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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년8월13일-14일(土,日)雲,晴---설악산(雪嶽山)(4)십이선녀탕... 해봉산악회(43명)
* 개요 설악산(3)참조
+ 대승폭포(大乘瀑布)
강원 인제군 북면 한계(寒溪)3리
내용 출처:두산세계대백과
높이 88m. 한계령 아래 장수대에서 북쪽으로 1km 떨어진 계곡에 위치하며, 금강산의 구룡폭포, 개성의 박연폭포와 함께 한국 3대 폭포의 하나이다. 내설악에 있으며, 한국에서 가장 긴 높이를 자랑한다. 폭포 맞은편 언덕의 반석 위에 ‘구천은하(九天銀河)’라는 한자가 새겨져 있는데, 이는 조선시대 명필 양사언(楊士彦)의 글씨라고 전해진다.
**장수대(7.15)-대승폭포(7.50)-대승령(8.50)-복수아탕(12.00)-남교리(14.40)
총 7시간25분
*** 태풍'엘리'가 일요일 쯤에 한국에 상륙한다는 예보 속에 집을 나선다. 태풍을 등지고 북으로 올라가면 괜찮겠지 하는 생각으로 밤9시45분 경 시민회관 앞으로 나가니 임 대장이 깎듯이 인사하며 반겨 준다. 팔성 관광버스는 전처럼 단속을 피해 5분 뒤 한 부록 위의 모퉁이에 주차, 승차시킨다. 마니산 갔을 때의 그 서 기사다.
42명을 태우고 예정시간보다 9분 늦게 출발한다. 부산T/G는 전과 달리 통행료는 후불제로 바뀌어 곧장 진입하는데 하행선은 차량들로 장사진을 치고 있다.
양산 일반 버스정유소에서 노란T셔츠의 집행부 베레모 젊은이가 승차하고 11시, 언양 휴게소에 들린다. 10여분 휴식 후 다시 달리지만 얼마가지 않아 빨간 후미 등을 켠 긴 차량행렬이 끝도 없이 이어져 있다.
사고가 나도 단단히 났구나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기사양반이 얌체 짓을 하여 경주T/G에 도착한 것이 12시25분, 통행료 후불관계로 무려 한시간 이상 지체한샘이다.
날이 바뀌어 1시30분, 화진휴게소 도착. 10여분 휴식하고 다시 달린다. 그사이 술 추념하는 사람, 옆 사람과 큰소리로 농담을 나누는 사람, 이제 내일의 산행을 위해 실내등을 끄고 희미한 독서 등만 켜 놓는다. 임 대장은 운전기사가 졸지 않게 하려고 집행부 젊은이는 자게 하고 기사 옆자리에 앉는다.
깜박 잠이 들었다가 차가 정차하는 바람에 눈을 뜬 곳이 '동해휴게소'. 각자 용변을 보고 다시 달리다 두 번째 눈이 뜨인 것이 동해 수평선이 뿌옇게 여명이 트이는 중인데 시야에 3,4번 좌석에 앉아 서로 머리를 기댄 체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총무아가씨와 집행부 젊은이가 들어오고, 계속 달리는 버스기사 옆자리엔 여전히 바른 자세로 앉아 있는 임 대장의 안경 낀 뒷모습이다.
시간은 5시20분, 차내는 모두 깊은 잠에 빠져있고 기사는 능숙한 솜씨로 안전운전 속에 때로는 고속으로 달린다. 5시45분, '38선휴게소'도착. 멀리 수평선은 얕은 구름 속에 길게 늘어져 있고 모래밭에는 밀려오는 적당한 파도가 먹이를 찾고 있는 갈매기와 물새들을 종종걸음치게 하는 지극히 평화스러운 풍경. 어느 한구석 태풍의 낌새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저 멀리 북쪽의 백사장에 10여명의 젊은이들이 밀려오는 잔잔한 파도 속에 발목까지 물에 담그고 장난을 치고 있다. 이런 풍경을 촬영하고 화장실에 들려 차가운 물로 세수를 하고 밖으로 나와 새삼 심호흡을 하며 동해의 맑은 아침 공기를 마음껏 마신다.
집행부의 착각으로 화장실에서 돌아오지 않은 사람을 둔 체 출발했다가 곧 정차하여 뛰어가는 가벼운 소동 속에
"그냥 떼어놓고 가지 뭐할 라고 서 노!"
"아이다. 걸마, 떼어놓고 갔다가 그 욕을 누가 다 먹을 라고!"
하는 소리에 잠시 웃음꽃이 핀다.
6시15분,'양양'으로 꺾어들어 일로 한계령으로 달려간다.
6시40분,'오색'입구 정차, 서울에서 올라온 마니산 산행시의 '열무'사든 김 중령이라는 회원이 5시30분경 자기 차로 왔다며 차에 오른다. 너무 늦어 장수대 까지 갔다 왔다고. 보통 정성이 아니다. 왼편의 점봉산 푸른 숲과 암벽들이 잿빛안개로 치마를 두르는가 하면 머리띠를 두루기도 한다. 구비 구비 올라가는 한계령 도로는 자욱한 안개로 잠시 전방의 시계가 흐리는데 한계령을 넘어서자 푸른 하늘에 황금빛 아침 햇살을 받은 내설악의 준봉 들이 제 모습을 자랑하고 있다. 좀 높기는 하지만 고개 하나 사이가 이렇게 날씨가 다를 수가 있는가.
7시7분, 장수대 도착. 예정시간보다 무려 2시간이나 지연. 통나무로 지은 관리사무소와 매표소 건물이 죽죽 뻗은 서 있는 싱싱한 자작나무들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데 미쳐 감상할 시간도 없이 7시13분, 대승령을 향해 출발한다.
피톤치드가 섞인 싱그러운 아침공기 속에 다리를 건너, 얼마 가지 않아 비탈 밑에서 앞장 서 가든 노장 회원이 가쁜 숨을 쉬며 주저 앉아 있고, 돌과 바위 층계 등을 거쳐 약70도경사의 철 계단을 타고 올라선 암반 위. 삼면이 확 트인다. 건너편 산자락의 8부 능선에 하얀 구름이 걸쳐있고 그 위 짙푸른 하늘이 파랗게 펼쳐 있다. 한동안 이 풍광과 힘들여 올라오는 등산객들을 촬영하고 다시 바위와 흙을 밟는 등산로를 따라 가다 7시50분, '대승령 3Km, 장수대 1Km'의 이정표에서 왼편으로 난 넓은 바위위로 간다.
많은 사람들이
"야! 멋있다!"
는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다.
밑이 보이지 않는 계곡의 건너편에 거대한 암벽의 우측으로 한국에서 가장 높은 88m의 대승폭포가 길게 물줄기를 떨어뜨리고 있는데 중간 허리에 무지개가 보이는가하면 그 아래로 낙수는 부챗살처럼 퍼지며 떨어지고 있다. 많은 등산객들이 이 웅장한 광경을 오래 오래 간직하기 위해 기념촬영에 여념이 없다.
한동안 이 선경에 취해 있다 뒤늦게 되돌아 나와 매미소리와 버섯들이 피여 있는 등산로를 따라 올라간다.
8시7분, 바위가 많은 개울을 건너는 곳에 먼저 도착한 회원들이 배낭을 내려놓고 아침 식사준비를 한다고 부산을 떨고 있다. 임 대장은 벌써 집행부 젊은이들과 둘러 앉아 식사를 하고 있고 적당한 자리를 물색하다 버너에 불을 부치며 라면을 끓일 준비를 하고 있는 중년 남자 두 사람과 동석한다. 준비한 김밥을 펼쳐놓으며 라면 끓일 동안 함께 들자며 식사를 하는데 건너편에 회장 일행과 함께 식사하든 김 중령이 빈 물병을 들고 이쪽 개울로 건너뛰어 오는가 했더니
그만 바위에서 미끄러지려다 엉겁결에 한 아주머니의 허리를 안으려다 끝내 곤두박질 치고 만다.
주위에서 가벼운 비명과 다치 지지 않았느냐 며 걱정을 하는데 허리를 잡힌 아주머니가 "아저씨, 가만히 이야기하면 안겨 줄긴데."
그러자 여기 저기서 웃음꽃이 피고 즐거운 식사는 계속된다. 약25분간의 식사를 끝내고 다시 등산로를 따라 오른다.
오른쪽으로 연초록 초롱꽃이 고개 숙여 피어있고 이름 모를 야생화가 제 모습을 자랑하고 있다. 8시50분,'백담사 5.3Km'의 이정표를 지나 9시40분, 흰 페인트가 벗겨진 녹 쓴 철판에 '십이선녀탕,백담사'라고 쓴 방향표시판이 비스듬히 서 있는 대승령에 도달한다.
많은 등산객들이 숲으로 둘러싸인 능선에 앉아 간식을, 혹은 김밥을 먹고 있다. 촬영으로 잃은 시간을 보충하기 위해 왼쪽 능선을 따라 그냥 내려간다. 약5분 뒤 '12선녀탕 2.3Km'의 낡은 이정표가 잡목 가지에 비스듬히 걸려 있고 1분을 못 가 '백담사 3Km,남교리 8Km'의 새 방향표시판이 세워져 있다. 초롱꽃이 유달리 많은 등산로를 따라 계속 내려가는데 9시54분, 빛이 바래 문자가 식별되지 않는 간판이 서 있는 공터에 닿는다.
서울에서 온 일단의 젊은 남녀 단체 팀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우리 팀은 보이지 않고 아는 길도 물어 가랬다고 12선녀탕 방향을 물어 왼쪽으로 내려간다.
다람쥐가 노닐고 있는 가파른 등산로를 따라 내려가는데 10시23분, 물이 졸졸 흐르는 개울이 나타난다. 십이선녀탕 계곡의 시발인가. 파란 이끼로 덮인 바위사이로 싱그러운 물소리를 내며 흘러가는 맑은 개울물. 지금까지 쌓였든 피로가 씻은듯이 가시어진다.
10시32분, 저만큼 아래의 등산로 위에 한 아가씨가 가만히 서있고, 좀더 떨어져 또 다른 아가씨가 조용히 하라고 제 손가락을 입에 대고 서 있다. 보아하니 가만히 서 있는 아가씨 발 아래에 다람쥐 한 마리가 먹이를 찾아 오락가락 하는데 도무지 사람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 이 광경을 캠코더로 근접 촬영하는데 뒤따라 내려오든 등산객들이 한마디 한다.
"요즈음 설악산 다람쥐들은 간이 부어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아요. 먹이를 주면 손 가까이 다가옵니다."
개울을 끼고 계속 내려가다 개울물에 손을 씻고 두 손으로 그릇을 만들어 물을 떠 마신다. 아, 시원한 그 물맛! 개울을 건너다 덩치 큰 한 아주머니가 이끼를 밟아 그만 엉덩방아를 찍고 만다. 경사가 없는 오른편으로 흐르는 개울물 속으로 두 아가씨가 신발을 신은 체 물 속으로 첨벙되며 걸어간다. 그게 너무 시원하게 보여
"어이구, 시원하겠다!"
했더니
"정말 시원해요!"
하며 2.3분을 그런 식으로 내려가다 작은 폭포가 있는 줄도 모르고 그냥 첨벙되다 낭떠러지 앞에서 미끄러지며 위기일발!
간신히 멈추는데 왼 발목을 삐었는가 비명을 지른다. 이 광경을 바라본 한 젊은이가 재빠르게 부축하며 개울가로 데리고 나와 에야 졸 파스를 뿜어 준다.
11시5분, 개울이 보이지 않는 가파른 등산로의 좁은 평지에 무전기를 든 베레모 젊은이가 아가씨 서너 사람과 휴식을 취하고 있다.
"선두는 몇 사람 내려갔습니까?"
"우리가 선둔 데요."
그래서 모처럼 캠코더와 배낭을 내려놓고 앉아서 쉰다. 여기저기 빵이 나오고 떡이 나온다. 그리고 수통 속의 물이 나오고 음료수 캔이 나온다. 약10분간의 정담 속의 휴식을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잡목과 고사 목들이 등산로 위로 엉킨 체 가로질러 누워 있어 하산길이 고달프고, 너덜지대가 나와 때로는 시그널도 보이지 않아 잠시 당황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푸른 이끼와 숲과 맑은 물소리와 싱그러운 공기 속에 즐거운 하산길이 계속 된다.
11시40분, 다시 개울을 건너다 머리에 두른 스카프를 풀어 세수하고 스카프와 타월을 빨아 다시 머리에 묶고 목에 두른다. 탕수동(湯水洞)8탕8폭의 12선녀탕의 종착지인 두문폭포가 약5분 뒤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나타난다. 암반을 타고 내려가는 맑은 물은 수 만년의 세월동안 얼마나 미끄러져 내려갔는지 물살로 깎인 수로가 진 황색으로 물들려 있다. 왼쪽으로 이어지는 물길은 암반을 타고 내려가다 폭포로 떨어지고 12시, 드디어 복숭아처럼 움푹 파인 '복숭아탕'으로 물살은 슬라이딩하며 요란한 폭음을 내며 떨어진다.
이러한 광경을 파이프로 만든 안전철책을-주황색으로 도색 한 난간을 조심조심 잡고 내려가며 바라본다. 오른쪽으로 깎아지른 절벽을 올려다보며 한 아주머니가 기어가듯이 내려간다. 그 뒤를 핫 팬티차림의 예쁜 아가씨가 하얀 다리에 양말도 신지 않고 맨발에 운동화를 꼽쳐 신고 내려가는데 뒤꿈치가 벗겨져 벌겋게 부어있다. 어기적 되며 내려가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했지만, 산을 타는 사람으로서의 기본정신이 증발된 자업자득이 아닐는지.
12시25분, 웅봉폭포를 왼편으로 바라보며 한동안 평탄한 등산로를 따라 내려간다. 12시55분, 첫 철교를 건넌다. 두 번째 철교는 약50분 뒤에 건너고 시원한 물소리를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들어가며 내려가는데 13시45분, 오른쪽으로 저만큼 나뭇잎사이로 폭포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방금 한 젊은이가 팬티차림으로 다이빙을 하고 있다. 그 시원한 광경을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 얼굴의 한 아가씨가 배낭을 맨 체 걸음을 멈추고 두 눈을 빛내며 내려다보고 있다.
"시원해 보이죠?"
"네, 저도 풍덩 뛰어들고 싶어요."
갈 길은 아직 멀고 예정시간은 얼마 남지 않아 걸음을 재촉하는데 곧 오른쪽으로 '12선녀탕 2Km,남교리 2Km'의 이정표가 나타난다. 14시, 주황색 철교를 다시 건너고 18분 뒤 등산로 한가운데 직경 약70cm,길이 5m는 됨직한 짤 린 고목이 누워있는데 비바람과 온갖 곤충의 서식처로 벌겋게 부식되어 가고 있다.
14시24분, 다시 주황색 철교가 나타나고 건너편 철교 입구 쪽에 27년 전 이 지점에서 조난 당한 가토릭의대 산악회 회원 7명의 위령비가 세워져 있다.
< 고이 잠드시라! 젊은 산악의 용사들이여! 1967.7.15 가토릭의대 산악회 일동.>
바쁘게 내려오다 보니 미쳐 설악문을 살피지 못하고 14시40분, '남교리 매표소'앞에 도착한다. 장수대를 출발하여 7시간27분이 걸린 샘이다.
주차장은 각종 차량으로 꽉 차 있고 선녀교 밑에까지 피서객들로 북적대고 있다. 다리를 건너 어림짐작으로 방향을 잡아 관광버스에 도착하니 아직 내려오지 않은 사람이 20여명 된다고 한다. 배낭과 캠코더를 의자 위에 내려놓고 근처 식당의 수돗가에가 상의를 벗고 시원한 물에 머리를 감고 세수를 한다. 그리고 남방셔츠를 빨아 따끈한 햇볕에 늘어 놓는다. 그리고 3000원 짜리 막국수로 점심을 때우고 그 사이 거의 건조한 남방셔츠를 입고 16시10분에 차에 오른다.
하산하다 넘어져 오른 팔목을 다친 부잣집 맏며느리 같은 아가씨 회원이 부목에 붕대를 묶고 고통스러워하는데 같은 코스로 산행했든 낙동산악회 회원 중에 한의사가 있어 그 현장에서 부목으로 처치 해 주고 다시 차안에 올라와 부산에 가서 치료하면 된다고 이야기 하드라는 것. 한의사가 산행을 하면 일행 중 무슨 사고가 생길지 모르는데 최소한 침통 정도는 휴대하여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의료봉사도 해야 할 터인데 뼈는 이상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소리로 때운다는 건 좀 뭣하다는 생각이 들어 아가씨를 불러 수지침을 놓아준다.
집행부 회장 팀의 늑장 식사로 16시35분에 승차, 그제야 버스는 서서히 출발한다.
한계령 방향은 남교리에서 차량 정체로 김 중령의 조언에 따라 미시령 쪽으로 달린다. 침을 맞은 아가씨는 팔목관절은 거의 진통이 되었는데 팔뚝은 아직 통증이 있다고 한다. 한계령 쪽으로 가는 차량행렬은 백담사 입구를 지나서도 계속 이어지고 앞쪽에 앉은 사람들이 끝없이 정차해 있는 차량을 바라보며 너희들 밤새도록 기다려 보라며 고소해 하는데 16시57분, 미시령 고개를 오르면서 겨우 행렬이 끊어지고 기분 좋게 달려들 온다.
인간은 양면성이 있다드니,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인가. 그들이 고생스러워 할 것을 예상하며 즐거워하는 또 다른 일면을 보면서 고소를 금치 못한다. 미시령에서 잠시 쉬었다 가겠다고 안내방송을 했는데 17시3분, 미시령휴게소 주차장이 초만원 이여서 정정 방송하며 그냥 통과. 속초 쪽으로 내려가는 구곡양장의 도로 위에는 수많은 차량들이 아슬아슬하게 오르내리는데 오른쪽으로 울산바위가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우뚝 솟아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여기저기 경탄의 소리가 들려오고 앞좌석의 베레모가 며칠 후 저 산을 탄다면서 완전 종주에는 3일이 걸리고 하산코스는 세 곳밖에 없다며 소개를 한다. 캠코더로 달리는 차안에서 울산바위를 정신없이 촬영하는데 옆 좌석의 장년 남자가 울산바위의 유래를 설명한다. 금강산에서 전국의 유명한 산, 경진대회를 하는데 울산 바위가 울산에서 소문을 듣고 올라가다 설악산에서 잠시 쉬어간다고 막걸리 한잔하고 잠들었다, 그만 시간을 놓쳐 지금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고.
17시40분, 속초를 통과,15분 뒤 양양 입구를 지나친다. 지금쯤 태풍 '엘리'의 영향으로 동해안도 풍랑이 일어날 만한데 태풍이 빗겨 갔는지 짙푸른 수평선은 평온하기만 하다. 18시55분,'태장복 휴게소'에 들어간다. 집으로 무사 하산을 알려주고 지하150m에서 뽑아 올린다는 생수로 목을 추기고 물병하나 가득 담는다. 침맞은 아가씨가 고맙다며 차가운 캔 음료수 2개를 사주는걸 그중 한 개를 식사하고 올라오는 기사양반에게 건넨다.
19시15분, 출발하면서 누가 도중에 횟집에 들려 한잔하고 가자는 사람이 있어 20시55분,'임원'으로 들어간다. 부산은 1시 넘어서 들어갈 거니까 기사양반의 제의도 있고 해서 임 대장이 한시간을 주겠다고. 회를 못 먹는다는 임 대장과 중국 반점으로 합석하게 되었는데 뒤늦게 회장 부부가 들어온다. 그전에 촬영한 비디오 테이프와 건전한 산악회 운영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는데 임 대장과 서로 뜻이 맡는다. 22시3분, 부산으로 출발한다.
깊은 밤, 차량왕래가 뜸한 국도를 기사양반 운전기술을 마음껏 발휘하는걸 보며 깜빡 잠이 들었다 깨어나니 24시8분, '남정 휴게소'에 들어간다. 약10분간 휴식하고 다시 달려 두 번째 잠이 깬 건 경부고속도로 위. 1시52분, 양산버스정유소에서 베레모가 내리고 부산T/G를 2시에 통과한다.
마침 기사양반의 집이 하단동 에다 차고지가 엄궁동 근처여서 시민회관 앞에서 모두 하차하고 곧장 달려 대티터널 입구에서 하차 한 것이 2시40분. 집에 돌아와 목욕하고 식사후 잠자리에 든 것이 새벽 4시5분. 오늘이 공휴일이기 망정이지 조금은 무리한 일정 이였다.
산 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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