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침 오도(惛沈 悟道)
심완 박전상환
1.
깨어라
깨어나라
졸고있는 수행자(修行者)여
마구니(魔軍) 잠(幻影)에 취해
조복(調伏)받기 어려워라(難)
핑게(理由)가 없는 무덤이
그 어디에
있으랴
2.
신참(新斬)이 어디 있고
구참(久斬)이 어디 있나
승속이 따로 없고(僧俗別無外)
남녀노소(男女老小) 따로 없네
분별(分別)과 경계(境界)마저도
다 버리고 벗어라(放下着解脫)
3.
진정한
깨달음(正等覺)은
시간 공간(時間 空間)
때와 장소(處處場所)
과거와 현재 미래(三世界三世)
앞도 없고 뒤도 없네(前無後無)
가벼운(輕率)
혼침 오도(惛沈 悟道)로
착각(錯覺)하지
말아라
4.
간절한 마음(懇絶心)으로
오로지 화두(話頭, 공안)잡고
두 눈을 부릅뜨고(용맹정진)
졸음(마구니마음)을 쫒아내라
졸음(睡魔)이 마장(魔障)이로다
깨어나라 행자(覺性修行者)여
5.
앉거나
서(立) 있거나
간간절절 화두(話頭) 잡고
이 내 몸 사지육신(四枝 六身)
영혼까지 좌탈입망(坐脫立亡)
일여의 그 순간(一如瞬間)까지
깨어나라
깨어라.
ㅡ 마음그릇 心椀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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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침 오도(惛沈 悟道)
마음그릇 心椀 박 찬
* 혼침(惛沈,
가라앉은 마음)이란
무엇인가 ?
산스크리트어 : styāna,
팔리어 : thīna 이며
영어로는
lethargy 또는 gloominess
foggymindedness 의 뜻을
가진 불교 용어이다.
즉,
설일체유부의 5위 75법에서
심소법(心所法: 46가지) 가운데
대번뇌지법(大煩惱地法: 6가지)
중 하나(一部)이며
유식유가행파와
법상종의 5위 100법에서
심소법(心所法: 51가지)의
수번뇌심소(隨煩惱心所:
20가지) 가운데
대수번뇌심소
(大隨煩惱心所: 8가지) 중
하나(一部)이다.
혼침(惛沈)은
경안(輕安)의 반대인데
몸과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을 무겁게 하고
침울하게 하며 무기력하게 하는
마음의 작용(心作用)을
말하는 것이다.
* 오도(悟道)
삼세(三世,
과거 현재 미래 또는 삼계)의
망상(望想)과 번뇌(煩惱)를
해탈(解脫)하고
불계(佛界, 부처님 세계)에
들어 갈 수 있는 길(佛道)을 말한다.
즉,
우주의 순리와 이치를 따라
과거와 현재 미래 삼천대천 세계
부처님의 진리(眞如眞理)를
깨닫는 것이다.
* 좌탈입망(坐脫立亡)
생사(生死,
삶과 죽음 存在處處)가
자유 자재(大自由大自在)함을
뜻하는 말로써
즉,
앉은(坐) 채로 죽고
선(立) 채로 죽는다.
좌(坐)와
입(立)은
모두 즉(卽 곧) 字와 같은
뜻으로서
《 그 자리 》
《 그 즉시 》를 가리킨다.
다시 말하면
앉은 그 자리(앉은 채)
서 있는 그 자리(선 채로)
《 모든 번뇌를 벗어버리다. 》
또는
《 잊어버리다》의
뜻과 의미(意味)이다.
* 일여(一如)
수행(修行精進)이
그 어떠한 상황이나 조건에도
변화, 변동(움직임)이 없어서
한결같이 깨어있다
라는 뜻이다.
일여(一如)에는
평상일여(平常一如)
몽중일여(夢中一如)
숙면일여(熟眠一如)가 있고
몽중일여와 숙면일여를
오매일여(寤寐一如)라고 하며
또한
숙면일여(熟眠一如)에는
보살지(菩薩地)에서의
숙면일여(熟眠一如)와
여래지(如來智)에서의
진여일여(眞如一如)가 있다.
평상일여
(平常一如)라는 것은
화두(話頭)를 끊임없이
의심(疑究心)하는
수행으로
무엇으로
수행(修行精進)을 하든지
동일(同一, 똑같음함]이
깨어 있을 때는
언제나 한결같아서
망념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말 한다.
그러나 이 것은
제6식경계의 영역일 뿐이다.
성철스님께서는
40일 만에
평상일여(平常一如)를 이루어
성취(成取)하셨다고 한다.
몽중일여
(夢中一如)라는 것은
화두(話頭)를 끊임없이
의심(疑究心)하는
수행으로
무엇으로
수행(修行精進)을 하든지
동일(同一, 똑같음함]이
깊은 숙면 중에는
한결같지 못하지만,
꿈을 꾸면
평상시와 같이 한결같아서
망념(望念)이 일어나지 않고
깨어 있는 것을
말 한다.
이러한 경계는
무상정(無想定)으로서
제7식경계의 영역이고
교가(敎家)의 제 7지보살에
해당하는 것이다.
숙면일여
(熟眠一如)라는 것은
깊은 잠속에서도
끊임없이 의심(疑究心)하는
수행으로
무엇으로
수행(修行精進)을 하든지
동일(同一, 똑같음함]이
한결같아서
망념(번뇌)이
일어나지 않고
깨어 있는 경계(覺惺境界)로서
멸진정(滅盡定) 이상(以上)을
말 한다.
이러한
깊은 잠(수마) 속에서의
숙면일여(熟眠一如)에는
제8아뢰야 무기식에 머무는
제8지 이상의 자재위보살지와,
이러한
아뢰야 무기식을
영멸(永滅, 영원히 소멸)한
부처님(如來佛 世尊) 지위의
진여일여(眞如一如)
즉,
여래지(如來地 智慧)의
숙면일여(熟眠一如)가 있다.
보살지(菩薩地)의
숙면일여는 극미망념의
성인의 변역생사(變易生死)가
남아(잔재) 있으며,
그러나 이 것은
불안(佛眼 부처의 눈)을 갖춘
선지식(善知識)이 아니면
결코 볼 수가 없으므로
부처님께서는
의발(依鉢)을 부촉(咐囑)하여
인가(認可 검증)의 철칙(계율)을
세우신 것이다.
어쨌든
그 누구든지
숙면일여(熟眠一如)가 되면
노력이 없어도,
즉 일상(日常) 생활 속에서도
영겁불퇴전(永劫不退戰,
절대 물러섬이 없음)이며
영원토록
업보윤회(業報輪廻)를 떠나서
분단생사(分斷生死
삶과 죽음)에
언제나
대자유 대자재(自由自在)하는
성인(聲人)이다.
여기에
망념(望念 번뇌망상)이
다시 일어나지 않고
온전히
깨어있다고 하는 데에서
《깨어있다(覺惺) 》는 것은
우리가
일상(日常生活)으로
평상시에 깨어있는 것과 같이
이해(理解 설명)하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가
잠 속의 꿈은 저절로
혹은 흔들거나 소리를 질러서
깨울 수가 있지만
인간현실과 같은
아뢰야 무기의 육도 윤회의 꿈은
불교수행(佛敎修行)이 아니면
처절한
무간지옥의 충격으로도
절대로 깨어날 수가
없으며
그 까닭은
그 애욕과 집착(탐진치 三毒)이
더 깊고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일체망념이
일어나지 않는 깨어있음이란
즉,
우리의 진여자성(眞如自性)의
본래의 참모습(本來面目)을
말하는 것으로
본래의
반야광명(槃若光明)이 넘치는
법계(法界)의 참모습(眞如)일
뿐이다.
생사(生死, 삶과 죽음)
그대로가 곧 열반(涅槃)인
일상삼매(日常三昧)요
원융무애(圓融無碍)이며
중도(中道)가 되는 것이다.
다만
우리 중생(衆生)은
일체의 모든 만법(一切萬法)을
실유(實有, 실제로 존재함)로
애집(愛執, 집착 망상)하는
무기무명 때문에
영원토록
그 것을 바르게 보지 못하여
그 각자의 애집(愛執)을 따라
윤회고(輪廻, 苦集滅道)를
달게 받으므로
부처님(如來佛 世尊)께서
몸소 보리수(菩提樹) 아래에서
여래지(如來地)의
숙면일여(熟眠一如)인
구경각(究竟覺,
ultimate enlightenment,
final enlightenment,
supreme enlightenment)
불교의
수행이 완성되어
증득(證得)하게 된
완전한 깨달음(無上正等覺)을
가리키는 것
곧 부처의 상태를 이룬 것이나
부처(如來佛世尊)가 되는 자리
구경선정(究竟禪定)을
실천(實踐修行)해 보이시고
설법(說法)하여 이르시니
바로 이 것이
불교(佛敎 부처님 가르침)이며
참된 수행정진(修行精進)이다.
여시아문(如是我聞)
나는 이와같이
보고 듣고 배웠다.
- 終 -
강원도 정선 동강 변
별빛총총한
초가삼간두옥
묵우당(墨友堂 글벗터)에서
우바새(優婆塞)
마음그릇 心椀 박 찬
(박전 상환)
두손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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