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강 조남익 시인 소천 – 대전문인협회 1대 회장 역임 – 추모사
2024년 3월 11일 정오에 소천
2024년 3월 12일 16:00 대전문인협회장(추모식)
2024년 3월 13일 오전에 고향 선영에 모심
# 아래 글은 대전문인협회장 영결식에서 읽은 추모사 전문입니다.
‘하늘에 그리는 상형문자’를 보이소서
시방 남녘에서는 노란 산수유꽃이 세상을 밝히며 올라오고 있는데, 우리에게 먹먹한 가슴을 남기고 ‘하늘에 그리는 상형문자’를 찾아 멀리 가신 백강(白崗) 조남익(趙南翼) 선생님, <가냘픈 시에/ 말의 날개를 타고 오는/ 생명>을 찾기 위해 시를 탐구한 선생님, <시에 나를 넣어/ 불 사르고 오르는 연기 가닥으로/ 하늘에 그리는 상형문자(象形文字)/ 그 몸부림치는 혼(魂)>이고자 치열한 창작 정신을 보이신 선생님께서 갑자기 먼 길을 떠나셨습니다.
존경하는 백강 조남익 선생님!
선생님께서는 우리 후진들에게 새롭고 크신 발자국을 남기신 분이셨습니다. <강물에 풀어헹군 이 서언한 소리들을 귀뿌리에 온 누리 차도록 물레>로 감아올리는 시골살이를 노래하시면서 우리 고유의 정서를 보여주셨습니다. 그와 함께, ‘무릇 시에는 알맹이가 있어야 한다.’며 역사의식을 강조하셨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은 우리와 같은 분이셨지만, 우리들 가슴에는 선생님 스스로 시(詩)와 맹약(盟約)하고 평생 변함이 없는 ‘시 창작의 수도자’ 상(像)으로 남아 있습니다.
문학의 밭을 새로이 일구신 선생님!
선생님께서는 1965년과 66년에 ‘현대문학’에서 3회 추천을 받아 시인으로 등단한 분입니다. 1969년에 첫 시집 『산바람소리』를 발간하여 시 창작의 바람을 불러일으킨 분입니다. 또한 1977년에는 『현대시해설』을 발간하여 시 창작 이론을 정립하신 분입니다. 고 임강빈 시인과 함께 사무국장으로서 ‘박용래 시비’를 보문산에 건립한 분입니다. 1989년에는 대전문인협회를 창립하면서 1대 회장으로 선출되어 훌륭한 업적을 남기신 분입니다. 곁에서 보고 배우며, 가끔 심부름을 하며, 모시는 기쁨이 컸습니다. 백강 선생님을 생각할 때마다 탁월한 업적이 떠오릅니다.
첫째, ‘제1회 대전문학상’을 제정하여 상패와 순금 10돈 메달을 수여한 일입니다. 창립 당시 저는 평론분과 이사, 사무국장을 역임하였습니다. 갓 창립한 협회에는 상금을 수여할 여력이 없었습니다. 회장님께서는 대훈문고 김주팔 사장님을 만나 금메달을 협찬받았습니다. 당시 순금 1돈이 5~7만원이니 상금으로 환산하면 50~70만원이었을 것이지만, 최근에 순금 1돈이 39만원이니, 상금으로 환산하면 390만원 정도의 가치였을 겁니다. 그후 금 시세가 오르면서 후배 회장들은 대전문학상 시상품을 현금으로 대체해왔습니다. 창립한 지 몇 개월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전문학상에서 금메달을 시상한 것은 힘들고 귀한 첫걸음이셨습니다.
둘째, ‘대전 시문화상’ 제정 시 문학 분야를 독립시킨 일입니다. 대전문협을 창립한 1989년은 대전시도 대전직할시로 승격된 해입니다. 직할시에서 대전문화상을 제정하면서, 문학 분야를 ‘예술’ 분야에 포함시켰습니다. 이를 확인한 백강 회장님께서는 전국의 지방자치단체 문화상 시상 사례를 수합하여, 시장실을 여러 차례 방문하여 기어이 문학 분야를 예술 분야에서 독립시키셨고, 오늘날에도 문학 분야의 독립 시상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몇몇 예술 분야 대표들이 문학 별도 시상을 시기·질투하여 문학의 별도 시상을 반대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문학 분야가 독립되어 있어야, 무대예술과 전시예술 등으로 나중에 분리될 수 있다는 논리로 설득하였고, 현재 세 분야의 수상자를 시상하고 있으니, 회장님의 탁견과 열정은 30년을 내다 본 혜안(慧眼)이어서 더욱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셋째, 1989년에 신생 단체로 출발하여 모든 것을 새로 추진해야 했습니다. 『대전문학』 창간호를 발간해야 하는데, 회비마저 준비되지 않아, ‘대전문학 후원회’를 조직하여 어렵게 창간호를 발간한 것도 귀한 첫걸음입니다. 백강 조남익 회장님께서 기틀을 다지신 덕으로, 그후 1년에 두 권씩 발간하였고, 다시 네 권씩 발간하였으며, 현재는 6권씩 발간하며, 후진들이 열심히 이어받아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조남익 회장님께서는 취임 다음해에 ‘여름 해변 문학축제’를 충남 서천군 춘장대 해변에서 개최하여 대전문협 회원들의 창작의욕과 친목을 도모하였습니다. 그날 행사를 끝으로 개최하지 않았으므로, 그 추억만 어제런 듯 생생합니다.
벌써 그리운 백강 조남익 선생님!
하늘나라로 떠나신 지 이틀이건만, 선생님의 모습과 말씀, 그리고 이루신 업적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집니다. 대전문예대학에서 열정적으로 후진을 양성하시던 모습이 보이고, 한밭도서관에서 문학 창작을 강의하시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보문산 공원의 박용래 시비 곁에 김관식 시비를 세우시면서 고심하시던 때도 그립습니다. 대전의 문인들이 한마음으로 뜻을 모아 선배를 존경하고, 후배를 사랑하는 기풍을 세워달라시던 말씀도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선생님, 저희들에게 문학 창작을 통한 교훈과 정서적 오롯함을 몸소 실천하시고 떠나신 백강 선생님, 선생님께서는 저희 곁을 떠나셨지만, 정작 저희들 마음으로는 보내드리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이 그리울 때마다 선생님이 거닐던 보문산 자락을 찾아 그리움을 달래겠습니다. 그때마다 ‘하늘에 그리는 상형문자’를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언젠가 저희들이 선생님의 뒤를 따라가거든 선생님께서 두 손을 잡고 반겨주십시오. 얼마 전에 아파트 곁의 보문산 걷기도 힘들어 집에서 쉬고 계시다는 전화를 주셨는데, 비옵나니 이제 평안한 곳에서 부디 강건하소서. 이곳에서 이끌어주시던 것처럼 목소리 카랑카랑하게 여일(如一)하소서. 고개 숙여 비옵나니, 이곳에 남으신 사모님의 강녕하심과 자손들의 행복을 지켜주소서.
2024년 3월 12일 16:00 리헌석 삼가 올림
# 리헌석 : 시인, 문학평론가, 대전문협 7~9대 회장 역임
첫댓글 어제 다녀왔답니다.
어제 점심 시간에 다녀왔습니다. 조 사백님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