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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에서 - 쓴물
탈출 15, 22-26
모세와 미르얌의 노래 그 양식에 대해서는 매우 다양한 해석이 있어 왔습니다.
두 노래는 찬미 노래, 임금의 즉위 노래, 승전 노래, 감사 노래 등으로 해석되 왔습니다.
사실상 그렇게 해석될 수 있는 다양한 문학적 요소들이 탈출 15장에서 발견됩니다. 따라서 노래 안에서 발견되는 내적 내용과 형식만으로는 이 노래가 본디 어떤 목적을 가진 노래인지 결론을 내리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 컨텍스트(문맥)를 보면 모세의 노래와 미르얌의 노래는
1차적으로 갈대 바다에서의 야훼의 승리를 기념하는 노래,
그리고 그 결론을 보자면은 그 야훼가 자신에 민족의 임금이 되는 노래로 전체의 노래를 알아 들을 수 있겠습니다.
반면에 이 두 노래에 관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문학적 의문을 제기해야 합니다. 성경에 텍스트를 읽으면서 "의심하지 않고 믿는자는 복되다"는 토마스 사도의 그것 때문에~~~그러는데,
우리는 조금 질문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질문을 가졌을 때, 그것이 해결될 수 있는, 질문하는 것에 대해서 마음을 열필요가 있습니다.
▶ 모세와 미르얌의 노래에 대한 신부님이 가지시는 세가지 문학적인 의문?
º 왜 이 두 노래는 이집트 탈출은 생략한채 이집트에 대한 야훼의 승리만을 노래하는가?
º 앞선 이야기에서는 하느님의 현존을 이야기 하는데 있어서 빠지지 않는 문학적 모티브가 등장하는데, 그것은 구름기둥입니다. 그런데 이 노래에서는 왜 구름 기둥이 등장하지 않는가?
º 이스라엘 백성이 무사히 바다를 건너는 장면에 관해서는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이 노래는 야훼가 이집트와 대결해서 승리하는 것만을 얘기합니다. 또는 다른 민족과의 대결에서도의 승리, 조금 이상합니다.
라는 질문을 갖고 계십니다. 나중에 하늘나라에 가서 물어보실 내용들입니다.
앞서서 신부님은 탈출 15,19 절의 노래를 미르얌의 노래와 함께 붙여서 읽으셨습니다만, 우리 성경과 같이 읽는 주석가들도 많이 있습니다.
탈출 15,19절은 모세의 노래를 마무리하는 산문적 결론이다. 라고 보는 다수의 주석학자들의 해석있고 신부님은 좀 다르게 보십니다.
하지만,
탈출 15,19절을 시작하는 접속사가 있습니다. 히브리 말로 '키' 라는 접속사인데 신부님께서 하신 번역은?
탈출 15,19 직역
1) 파라오의 말이 그의 병거와
그의 병거몰이 병들과 함께 바다 안으로 왔을때
라고 번역하셨는데, 어떤 사람들은접속사, 키 그것을 시간적으로 보지 않고 '키' 라는 접속사를 인과적으로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따라서,
탈출 15,19 직역
2) 파라오의 말이 그의 병거와 그의 병거몰이 병들과 함께 바다 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세번째가 제일 과격한 일군의 학자들입니다.
탈출 15,19
그 키라는 접속사를 그 뒤까지 확장해서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즉 파라오의 말이 바다 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라고 해서 여기서 인과관계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3) 파라오의 말들이 그의 병거와
기병들과 함께 바다에 들어서고
야훼가 바닷물을 그들 위로 되돌리고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다 안으로
마른 땅을 밟고 걸어갔을 때
예언자이며 아론의 누이인
미르얌이 손북을 들었다.
라고 이 '키' 로부터 시작이 되는 문장이 그 뒤에 까지, 19절 전체를 받는다.라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왜? 이런 문제가 일어나냐?
히브리말 텍스트에는 쉼표도 없고 마침표도 없고 옛날 수사본들은 띄어쓰기도 안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문장을 끊어 읽어서 의미를 만들어야 될지 그건 독자의 자유입니다. 그렇다보니까 이런 여러가지 의견들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미르얌이라는 이름에 의미를 어원적으로 밝히려는 시도가 있습니다.
미르얌, 마르 ⇒ 쓰다, 짜다
앞으로 마라, 라는 곳에서 일어나는 쓴 물의 사건에서의 마르와 미르얌의 마르는 '쓰다' 라는 같은 어원입니다.
또는 '짜다' 는 의미입니다.
미르 얌 ⇒ (물이) 많다. 는 겁니다. 바다던지 호수던지, 갈릴래아 호수도 얌이고 사해도 얌이고, 지중해도 얌입니다. 단지 물이 끝없이 보이면은 ㅡ 그것이 얌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 호수의 물은 짜지 않아서 쓰지 않은 물이고( 미르얌이 아니고), 바닷물은 미르얌입니다.
그래서 이 미르얌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번역하기가 그러니까, 그리스말로 쓰여진 70인역 성경은 번역을 하면서 미르얌을,
미르얌(Miriam) ⇒ 마리암(Maryam)(그리스어) ⇒ 마리아(Maria)
우리가 알고 있는 신약의 마리아에 이름이 됩니다. 성모님의 이름이 직역하자면 (쓴 바닷물, 쓴 바다)가 됩니다.
성모님께 이쁜 이름을 주시지 왜 이런 이름을 주셨나? 라고 생각해 보니까 사실 성모님의 삶만큼 쓰디쓴 그런 삶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거기에 만족하지 않는 학자들은 미르얌, 이라는 단어를 이집트어에 어원으로부터 연결해서,
미르얌( 이집트 어원) ⇒ 사랑받는 이
라고 알아듣는 사람들도 있고,
또 어떤 분들은 아카디아어에서의
미르얌( 아카디아어) ⇒ 신의 선물 이라고 이해하기도 합니다.
탈출 15,20절은 별다른 설명없이 미르얌을 예언녀로 소개하는데 아마도 뒤따르는 노래와 춤이 고대 사회에서 예언의 일반적인 구성요소 였기 때문에 예언녀라는 호칭에 별도에 해설이 필요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호칭에도 불구하고 미르얌에 대한 오경의 보도가 언제나 긍정적인 것 만은 아닙니다. 민수12장에서 미르얌은 아론과 함께 에티오피아 여자를 아내로 맞아 들인 모세를 비난하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민수 12,2 직역
"야훼의 말씀은 모세에게만 있는가?
우리에게 그 말씀이 없는가?" 이 비난에 핵심에는 모세만이 유일한 예언자가 아니라 자신들도 예언자라는 그런 도전적 주장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따라서 오경이 전하는 미르얌의 이미지는 예언녀로서의 역할은 인정하되 결함을 지닌 부족한 모습입니다.
모두가 그렇습니다. 다윗도 나중에 보면은 잘못을 하고 솔로몬은 더 큰 잘못을 하고 모세도 결국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그런 결함을 보여 줍니다.
이런 미르얌에 대한 평가에 편차는 아마도 오경에 형성 과정과 관련되어 있을 것입니다. 오경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수집된 고대의 전승들 내에는 모세나 아론 또는 미르얌에 대한 신학적 평가가 서로 일치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더 자연스러운 것 같습니다.
신부님 주위의 많은 분들 중에서 신부님에 대해서 좋게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을테고 신부님에 대해서 좋지 않게 얘기하는 이들도 있으면 안돼지만.. 안계십니다.^^
민수 20장을 보면 미르얌의 죽음에 관한 보도가 나옵니다. 카데스 라는 곳에서 미르얌이 마지막을 맞습니다.
적어도 누군가의 죽음에 까지 또 보도되었다는 것은 미르얌은?
일정한 어떤 중요한 인물이었던게 부각이 되는 것 같습니다.
구약에서도 보면 그 중요한 인물들은 항상 그와 같은 애기가 나옵니다.
그는 죽어서 어디에 묻혔다. 라는 이야기들..
예를 들어 사라! 레베카! 라헬!
라헬이 묻힌 곳에서 예수님이 태어납니다.(에프라타, 곧 베들레헴 : 창세35,19)
여기에서 흥겨운 춤과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 안에서는 노래는 되는데, 아직까지 춤까지 가지않는 것 같습니다.
사실상 모든 예술은 종교적인 바탕 위에서 나온겁니다. 우리가 예술이라고 할 수 있는 것,
우리에게 영감을 주고 우리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음악이든지, 미술이든지, 춤이던지 아니면 그 무엇이던지, 많은 것들이 그런 종교적인 차원에서 출발을 합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우리가 우리 전례안에서 동방 예의 지국이라서 그런지? 점잖아서 그런지? 그런 부분을 수용해서 잘 자리 잡지 못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부터 보여주시는 동영상에서는 특별한 주교님을 만나게 됩니다. 신부님은 이 동영상을 보시면서 뭉클하셨습니다. 정말 사제와 그 공동체가 함께 하는 모습에서....뒤에서는 봉헌하러 나오는 모습이고 주교님이 앞에 나와서 그 봉헌을 받아서 제단으로 올라와야 되는데 ...일반적인 아프리카에서도 주교님들이 춤을 추거나 하지는 않는데, 저 주교님이 특별하신 겁니다.
그런데 같이 춤을 추니까 본당 신부님도 뒤에 있다가, 어쩔수 없아 같이 춤을 추는 장면인데 뭉클한 마음이...백성과 함께 하는 주교님을 보면서 참! 좋다~ 라는 마음으로...신부님도 사실은 춤과 연관이 없으셨는데, 서양에서 학생신부로 계시면서 유럽 본당에 있으실 때 70~80쌍 혼배를 해주시면서 마을마다 그렇지는 않는데...,
혼배를 해주면 혼배미사 끝나고 성당 마당에서 파티를 하면,
그때 주례한 신부와 결혼한 신부가 첫번째 춤을 춥니다. 그렇게 왈츠를 추면 그 위로 사람들이 햇빛을 가려주는 보자기 위로 돈을 던져 줍니다.
재밌는 광경이었고, 그 덕분에 신부님의 춤 실력이 조금 느셨다고 합니다. ㅋ
다음 텍스트는,
그들이 떠납니다. 이제 모세는 이스라엘을 갈대 바다로부터 떠나게 합니다.그리고 그들은 수르 광야로 나갑니다. 그리고 그들은 삼일 동안 걷습니다. 광야에서 그러나 그들은 물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이동하면서 물이 없는 곳을 계속해서 이동하는 것입니다.
삼일 이라는 시간은?
기본적으로 우리의 개념으로는 하루보다는 길고 일주일 보다는 짧은..
그리고 그들은 마라로 옵니다.
그러나 그들은 마라로부터 물을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
▶ 탈출 15,22-26에서는 물들이 아니라 다 물입니다.
'수르' 라는 지명은 오늘날 지리적으로 이곳이 어디인지 확인되지는 않습니다.단지 1사무 15,7
사울은 하윌라에서 이집트 동쪽 수르까지 아말렉을 쳤다
따라서 수르는 적어도 이집트의 동쪽에 있는 곳이다. 라고 할수 있고 이스라엘은 이집트에서 나와서 동쪽으로 동쪽으로 가고 있다. 라고 우리가 알아 들을 수 있습니다.
마라, 라는 지명은 어원적으로, 쓰다 이고,
마라 ⇒ 쓰다
그곳의 물이 쓰기 때문에 결국 마라가 그 지명이 되었다. 라는 원인담적 설명이 탈출 15,23절에 등장합니다. 쓰다! 혹은 짜다! 둘다 괜찮습니다.
한 단어로 두 가지 의미를 다 갖게 됩니다.
이와 유사한 원인담이 창세기와 탈출기 민수기 등에서 발견됩니다.
→ 창세 19,22; 창세 21,31 ; 창세 25,30 ; 탈출 17,7; 민수 11,3; 민수 11,34
창세 21장에서 브에르 세바에서 '세바'라는 말에 맹세 라는 뜻이 들어있습니다. '브에르' 는 샘이고 '세바'는 맹세
브에르 세바 ⇒ 맹세의 샘
세바라는 뜻은 여러개가 있지만 여기서는 맹세의 의미로서 쓰입니다.
창세 25,30 에서 에사우의 이름이라기 보다는 에사우의 별명을 뜻하고, 에돔이라고 하였다. 에돔의 조상이 되는 에사우의 이야기..원인담이 설명이 됩니다.
탈출 17,7에서 '므리바' 라는 단어 안에는 '시비하다(립)' 는 의미로 만나게 됩고 주님을 시험한다. 라는 것은 마싸 라는 지명과 연결이 됩니다.
므리바 ⇒ 시비하다(립)
마싸 ⇒ 시험하다
민수11,3; 민수11,34 에서는 굳이 히브리말의 각 단어의 뜻을 굳이 번역을 해서 그것과 관계되는 이야기를 앞으로 연결시키는 형태입니다.
예를들어 우리가 서울, 서울 그러지만 단어로 이해하지는 않습니다. 대전? 그러면서 아! 큰(한)밭 이라고 하는 사람도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그 뜻을 풀어서 이야기와 함께 연결시키는 그 원인담을 보여주는 시도를 만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마라, 라는 지명과 함께 연결되는 어근입니다. 그 어근이 몇가지가 있습니다. 근데 그중에 한 어근에는 어떤 뜻이 있냐하면
마라 ⇒ 반항하다, 반역하다 라는 뜻을 가진 어근도 마라, 라는 지명과 연관 시킬 수 있습니다.
탈출 15,24
백성은 모세에게 "우리가 무엇을 마셔야 한단 말이오?" 하고 불평하였다.
마라에 와서 물을 보기는 했지만 마실 수 없는 쓴 혹은 짠 물을 본겁니다.
그러자 그들이 모세를 거슬러 불평합니다.
여기서,
불평하였다 ⇒ 우물거리다
불평하였다가 우물거리다. 라는 동사로 쓰였다. 누가 뭐라고 하면 대놓고 말하지 못하고 '어 자기가 뭐 ..' 이런 상황에서 표현을 의미합니다.
이런게 우리 나라에서는 없는데, 영국에서도 국회 방송이 있습니다. 영국 국회에서 보면은 한 사람이 의견을 말할 때 그와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그 의회의 전통적으로 의견이 다르다는 표현을 우물거리는 것으로 표시합니다.
그 소리가 크면 클수록 내 의견이 사람들에게 공감 받지 못하는 구나..라는 영국시 민주주의에 특별한 자기 표현의 방법인 듯 합니다.
따라서 여기서 백성들은 우물거리면서 불평을 한거고 그리고 그들은 앞으로 지속적으로 그와 같은 태도를 보일 겁니다.
백성들의 불평 ⇒ 탈출기 16장, 17장/ 민수기 14장, 17장
우물거리다, 즉 불평하다. 라는 동사들이 반복됩니다.
탈출 15,24 직역은 불평의 내용,
"우리는 무엇을 마실 것인가?"
그리고 탈출 15,25 직역
그리고 그는 야훼에게 부르짖었다.
여기서 그는 모세 또는 백성, 하지만 전체적으로 그 흐름을 보자면 모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야훼에게 부르짖었고,
탈출기를 시작하면서 하느님의 개입이 이집트의 억압과 함께 이스라엘 자손들이 부르짖자, 그 부르짖음이 하늘까지 닿았고 그 소리를 듣고 하느님께서 그들 조상들에게 한 약속을 기억하셨다. 라는 신화적인 그림으로 탈출기가 시작했었습니다.
탈출 15,25 직역
그러자 야훼는 그에게 나무를 가리켰다.
나무를 다음에 나오는 동사를 번역하시기 어려우셔서,..
우리 성경에서는 나무 하나를 보여 주셨다. 라고 했는데, 그것은 히브리말 텍스트가 아니라 모세오경의 비슷한 텍스트를 사용하고 있는 '사마리아 오경' 에 번역을 빌린 겁니다.
지금 히브리말 텍스트를 가지고 의미를 만들수가 없다고 생각하는 주석가들이 사마리아 오경에서 번역한 그 단어를 빌려와서 번역한 것입니다.
하지만,
신부님은 조금은 억지로(?) 히브리말 텍스트를 가지고 번역을 하셨다고 합니다. '야라' 라는 단어가 사용이 됐는데, 그 단어는?
야라, ירה => 던지다. 겨냥하다. 가르치다
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겁니다. 누구에게 가르치는 것은? '저쪽으로 가야돼!' 어딘가를 가르키는 것과 이렇듯 가르치다와 가르키다가 혼용된 듯한..
탈출 15,25 직역
그리고 야훼는
그에게 나무를 가리켰다.
라고 오늘은 알아 듣습니다.
탈출 15,25 직역
그리고 그는 그 물들로 던지게 했다.
물들로가 던지게 했다.라고 되어있는데 사실은 무엇을 던졌는지 알수 없습니다. 뭘 던졌는지 모릅니다.
짐작건데 아마 나무를 던지지는 않았을 테고, 아마도 나오는 단어가 나무도 되고 나무가지도 되니까, 나뭇 가지를 가리켰고 그 나뭇 가지를 물로 던졌다. 라고 이해하는 것이 제일 합리적인 이해입니다.
탈출 15,25
그것을 물에 던지자 ⇒ 나뭇가지
탈출 15,25 직역
그리고 그 물들이
그때부터는 쓰지 않고 달아졌다.
하지만 이런 이해에 걸맞게 고대 근동에서는 어떤식의 이야기들이 많이 있느냐 하면? 특정한 나뭇가지를 마실 수 없는 쓴 물에 집어 넣으니까 그 물이 단 물이 되었다. 라는 이야기들이 이외에도 발견이 됩니다.
여기서 약간 언어의 유희가 있는데요,
탈출 15,25 직역
그리고 야훼는
그에게 나무를 가리켰다.
▶ 에서 가리켰다. 라는 동사에서 '야라'가 있는데, 그 동사로부터 '토라' 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일정한 동사의 앞에 '트' 가 붙으면 명사형이 됩니다.
야라(ירה 가르치다) ⇒ 토라 (תורה 가르침)
그리고 그것이 나중에는 율법이라는 좀더 특정한 개념으로 발전합니다.
▶ 두번째는 나무, 그리고 나뭇가지.를 이야기하는 단어가 히브리 말로 에츠(Ets,עץ)입니다. ⇒ 에차(Etsah,עצה)그러면은 그것은 ,
⇒ 하느님의 충고, 하느님의 계획이라는 어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나무를 가리켰다, 했을 때 어! 이제부터 토라의 이야기가 시작되나보다, 라는 어감으로 그리고 하느님께서 나뭇가지를 가리켰을 때 아 그 안에 하느님의 신적인 계획이, 무언가 그 이상의 계획이 단지 나뭇가지가 아니라 거기서 조금 암시되고 있구나..라는 이런 어감을 히브리 말을 하는 사람들은 알아 듣게 되는 겁니다.
그 다음 문장에서 나오는 세우다,
탈출 15,25 직역 거기에서 그는 세웠다. 그를 위해 규정과 법규 그리고 거기에서 그는 그를 시험하였다. ▶ 후에 첨가된 두줄 |
너무 많은 대명사가 나오는데, 거기에서 그는 세웠다.에서의 그가 야훼인지 모세인지 불분명합니다.
두번째, 그를 위해 / 규정과 법규 ⇒ 백성 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그는 그를 시험하였다.
⇒ 야훼인지 모세인지 불분명
그리고 거기에서 그는 그를 시험하였다. ⇒ 백성
그런데 전체로 봐서 규정과 법규를 세우고 시험하는 주체는 모세이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모세오경의 전체를 통해서 모세가 백성을 시험했다는 얘기는 안나옵니다. 모세오경의 전체를 통해서 시험하는 것은?
야훼가 이스라엘을 시험하던, 또는 이스라엘이 야훼를 시험하든...
나중에 등장하는 율법에 계명을 보면 이스라엘은 야훼를 시험하면 안됩니다.
그래서 나중에 예수님이 40일동안 광야에서 유혹을 받을 때 "하느님을 시험해서는 안된다." 라는 구약을 인용하는 장면을 볼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하느님과 우리와의 관계가 조금 불리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시험해서는 안되고, 하지만 하느님은 우리를 시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어렵게 시험하지는 마십시오. 라는 뜻으로 " 우리가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라는 것이 우리를 시험하실수 있겠지만, 너무 어려운 시험을 내서 우리가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지는 마십시오." 라는 의미로 주님의 기도를 알아 들을 수 있습니다.
하. 지.만, 조금은 전체를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나뭇가지를 가리켰다.물들로 던지게 했다. 물들이 달아졌다.
여기까지는 전체적인 이야기 흐름과 맞아 떨어지는데 그런데 거기에서 그는 세웠다. 그의 규정과 법규를 ...
어떤 규정과 어떤 법규를 세웠는지 모릅니다. 요즘의 표현으로 쌩뚱 맞습니다.
ㅡ 그리고 거기에서 그는 그를 시험하였다.
시험하고 이스라엘이 시험에 빠지지 않고가 없습니다. 따라서 이 대목부터는 사실이 이 이야기가 들어오는 이유는? 이제 이와 같은 이야기가 끝나고 뒤이어 시나이 계약 사건이 등장합니다. 그 시나이 계약을 통해서 이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이 그들에게 주신 율법, 규정과 법규를 잘 지키는지 보고 그와 같은 시험 앞에 이스라엘을 두는 앞에 이야기가 여기에서 부터 이미 시작되고 있다. 라고 편집적인 첨가로 이 두 줄을 봐야 합니다.
그리고 26절,
탈출 15, 26직역
그리고 그는 말했다.
만약 내가 열심히 듣는다면 / 야훼 너의 엘로힘의 목소리를
그리고 그의 양 눈에 옳은 것을 / 네가 행한다면
그리고 내가 귀 기울인다면 그의 계명에
그리고 내가 지킨다면 모든 그의 규정을
모든 질병은 / 내가 이집트에 내린
나는 내 위로는 내리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 / 야훼 / 너의 치유자
직역을 하여 순서를 맞추다시다 보니까, 부분 부분 의미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여기서 26절에서 그리고 그는 말했다. 라고 시작했는데,
누가 말하는지가 분명하지가 않습니다. 따라서 말하는 내용을 봐야 하는데, 그것을 봐도 분명하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탈출 15,26 직역
만약 내가 열심히 듣는다면 / 야훼 너의 엘로힘의 목소리를
그리고 그의 양 눈에 옳은 것을 / 네가 행한다면
이렇게 얘기하고 있는 이 내용만 보면,
탈출 15,26에서 그리고 그는 말했다. ⇒ 모세입니다.
모세가 백성들에게 너희들이 열심히 듣는다면 야훼 너희들에 엘로힘의 목소리를 ,
그리고 맨 마지막에 두줄인,
탈출 15,26 직역
모든 질병은 / 내가 이집트에 내린
나는 내 위로는 내리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 / 야훼 / 너의 치유자 ⇒ 야훼
이 부분은 야훼가 한 말입니다.
따라서 이 26절에 나오는 언사에는 모세가 주어인 부분과 야훼가 주어인 부분이 섞여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고 그는 말했다.
여기서 그가 누군지? 모릅니다. 알기 어렵습니다.
단지 우리가 알고 있는 신학적인 체계로 보아서 야훼가 백성에게 직접 말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따라서 그는, 모세이고
모세의 언사 가운데 야훼가 모세에게 말한 것을 직접인용하는 것으로 마지막 두 줄을 우리가 알아 들을 수 있겠습니다.
여기서 얘기하고 있는 것을 신학적으로 얘기한다면,
이스라엘이 야훼에 순종하면 야훼는 이스라엘을 보호할 것이다. 라는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역으로 이스라엘이 순종하지 않으면?
그러면 하느님이 더이상 그들을 보호하지 않을 것이고 무서운 일들이 그들에게 생길 것입니다.
질병
º 신명 7,15 : 주님께서는 너희에게서 온갖 질병을 없애 주실 것이다. 또 너희가 이집트에서 본 온갖 나쁜 질병을 너희에게는 퍼뜨리지 않으실 것이다. 그러나 너희를 미워하는 모든 자에게는 그 질병들을 내리실 것이다.
º 신명 28,27 : 주님께서는 너희가 고치지 못할 이집트의 궤양과 종기와 옴과 가려움병으로 너희를 치실 것이다.
º 신명 28,60 : 그분께서는 너희가 겁내던 이집트의 모든 질병을 너희에게 되돌리시어, 그것들이 너희에게 달라붙게 하실 것이다.
이게 문제입니다.
신부님께서 세례받는 분들을 보면서 '여러분이 세례를 받으면 여러분들 잘 사셔야 합니다. 세례받지 않은 사람은 하느님께서 그리스도인으로 해야 할 것을 안했다고 해서 벌주지 않습니다.
모르기 때문에, 하지만 세례를 받으면 알기 때문에ㅡ 알고도 안하면은 벌을 받게 됩니다. 적어도 위의 구조 안에서 본다면,
세례받고 나서 벌 받을 확률이 높아집니다.
질병
º 레위 26,25 : 나는 너희에게 칼을 보내어 계약을 어긴 것을 복수하게 할 것이다. 너희가 너희 성읍들 안으로 피해 모여들면, 나는 너희 가운데에 흑사병을 보내겠다. 그리하여 너희는 원수의 손에 넘어가고 말 것이다.
º 아모 4,10 : 나는 너희에게 이집트 흑사병을 보내고 너희 젊은이들을 칼로 죽였으며 말들은 잡혀가게 하였다. 또 너희 진영의 악취가 올라와서 너희 코를 찌르게 하였다. 그런데도 너희는 나에게 돌아오지 않았다. 주님의 말씀이다.
점점 하느님이 무서워집니다. 그런 질병들, 여기서 질병이라는 단어만 그대로 듣는다면, 이집트에 있었던 열가지 재앙 중에 '종기' 재앙을 상기시킵니다.
반면에 구약에 있는 레위 13장; 레위14장 또는 민수12장을 참고로 한다면 여기서 얘기하는 무서운 질병중에 '한센병'입니다.
단지 26절이 우리들에게는 조금은 생소한 것이, 모든 질병중에서 마라에 있는 쓴 물과 한센병이 어떻게 연관되었는지에 관해서 텍스트는 우리에게 설명해 주지 않습니다.
전체적으로 어떤 운율을 갖추고 있는 문장임에도 불구하고 그와 같은 설명을 우리가 알아 듣기 어렵고 따라서 문장에 내적 구조를 통해서 우리가 조금 분별해 보려고 하면 우리 눈에 일차적으로 눈에 띄는 것은?
다음과 같은 내용입니다.
26절에서 그리고 그는 말했다. 그 다음부터 오는
탈출 15,25 직역
만약 내가 열심히 듣는다면 / 야훼 너의 엘로힘의 목소리를
그리고 그의 양 눈에 옳은 것을 / 내가 행한다면
이 두줄을 연필로 묶습니다. 묶고나서 그 구조가 바로
내가 듣는다면(A) …목소리를(B)
Ⅹ
양 눈에 옳은 것을(B') 내가 행한..(A')
AB ⇔ B'A'
교차 대구식 구조( Chiasmus) - 문장의 멋을 내기위해 쓰는 표현방식
이것은 히브리 사람들이 쓰기 좋아하는 문장에 멋을 낼 때 자주씁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탈출 15,26 직역
그리고 내가 귀 기울이다면 그의 계명에
그리고 내가 지킨다면 모든 그의 규정을
이것은 두 줄로 돼있기는 하지만 이것은 AB AB의 구조입니다.
탈출 15,26직역
야훼 너의 엘로힘의 목소리를
그리고 그의 양 눈에 옳은 것을 ⇒ 일반적인 문학적인 표현
두번째,
탈출 15,26직역
그리고 내가 귀 기울인다면 그의 계명에
그리고 내가 지킨다면 모든 그의 규정을 ⇒ 법적인 개념
따라서 법적인 개념은 문학적으로 쓰이지 않고 법적으로 명료하게 쓰여졌습니다. 그의 계명에 귀 기울인다면, 모든 그의 규정을 내가 지킨다면,
첫번째 두 줄과 두번째 두줄이 있습니다.
그리고 세번째 두줄에서는,
앞에 있는 것중에 모든 그의 규정을에서
탈출 15,26
모든 그의 규정 ⇒ 모든 질병은
두번째 두줄에서부터 세번째 두줄은 모든 이라는 한 단어를 고리로 걸고 내려옵니다.
탈출 15,26 직역
모든 질병은 / 내가 이집트에서 내린
나는 내 위로는 내리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모든 모든 으로 이어지고 그 다음에 내가 이집트에서 내린, 내 위로는 내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를 듣는 그 사람들은 야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야훼의 눈에 올바른 것을 행해야 하는데, 그것이 결국 무엇이냐?
야훼 목소리라는 것은 ⇒ 결국 그의 계명이고, 야훼 눈에 옳은 것은 ⇒ 결국 모든 그의 규정을 지키는 것입니다. 모든 그의 규정을 지켜야 모든 질병으로부터 나 야훼가 너를 치유해 준다.^^ 라는 전체적인 흐름을 우리가 만날 수 있습니다. |
마지막으로 그 마지막 문장이,이해하기가 조금 어렵습니다.히브리어라는 문장에서도 사실은, 어떤 동사도 등장하지 않는 그 세 단어가 등장합니다.
탈출 15,26 나 / 야훼 / 너의 치유자
세 가지로 번역이 가능합니다.
1. 나는 야훼 너의 치유자이다.
2. 나 야훼는 너의 치유자이다.
3.너의 치유자는 바로 나 야훼이다.
세개다 똑같은 것 같은데요? 하지만 이 문장을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를 가지고? 주석가들은 100년째 싸우고 있습니다.
고대 이런 문장에 명사문일 경우에(동사문일 경우에는 문제가 안됩니다)
그 문법에 따른 위치가 분명하기 때문에, 명사문일 경우에는 앞에 나온게 주어냐?? 뒤에 나온게 주어냐??
그 다음에 이렇게 명사문에 명사가 3~4개 나왔을 때? 주부는 어디이고? 술부는 어디인가? 어디가 subject고 어디가 predicate 인가?를 가지고 싸우고 있습니다. 백년째~~
혼란스럽게 느끼지 마시고, 아 그러니까! 학자들이 아직 싸우고 있으니 우선은 내가 편한대로 해석하면 되겠구나..라는 자유로움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얘기하면서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자신을 치유자로 드러내신 겁니다!!
치유자, 치유한다는 동사가 ⇒ 히브리말로 라파(Rapha) ⇒ 라파엘 (Raphael)
엘은 하느님은 치유하신다. 라고 고백을 하고 있는 천사의 이름과 서로 맞먹는 표현입니다. 왜냐하면 나 야훼가 너의치유자다! 라는 고백으로 이 마라 사건에 결론으로서,
이 마라 사건을 통해서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치유하시는 치유자로 자신을 알게 하시는, 자신을 계시하시는 하느님을 우리는 만나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아멘~!! 고맙습니다~^^
강의를 해주신 신부님께 더 감사드립니다.
함께 동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