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전 기구의 제작
37: 1-29
1. 브살렐이 조각목으로 궤를 만들었으니 장이 이 규빗 반, 광이 일 규빗 반, 고가 일 규빗 반이며
2. 정금으로 안팎을 싸고 윗가로 돌아가며 금테를 만들었으며
3. 금고리 넷을 부어 만들어 네 발에 달았으니 곧 이편에 두 고리요 저편에 두 고리며
4. 조각목으로 채를 만들어 금으로 싸고
5. 그 채를 궤 양편 고리에 꿰어 궤를 메게 하였으며
6. 정금으로 속죄소를 만들었으니 장이 이 규빗 반, 광이 일 규빗 반이며
7. 금으로 그룹 둘을 속죄소 양편에 쳐서 만들었으되
8. 한 그룹은 이편 끝에, 한 그룹은 저편 끝에 곧 속죄소와 한 덩이로 그 양편에 만들었으니
9. 그룹들이 그 날개를 높이 펴서 그 날개로 속죄소를 덮으며 그 얼굴을 서로 대하여 속죄소를 향하였더라
10. 그가 또 조각목으로 상을 만들었으니 장이 이 규빗, 광이 일 규빗, 고가 일 규빗 반이며
11. 정금으로 싸고 윗가로 돌아가며 금테를 둘렀으며
12. 그 사면에 손바닥 넓이만한 턱을 만들고 그 턱 주위에 금으로 테를 만들었고 13. 상을 위하여 금고리 넷을 부어 만들어 네 발 위 네 모퉁이에 달았으니
14. 그 고리가 턱 곁에 있어서 상을 메는 채를 꿰게 하였으며
15. 또 조각목으로 상 멜 채를 만들어 금으로 쌌으며
16. 상 위의 기구 곧 대접과 숟가락과 잔과 붓는 병을 정금으로 만들었더라
17. 그가 또 정금으로 등대를 만들되 그것을 쳐서 만들었으니 그 밑판과 줄기와 잔과 꽃받침과 꽃이 그것과 한 덩이로 되었고
18. 여섯 가지가 그 곁에서 나왔으니 곧 등대의 세 가지는 저편으로 나왔고 등대의 세 가지는 이편으로 나왔으며
19. 이편 가지에 살구꽃 형상의 잔 셋과 꽃받침과 꽃이 있고 저편 가지에 살구꽃 형상의 잔 셋과 꽃받침과 꽃이 있어 등대에서 나온 여섯 가지가 그러하며
20. 등대 줄기에는 살구꽃 형상의 잔 넷과 꽃받침과 꽃이 있고
21. 등대에서 나온 여섯 가지를 위하여는 꽃받침이 있게 하였으되 두 가지 아래 한 꽃받침이 있어 줄기와 연하였고 또 두 가지 아래 한 꽃받침이 있어 줄기와 연하였고 또 두 가지 아래 한 꽃받침이 있어 줄기와 연하게 하였으니
22. 이 꽃받침과 가지들을 줄기와 연하여 전부를 정금으로 쳐서 만들었으며
23. 등잔 일곱과 그 불집게와 불똥 그릇을 정금으로 만들었으니
24. 등대와 그 모든 기구는 정금 한 달란트로 만들었더라
25. 그가 또 조각목으로 분향할 단을 만들었으니 장이 일 규빗이요 광이 일 규빗이라 네모 반듯하고 고는 이 규빗이며 그 뿔들이 단과 연하였으며
26. 단 상면과 전후 좌우면과 그 뿔을 정금으로 싸고 주위에 금테를 둘렀고
27. 그 테 아래 양편에 금고리 둘을 만들었으되 곧 그 양편에 만들어 단을 메는 채를 꿰게 하였으며
28. 조각목으로 그 채를 만들어 금으로 쌌으며
29. 거룩한 관유와 향품으로 정결한 향을 만들었으되 향을 만드는 법대로 하였더라
=======================================================================
봄가을엔 결혼하는 커플들이 많습니다. 저는 “목사님 저희가 결혼하니까 목사님께서 주례해 주세요.”하며 인사 오는 사람들을 만나 진지한 당부를 합니다. 그리고 나서 신혼여행은 어디로 가고 신접살림은 어디서 차리느냐고 묻습니다. 그러면 그들은 아주 행복한 얼굴로 어디로 신혼여행을 가고 어디서 신접살림을 차린다고 대답해줍니다. 그들에게 신혼여행지와 신접살림 집은 행복의 보금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금년으로 결혼한 지 만 30년입니다. 30년 전 저희가 살림을 시작한 집은 단간 월세방 이었습니다. 한번 찾아가 보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지난 주일에 말씀드렸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여행하고 있을 때 성막을 지으라는 명령과 설계도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왜 가나안에 들어가기도 전에 광야에서 성막을 지으라고 하셨을까요? 가나안땅에 들어간 뒤에 지었더라면 훨씬 더 잘 지을 수가 있을 텐데 왜 고달픈 여행자들에게 그런 일을 시키셨을까요? 하나님은 당신이 거처할 집이 급하게 필요하거나 그들에게 대접을 받으시려는 것이 아니라, 광야생활 내내 그들과 동행하시며 돕고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그들로 눈으로 보고 믿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 이스라엘을 내 아내라고 하시면서 그들과 동행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따라서 성전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신방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들과 동행하시는 광야 생활은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신혼여행과도 같았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풍성하심을 체험하면서 행복해 하고 하나님의 모든 능력과 부요하심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였던 것입니다.
지난 주일에는 성전, 즉 텐트로 만든 성전인 성막을 이미 살펴보았습니다. 성막 안에는 기둥이 없었습니다. 대신 삥 둘러 친 판자들이 기둥 노릇을 했고 지붕을 덮어 공간이 넓습니다. 이 성전의 판자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의미했습니다. 그들이 모이면 어디서나 성전이 만들어졌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널빤지를 세우고 그 위에 천막을 입히면 성전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다시 여행을 할 때에는 다시 널빤지를 하나씩 메고 떠났습니다. 이것이 오늘의 교회의 모습을 상징합니다. 성전은 판자 하나하나를 조립해서 세웠고 오늘에는 믿는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교회를 이룹니다. 성전의 판자는 쉬띰나무 판자에 금을 입힌 것인데, 쉬띰나무는 나무질이 좋지 않고 뒤틀린 가시나무입니다. 이것을 조각목이라고도 불렀습니다. 우리는 원래 조각목처럼 질이 좋지 않고 뒤틀린 사람들입니다. 생각이나 행실이 반듯한 사람들이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우리의 죄를 씻어주시고 우리에게 믿음이라는 금을 입혀주셔서 성도라고 불리게 된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러면 이 성전의 기구들은 무엇을 말해줄까요?
출37장과 38장에는 이 성전 안에 비치해야 하는 기구들을 하나님이 명령하신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들었다는 기록입니다. 성전은 형벌 받을 죄인인 우리가 하나님과 만나는 곳인데, 성전의 기구들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시는 주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보여주는 역할을 합니다.
성전은 맨 안쪽의 지성소와 그 바깥인 성소, 그리고 성전의 뜰로 구분됩니다. 지성소는 가장 거룩한 곳이고 그곳은 하나님이 계신 하늘보좌를 상징하는 곳입니다. 지성소는 가장 거룩한 곳이며 여기에는 아무나 들어올 수가 없고 오직 대제사장만 일 년에 단 한번 피를 담은 양푼을 들고서야 들어올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법궤라는 기구 하나만 두라고 하셨습니다. 그 법궤 안에는 하나님이 친히 율법을 새겨주신 돌판 두 개가 들어있었고 나중에는 아론이 가졌던 싹난 지팡이와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도 보관하였습니다. 그 세 가지를 담고 덮개를 덮은 상자가 바로 법궤요 지성소 안에 있었습니다. 이 지성소는 성소와 붙어있었지만 위에서 아래까지 둘러 쳐진 휘장 때문에 아무나 들어올 수도 볼 수도 없었습니다.
다음은 성소인데, 성소에는 세 가지 기구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순금을 쳐서 일곱 가지를 뻗게 만든 등대이고, 또 하나는 조각목으로 만들고 금으로 싼 상이 하나 있는데 그것을 떡 상이라 불렀고 그 위에는 곡식을 곱게 빻아서 만든 떡을 열 두덩이로 나누어 진열해 놓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제일 중앙 안쪽에는 기구 중에서 높이가 가장 높게 만든 향단이 있었습니다.
제사장은 날마다 이 성소에 들어와서 정해진 일을 했는데, 등에 불을 켜는 일과 떡을 새로 진열해 올려놓는 일과 향을 피우는 일을 날마다 했습니다.
그리고 성막 바깥에는 뜰이 있었는데 이 뜰에는 번제단과 물두멍이 있었습니다. 번제단은 짐승을 죽여서 불로 태우는 곳으로서, 놋으로 만들었으며 제사장들이 여기서 짐승을 잡고 각을 뜨고 불에 태우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성소에 떡을 진설하고 향을 피우러 들어갈 때에 피 묻은 손을 씻기 위해서 물두멍이 있었는데, 그것도 놋쇠로 만들었습니다.
위치에 따라서 기구의 재료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가 있는데, 성소나 지성소에 있는 기구들은 모두 금으로 만들었거나 나무로 만들고 금으로 쌌지만, 뜰에 있는 기구들은 놋으로 만들었거나 나무로 만들고 놋으로 쌌다는 것이 다릅니다. 그러나 위치와 상관없이 성전의 기구를 만든 목재는 모두 조각목입니다. 이것은 일종의 아카시아 나무인데 질이 좋지 않고 뒤틀린 나무 결을 가진 하찮은 나무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못난 나무를 다듬어 판자를 만들어 그것으로 법궤나 떡상이나 향단이나 번제단을 만들었고, 그 위에 금이나 놋을 입혀 성전 기구를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우리들 자신을 말합니다. 우리는 원래 그렇게 좋은 사람이 못되었습니다. 가시와 공이가 많고 뒤틀린 존재입니다. 험한 세상을 힘겹게 살다보니 죄가 많고 말과 행실이 거칠어진 존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다듬어서 지성소와 성소에 쓸 기구로 만드시고, 밖을 금으로 입혀서 존귀한 도구로 삼아주셨습니다. 우리들 속에는 아직도 가시나무 조각목 같은 거친 기질이 숨어있지만 우리를 감싼 금 같은 하나님의 은혜와 복된 사명 때문에 우리는 거룩한 사람이라 불리게 되었고, 성전 안팎에서 쓰임을 받게 된 것입니다. 오늘 성도가 된 것을 하나님께 늘 감사하며 사명을 감당하는 성도가 됩시다.
종교개혁이 일어난 후에 개신교 예배당은 아주 단출했습니다. 예배당 안에 예수님 그림이나 십자가 모양이나 어떤 화상도 두지 않았으며 오직 말씀을 선포하는 강단만 우뚝 솟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막고 있었던 휘장이 찢어져서 이제는 짐승 제물이나 다른 어떤 행위가 필요 없게 되었고, 오직 말씀을 직접 듣고 하나님과 교제하게 되었으니 이제는 말씀만 귀하다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요즘에는 다시 예배당의 구조가 점점 변하고 있습니다. 설교가 너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고 생각하면서 설교자의 강단을 옆으로 비켜 놓고, 가운데 제단 비슷한 것을 만들어두고 거기에 성경책을 펼쳐놓거나 대형 십자가를 걸고 후광이 빛나게 하는데, 그렇게 하면 주님의 십자가를 감성적으로 더 가까이 느낄 수 있게 할지는 모르나 말씀의 중요성을 잊은 것입니다. 결국 말씀을 벗어난 형식적이고 감성적인 종교로 변질될 수 있는 위험이 있습니다. 성전 안에 있는 기구는 단출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지성소 안에는 오직 법궤만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오직 말씀이라는 것을 강조해 주셨다는 것을 시대가 바뀌어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성전 안팎에 있는 기구들은 우리가 어떤 과정에 의해서 구원을 받는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과정은 먼저 선택하시고 그 다음엔 전도를 통해서 불러내시고, 그 다음에는 죄를 깨닫고 회개하고 믿게 하시고, 그 다음에는 말씀 따라 믿음이 성장하게 하시며 하나님의 영화로 인도하여 영광에 들어가게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구원자인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역할을 해 주실 것인가를 알려줍니다. 이것을 장소별로 나누어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는 바깥뜰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두 개의 기반이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들을 대신하여 죽어주신 객관적인 사실이고, 둘째는 그 사실을 나 자신이 나를 위한 죽음이었다고 진실하게 믿는 나의 믿음입니다. 객관적인 사실인 주님의 십자가 사건으로 죄인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이 활짝 열렸고, 그것을 내가 듣고 믿음으로 구원이 나의 것이 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행하신 일을 내가 믿지 않으면 나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내가 십자가의 사건, 즉 복음을 믿으려면 누군가가 이 복음을 전해주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해주는 일을 전도라고 하는데, 성전 바깥뜰에 둘러쳐진 휘장은 바로 복음전도를 상징합니다. 성전 뜰을 둘러친 휘장은 아름다운 색실로 수를 놓아 만든 것으로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그래서 바깥에서 성전의 휘장을 바라보면 누구라도 ‘저 안에 무엇이 있을까’ 하는 호기심을 가질 수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비록 성전 본체는 우중충한 물개 가죽을 둘러 씌워서 보잘 것 없어 보였지만, 바깥뜰에 친 휘장은 휘황찬란하여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았습니다. 이것은 누구든지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사람들을 부르는 복음의 손짓을 상징합니다.
처음 복음을 전할 때에는 말씀만 전하지 않습니다. 선교사님들 중에 어떤 사람은 병원을 세워서 환자를 치료하고 학교를 세워서 가르칩니다. 물론 기독교학교에 다녔다고 해서 다예수를 믿거나, 교회가 세운 병원에서 치료받았다고 해서 구원도 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 중에는 자신의 병이 치료되고 교육의 혜택을 받음으로서 하나님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어른들 중에는 어렸을 때 성탄절에 교회 가서 과자 얻어먹은 기억이 있다는 분들이 많고, 어렸을 때 주일학교에 다녔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런 일들이 바로 휘장과 같은 역할입니다. 하나님은 치료와 착한 행실과 은혜의 경험들로 사람들을 당신께로 부르십니다. 그리고 그 일을 위하여 이웃에게 사랑을 주며 열심히 전도하는 전도자들을 세우십니다. 우리교회에 이런 일을 하는 분들이 늘어나고 헌신적으로 수고하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사람이 이런 분들에게 순종하여 따라오면 구원을 받게 됩니다.
그 화려한 뜰의 휘장을 쳐들고 들어오면 그 안에는 번제단이 있습니다. 번제단은 짐승을 잡아 피를 받아 뿌리고 내장을 꺼내고 다리는 잘라내고 몸통째로 단위에 올려놓고 태워서 제사를 드리는 무시무시한 곳입니다. 여기서 일하는 제사장은 마치 백정과 같은 일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왜 산 짐승을 잡아 바치라고 하셨을까요? 하나님은 짐승 고기를 즐겨 잡수십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에게는 그런 것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를 가르치기 위한 것입니다. 인간이 지은 죄는 이렇게 누군가가 대신 죽지 않으면 자신이 죽어야 하는 무거운 형벌이 있다는 것과 우리들을 위해서 그리스도가 대신 죽어 제물이 되신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제물을 바치느라고 험한 일을 하는 제사장은 인류의 제사장 되시는 주님을 상징하고, 여기서 타죽는 짐승도 장차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처참한 죽임을 당하실 주님의 희생을 상징합니다.
번제단은 죄값은 사망이며, 나를 대신하여 대신 죽으신 분이 있으니 그를 의지하고 믿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장소입니다.
죄인이 하나님앞에 나아가려면 누구라도 이 관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자기가 지은 죄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깨닫고, 나 대신에 죽은 그리스도를 믿어야만 사람이 하나님께로 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죽을 때 까지 자기의 죄가 들통 나지 않고 사는 것을 큰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다행이 아니라 엄청난 불행입니다. 차라리 폭로되고 용서받는 것이 다행입니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 가려면 자기의 죄를 폭로하고 자신이 지은 죄는 죽어야 마땅한 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나대신 십자가라는 번제단에서 죽어주신 그리스도를 믿어야만 하나님과 교제하는 성소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번제단 안쪽에는 물두멍이 있었습니다. 제사드리느라고 손과 발에 피를 묻힌 제사장이 제사를 마치고 성소 안에 들어가려면 손과 발을 씻어야 하는 곳입니다. 이 물두멍은 이미 죄를 고백하고 십자가의 피로 용서를 받은 사람이라도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마다 자신의 행실이 부정함을 인정하고 사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회개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지만, 지금도 날마다 생활 속에서 죄를 짓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마다 그동안 다시 지은 죄를 인정하고, 깨끗하게 되려는 노력을 중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날마다의 삶에서 자신이 세례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상기하면서 세례 받은 사람답게 살려고 노력하는 우리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물두멍은 유일하게 치수를 정해주시지 않은 기구입니다. 한없이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계시한 것입니다.
둘째는 성소입니다.
성소에는 아무나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평민은 성소에 들어갈 수 없었고 제사장도 지성소에는 들어갈 수 없도록 휘장이 막혀있었지만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돌아가시는 순간에 성소의 휘장이 찢어져서 성소와 지성소의 구분도 없어지고, 어떤 사람이라도 직접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그래서 신약시대의 신자인 우리는 누구나 왕 같은 제사장 대우를 받고 있고, 제사장의 책임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약시대의 성도는 날마다 성소에 들어가서 이웃을 위해서 기도하는 제사장적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럼 성소 안에는 어떤 기구가 있었습니까?
맨 먼저 어둠을 밝히는 등대가 있었습니다. 이 등대는 금으로 쳐서 만든 것인데 한 개의 등대에 일곱 가지가 위로 뻗어 있고, 그 위에는 살구꽃 모양의 등잔이 있어서 거기에 감람유를 붓고 심지를 담가서 불을 밝혔습니다. 그래서 등대에 불을 밝히면 마치 살구꽃이 피어 있는 것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지난 주일에 말씀드린대로 성소 안은 금판자와 네 겹 텐트로 봉해져 있기 때문에 깜깜합니다. 그 안을 비취는 빛은 오직 이 등대에서만 나옵니다. 주님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내게 오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인류의 앞길을 비치는 빛은 오직 예수에게서만 나온다. 예수님만 세상의 유일한 빛이다. 누구든지 하나님께로 나아오면 진리의 빛, 생명의 빛을 누리게 된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다음으로 떡상이 있었습니다. 떡상은 조각목으로 짜고 금으로 입힌 길쭉한 상인데, 그 위에 만나를 요리해서 만든 떡 12 덩이를 두 줄로 진열해 놓게 되어 있었습니다. 나중에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간 후에는 자기들이 농사지은 곡식을 빻은 가루로 떡을 만들어 여기에 올려놓게 하였는데, 이 떡은 하나님이 잡수시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가르치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떡을 잡수시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에게 떡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 떡은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린 만나로 만들었습니다. 주님은 요한복음에서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다.”라고 하시어 성소의 떡상이 무엇을 의미했는지 해답을 주셨습니다. 사람은 떡을 먹어야 사는 존재인데, 그 떡은 우리의 수단과 방법으로 만들어 먹는 물질이나 명예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우리의 양식이신 예수님입니다. 누구든지 주님께로 나아오면 거기에는 풍성한 생명의 양식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떡은 곡식이 빻아져서 가루가 되고 불에 삶아진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자신을 희생해서 인류를 살리는 생명의 떡이 될 것을 계시해 주신 것입니다.
다음으로 향단이 있는데 이 향단은 성소의 가장 중앙에, 지성소에 바짝 붙어 있었습니다. 제사장들은 날마다 향을 가져다가 불살라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이 향단은 하나님이 무엇을 가장 기뻐하시는지를 가르쳐줍니다. 하나님은 프랑스산 고급 향이 아니라 성도의 기도를 향으로 받으신다고 했습니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계5:8)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기도는 누가 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당신의 외아들 예수님이 드리는 기도입니다. 히9:24에는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오직 참 하늘에 들어가사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라고 하였고, 롬8:34에서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시는 중보기도가 우리를 구원받게 하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유지되게 하는 유일한 요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드리는 기도도 향으로 받아 주십니다.
셋째는 지성소입니다.
지성소는 성소와 한 건물 안에 있지만 휘장으로 분리되어 있어서 아무나 들어갈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는 곳입니다. 그 안에는 오직 하나의 기구가 있었는데 그것은 법궤입니다. 법궤는 조각목으로 만들고 금으로 싼 상자였지만 그 안에는 하나님이 친히 새겨주신 율법이 기록된 돌 판이 들어있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이 돌 판은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그 판에 새겨진 말씀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내려주신 약속이요 조약인데, 이 말씀에 의해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이고, 하나님은 그들을 책임져 주시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 궤를 법궤라 하기도 했지만 언약궤라고도 불렀습니다.
오늘은 성전의 기구들을 만드는 장면을 읽었는데, 성전의 기구들은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 나아가는가. 우리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하나님을 만나고 구원을 받는가 하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성전에서 가장 귀한 것은 지성소에 보관한 법궤였고, 오늘 우리의 신앙생활에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언약궤가 있는 지성소는 인간이 하나님과 만나는 장소이고, 법궤 안에 있는 말씀은 오늘 우리가 듣는 설교입니다. 우리가 마음껏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지금 지성소에 들어와 있다는 것이며, 우리가 하나님의 보좌앞에서 예배드리고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우리 앞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지 못하게 하고 그 음성을 듣지 못하게 하는 휘장이 없습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과 축복의 한 가운데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과거에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하나님의 성전에 접근도 할 수 없는 이방인이었고, 우상을 섬기며 이 세상의 쓰레기 같은 돈과 허망한 사상에 매여 살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던 우리가 이스라엘도 들어가지 못했던 성막의 지성소보다 더 영광스럽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말씀을 듣고 약속을 받으며 가르침과 인도를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신약시대를 사는 우리가 얼마나 은혜를 받은 사람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소홀히 하거나 시시하게 생각해서야 되겠습니까? 우리가 교회에 와서 말씀을 듣고 기도하는 것이 우리의 고귀한 사명이 되어야 합니다. 누군가 하나님 앞에 다가와 그 말씀을 듣고 경배하며 그분의 말씀을 밖에 나가서 전해주어야 한다면, 우리가 그 일을 사명으로 삼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입니다.
사무엘은 사울 왕에게 “하나님은 수양의 제사보다 말씀을 듣는 것을 더 좋아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제사를 드리는 목적은 하나님께 가깝게 가기 위함이고, 가깝게 가려는 것은 그분을 만나 말씀을 듣고 어루만짐과 인도를 받으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예배 시간에 말씀을 듣고 말씀으로 어루만짐을 받는 것이 짐승으로 드리는 제사보다 백배 낫지 않습니까? 언제나 거리낌 없이 하나님께 나아가고, 나아가서 항상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며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며 평생을 말씀대로 살아서 세상의 빛이 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