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비비정의 기문(飛飛亭記文)
(1) 비비정기(飛飛亭記){송자대전}
- 비비정기 -
飛飛亭在全州參禮驛之南其主人崔後良也後良嘗請記於余曰亭之作在萬曆癸酉作之者吾祖永吉也吾祖永吉以弓馬拔身官至昌洲僉使吾父完成亦以鶡冠官羅暖萬戶至吾[後]良蓋三世也余曰武人苞苴輦載奔走權門以圖進用老死而後止者滔滔也今昌洲獨能免此而作亭於形勝之地居處遊息導迎淸曠能以壽終斯已難矣羅暖上不以是賂諸貴勢下不以是易其衣食修葺塗墍樑棟如新可謂孝矣今君又愛文字旣揭扁額又請記以示後人其繼述之意又深矣因問名亭之義則曰因地名而名之也余曰君世世將種也古者張翼德之信勇岳武穆之忠孝皆名以飛而曠世相感豈非武臣之所當勉慕者耶安知君之後承不有張岳之倫而凡登斯者皆以二子爲心則其爲世道之助也豈淺鮮哉[後]良頓首曰亭小而義大人微而語高受賜之厚無以踰焉請歸而刻之楣間也
時崇禎上章涒灘(1)九月日
華陽老叟(2)記
비비정(飛飛亭)은 전주 삼례역 남쪽에 있는데 그 주인은 최후량(崔後良)이다.
후량이 나에게 찾아와서 정자의 기문을 지어 달라고 부탁하면서 말하기를
이 정자는 원래 1573년(선조 6)에 지은 것인데(3), 정자를 지은 사람은 저의 할아버지 휘 영길(永吉)입니다.
저의 할아버지 휘 영길은 무과에 급제한 무인으로서 몸을 일으켜 벼슬이 창주(평북) 첨사에 이르렀고, 저의 아버지 휘 완성(完成) 역시 높은 벼슬을 마다하고 숨어서 살다가 나난(양강도) 만호를 지냈으므로, 저 후량에 이르기까지 3세대가 모두 무인으로 이어온 집안입니다.
라고 하였다.
내가 후량에게 말하기를, 원래 무인이라는 사람들은 뇌물로 벼슬을 구하여, 가마를 타고 권문세가 대문을 분주하게 드나들면서 등용되어 출세하기 위하여 애를 많이 쓰는데, 늙어서 죽은 후에야 그런 짓을 그만두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지금 살펴보니 창주 첨사는 홀로 그런 행동을 하지 아니하였으며, 경치 좋은 장소에 아름다운 정자를 지어 놓고 그곳에서 살면서 편히 쉬었으니,
깨끗하고 탁 트인 삶을 스스로 인도하여 맞이하였기 때문에 능히 천수를 다 누리고 살다 돌아가셨는데, 그와 같은 삶을 산다는 것은 보통 사람으로서는 매우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다.
나난 만호 역시 벼슬을 얻기 위해 뇌물을 바친다거나, 권세가에게 다가가서 아부하지 아니하고 낮은 벼슬에서 머물면서 그 의식을 충족하는 데에 만족하였으며, 정자를 고치어 지붕을 새로 이고 벽을 칠하고 꾸몄으며, 들보와 기둥을 새것으로 바꾸었으니 아버지의 뜻을 이어 받은 효자라고 할 만하다.
지금 자네 또한 글을 사랑하여 이미 정자에 편액을 만들어서 내어 걸었는데도 불구하고 또다시 기문을 적어서 후세 사람들에게 보이겠다고 하니, 조상의 뜻을 이어가려고 하는 마음이 또한 깊다고 하겠다.
그리하여 정자의 이름을 비비정이라고 지은 뜻을 물으니, 말하자면 흔히 남들이 하는 대로 정자가 위치한 지명을 가지고 정자의 이름을 지을 수도 있겠으나, 내가 말하기를
자네 가문은 대대로 이어오는 장군 집안인데 옛날에 유명했던 장군으로는 장비(張飛)의 믿음직스러움과 용기가 있었고, 악비(岳飛)의 충성스러움과 효심이 있었는데, 두 사람 모두 이름이 비(飛)자 한 글자로 되어 있으니, 이는 세상에서 보기 드문 일로 보통 무신들과는 달리 당연히 힘써 흠모하지 않으면 안 될 분들이다.
자네의 후손들이 장비와 악비의 윤리를 이해하고, 무릇 이 정자에 오르는 사람은 모두 이 두 사람의 마음을 알아서 깨달게 된다면, 그리하여 세상을 올바르게 가르치는 일에 큰 보탬이 될 것이니 어찌 가볍다고 말할 수 있으리오?
라고 하였다.
후량이 머리를 땅에 조아리면서 말하기를
정자는 조그마하지만 담고 있는 뜻은 매우 크며, 사람은 비록 미미하지만 남긴 한 마디는 매우 높고, 또 글을 지어주신 은혜가 매우 두터워서 그대로 넘어갈 수 없으니, 이제 돌아가서 글을 새겨 문(門) 위에 걸어 놓겠습니다.
라고 하였다.
때는 1680년(숙종 6) 9월 일
화양구곡 늙은이(송시열) 지음
화재로 소실된 비비정에서 회수하여 복원한 것으로 화재의 흔적과 함께 우암(尤庵)이라는 송시열의 호가 낙관으로 찍혀 있다.
* 각주 --------------------------
(1) 상장군탄(上章涒灘) 중국 고대의 간지로서 현대 간지의 경신(庚申)에 해당한다.
(2) 화양(華陽)은 충북 괴산의 화양구곡을 말하며, 노수(老叟)는 늙은이라는 뜻이다.
(3) 비비정공은 1570년생으로 1573년에는 4세에 불과하여 정자를 지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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