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필 3월호에 수록된 작품
심영희
오늘 한국수필가협회(이사장 최원현)에서 매월 발행하는 한국수필이 도착했습니다. 3년 동안 이사장을 하신 최원현 이사장님이 발행하는 마지막 책이기도 합니다. 이제 4월부터는 제8대 권남희 이사장이 발행인이 됩니다. 최원현 이사장님 그동안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한국수필 3월호에 수록된 작품입니다
<수필>
직선과 곡선
심 영 희
직선과 곡선은 우리 주위에 꽉 찬 공기처럼 늘 함께 할 수 있는 것이다. 내 몸 속에 가득 찬 장기들도 직선이거나 곡선으로 되어있다. 화가 나면 화는 목구멍으로 곡선으로 밀고 올라와 직선으로 다른 사람에게 날아간다. 입밖에 나와서도 곡선으로 서서히 가면서 걸러낼 것은 걸러내고 타인의 귀에 들렸으면 좋으련만 화살처럼 날아간 직선은 그대로 상대방의 마음에 직선으로 비수가 되어 꽂힌다. 이렇게 하여 서로는 마음의 갈등을 겪으며 만나기를 거부하는 사이가 된다.
우리 몸의 일부분도 직선이거나 곡선으로 되어있다. 머리와 얼굴, 가슴부위, S라인을 원하는 허리도 엉덩이, 종아리까지 모두 곡선이다. 쭉 뻗은 다리의 종아리도 직선으로 생각하지만 이 또한 곡선에 속한다.
매일 차를 운전하여 직선과 곡선을 지나 목적지에 도착한다. 전국의 도로는 직선이거나 곡선으로 되어있다. 직선 만인 도로도 곡선으로만 되어있는 도로도 없다. 특히 내가 살고 있는 강원도처럼 산이 많은 곳은 곡선 도로가 훨씬 많다. 그래도 우리들은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하여 직선이든 곡선이든 그 길을 가야한다.
이렇게 우리 인생사도 수많은 직선과 곡선을 지나 생을 마감하게 된다. 좋은 환경에 태어나 평생을 직선 가도만 달리는 인생은 극히 드물다. 핸들조차 돌리기 힘들 정도로 굴곡진 삶을 살아야하는 사람들 틈에서 직선과 곡선이 적당히 섞여서 살아가는 사람들, 즉 보통사람들의 생은 그나마 행복한 삶이다.
나는 쉴 틈없이 직선과 곡선으로 씨름을 하며 살아간다. 한지 공예와 그림을 그리기 때문이다. 20여 년 한지 공예를 하면서 많은 직선과 만나고 헤어졌다. 그중 많은 부분은 아니지만 곡선과 만나기도 한다. 한지공예 기초는 보드지로 되어있는 골격으로 틀을 짜서 한지를 바르고 문양을 오려 붙여 작품을 만든다.
골격으로 짠 틀에 한지를 바르는데 직선에는 종이를 바르면 잘 발라지는데 곡선 길은 자동차가 다니기 나쁘듯이 곡선에는 한지가 잘 발라지지 않는다. 초보자일수록 곡선 부분에 쭈글쭈글한 주름이 생기거나 아예 틀에서 붕 떠서 빈 공간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이렇게 곡선은 사람들에게 유리하지 않지만 잘 이겨내고 나면 한층 아름다워 보인다. 그냥 직선으로 밋밋하게 만든 작품보다 곡선을 넣어 만든 작품은 더욱 아름답고 멋져 보인다.
한지 공예에서는 작품에 붙이는 문양이 작품 전체에 큰 비중을 차지한다. 어떤 문양을 붙이는가에 따라 작품 전체의 분위기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 문양을 만드는 과정은 아주 조그만 칼끝으로 문양이 탄생하게 되는데 문양을 만드는 그림도 직선이거나 곡선인데 대부분 사람들이 직선은 잘 오리는데 곡선은 잘못 오려서 원이 되어야할 부분이 네모나 세모가 되기도 한다. 곡선을 가면서 이탈하여 직선을 그린 것이다. 이렇게 마음대로 직선을 만들면 작품은 볼품이 없게 된다.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데도 직선으로 가다가 곡선이 나오면 그대로 곡선을 따라가야 하는데 나는 곡선은 갈 수 없다며 곡선을 직선으로 만들다 낭떠러지로 추락하게 되는 것이다. 힘들어도 곡선은 그대로 곡선으로 가야지 무리하게 비리를 저질러 직선을 만들다 보면 곡선보다 더 험난한 길로 가기마련이다.
그냥 눈으로 보기에는 직선은 날카롭고 곡선은 아름답다. 직선의 빠름만 따르지 말고 곡선의 아름다움을 따라가다 보면 좋은 일이 있을 수도 있다. 곡선은 돌아간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부드러운 곡선은 사람의 마음을 온순하고 부드럽게 만든다.
음식을 먹으면서 직선과 곡선을 가려본다. 내 눈에는 음식에는 직선이라는 자체가 거의 없는 것 같다. 모든 음식 재료는 곡선은 아니라도 둥근 면을 가지고 있으니 곡선에 가깝다. 길이가 긴 편에 속하는 우엉 뿌리도 원추근이라 직선은 아니다. 우리들은 이 곡선으로 된 음식을 먹고 살아서 그나마 마음이 아름답고 착한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사람 몸속에 들어 있는 창자도 곡선으로 옹기종기 모여 있기 때문에 그 좁은 배속에서 살수 있는 것이지 직선으로 뾰족뾰족 모여 있다면 내장은 아프고 괴로울 것이다. 이렇게 직선과 곡선은 반대편에 서서 살아간다. 우리는 그 직선과 곡선의 갈림길에서 어느 쪽을 택해야 하는지 잘 판단하여 직선이 되기도 하고 곡선이 되기도 한다. 모든 것에는 직선이 좋고 곡선은 나쁘다거나 곡선은 좋고 직선은 나쁘다는 편견은 버리고 때에 따라 직선이 되기도 하고 곡선이 되기도 한다.
나는 오늘도 대부분 직선인 한지 공예도 만들고 수많은 곡선으로 되어있는 그림도 그리면서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직선 만도 곡선 만도 아닌 직선과 곡선이 함께 있는 절충식이어야 아름답고 멋진 작품이 탄생하기 때문이다.
때론 쭉 뻗은 고속도로나 평야처럼 직선이고 싶고, 또 어느 때는 석양으로 달리는 보름달 보다 더 크고 아름다운 둥근 모양의 해를 닮고 싶은 때도 있다. 모두가 아름답기 때문에 가슴으로 안고 싶은 것이다. 글을 쓰면서 그림 화면을 구성하고 그림을 그리거나 한지 공예를 만들면서 글 감을 찾는 작업도 내게는 즐겁고 행복한 일상이다.
약 력(심영희)
●1995년 「수필과 비평」 지로 수필 등단
●수필집 「아직은 마흔아홉」 외 5권/시집 「어머니 고향」
●동포문학상/한국수필문학상/소월문학상 외 3회 수상
●한국문인협회 문단정화위원/한국수필가협회 이사/새한국문학회 강원지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