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삼척에 내려와 교직생활을 시작하면서 처음에는 학교 앞에서 하숙생활을 했다. 당시 하숙집에는 같은학교에 근무하는 총각선ㅇ생이 나까지 4명이 있었다. 그 당시는 4명이서 무척 자주 뭉쳤다. 저녁식사 후 운동 삼아 야구 글러브와 베트 그리고 공을 단체로 구입하여 학교 운동장에서 캐취볼을 하기도 하고 노크 볼을 치면서 수비연습을 하기도 했고 집이 펑주인 선생님은 세광고를 응원하며 운동을 했고 대구인 선생님은 내야경북의 구호를 외치며, 그리고 나는 내가 마치 군상상고 출신이기라도 하는 듯 ‘역전의 명수 군산상고’라는 구호를 외치곤했다. 운동 후 같이 어울려 소주잔을 기울이기도 했다. 그렇게 같이 생활을 하다가 한명씩 결혼을 하면서 하숙집을 떠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에 정라 주공아파트가 건립되고 임대주택으로 입주자를 모집한다는 말을 전해 듣고 기대도 없이 무심코 신청을 했고 15평에 방이 2개인 아파트에 당첨이 되어 혼자입주해서 살기 시작했을 때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고향선배이자 대학선배의 소개로 당시 삼척의료원 수간호사로 근무하는 집사람을 만나 5개월만에 사직동 성당에서 관면혼배를 받고 7개월 만에 결혼을 해서 주공아파트 생활이 시작되었다. 비록 조금 좁기는 했지만 신혼 생활을 하는데 는 그리 큰 불편은 없이 살아서 서울이나 대도시에 사는 사람처럼 집 문제로 골머리를 아파한 기억은 없다. 결혼해서 큰아이와 작은아이가 태어나 살때도 조금 좁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무난하게 생활을 했고 아파트를 분양할 때도 어려움없이 분양을 받았다. 그러다가 큰 아이가 학교에 들어갈 무렵에 주공아파트는 정라 초등학교 구역이었고 집사람은 아이를삼척초등학교에 입학시키고 싶어했다. 하는 수 없이 이사를 가야 했는데 다행히 백조 아파트 8동에 24평 크기 집이 나와서 이를 구입해서 첫 번째 이사를 했다. 그 집에서 5년 정도를 살았을 때 조금 시내 쪽으로 32평크기의 집이 있다고 해서 현진빌라 2차 602호로 두 번째 이사를 했다.
우리집은 6층이었는데 6층은 바로 위에 같은 넓이의 다락이 있어 당장 생활하는데 불필요한 짐은 전부 다락에 올릴수 있었다. 화장실만 만들면 다락에서도 생활하는데 어려움이 없을 정도였다.
이집에서 6년을 살고 2004년 세번째로 이사를 했다. 살고 있던 현진빌라를 전세를 주고 삼척여고 뒤편에 개인주택의 2층을 세를 얻어 이사를 간 것이었다. 덕분에 나는 학교가 걸어서 6분내외로 가까워 출퇴근하기가 아주 수월했다 큰아이도 나와 같은 학교에 입학하여 등학교 하기가 아주 쉬웠다. 그집에서 10년을 살았다. 그러던 2011년3월에 내가 뇌출혈로 쓰러져 고생을 하기도 했지만 내가 삼척에서 가장오래 살았던 집이라서 애착도 많이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2층이다보니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데 내가 평지는 지팡이가 없이도 걸을수 있지만 계단을 오를때는 지팡이에 의지해야하는 것이었고 계단이 실외에 있어서 비가 올 때 우산을 받을 수 없었고 특히 눈이 와서 계단에 눈이라도 쌓이면 문제가 심각해졌다. 눈이 조금이라도 오면 꼼짝 못하고 집에만 있어야 했다. 그래서 전에 살던 현진빌라로 복귀하기로 했다. 현진빌라는 비록 6층이지만 승강기가 설치되어 있고 주차장에서 집으로 들어가는 입구도 계단이 거의 없이 들어갈수 있고 시내도 가까우며 바로 옆에 시보건소가 있어서 운동이나 물리치료도 받기 쉬웠다. 그래서 전에 사시던 분이 4월5일 이사를 간 다음 집을 조금 수리를 한 다음 이사를 가기로 했다. 약 3주 정도의 기간동안 집을 수리를 했다.벽면에 몰딩을 다시하고 도배도 새로 했으며 장판도 새로 깔았다. 이사 날자는 4월 26일로 정했는데 동창회; 카페에 바로 그날 경기도 가평에서 동창회 모임이 있다는 공지가 올라 왔다. 특히 이번 모임에는 결혼해서 일본에 살고 있는 동창생인 덕순 친구가 때마침 귀국해서 참석한다고 해서 더더욱 가고 싶었지만 이사가는날 동창모임에 간다고 말을 꺼냈다가는 정말 속이 없는 사람이라는 지청구를 들을 것 같아 말도 꺼내보지 못했다. 이사는 포장이사를 하기로 하고 아침8시가 조금지난 시간에 차와 이사를 도와주실 분들이 집에 오기로 했다. 그래서 이른 아침을 먹고 8시가 되기 전에 이사하는데 방해가ㅣ 되니 나가 운동하다가 11시 정도에 이사갈 집으로 오라고 해서 집을 나와집뒤에있는 남산을 넘어 문화예술회관을 거쳐 장마공원 제방길을 걸어서 왕복을 하고 현진빌라에 도착하니 아직 이사짐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하릴없이 보건소 주변과 미륵바위 밑에 조성된 정자와 벤치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한시가 조금 지나 다시 집에 와서 중국집에 배달시킨 음식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식사 후에 사다리차와 짐이 와서 본격적으로 짐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우선 짐을 모두 집안으로 들여온 후 점차 시간을 가지고 조금씩 정리를 하기로 했다.다섯시가 조금 지난 시간에 짐 운반은 끝났다. 하지만 정리가 언제 끝이 날지는 부지하세월이었다. 우선 다락으로 짐을 올려 놓고 대충 집안을 정리해서 잠을 잘수 있는 공간을 확보했다. 집안에서 식사가 어려워 저녁은 거정에 가서 생선찜으로 해결을 했다. 집안 정리를 도와주기 위해 인천에 사는 집사람 바로 밑의 처제가 왔다. 우선은 어수선하겠지만 시간을 갖고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가면 나름 살기 괞찬아질 것 같다. 그리고 앞으로는 가급적 이사를 가지 않고 살아야겠다. 이사해보니 정말 힘들더라 에지간하면 그냥 살던 집에서 살자.
첫댓글 이사온집주소는"강원도 삼척시 남양길 45 현진빌라 2차 602호"임
이사하느라 고생 많았구먼,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하네!
다시들어간 집에서 평안하게 지내고 운동많이혀서 다듬어놔!
무열친구 이사하는데 별 도움은 못한것 같지만 수고 했네. 친굴 볼까하여 인터넷 으로 길 찾기 검색 해보니 가평에서
삼척까지 325킬로미터 소요시간 4시간 30분정도 엄두가 나지않아 못보고 그냥 내려왔네~~ 미안해...
담엔 동창들 모임에 친구의 일정을 고려해서 보고싶어하는 친구들과 상면할수 있도록 노력 해볼께
건강 하시게....
무열이의 본가로 재 입성하게 된 것을 축하하네~!
이사하느라 수고 많았네.. 좋은 글 잘 읽었네~!
무열친구 수고했구먼 그날 범주를 보는순간 무열이도 생각했다네, 이사하느라 수고많았어!!!! 담 모임에서 꼭 보자구 몸조심 또 조심하시고 웃는 얼굴로 볼수있으면 한다네~~~장무열 화이팅
"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정말 정말 행복합니다." 나의 빈자리를 보고 나를 기억해주는 미열이 같은 친구가 있다는 것 만으로도 "정말! 정말!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