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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과 5월은 대한민국 포크송의 거장 싱어송라이터 백순진과 김태풍의 듀엣
사월과 오월은1972년도에 먼저 백순진과 이수만이 결성했다가 얼마 후 그당시 외대 불어과에 다니던 김태풍으로 교체 되었고, 경제적으로 매우 유복한 가정의 백순진은 김태풍과 함께 당시 모든가수들이 부러워하는 개인 녹음실을 차려놓고 활동하며 수많은 히트 가요를 만들어냈었다.
이장희, 송창식, 윤형주, 서유석, 양희은 등과 동 시대 인물인 이들은 대다수 당대 포크 가수들과 마찬가지로 저항정신, 사회고발, 민중계도 등... 포크 본연의 민중 친화적이고 지적인 음악을 구사함으로써 청바지 통기타, 생맥주로 대표되는 당시 한국식 청년 문화를 주도 했었다.
김태풍은 대마초 단속을 핑계로 자유를 구속하며 억압하는 유신정권 하에서는 더는 음악을 못하겠다고 선언하고 미국으로 가서 그후 사업가가 되었고 백순진은 후배가수들을 키우는 등 작곡활동을 한때 계속했었는데 지금은 종무소식이라고..
지금의 30대후반이나 40대들은 '사월과 오월'하면
한때 환장을 하고 좋아들 했었다. 그 시절 사이키델릭 풍의 '화'를 처음 들었을 때의 그 감동이란... 그후에 나왔던 '장미'라는 노래는 물론 사월과 오월의 노래 라고는 하지만 오리지널
멤버인 백순진, 김태풍이 아니라 후배들이 이들을
흠모하여 단발성으로 듀엣을 조직해 부른 노래이다.
따라 부르기 쉽고 서정적인 멜로디의 노래로 사랑받아온 4월과5월은 한국 포크 록의 명반으로 평가받는 이 앨범에서 야심찬 음악적 변화를 시도했다. 총 10곡의 수록곡에서 전작보다 다채롭고 공간감 깊은 밴드 사운드를 구현했다.
1970년대 인기 남성 듀오 4월과5월의 데뷔 앨범
4월과5월의 오리지널 멤버, 백순진과 이수만
싱어송라이터 백순진은 1972년 항공대 밴드 런웨이의 베이스 기타리스트 이수영의 소개로 그의 동생 이수만을 만났다. 음악적으로 마음이 통한 두 사람은 단숨에 의기투합해 남성 듀오를 결성했다. 백순진, 이수만 두 사람은 팀 이름을 4월과5월로 정했다.
당시는 보컬 팀들이 외래어로 팀 이름을 정하는 게 유행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만물이 소생하고 활기가 넘치듯 가요계에 새 바람을 불어 넣자”는 뜻과 숫자 ‘4’를 터부시하는 세상의 고정관념에 도전하겠다는 마음을 팀 이름에 담았다. 국내 포크 듀오로서는 최초로 순수 우리말을 팀 이름에 사용한 이들은 방송과 공연을 통해 인지도를 넓혀 나갔다.
이들은 주로 팝송을 비롯해 청년층이 애창하는 노래를 방송에서 소개했던 DJ 이종환의 방송에 출연하면서 이종환과 인연을 맺었다. 당시 통기타 가수의 메카로 떠오른 쉘부르를 운영하며 음반 기획을 시작한 이종환은 새롭게 젊은 세대의 노래로 급부상한 포크송을 소개하는 새로운 시리즈 음반을 구상 중이었다. 대학생 남성 듀오 4월과5월은 이 계획의 첫 번째 주자로 내세우기에 적격이었다.
Oasis Folk Festival Vol.1 / 4월과5월 작품집 앨범 뒷면
1972년 오아시스레코드는 백순진과 이수만이 결성한 인기 남성 듀오 4월과5월의 데뷔 앨범을 발매했다. 타이틀곡 <내가 싫어하는 여자>, <화> 등 4월과5월의 노래는 정식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게 아니라 방송용으로 녹음한 음원이라 음질이 열악한 편이었다. 사람들이 꺼리는 숫자 ‘4’를 팀 이름에 넣었듯, 이들은 음반도 4월 4일에 발매했다. 이 앨범은 1960~1970년대의 인기 DJ 이종환이 기획한 ‘오아시스 포크 페스티발’ 시리즈 음반의 첫 음반이다. 앨범 커버는 4월과5월이 장식했지만 실제로는 쉐그린, 홍민, 챰스, 이수미, 최병결과 안혜경 등이 부른 12곡을 수록된 컴필레이션 음반이었다.
수록곡 중 타이틀곡 <내가 싫어하는 여자>와 연작 개념인 여성 듀엣 챰스의 <내가 싫어하는 남자>는 음반 발매 이후 화제를 모았다. 남성 듀오 쉐그린의 <어떤 말씀>은 당시 장발족과 여성의 미니스커트 단속 문제를 코믹하면서도 역설적으로 풍자해 심의에서 탈락했지만 대중 사이에서는 히트했다.
앨범의 전곡을 작곡한 리더 백순진
이 음반은 총 12곡 중에서 재킷 앞면 전체를 장식한 4월과5월의 노래로만 7곡을 수록했다. ‘4월과5월 작품집’이라는 부제에 걸맞게 이 앨범에 수록한 전곡은 작사, 작곡, 노래는 물론 편곡까지 도맡으며 뛰어난 음악성을 보여준 4월과5월의 리더 백순진의 창작곡이었다.
히트곡 <화>는 DJ 이종환과 방송윤리위원회 사이에 벌어진 파워 게임의 희생양이 되어 표절 의혹에 휘말리며 잠시 방송이 금지되었다. 인트로에서 백순진이 들려준 멋진 기타 리프는 한국 포크 록 역사상 가장 인상적인 사운드로 평가받았다. 이 음반의 타이틀곡 <내가 싫어하는 여자>와 쉐그린의 <어떤 말씀>도 가사 내용 때문에 금지곡이 되었다. < 내가 싫어하는 여자>는 ‘가사 퇴폐 · 치졸’, <어떤 말씀>은 ‘가사 불건전 · 저항적’이 금지 이유였다. 대표곡 <화>는 백순진이 6년 동안 사귄 상명여대 미술과 졸업생 송기화를 위한 연가였다. 백순진은 훗날 아내가 된 여자친구와 연애할 때 ‘화’라는 애칭으로 그녀를 불렀다.
노래한 멤버와 사진 속 멤버가 다른 음반
이 앨범에 수록한 노래는 방송에 출연했던 오리지널 멤버 백순진과 이수만의 음원으로 제작했다. 그러나 앨범 재킷 사진은 이수만이 아닌 김태풍으로 갑자기 교체했다. 앨범 발매를 앞두고 늑막염에 걸려 활동을 일시 중단한 이수만 때문에 일어난 해프닝이었다. 이수만의 중도 하차로 고민에 빠진 백순진은 자신에게 기타를 배우던 당시 한국외국어대 불어과 3학년생 김태풍으로 멤버를 교체했다. 멤버도 바뀌었으니 다시 정식 녹음을 하길 원했지만 제작비 문제로 재녹음은 무산됐다. 그래서 노래는 이수만 버전으로 수록하고 멤버 사진만 김태풍으로 바꿔 발매한 것이다.
가장 희귀한 이수만의 목소리를 담은 초반
이 앨범은 이수만과 김태풍의 목소리로 녹음한 노래가 각각 있다. 이듬해인 1973년 백순진과 김태풍이 재녹음해 발매한 재반이 크게 히트했지만, 현재는 이수만의 목소리를 담은 오리지널 앨범이 훨씬 더 희귀하다. 남아 있는 음반 수가 극히 적기 때문이다. 남성 듀오 4월과5월의 작품집 개념으로 제작한 초반은 백순진과 김태풍이 활짝 웃는 사진으로 앨범 커버를 장식했다. ‘국내 최고 인기 5대 폭송구룹 총결산’으로 앨범의 성격을 다소 바꾼 재반 재킷은 4월과5월의 단독 사진 대신 히식스, 영사운드, 빅5 등 당대 인기 밴드들의 사진들과 함께 편집한 재킷으로 다시 디자인했다.
타이틀곡도 히식스의 <사랑의 상처>, 초반에서 좋은 반응을 얻은 쉐그린의 <어떤 말씀>으로 바뀌었다. 초반에서 4월과5월은 그들의 노래 7곡을 수록했지만, 재반에서는 히트곡 <화>, <내가 싫어하는 여자> 2곡으로 수록곡이 대폭 줄었다.
한국 포크 역사상 중요한 앨범
요즘 같으면 상상하기 힘든 제작 관련 에피소드를 남겼지만, 이 음반은 한국 포크 역사상 중요한 음반이다. 1970년대 인기 남성 듀오로 사랑받았던 4월과5월의 데뷔 앨범이자, 이수만의 목소리를 최초로 수록한 앨범이기 때문이다. 이 앨범으로 인지도를 획득한 4월과5월은 1970년대 통기타 문화의 주역으로 성장했다.
앨범 소개말
4월과5월 작품은 언제부터인가, 우리들의 주변에는 Folk Song, 또는 Folk Singer라는 단어가 있어 왔습니다. 누가 Folk Song다운 Folk Song의 주인공인가를 얘기할 필요는 없는 자리입니다. 그저 부르기 쉽게 또 얘기하기 편리하게 생기타 또는 통기타를 들고 노래하는 이를 가리켜 그저 Folk Singer라고 부른다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여기 처음으로 당신앞에 첫선을 뵈옵는 4월(백순진)과 5월(김태풍은)은 또하나의 Folk Song그룹으로서 1972년의 새로운별이랍니다.
서라벌 예대 4년생인 백순진군은 우리 모두가 주의깊게 지켜봐야 할 뮤지시언으로서 우리들의 생활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주제로 가볍게 그리고 따끔하게 건드려는 재주꾼입니다. 이 앨범에 수록된 12곡의 노래는 모두 백순진군의 작품으로 욕심, 절망, 작은섬 등은 이계통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물론 많은 Pops Fan들을 놀라게 해줍니다.
또한 여학생들의 극성으로 전화가 끊일사이 없는 김태풍은 외대 3년생으로 피아니스트의 막내 아드님. 이 두사람의 결합은 우리나라 Folk부문의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계기가 되지않나 합니다. 이번에 폐사가 새로 기획한 시리즈 Oasis Folk Festival을 계속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Oasis Folk Festival Vol.1 / 4월과5월 작품집 - 4월과 5월 / 쉐그린 / 홍민 / 이수미 등 (가요앨범 리뷰, 한국대중가요연구소)
4월과5월의 두 번째 독집
가을 분위기가 짙은 가로수 길에서 자전거를 타는 백순진, 김태풍의
사진을 앨범 커버로 제작된 4월과5월의 두 번째 독집이다. 같은 사진으로 장식한 4가지 버전을 발매했는데 수록곡이 서로 다르다는
점도 특이하다. 이 음반은 그 중에서 가장 구하기 힘든 초반이다.
4월과5월의 두 번째 독집
1972년 첫 앨범을 발표하면서 이수만이 건강 문제로 탈퇴한 남성 듀오 4월과5월은 백순진, 김태풍의 2기 라인업을 구축했다. 1973년 유니버샬레코드에서 발매한 두 번째 앨범이자 첫 독집 「Best 4월과5월」을 히트시킨 이들은 연이어 앨범을 발표했다.
「4월과5월 vol.2 사랑의 의지」는 4월과5월의 통산 세 번째 앨범이자 두 번째 독집이다. 앨범 커버를 장식한 가을 분위기가 짙은 가로수 길에서 자전거를 타는 백순진, 김태풍의 사진은 경기도 이천에서 여주로 가는 국도에서 촬영했다. 앨범에 수록한 총 10곡은 모두 리더 백순진의 창작곡이다.
포크송에서 벗어나려는 첫 음악적 시도
4월과 5월 Vol. 2 앨범 뒷면
이 앨범은 단순한 포크송에서 벗어나 다양한 사운드를 지향하려 했던 리더 백순진의 첫 음악적 도전이다. 타이틀곡 <사랑의 의지>가 크게 히트했는데, 이 노래는 당대의 인기 가수 이수미가 이들보다 앞선 1972년에 이미 발표해 그녀의 노래로도 더 많이 알려졌다. 그 외의 수록곡들은 대중적으로 히트하지는 못했지만 통기타 연주가 대부분이었던 1970년대 포크송의 외연을 넓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서정적인 노래들 중에서 <어린시절>, <필요한 것>, <꽃 한송이>, <고궁 연못>, <님이란 무엇일까>, <우리들의 사랑>, <젊음>, <사랑은 주는 것> 등 여러 곡이 이 앨범에만 수록한 희귀 버전이다.
커버 사진이 같은 다양한 버전의 음반
이 앨범의 커버 사진과 동일한 멤버 사진을 그대로 사용한 베스트 음반이 1976년 3월과 6월에 연이어 재발매했다. 3월에 재발매한 음반은 엠보싱 재킷이었고, 6월에 발매한 음반은 일반적인 평면 재킷이었다. 초반과 재반에서 겹치는 노래는 <사랑의 의지>, <우리들 세상> 단 2곡뿐이다. 베스트 음반 형식으로 제작한 재반에는 1972년의 데뷔 음반과 1973년의 첫 독집에서 히트한 <바다의 여인>, <옛사랑>, <님의 노래>, <욕심없는 마음>을 총망라했다.
같은 재킷 디자인을 사용했지만 초반과 재반의 뒷면 디자인은 다르다. 초반은 통기타를 들고 건초더미 가득한 수레를 타고 가는 멤버들의 사진으로 장식했지만, 재반은 사진이 없는 평범한 디자인이다. 재반 수록곡은 총 12곡(군가 포함)으로 2곡이 늘었다. 음반 라벨도 초반은 오렌지 라벨이지만 재반은 짙은 회색으로 변경했다. 제작사 표기도 유니버어샬레코드였다가 1976년 3판부터는 유니버샬레코드로 변경했다.
앨범 커버는 같지만 수록곡이 다른 4가지 버전
1983년 서울음반에서는 4월과5월의 앨범과 동일한 사진에 하늘색과 녹색 테두리로 디자인해 남성 듀오 가람과뫼와 스플릿으로 제작한 4번째 음반을 발매했다. 같은 사진으로 장식한 4가지 버전의 앨범에 수록곡이 서로 다르다는 점이 특이하다. 이 중 가장 구하기 힘든 앨범은 1973년 최초로 발표한 「4월과 5월 vol.2 사랑의 의지」이다. 이 음반은 2008년 리버맨에서 복각 CD로 재발매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4월과 5월 Vol. 2 - 4월과 5월 (가요앨범 리뷰, 한국대중가요연구소)
유명 DJ 이종환과 포크 가수 백순진과의 인연
1970년 트로트 가수로 데뷔해 2년 만에 공전의 히트곡 <여고시절>로 스타덤에 오른 이수미가 처음 발표한 포크 앨범이다. 「오아시스 포크 페스티발 2집(Oasis Folk Festival Vol.2)」으로 발매한 이 음반은 이수미의 음반 중 데뷔 앨범 다음으로 희귀하다.
좋은 음색과 가창력을 타고난 이수미가 포크 가수로 변신에 성공한 것은 유명 DJ 이종환과 포크 싱어송라이터 백순진과의 인연 덕분이었다. 이수미를 포크 가수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이 음반에 수록한 노래들 때문이다. DJ 이종환이 기획했던 이 시리즈 음반은, 훗날의 악연까지 고려한다면 이수미에게 꽤 중요한 순기능과 역기능을 모두 지닌 인생의 음반이다.
이수미의 5곡 중 2곡을 작사한 이종환
이 앨범은 DJ 이종환이 기획했던 시리즈 음반이다. 이수미의 <두고 온 고향>은 실제로 실향민인 이종환이 북에 두고 온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사모곡이다. 많은 실향민이 공감대를 느꼈던 이 곡은 북한의 김정일도 좋아한 노래로 알려져 화제를 모았다.
[네이버 지식백과] Oasis Folk Festival Vol. 2 - 이수미 / 4월과 5월 / 이수만 (가요앨범 리뷰, 한국대중가요연구소)
Oasis Folk Festival Vol. 2 앨범 뒷면
이수미의 신곡을 발표하기 위해 기획한 이 앨범은 사실상 남성 듀오 4월과5월과 함께한 스필릿 앨범으로 보아야 한다. 1면은 이수미의 노래로, 2면은 4월과5월 그리고 멤버였던 이수만의 솔로 곡들로 구성했다.
총 5곡을 수록한 이수미의 노래 중 트로트 성향인 김희갑의 곡 <정두고 내가 가네>를 제외한 나머지 곡은 모두 백순진의 창작곡이다. 타이틀곡 <두고온 고향>, 이 시리즈 1집에 이미 수록했던 <그날은 기다려> 2곡은 DJ 이종환이 작사했다. 2면에 수록한 4월과5월의 노래는 이미 전작에서 커버와 타이틀곡을 장식했던 인기의 여세를 몰아, 후속작으로 녹음한 <영화를 만나> 등 신곡 5곡으로 구성했다.
북한의 김정일도 좋아했다는 <두고온 고향>
이 음반에서는 이수미의 <두고온 고향>, <사랑의 의지>와 4월과5월의 <영화를 만나> 등 많은 노래들이 다양한 연령대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가장 큰 히트곡은 이종환이 작사하고 백순진이 작곡한 이수미의 <두고온 고향>이었다. 이 노래는 실향민인 이종환이 북에 두고 온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내용을 담은 사모곡이다. 앨범 발매 후 많은 실향민들의 공감을 불러온 이 곡은, 북한의 김정일마저도 좋아한 노래로 알려져 화제를 모았다. 특히 눈물샘을 자극하는 이수미의 구성진 음색은 압권이다.
<사랑의 의지>, <영화를 만나>는 당시 청년층에서 반응이 대단했다. 특히 <영화를 만나>의 가사에 등장하는 “스케이트장에서 만난 영화”에 대해 백순진은 한 인터뷰에서 “원래는 수영장에서 훗날 아내가 될 사람을 만났는데, 노래로 만들기에는 뭔가 어색해 스케이트장으로 장소를 수정했다”고 설명했다.
이수미를 찬사한 기획자 이종환
앨범 뒷면에는 전작 1집에 이어 기획자 이종환이 쓴 2집 발간의 변을 담았다. 이종환은 우리나라 가요에는 ‘나훈아 류’와 ‘송창식 류’의 음악과 가수가 있는데 이수미의 노래는 그 둘을 합체한 것과 같은 위험천만한 작업일 수 있다고 이 글에서 언급했다. 하지만 뒤이어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서글픈 ‘수미’의 노래는 4월과5월과의 협연으로 아카데믹하게 세련되어 있다”라고 쓰며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이처럼 두 사람은 음악적으로는 좋은 인연이었지만, 훗날 스캔들로 엮이면서 악연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이수미의 첫 포크 앨범은 음악적으로 이수미의 품격을 높였을 뿐 아니라, 이산의 아픔을 보듬으며 지금까지도 애창되는 명곡 <두고온 고향>을 발표한 의미 있는 음반으로 평가된다. < 두고온 고향>은 독집으로 제작한 이 시리즈의 6집에 다시 수록했고, 이후 이수미의 여러 CD에도 재수록했다.
앨범 소개말
Oasis Folk Festival 제 2집을 내면서.
미국의 예를들면 Pop, Soul, Country 등 3개부문으로 나누어져서, 각 가수 마다 Soul이냐 Country냐, 또는 Pop이냐- 모두 분야가 다른것으로 알려져 있읍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나훈아」류와 「송창식」류로 분류할수 있다면 별로 예외는 아닐까 싶습니다. (미국의 경우) 언제부터인가 Pop과 Country의 양쪽을 넘나들거나 또는 「통일된 음악」을 시도한 가수들이 생겼나읍니다. 이또한 우리나라의 경우도 예외일 수가 없었습니다.
Folk Music의 최선두를 공략하는 「4월과 5월」이 이수미양을
Pick-up 했다는 사실부터가 하나의 뚜렷한 징후가 아닐까 합니다
「나훈아」류와 「송착식」류의 복합- 어쩌면 위험천만의 작업일수도 있고 무지향성의 배신일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가수 이수미는 「여고시절」이후 천부적인 재질이 인정된 1972년의
수확입니다. 가슴속 깊은곳에서부터 우러나는 서
글픈 「수미」의 노래는 4월과 5월의 협연으로
아카데믹하게 세련되어 있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Oasis Folk Festival Vol. 2 - 이수미 / 4월과 5월 / 이수만 (가요앨범 리뷰, 한국대중가요연구소)
새로운 멤버의 영입
오리지널 멤버들이 활동을 중단한 남성 듀오 4월과5월은 1979년 김영진, 이지민의 4기 라인업으로 재정비했다. 1979년 유니버샬레코드에서 발매한 4월과5월 4기 멤버의 첫 독집 수록곡 중 이정선이 작곡한 <장미>가 TBC 동양방송 가요 차트 1위에 오르며 크게 히트했다.
김정호를 영입하면서 출범한 3기 4월과5월
1973년 이화여대 강당에서 동료 가수 10여 명과 불우이웃 돕기 공연을 열었던 4월과5월의 백순진은 내쉬빌, 르네상스, 르시랑스 등에서 노래하고 사회도 보며 활동 폭을 넓혔다. 4월과5월은 월간지 「학원」의 ‘스타 탐방’ 코너에도 소개되는 등 높은 인기를 누렸다.
1973년 12월 백순진, 김태풍과 김정호가 한 TV 프로그램에 함께 출연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 김태풍이 팀을 나가고 김정호를 새 멤버로 영입했음을 알리는 자리였다. 김정호는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지만 당시 가정 형편이 어려워 기타 하나만 메고 서울 비원 옆 꽃밭에서 노숙 생활을 하고 있었다. 동생의 소개로 김정호의 기타 연주와 노래를 들은 백순진은 단번에 그의 비범한 재능을 알아보고 멤버로 영입했다.
백순진, 김정호로 멤버를 교체한 3기 4월과5월은 1974년 1월부터 KBS TV 「젊음의 행진」 등 방송 출연과 더불어 월 40만 원의 개런티를 받고 명동 오비스캐빈에 출연했다.
포크 록으로 음악적 변화를 꾀한 4월과5월
4월과 5월 앨범 뒷면
이미 남성 듀오 어니언스의 노래를 통해 김정호의 재능을 감지한 지구레코드는 4월과5월의 전속 계약을 추진했다. 하지만 김정호는 가수뿐 아니라 작곡가로서도 전속해야 한다는 계약서 조항에 반발했다. 리더 백순진과는 생활 주기가 달랐고 특히 간섭을 싫어했던 김정호는 DJ 이종환의 주선으로 유니버샬레코드와 전속 계약을 맺고 두 달 만에 4월과5월을 탈퇴했다. 이에 탈퇴했던 2기 멤버 김태풍이 다시 합류했고, 백순진은 밴드 사운드로 음악적 변화를 시도했다. 듀오 활동을 병행하면서 포크 록 밴드 들개들을 결성한 것이다. 키보드 민병진(서울대 의대 본과 2학년, 현 압구정민치과 원장), 드럼 김찬(연세대 불문과 3학년), 리드 기타 백순진, 세컨드 기타 김태풍, 리드 보컬 이수만의 5인조 라인업이었다.
멤버들은 리더 백순진의 서울 종로구 행촌동 자택 지하실에 모여 연습했다. 개인 녹음실까지 있었던 백순진의 집은 자연히 포크 가수들의 아지트가 되었다. 들개들은 1974년 7월 13일 연세대 대강당에서 밴드 창립 기념 공연을 열었지만 음반을 남기지는 않았다. 하지만 신세계레코드의 「골든 포크앨범 9집」 재킷 모델로 흔적을 남겼다. 또한 김정호와의 친분으로 4월과5월은 영화 「이름 모를 소녀」에 특별 출연하기도 했다.
백순진이 쌓아온 음악 내공을 담은 앨범
1974년 대도레코드는 4월과5월의 정규 3집을 발매했다. 따라 부르기 쉽고 서정적인 멜로디의 노래로 사랑받았던 이들은, 이 앨범에서 단순한 포크송이 아닌 포크 록을 선보이며 야심찬 음악적 변화를 시도했다. 이들은 1973년 발표한 2집에서 이미 통기타 음악을 벗어나려 시도했던 적이 있었다. 5인조 포크 록 밴드 들개들을 결성하며 밴드 사운드를 지향했던 백순진은 4월과5월에서도 이러한 시도를 계속 이어가고자 했다. 4월과5월은 이장희 등의 히트 음반에서 새로운 무그 사운드를 선도했던 강근식이 소속된 오리엔트 프로덕션으로 이적했다. 백순진은 그때까지 쌓아온 음악 내공을 담아 세 번째 독집인 본작을 발매했다.
한국 포크 록의 명반, 4월과5월의 3집
총 10곡을 수록한 이 앨범에서는 가벼운 곡과 무거운 곡을 균형 있게 배치했다. 덕분에 이 음반에서는 전작보다 훨씬 다채롭고 공간감이 깊어진 밴드 사운드를 접할 수 있다. 이 음반의 최대 히트곡은 2면 첫 번째 트랙 <등불>이다. 발라드 스타일로 느릿하게 시작한 노래는 중반 이후부터 분위기가 바뀐다. 특히 후반부에서는 예전의 통기타 음악과 전혀 다른, 묵직하면서도 드라마틱한 사운드를 구사했다. 백순진은 한 인터뷰에서 “팀파니도 들어가면서 더 무겁게 갔어야 했는데 아쉽다”고 회고했다.
이어지는 포크송 <옛사랑>은 이 음반의 백미이다. 이 곡은 1973년 첫 독집 타이틀곡으로 이미 발표했던 곡이지만, 이 음반에서는 프로그레시브 록을 연상시키는 웅장한 전주로 오리지널 버전과 전혀 다른 모습을 선보였다. 특히 강근식의 일렉트릭 기타 연주는 불을 뿜는 듯 강렬하다. 대작의 기운이 넘치게 편곡한 이 곡은 백순진 음악이 절정기에 달했음을 보여준다. 이 앨범은 2006년 리버맨에서 CD로, 2015년 뮤직리서치에서 LP로 재발매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4월과 5월 - 4월과 5월 (가요앨범 리뷰, 한국대중가요연구소)
국내 포크 듀오로는 최초로 우리말을 팀 이름에 사용한 남성 듀오 4월과5월의 데뷔 앨범이다. 노래는 백순진, 이수만의 방송 출연 음원이지만 재킷 사진은 이수만이 아닌 김태풍으로 교체해 발매했다. 앨범 발매를 앞두고 활동을 중단한 이수만 때문에 생긴 해프닝이었다.
4월과 5월 4기 멤버의 탄생
3기 체제를 마감한 남성 듀오 4월과5월
1975년 소위 대마초 파동 때 남성 듀오 4월과5월은 해체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는 오해다. 이미 김태풍이 1974년 1월 군에 입대했기 때문이다. 그는 1974년 발매된 3집 이후 음악 활동을 그만두고 미국과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미국에서 공인회계사가 된 그는 오랜 기간 외국 은행의 금융 전문가로 활약했다. 리더 백순진과 함께 활동했던 4월과5월의 음악 파트너는 이후 이수만, 김태풍, 김정호로 이어지며 3기를 거쳤다.
한밤중 / 장미 앨범 뒷면
오리지널 멤버들이 활동을 중단한 남성 듀오 4월과5월은 1979년 김영진, 이지민으로 구성된 4기 라인업을 가동했다. 김영진(잠시 김영인으로도 활동)은 원래 고등학교 동창 표화영과 함께 1973년부터 남성 듀오 민들레로 활동했다. 표화영의 군 입대로 팀이 해체되자, 김영진은 남성 듀오 햐야로비를 결성했다. 상대는 남성 듀오 둘다섯의 2기 멤버 이지민(둘다섯 시절에는 오영민이란 예명으로 활동)이었다. 백로의 옛말인 하야로비로 팀명을 정한 것은 ‘두 사람의 깨끗한 우정과 새털처럼 부드러운 목소리의 팀’이란 의미였다. 평론가 이백천의 CM송 사무실에서 노래 연습을 하던 김영진과 이지민은 4월과5월 리더 백순진을 만나 4월과5월 4기 멤버로 거듭났다.
TBC 동양방송 가요 차트 1위를 기록한 <장미>
1979년 유니버샬레코드는 4월과5월 4기 멤버가 참여한 첫 독집을 발매했다. 앨범에는 백순진 작품집으로 명기했지만, 총 10곡의 수록곡 중 백순진의 작품은 <갈매기의 꿈>과 이미 발표했던 곡까지 총 4곡뿐이었다. 나머지 6곡은 4월과5월 멤버 김영진이 작사 작곡한 <예쁜미소>, 이정선이 작곡한 2곡, 그리고 원철희, 정영환 등이 작곡한 3곡이었다. 총 5명의 작곡가가 참여한 셈이다. 이 중 이정선이 작곡한 <장미>는 앨범 발매 이후 단숨에 TBC 동양방송 가요 차트 1위를 차지했고, 그해 TBC 방송가요대상에서 중창단 및 작사 부문 수상 후보에 오를 만큼 크게 히트했다.
이후 승승장구했던 4기 멤버들은 이런저런 내홍에 시달리다 2년간 음반 3장을 발표한 후 팀을 해체했다. 타이틀곡 <장미>는 이후 강촌사람들, 서영은, 신해철, 하야로비 등이 리메이크했다. 이 앨범은 2010년 뮤직리서치에서 CD로 재발매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한밤중 / 장미
- 4월과 5월 (가요앨범 리뷰, 한국대중가요연구소)
다시 '입 맞춘' 포크듀오 '4월과 5월'
엄동설한 녹인 서정의 화음
귀공자풍의 외모와 패기넘치고 서정적인 화음으로 70년대 젊은층의 사랑을 받았던 포크듀오 ‘4월과 5월’의 오리지널멤버 백순진, 김태풍이 30년만에 TV 나들이를 했다. 두 사람은 멋들어진 머플러와 청바지를 입은 자유분방한 청년이 아닌 성공한 사업가가 되어 중후한 멋을 풍기는 정장차림에 통기타를 둘러메고 나타났다.
지난 20일 저녁 KBS1 `콘서트 7080-크리스마스특집편(24일 저녁 11시 50분 방송)’의 녹화에 참여한 이들은 히트곡 ‘바다의 여인’‘화’ ‘등불’ ‘옛사랑’과 더불어 캐롤 `더 킹 오브 러브’ 등 5곡을 선보이며 오프닝무대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인기절정이었던 1975년 1월, 종로1가의 쉘브루무대를 마지막으로 무려 30년만에 이뤄진 기적같은 무대였다. 기념무대가 성사된 것은 그들을 기억하는 많은 팬들의 열망이 뜨거웠기 때문. 하지만 무대에 오르기까지 오랜 망설임이 있었다. 사업가이면서 창작 활동을 재개한 리더 백순진과는 달리 펀드 자문회사의 대표로 변신한 김태풍이 그동안 음악과는 완벽하게 단절된 삶을 살아왔기 때문. 며칠간 두 사람은 함께 연습에 몰두하면서 빛바랜 우정까지 되살아났다. 녹화 전 “타임캡슐을 타고 그 시절로 돌아가는 기분”이라며 들뜨고 긴장된 감정을 숨기지 않았던 김태풍씨.
녹화를 마친 후 오히려 “70년대에 TBC <쇼쇼쇼>출연 이후 오늘 두 번째로 화장까지 했다.”며 농담까지 곁들이는 여유를 보였다. “감기가 심해 목소리가 엉망이었어요. 성의있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 녹화일정을 연기하고 싶었을 만큼 걱정을 많이 했어요. 사실 저는 지난 세월동안 가수였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고 살아왔는데 연습을 하고 예전 노래를 다시 불러보니 젊은 날의 추억이 되살아나면서 한결 젊어진 기분입니다.” 리더 백순진은 “우리들을 기억해주는 분들이 많아 놀랍고 너무 감사합니다.
하지만 30년전 우리 음악을 아직도 많은 분들이 즐겨 듣는다는 말에 서글픈 마음도 드네요. 그만큼 요즘엔 들을 노래가 없다는 말 같아 대중음악인들이 분발해야 된다는 걱정도 생겨납니다. 오늘 아쉬움은 있었지만 무엇보다 김태풍과 함께 음악을 다시 했다는 사실에 너무 행복합니다.”라며 활짝 웃었다.
맑고 경쾌한 창작 포크송으로 폭발적 인기
1972년 혜성처럼 등장했던 대학생 남성포크듀오 ‘4월과 5월’은 대중음악사적으로 의미심장했던 보컬팀이었다. 무조건 외국 것을 동경하며 사대주의가 팽배했던 당시 순수 우리말 이름으로 활동한 남성듀오는 이들이 유일했다.
팀 이름은 ‘만물이 소생하는 활기넘치는 계절’을 상징하려 ‘4월과 5월’로 정했다. 최초의 우리말 이름 남성듀오의 등장이었다. 또한 음악적으로도 특별했다. 외국 번안곡이 활개를 쳤기에 청소년들이 달리 부를만한 우리 노래가 없었던 그 시절, 이들은 맑고 경쾌한 창작 포크송으로 청년문화를 주도했던 선구적인 싱어송라이터 보컬팀이었다.
특히 72년에 시작된 맑고 고운 포크송 보급을 위한 노래운동이었던 ‘맷돌’공연에서 빚어냈던 ‘4월과 5월’의 음악실험은 더욱 의미심장했다. 같은 가사를 놓고 백순진, 송창식이 서로 다른 곡을 만들었다. 지금은 송창식의 히트곡으로만 널리 알려진 ‘딩동댕 지난 여름’이다. 비록 대중적인 인기는 송창식의 몫이었지만 ‘4월과 5월’은 당시로서는 생소한 통기타와 가야금의 협주를 통해 국악과 포크의 크로스오버를 선보였다.
공연 후 일부 국악인들은 “다시는 그런 장난을 하지 말라”고 혼을 냈을 정도로 당시로서는 엉뚱한 무대였다. 오직 김민기만이 이들의 음악실험에 감탄했던 시대를 앞선 시도였다. 또한 ‘4월과 5월’은 비음으로 끝나 부르기 어려운 ‘ㅁ’자로 끝나는 노래와 생소한 코드진행을 개발해 주목을 받았다. 그동안 ‘4월과 5월’의 활동중단은 대마초파동으로 알려졌었다. 오해였다. 긴급조치9호로 예고도 없이 집행되었던 75년 12월의 ‘가요정화운동’ 이전인 75년 1월에 이미 김태풍은 군입대를 했음이 이번에 새롭게 확인되었다.
하지만 끌려가면 무조건 20명을 불어야했던 서슬 시퍼랬던 당시, 잘나가는 가수나 연주자들은 대부분 조사를 받고 활동금지의 멍에를 썼던 분위기는 이들에게 더 이상 신나게 음악을 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래서 백순진은 음반기획자로 김태풍은 유학을 선택하며 활동을 중단했었다. 김진성 가요평론가는 “노래가 좋고 나쁘고를 떠나 백순진, 김태풍의 노래를 30년만에 다시 들으니 젊은 그 시절로 돌아가는 듯 절로 흥이 생겨나더군요. 최근 들어 많은 70-80년대 가수들의 노래를 들었지만 완벽하게 그 시절로 되돌아가는 기분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30년만에 호흡을 맞춘 ‘4월과 5월’ 백순진, 김태풍의 무대는 음악적인 평가보다는 만남자체에 큰 의미가 있다. 출연소식을 듣고 방청석을 가득 메운 방청객들도 내내 합창을 하듯 노래를 따라 부르며 만남 자체만으로 충분히 감격스런 표정들이었다.
1974년 까까머리 중3때 연세대 강당에서 열렸던 ‘4월과 5월 그리고 들개들’공연을 직접 보았다는 건설회사 대표 박훈종(47)씨는 “30년만에 두분이 무대에 나와 함께 노래하는 모습을 보니 이게 꿈인가 현실인가 싶습니다. 목소리도 예전과 크게 달라진 것 같지가 않아 현역으로 다시 활동을 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아요. 무엇보다 예전엔 스타와 팬의 관계에서 이젠 함께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 경계를 허물고 어우러지는 좋은 느낌을 받았습니다”라고 반겼다.
1972년에서 73년까지 거의 모든 맷돌공연에 참석했던 ‘4월과 5월’의 열렬팬인 주부 임윤경(50)씨는 “예전 맷돌공연때는 2-3m도 안되는 가까운 거리에서 통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두 분의 목소리를 또렷하게 들었는데 오늘은 방송이다보니 밴드소리와 코러스 소리 때문에 두 분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한편 아쉬웠어요.
하지만 외모는 좀 변하셨지만 목소리는 젊은 시절보다 오히려 윤기가 도는 듯 굵어져서 인지 더 좋게 느껴졌습니다”라고 소감을 말했다.
회사원 이강철(48)씨는 “70년대 젊음이들의 우상이었던 두 사람을 무대에서 다시보니 감회가 남다릅니다. 백순진씨는 그런대로 알아보겠는데 김태풍씨는 못알아볼 만큼 많이 변한 것 같다”고 변모된 두 사람의 외모에 대해 말했다. 멋쟁이로 통했던 김태풍의 출연을 고민했던 이유중 하나가 바로 너무 변해버린 자신의 외모였다. “순진이형은 비교적 예전과 거의 같은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는 반면 저는 머리가 많이 빠졌기에 만나는 사람들마다 실망을 하더군요(웃음). 그래서 사실 출연을 망설였지만 그냥 있는 그대로의 솔직한 제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하고 고심을 접었습니다.”
컴백무대 후 활동재개여부에 대해 김태풍은 “예전같지 않은 목소리도 문제지만 현재 펀드 자문회사의 큰 프로젝트 때문에 불가능합니다. 이번 컴백무대는 활동재개가 아닌 저희들을 기억해주시는 팬들에 대한 고마움의 답례로 봐주시길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현재 뉴욕 엑스프레스의 부회장인 백순진은 “30년만에 태풍과 함게 무대에서 선 것도 의미있지만 잃어버렸던 친구를 다시 찾았다는 사실이 더 가슴 뭉클합니다.”라며 감격했다. 공연장을 떠나기 전 두 사람은 진한 우정을 담은 그들만의 오랜 포옹으로 영하10도가 넘는 추위를 훈훈하게 녹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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