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에세이 95>
빨간 화살나무
심영희
지금 춘천의 공원이나 길가에는 가을의 상징으로 빨간 화살나무가 압권이다. 운전을 하고 다니면서 사진을 못 찍는게 아쉽다.
화살나무를 보면 고향 생각이 난다. 고향집 나지막한 뒷동산에는 갖가지 나물이 자라고 있었다. 곤드레, 삽추, 헛잎(화살나무), 도라지, 더덕, 잔대, 취나물 등 따로 심지 않아도 우리 집 나물 반찬거리는 거의 뒷동산에서 나온다.
내 고향에선 화살나무를 헛잎이라 불렀다. 봄이면 어머니는 바구니를 들고 뒷동산에서 헛잎을 훑어다 삶아 참기름에 무쳐 나물 반찬을 만드셨다. 그때는 화살나무 잎 단풍이 이렇게 예쁜지 보지 못했다. 주로 여름에만 뒷동산에 올라갔기에 늘 푸른 잎만 기억하고 있다.
객지에서 공부하다 방학이 되어 집에 오면 어머니께서는 일하는 아저씨를 시켜 뒷동산 시원한 나무그늘 밑에 멍석을 깔게 하셨다. 나는 동생들과 뒷동산에서 방학 숙제도 하고 놀기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어머니는 밥과 반찬을 싸가지고 우리에게 점심을 갖다 주시곤 했다. 집에서 나무 그늘까지는 100m도 안 되는데 점심을 싸다주시니 우리 남매는 소풍온 기분으로 하루를 보낸다.
그때 어머니는 헛잎 나물을 알려주시며 여름에는 쇠어서 못 먹고 봄에 연한 잎만 나물 반찬을 해먹을 수 있다고 하셨다.
중학생 때 뒷동산 멍석 위에서 공부를 하는데 여동생이 아이구 벌레야 하고 소리쳤다. 나는 사정없이 동생을 멍석 끝으로 내밀었다. 워낙 벌레를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지라 그 벌레를 떼어버리지 못하고 내게 옮겨 올까 봐 멀리 떠밀어 놓고 남동생 보고 막대기로 벌레를 치우라고 했더니 남동생이 누나의 팔에 붙은 벌레를 잡아냈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했다는 생각이 들지만 난 지금까지도 그런 벌레를 무서워하고 만지지 못하니 어찌하겠는가,
잎이 다 떨어지기 전 오늘 빨간 화살나무 사진을 찍으며 고향집 뒷동산과 어머니 동생들과의 추억을 소환한다. 며칠만 일찍 사진을 찍었으면 더욱 예뻤을 것인데 벌써 잎이 조금씩 떨어지고 없어 아쉽기는 하지만 이 정도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것만으로 다행이다.
춘천의 공원이나 길거리에 화살나무가 많이 심어진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지만 나는 이 화살나무를 보면 반갑고 봄에 입안에서 향긋한 향내를 풍기던 헛잎 나물을 생각하며 추억 속에 젖어본다.
2024년 10월 26일 사진을 찍으러 약사천 부근 공원을 걸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