사람이다. 그는 말한다. 이제는 기독교가 유일의 참 종교도 아니요 성경만이 완전한 진리도 아니다.
모든 종교는 따지고 들어가면 결국 하나다 라고. 그리하여 그는 노자, 불경, 장자 등을 탐닉했고 마지막에는 퀘이커에 기울었다. 함석헌은 역사 철학가로서 민주화 운동과 인권 운동, 국민 계몽에 나름대로 큰 업적을 남긴 것은 사실이나, 성경이 말하는 크리스천 상(像)에서는 크게 일탈되었다.
그러므로 그는 더 이상 무교회주의자가 아니요 우치무라와는 완전히 결별한 사람이요 예수님의 신도가 아니다. 그는 종교다원주의자임을 스스로 인정했다. 그는 야훼 하나님을 인격적인 신으로 보지 않고 탈인격적이고 초월적인 신으로 보았다. 그러므로 함석헌의 행적을 보고서 그것을 무교회주의로 속단해서는 안 된다.
우치무라는 십자가 대속 신앙에서 한 발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끝까지 그 입장에서 전도하고 제자를 양성했다. 거기에 이의를 다는 제자가 있으면 가차 없이 결별을 선언했다. 그런데 함석헌은 심지어 이렇게까지 말하고 있다. 내 자신이 자주적 인격을 가지고 있는 한, 어떻게 역사화 된 예수를 내 믿음의 목적으로 삼고 그저 <주님, 주님> 하고만 부르겠습니까? 어떻게 자주적 인격을 가진 도덕적 인간의 속죄가 이런식 으로 가능하겠습니까? (이상 김성수 지음 함석헌 평전 72면에서 재인용). 함석헌은 이로 보건대 정통적인 기독교 신앙에서는 이미 멀어진 사람이며 하물며 우치무라의 신앙과는 극과 극을 달린 사람이다.
그는 무교회주의도, 우치무라의 제자도 아니다. 그런데도 이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우리나라의 저널리즘은 함석헌과 그의 스승 유영모를 무교회주의자의 범주에 넣어서 소개하고 있다. 두 쪽 모두를 자세히 모르는 독자는 이런 무책임한 소개의 글만 보고 두 쪽 모두를 오해하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첫댓글 참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소싯적부터 제가믿는 신앙관을 이렇케 일목요연하게 글로서 표현해 주셔서 윗분들의 신앙관을 귀감케하심에 재삼 감사를 드립니다.건강하세요~그리고 옮겨갑니다^
건강하세요..^^
이 귀한 글을 매우 늦게야 읽었습니다. 항상 갖이고 있던 수수꺼끼가 시원하게 풀였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셔요...^^
아 좋은 자료네요. 저희 카페에도 옮길께요. ^^ 무교회주의 성전안에 외치는 소리 네이버 카페 입니다.
http://cafe.naver.com/yagovo
그곳은 회원만 열람할 수 있게 해놨군요. 무교회 카페는 완전 개방!^^
귀한 내용이어서 제가 펌 합니다. 감사합니다! 항상 행복하세요!!
ㅎㅎ
우찌무라 간조와 무'교회주의'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이 참으로 유익합니다.
다만, 함석헌 선생을 비판하는 부분에서 또 다른 '교회주의'의 일면을 보는 듯 하여 섬뜩합니다.ㅠ
뺄셈보다 덧셈이 필요한 때가 있는데 말입니다.ㅠㅠ
아~~저도 함석헌 선생님 이 무교회주의신줄알았는데요. 진실을 알게해주셔서 감사합니다.~꾸벅 ^^
김유곤 선생은 무교회주의를 매우 협소하게 판단하신다는 점도 고려하셔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