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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사무엘상 21:1–15 (참조: 레위기 24:5–9, 마태복음 12:1–8, 시편 34:1–22, 56:1–13)
핵심 명제: 성도가 하나님이 허락하신 광야의 첫 관문에서 생존의 공포에 짓눌릴 때 종교적 기만과 세속적 활로(골리앗의 고향)를 찾는 인간적 실족을 겪을 수 있으나, 하나님은 의식법의 문자적 조문을 뛰어넘어 생명의 떡(레헴 파님)으로 굶주린 종을 살리시고, 침을 흘리며 미친 척하는(타할) 처절한 자기 파산의 밑바닥에서 오직 주만 송축하는 순전한 믿음의 사람으로 연단해 내신다.
1. 서론: 영웅에서 도망자로의 추락
사무엘상 20장의 마지막은 다윗과 요나단이 에셀 바위 곁에서 피 끓는 눈물로 서로를 껴안고 영원한 언약을 확인하며 작별하는 장면이었습니다.
그 직후 열리는 사무엘상 21장은 민족의 영웅 다윗이 겪는 삶의 궤적이 얼마나 참혹하게 곤두박질치는지를 여과 없이 드러냅니다.
골리앗의 목을 베고 여인들의 "만만" 찬양을 받으며 왕의 사위가 되었던 촉망받는 청년 장수 다윗.
그러나 지금 그의 손에는 빵 한 덩이가 없었고, 허리에는 칼 한 자루 없었으며, 곁에는 호위병 한 명 없이 홀로 쫓기는 극단적인 결핍의 알몸이었습니다.
생존의 벼랑 끝에 몰린 다윗이 발걸음을 옮긴 첫 기착지는 예루살렘 북쪽, 실로 붕괴 이후 임시 성막과 제사장들이 머물고 있던 ‘놉(Nob)’이었습니다:
"다윗이 놉에 가서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이르니(와야보 다위드 노바 엘-아히멜렉 하-코헨) 아히멜렉이 떨며 다윗을 영접하여 그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네가 홀로 있고 함께 하는 자가 아무도 없느냐(마두아 앗타 레-바데카) 하니" (삼상 21:1)
제사장의 눈에 비친 다윗의 행색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다윗은 왕의 비밀 특명을 띠고 급히 길을 떠났노라고 거짓말을 둘러대며,
오직 거룩하게 구별된 제사장들만이 먹을 수 있었던 ‘진설병(Showbread)’을 요구했고,
에봇 뒤 보자기 속에 보관되어 있던 옛 전리품 ‘골리앗의 칼’을 받아 챙겼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사울의 칼날을 피하겠다는 극심한 생존 공포에 사로잡힌 다윗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최악의 선택을 감행합니다:
자신이 베어 죽였던 골리앗의 칼을 옆구리에 차고,
다름 아닌 골리앗의 고향인 블레셋의 ‘가드(Gath)’로 망명길에 오른 것입니다!
블레셋 왕 아기스의 신하들이 다윗의 정체를 알아보고 수군거리기 시작했을 때,
다윗은 심장에 얼음이 박히는 공포를 느끼며
대문짝에 손톱을 긁적거리고, 수염에 하얀 침을 질질 흘리며 미친 척(타할) 연기를 해야 했습니다.
제3강은 생존의 공포 앞에서 터져 나온 다윗의 거짓말과 연약함, 의식법의 껍데기를 깨뜨리고 생명을 살리시는 임재의 떡(레헴 파님), 골리앗의 칼을 쥐고 골리앗의 땅으로 들어간 인간적 계산의 파선, 침을 흘리는 굴욕의 진흙탕 속에서 터져 나온 참된 예배의 시편(시 34편과 56편), 그리고 율법의 안식일 조문을 완성하신 참된 다윗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적 의미를 심층 해부합니다.
2. 본문 주해: 놉의 성소와 다윗의 거짓말(1) 아히멜렉(אֲחִימֶלֶךְ)의 떨림과 다윗의 허언 (삼상 21:1–2)
아히멜렉 (אֲחִימֶלֶךְ): '내 형제는 왕이시다'라는 뜻으로, 엘리 대제사장의 증손자였습니다.
하-라아드 (חָרַד $\longrightarrow$ 와예헤라드):
아히멜렉은 다윗이 혼자 나타난 것을 보고 '두려움에 몸을 떨었습니다(Trembled).'
사울의 군대 장관이자 왕의 사위가 호위병도 없이 거지 꼴로 홀로 나타난 상황 자체가 심상치 않은 정치적 변고를 암시했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위장과 거짓말 (2절):
다윗은 솔직하게 "사울 왕이 나를 죽이려 하여 도망치는 길입니다"라고 밝히지 않았습니다.
그는 "왕이 내게 은밀한 일을 명령하셨기에 부하들을 특정 장소로 오도록 약속해 두었다"며 거짓말을 지어냈습니다.
성경의 정직한 기록:
성경은 다윗을 무결점의 슈퍼히어로로 미화하지 않습니다.
죽음의 공포 앞에서 다윗 역시 거짓말을 늘어놓고 제사장을 속이는 나약한 죄인의 실존을 그대로 폭로합니다.
성도의 위대함은 죄가 없는 완전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비참한 연약함 속에서도 자신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손길에 굴복하는 데 있습니다.
(2) 도엑(דּוֹאֵג)의 섬뜩한 시선 (삼상 21:7)
성경 기자는 이 긴박한 은밀한 거래의 현장 구석에 숨어 있던 어두운 그림자 하나를 복선으로 심어둡니다:
"그 날에 사울의 신하 한 사람이 여호와 앞에 머물러 있었는데(네에차르 리프네이 야훼) 그는 에돔 사람이요 이름은 도엑(דּוֹאֵג)이라 사울의 목자장이었더라" (삼상 21:7)
도엑 (דּוֹאֵג, Doeg): '불안해하다, 염려하다'는 뜻을 지닌 에돔(에서 후손) 사람.
네에차르 (נֶעְצָר): '억류되다, 종교적 정결 예식이나 서원으로 인해 성소에 묶여 머물다.'
그는 몸은 성소에 있었으나 마음은 탐욕으로 가득 찬 사울의 충견이었습니다.
다윗이 제사장에게 빵과 칼을 받아가는 이 밀회의 현장을 도엑의 눈이 독사처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이 불길한 침묵의 시선은 훗날 사무엘상 22장에서 놉 성읍의 제사장 85명이 도륙당하는 끔찍한 학살극의 뇌관이 됩니다.
3. 핵심 원어 강해: 레헴 파님(לֶחֶם פָּנִים) — 생명을 살리는 임재의 떡
굶주린 다윗은 아히멜렉에게 먹을 것을 구했습니다: "당신의 손에 무엇이 있나이까 떡 다섯 덩이나 무엇이나 있는 대로 내 손에 주소서" (3절).
아히멜렉은 난색을 표했습니다:
"제사장이 다윗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일반 떡은 내 수중에 없으나 거룩한 떡은 있나니(엔-레헴 홀... 키-임-레헴 코데쉬 예쉬) 그 소년들이 여자를 가까이만 하지 아니하였으면 주리라 하는지라" (삼상 21:4)
{אֵֽין־לֶ֤חֶם\ חֹל֙\ תַּ֣חַת\ יָדִ֔י\quad כִּֽי־אִם־לֶ֥חֶם\ קֹ֖דֶשׁ\ יֵ֑שׁ}
{"엔-레헴 홀 타하트 야디, 키-임-레헴 코데쉬 예쉬"}
(1) 레헴 코데쉬 (לֶחֶם קֹדֶשׁ)와 레헴 파님 (לֶחֶם פָּנִים)
레헴 홀 (חֹל): 일상적으로 먹는 세속의 평범한 빵(Common bread).
레헴 코데쉬 (קֹדֶשׁ): 성막 지성소 앞 순금 등잔대 맞은편 진설병 상에 바쳐졌던 '거룩한 떡(Holy bread)'.
레헴 파님 (לֶחֶם פָּנִים):
문자 그대로 "얼굴들의 떡, 하나님의 면전의 떡(Bread of the Presence)"입니다.
레위기 24장 5–9절에 따르면, 이 떡은 매 안식일마다 열두 지파를 상징하는 12개의 따뜻한 떡으로 진설되었고, 물려낸 묵은 떡은 오직 거룩한 곳에서 아론과 그의 자손(제사장들)만이 먹을 수 있는 지성물(Most holy)이었습니다. 일반인이 이를 먹는 것은 율법상 돌에 맞아 죽을 수 있는 성물 모독이었습니다.
(2) 아히멜렉의 질문과 의식법의 유연성
아히멜렉은 다윗 일행이 성적으로 정결한 상태(타호르)인지를 확인한 후, 마침 그날 여호와 앞에서 물려낸 떡을 다윗의 손에 넘겨주었습니다(6절).
율법의 본질:
아히멜렉은 문자에 갇힌 율법주의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굶주려 죽어가는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종 다윗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제사장만이 먹어야 한다는 '의식법의 문자적 조문'을 양보하고 '생명을 살리는 긍휼의 정신'을 선택한 것입니다.
4. 구속사적 연결: 예수께서 해석하신 놉의 진설병
천 년 뒤, 예수 그리스도는 마태복음 12장에서 안식일에 밀 이삭을 잘라 먹었다고 제자들을 정죄하던 바리새인들을 향해, 바로 이 사무엘상 21장의 놉 사건을 정면으로 소환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자기나 그 함께 한 자들이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지 아니하였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마 12:3–4, 6–8)
| 구약 놉 성소의 다윗 (삼상 21장) | 신약 안식일의 주인 예수 그리스도 (마 12장) |
| 기름 부음 받았으나 사울에게 쫓기는 도망자 | 메시야로 오셨으나 종교 지도자들에게 배척당하심 |
| 굶주린 몸으로 성소에 들어가 진설병을 먹음 | 굶주린 제자들과 함께 밀밭 사이를 지나시며 이삭을 먹이심 |
| 의식법의 문자를 넘어 생명을 살리는 긍휼을 입음 | 율법의 참된 완성: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않노라" |
| 물려낸 떡으로 육신의 허기를 채움 | "내가 곧 생명의 떡(Artos tēs Zōēs)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하리라" (요 6:35) |
예수님은 다윗의 행동을 불법으로 정죄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의 참된 목적은 인간을 굶겨 죽이고 옭아매는 형식적 종교 조문이 아니라,
인간의 생명을 살리고 회복시키는 '자비와 긍휼(헤세드)'에 있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다윗이 먹었던 그 성소의 진설병(레헴 파님)은
하늘의 성소에서 자기 몸을 찢어 영원한 생명의 양식으로 내어주실
참된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 대속을 가리키는 거룩한 예표였습니다!
5. 인간적 수단의 파선: 보자기에 싸인 골리앗의 칼
떡을 얻은 다윗은 아히멜렉에게 또 다른 요구를 합니다: "여기 당신의 수중에 창이나 칼이 없나이까 왕의 일이 급하므로 내가 내 칼과 무기를 가지지 못하였나이다" (8절).
아히멜렉이 대답합니다:
"제사장이 이르되 네가 엘라 골짜기에서 죽인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칼이 보자기의 싸여 에봇 뒤에 있으니(헤레브 골리야트... 아쉐르 힉키타 베-에멕 하-엘라) 네가 그것을 가지려거든 가지라 여기는 그것밖에 다른 것이 없느니라 하는지라 다윗이 이르되 그만한 것이 없나니 내게 주소서(엔 카모하 테нена 리) 하더라" (삼상 21:9)
{אֵ֥ין\ כָּמ֖וֹהָ\ תְּנֶ֥נָּה\ לִּֽי׃}
{"엔 카모하, 테넨나 리!"}
{"그것과 같은 것이 세상에 다시 없나니, 당장 그것을 내게 주소서!"}
(1) 엘라 골짜기의 신앙 vs 놉에서의 변질
1강의 다윗:
사울의 놋 투구와 거대한 칼을 거절하고, 오직 물맷돌을 쥐며 외쳤습니다:"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하니라!"
지금 놉에서의 다윗:
거대한 골리앗의 칼을 쥐며 감탄합니다: "이 칼만 한 것이 세상에 없다(엔 카모하)!"
얼마나 기가 막힌 영적 퇴보입니까?
골리앗을 칠 때는 칼이 필요 없다고 외쳤던 소년 다윗이,
사울의 추격을 받자 공포에 눈이 멀어 '자신이 무너뜨렸던 세상의 무기(골리앗의 칼)'에 영혼의 안전을 맡기려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고난의 바람이 불어닥칠 때 성도가 겪는 연약한 믿음의 추락입니다.
6. 핵심 원어 강해: 타할(תָּהַל)과 리르(רִיר) — 가드 왕 아기스 앞의 침 흘림
골리앗의 칼을 옆구리에 찬 다윗은, 쫓기는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국경을 넘어 블레셋의 5대 도시 중 하나인 ‘가드(Gath)’로 망명해 들어갔습니다.
"그 날에 다윗이 사울을 두려워하여 일어나 도망하여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가니(와야캄 와이브라흐... 엘-아키쉬 멜렉 가트)" (삼상 21:10)
골리앗의 고향 가드로 골리앗의 칼을 차고 들어간 다윗!
인간적인 잔꾀로 "적의 적은 나의 친구다. 사울이 나를 죽이려 하니 사울의 원수인 블레셋에 들어가 몸을 숨기면 안전하리라" 계산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드 왕 아기스의 신하들이 즉각 다윗의 정체를 알아차렸습니다:
"아기스의 신하들이 아기스에게 말하되 이는 그 땅의 왕 다윗이 아니니이까(할로-제 다위드 멜렉 하-아레츠) 무리가 춤추며 이 사람의 일을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한지라" (삼상 21:11)
다윗이 아직 왕위에 오르지도 않았는데, 이방인들은 이미 그를 "그 땅의 왕"이라 불렀고 여인들의 개선가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읊어댔습니다.
그들의 시선은 다윗의 허리에 차여 있는 그들의 영웅 골리앗의 칼을 향해 꽂혔을 것입니다.
순간 다윗은 자신이 사자의 아가리 속으로 제 발로 걸어 들어왔음을 깨달았습니다:
"다윗이 이 말을 그의 마음에 두고 가드 왕 아기스를 심히 두려워하여(와이르아 메오드 미-페네이 아키쉬) 그들 앞에서 그의 행동을 변하여 미친 체하고(와예샨노 에트-타모... 와이트홀렐) 대문짝에 그적거리며(와예타브 알-달토트) 침을 수염에 흘리매(와요레드 리로 엘-제카노)" (삼상 21:12–13)
{וַיִּתְהֹלֵ֣ל\ בְּיָדָ֔ם\ וַיְתָו֙\ עַל־דַּלְת֣וֹת\ הַשַּׁ֔עַר\quad וַיּ֥וֹרֶד\ רִיר֖וֹ\ אֶל־זְקָנֽוֹ׃}
{"와이트홀렐 베-야담, 와예타브 알-달토트 하-샤아르, 와요레드 리로 엘-제카노"}
(1) 와이트홀렐 (וַיִּתְהֹלֵל): 미친 광인으로 변장하다
'할랄(הָלַל)'의 히트파엘형으로, 눈동자를 뒤집어까고 헛소리를 지껄이며 통제력을 상실한 '완전한 미치광이(Madman) 행세'를 한 것입니다.
(2) 타브 (תָּו $\longrightarrow$ 와예타브): 문짝을 긁적거리다
성문 대문짝에 짐승처럼 손톱으로 아무 의미 없는 낙서를 긁적거리며(Scratching) 바보 짓을 했습니다.
(3) 리르 (רִיר): 수염에 흘린 침
리르 (רִיר): 입에서 질질 흘러내리는 더러운 타액(Spittle/Saliva).
고대 근동 사회에서 남자의 '수염(자칸, זָקָן)'은 남성의 존엄성, 명예, 권위의 절대적 상징이었습니다(수염을 깎이는 것은 가장 큰 능욕이었음, 삼하 10:4).
그런데 다윗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자신의 명예의 상징인 수염 위로 끈적끈적한 침을 질질 흘려대며 턱을 적셨습니다.
아기스 왕은 혀를 찼습니다:
"너희도 보거니와 이 사람이 미치광이로다 어찌하여 그를 내게로 데려왔느냐 내게 미치광이가 부족하여서 너희가 이 자를 데려다가 내 앞에서 미친 짓을 하게 하느냐!" (14–15절).
다윗은 개처럼 성문 밖으로 내동댕이쳐져 쫓겨났습니다.
7. 수치의 밑바닥에서 피어난 노래: 시편 34편과 56편
세상 사람들의 눈에 가드 성문에서 침을 흘리며 기어 나온 다윗의 모습은 더할 나위 없이 찌질하고 비참한 조롱거리였습니다.
그러나 성령 하나님은 이 가장 수치스러운 바닥의 현장을,
인류 역사상 가장 찬란한 찬양의 모태로 뒤바꾸어 놓으셨습니다.
시편 34편의 표제어를 보십시오:
"다윗이 아비멜렉(아기스) 앞에서 미친 체하다가 쫓겨나서 지은 시"
침을 흘리며 성문 밖으로 쫓겨난 직후, 거친 광야 바위 틈에 엎드려 다윗이 토해낸 찬송의 첫 소절은 놀랍게도 원망이나 한탄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내 입술로 항상 주를 찬양하리이다(아바라카 에트-야훼 베-콜-에트 타미드 테힐라토 베-피)!" (시 34:1)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시 34:4)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시 34:6)
또한 동일한 사건을 배경으로 지은 시편 56편(표제어: 다윗이 가드에서 블레셋인에게 잡힌 때에)에서 다윗은 고백합니다: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내가 주를 의지하리이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혈육을 가진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시 56:3–4)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사오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 (시 56:8)
다윗은 깨달았습니다!
골리앗의 칼도 자신을 지켜주지 못했고,
블레셋 아기스 왕의 망명처도 자신을 보호해 주지 못했습니다.
인간의 잔꾀와 위선이 다 파선하고,
수염에 침을 흘리는 처절한 자기 파멸의 밑바닥에 홀로 내던져졌을 때,
다윗은 비로소 자신을 살리신 분은 골리앗의 칼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불가항력적인 은혜와 지키심뿐이었음을 뼈저리게 통회하며 찬양한 것입니다.
8. 구속사적 절정: 침 뱉음을 당하신 참된 다윗 예수 그리스도
존 칼빈과 찰스 스펄전, 알렉산더 화이트와 마틴 로이드 존스는 다윗이 겪은 이 극한의 수치와 미친 자 취급을, 온 인류의 구원을 위해 세상의 미치광이로 취급당하시고 얼굴에 침 뱉음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의 가장 깊은 모형으로 조명합니다.
| 가드에서 수치를 겪은 다윗 (삼상 21장) | 골고다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 (복음서) |
| 목숨을 건지기 위해 미친 자(타할) 행세를 함 | 친족들에게 "그가 미쳤다(엑세스테)" 소리를 들으심 (막 3:21) |
| 수염에 **침을 흘리는 굴욕(리르)**을 겪음 | 로마 군병들과 대제사장들에게 얼굴에 침 뱉음을 당하심 (마 26:67, 27:30) |
| 대문짝에 손톱으로 긁적거리며 쫓겨남 | 예루살렘 성문 밖으로 끌려 나가 영문 밖 십자가에 못 박히심 (히 13:12) |
| 성문 밖으로 내던져져 광야로 도망함 | 십자가에서 발가벗겨져 하나님과 사람에게 철저히 버림받으심 |
| 수치의 밑바닥에서 하나님을 항상 송축함 | 수난의 십자가를 통과하사 부활의 만왕의 왕으로 찬양받으심 |
다윗은 자신의 죄와 두려움 때문에 살기 위해 침을 흘렸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아무런 죄가 없으심에도 불구하고,
죄인인 우리를 지옥의 영원한 수치에서 건져내시기 위해
스스로 가장 비참한 광인의 자리에 서셨습니다!
이사야 50장 6절은 메시아의 수난을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모욕과 침 뱉음을 당하여도 내 얼굴을 가리지 아니하였느니라!"
예수님은 로마 군병들의 더러운 가래침을 그 거룩하신 얼굴에 고스란히 받아내셨습니다.
헤롯과 빌라도의 법정에서 바보 취급을 당하시며 자홍색 옷을 입히우고 갈대를 쥐는 조롱을 당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침 뱉음을 당하시고 미치광이 취급을 받으셨기에,
오늘 씻을 수 없는 죄의 수치로 얼룩진 우리가
모든 부끄러움을 탕감받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자녀의 면류관을 받아 쓰게 된 것입니다!
9. 목회적 적용과 묵상(1) 위기 앞에서 '골리앗의 칼(세속적 수단)'을 의지하지 말라
인생의 벼랑 끝에 몰렸을 때, 당신은 무엇을 찾고 있습니까?
다윗을 보십시오.
엘라 골짜기에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골리앗을 꺾었던 다윗이, 놉의 성소에서는 "골리앗의 칼만 한 것이 없다"며 인간적 무기를 부여잡았습니다.
위기가 닥치면 과거의 은혜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세상의 칼, 물질의 칼, 인간적 술수의 칼을 찾아 헤매는 것이 우리 인간의 부끄러운 실존입니다.
골리앗의 칼은 당신을 지켜주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 칼 때문에 가드에서 정체가 탄로 나 죽을 뻔했습니다.
세상 무기를 내려놓으십시오.
오직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십자가 보혈의 능력만을 당신의 영원한 무기로 삼으십시오.
(2) 세상의 아기스에게 망명하려 하지 말라
사울의 핍박이 두렵다고 해서 원수의 땅 블레셋 가드로 기어들어갔던 다윗의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마십시오.
신앙생활이 힘들다고, 교회에서 상처받았다고 세상의 쾌락과 세속적 타협의 품(가드)으로 도망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세상에 나가면 덜 피곤하겠지, 적당히 타협하면 숨통이 트이겠지."
착각하지 마십시오!
세상은 당신의 피난처가 될 수 없습니다.
세상은 당신의 허리에 찬 신앙의 칼을 즉각 알아보고 당신의 영혼을 조롱하며 벼랑 끝으로 몰아갈 것입니다.
고난이 와도 언약의 땅을 벗어나지 마십시오.
성도가 머물 곳은 세상의 가드가 아니라, 아무리 척박해도 하나님의 은혜가 머무는 십자가의 그늘 아래입니다.
(3) 인생의 가장 비참한 밑바닥(침 흘림)에서 찬양의 문을 열라
인간관계가 박살 나고, 사업이 망하여 빚더미에 앉았으며, 사람들의 손가락질과 조롱 속에서 수염에 침을 흘리는 것과 같은 극도의 굴욕과 자괴감을 겪고 계십니까? "내 인생은 이제 쓰레기통에 처박혔다" 절망하고 계십니까?
시편 34편을 펴십시오!
다윗은 미친 척하다 쫓겨난 바로 그 진흙탕 바닥에서 시편 34편의 금쪽같은 찬양을 써 내려갔습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내 입술로 항상 주를 찬양하리로다!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의 모든 환난에서 건지셨도다!"
바닥을 쳤다는 것은, 이제 내 인간적인 힘과 가식이 완전히 깨어졌다는 뜻입니다.
침 묻은 수염을 닦아내고, 그 절망의 밑바닥에서 하나님을 향해 손을 드십시오.
당신이 모든 교만을 내려놓고 엎드리는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은 당신의 인생을 새롭게 빚어 올리시는 기적의 반전을 시작하실 것입니다.
10. 결론: 가드의 성문을 빠져나와 아둘람으로
사무엘상 21장의 막이 내리며,
다윗은 가드 성문에서 미치광이로 내던져져 먼지투성이가 된 몸을 일으켜 세웁니다.
그는 놉에서 제사장을 속였고,
골리앗의 칼을 의지했으며,
원수의 땅으로 도망쳤다가 침을 흘리는 처절한 굴욕을 맛보았습니다.
그의 손에는 이제 아무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왕궁의 지위도, 아내도, 스펙도, 자존심도 남김없이 부서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처절한 실패와 수치의 훈련을 통해,
다윗의 심령 밑바닥에 덕지덕지 붙어 있던 인간적인 의지처와 영웅주의의 껍데기를
완벽하게 벗겨내셨습니다.
그리고 빈털터리가 된 다윗이 비틀거리며 찾아 들어간 곳:
황량한 유다 광야의 메마른 바위틈,
‘아둘람 굴(The Cave of Adullam)’이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 한 사람의 도망자가
어두컴컴한 동굴 속에 엎드려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시 57편)"
새벽을 깨우는 영혼의 찬송을 터뜨릴 때,
그 칠흑 같은 동굴 속으로 몰려들기 시작한
환난당한 자, 빚진 자, 마음이 원통한 자 ‘400명의 인생 파산자들’!
세상에서 버림받은 오합지졸들이
다윗을 만나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정예 군대로 거듭나는 공동체의 탄생!
제4강: 아둘람 굴의 400인과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 환난당한 자들의 피난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